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40
40. 보살이 되도록 해
1:4.
타이트했던 점수 차가 벌어진다.
또 다시 박광윤 감독이 투수교체를 진행했다. 이미 흔들리던 투수였고 유행운에게 홈런을 맞은 이상, 민현웅에게도 큰 한방을 맞을 우려가 있었다.
“잘하긴 하네······.”
오늘 경기장을 찾은 대전 호크스 단장 이영호가 말끝을 흐렸다.
현재 대전 팬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 이영호는 요즘 서포트를 제대로 받고 있다.
그 팬 서포트가 바로 트럭 시위였다.
대전은 물론, 서울 모기업 본사 앞에서도 시위가 진행 중이었고 적폐답게 여전히 2년 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영호였다.
“잘한다니까요. 첫 홈런은 당겨서 쳤고 이번에는 밀어서 쳤어요. 타격 기술이 이미 잡힌 친구에요.”
최준혁은 약속대로 경원상고가 8강에 진출하자, 이영호 단장을 끌고 경기장을 찾았다.
‘이렇게 멍청한 사람인 줄 몰랐지, 내가.’
지금 최준혁 팀장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수 시절엔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는데.’
과거를 회상한다.
이영호 단장은 지금은 체중도 불어났고 마치 배 나온 두꺼비상이 되었지만, 15년 전만 하더라도 멋진 사람이었다.
몸 관리도 철저해서 슬림했고 키도 커서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투수였다.
대전 호크스 레전드 투수 출신으로 영구결번은 달지 못했지만, 1선발로서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켰다.
그와 반대로 최준혁의 선수 시절은 보잘 것 없었다. 1군과 2군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했고 알이 깨질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깨지지 않은 채 은퇴해야 했다.
타자로서 최준혁은 팀의 중심이었던 이영호를 많이 따랐고 그 결과-
‘내 인생도 말아먹었어.’
이 지경이 되었다.
최준혁은 은퇴 후, 대전에서 전력 분석을 시작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대전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이유는 대전 프런트는 사장부터해서 단장, 그리고 밑에서 꿀 빠는 인원 전부가 철밥통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인천 바이킹스로 넘어가 본격적인 스카우트 일을 배우기 시작한 최준혁은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름 괜찮은 외인 선수들을 바이킹스에 수급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뭐?”
“아, 아닙니다.”
속마음이 순간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최준혁은 선수 시절의 이영호만 믿고 대전으로 컴백했다.
스카우트팀 팀장 자리를 받았고 고교 선수를 주로 보러 다니던 최준혁은 차라리 인천에 남아 있을 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주영이 정말 괜찮거든?”
사실 이영호는 투수 출신으로서 투수 유망주에 대한 탐욕이 있었다.
올해 트럭을 받게 된 이유 중에 하나로 ‘이주영’이 있었다. 작년 대세는 민현웅이었고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도 민현웅을 1픽으로 뽑아야 한다는 반응이 일어났다.
그 상황에서 이영호는 너튜브에 나와 입을 털게 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 야구는 투수입니다. 저도 투수 출신 아니겠습니까? 저는 대전이 흥하려면 당연히 이주영 선수를 지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 대단했다.
보살이라 불리던 대전팬들의 혈압을 급격하게 올리는 것과 동시에, 뇌출혈까지 일으켰다.
그 결과, 이영호는 트럭을 받았고 4연꼴이 확정되는 동시에 또 트럭을 받았으며, 올해도 5연꼴이 확실시되자 트럭을 또 받았다.
“우리 팀에 좌완이 부족하잖냐. 공도 빠른데 제구도 잘 돼. 몸쪽 승부 즐기는 거 보면 승부사 기질도 있고.”
그 말을 듣고 있는 최준혁의 미소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그걸 쳤단 말이야······.”
다행히 이주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입에 트럭을 처박고 나니 정신을 조금 차린 모양이다.
“백유진이라 했지? 지금 경원상고 투수 말이야.”
“네, 그 친구도 괜찮은 선수죠.”
“그 백유진이라는 애가 사실 지금 1실점만 하면서 버틸 수 있는 투수는 아니야.”
어쩌라고.
최준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쟤가 지금 잘 던질 수 있는 건 유격수 힘이 커.”
“예?”
최준혁은 조금 놀랐다.
처음으로 이영호가 사람다운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유격수에게 가는 타구가 많은데, 그걸 침착하게 모두 처리 하잖아. 투수 입장에서 저런 유격수가 내야를 꽉 잡아주면 마음이 놓이거든.”
이 순간, 이영호는 0.1cm 정도 눈을 떴다.
“왜 준혁이 네가 유행운, 저 친구를 미는지 알겠네.”
빠아아악!
“어?”
그 순간, 눈치없이 민현웅이 바뀐 투수의 공을 사정없이 쪼개버렸다.
쭉쭉 뻗어가는 타구가 담장은 물론, 심지어 경기장 밖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근데, 준혁아.”
엄청난 비거리.
“역시 정배는 민현웅 아닐까?”
이형호가 미약하게 뜬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아, 죽일까?’
최준혁은 처음으로 격렬한 살인 충동을 느꼈다.
* * *
선수에게 승리는 중요하다.
경기를 뛰면서 패배를 원하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가끔 돈에 미쳐서 승부조작을 하는 정신나간 부류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승리를 갈망했다.
그건 유행운도 마찬가지였다.
‘넉점 차.’
점수는 어느새 1:5.
1점 차로 쫓기던 경원상고가 크게 한 걸음 달아났다.
고교야구에서 넉 점 차는 크다.
후반부에 이르면 7점만 앞서도 콜드승을 거둘 수 있다. 그 정도인데, 후반부에 넉 점이라는 점수 차는 승기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을까?’
경원상고는 다르다.
북성고는 이주영을 제외하고도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투수가 있지만, 경원상고는 아니었다.
백유진을 제외하면 모두 위험성을 갖고 있는 투수였다.
7회 초.
백유진이 마운드에 올랐다.
지금까지 투구수 제한에 맞춰 공을 던졌던 백유진은 60구 이상 던진 건, 1차전 외에는 없었다.
지금 백유진의 투구수는 87구.
즉, 이 경기에서 이긴다고 해도 사흘 후 열리는 4강에서는 마운드에 올라갈 수 없다.
“이기자.”
백유진이 야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북성고는 그간 만났던 팀과는 레벨이 달랐다. 백유진이 60구 안에서 5이닝까지 책임지고 내려와도 타선의 힘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지만, 북성고는 아니다.
사람답게 던지는 백유진이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그 순간, 방화가 시작될 거라는 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휴우.”
백유진이 더 던질 수 있는 공은 단 18구.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산없이 던진다.
한 명이라도 더 돌려세우면 그만큼 경원상고의 승률이 올라간다.
“끄아악!”
이미 힘은 빠졌다.
온 몸을 비틀며 공을 던진다. 제구가 흔들리는 이 상황에서 존에 맞춰 공을 던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수비를 믿는다.
막아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따악!
“유격수!”
뒤를 돌아보며 백유진이 소리쳤다.
이미 유행운은 움직이고 있었다. 삼유간을 꿰뚫은 날카로운 타구였다.
이미 처진 자리에서 수비 위치를 잡고 있던 유행운이 달려가며 팔을 뻗었다. 글러브에 들어가는 공을 빠르게 빼낸 유행운이 점프 스로우를 시도했다.
스텝을 밟을 시간도 없었고 주자를 잡기 위해서는 과감한 송구가 필요했다.
“어.”
그 순간이 아주 느리게 느껴진다.
점프 스로우를 하는 유행운과 공을 받기 위해 다리를 쭉 찢은 1루수 이장현.
공이 1루수 미트를 향해 날아간다. 원바운드 된 송구를 이장현이 낚아챘다.
결과는?
“아웃!”
우와아아악!
그 순간, 관중석에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가봐도 처리하기 힘든 타구였고 그걸 건져낸 것도 호수비라 할 수 있는데, 과감한 점프 스로우가 마치 그림 같았다.
“이지, 이지.”
유행운은 미소를 지으며 백유진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전혀 이지 타구가 아니었지만, 나름의 허세를 부려보는 유행운이었다.
“이쯤되면 점프 스로우가 트레이드 마크네.”
애제자의 멋진 수비를 보며 이형호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아직도 가르쳐야 할 수비가 많았다.
황금사자기가 끝나면 유행운에게 조금 더 시간을 내서 기본기를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참 시간이 안 간다.”
어느새 7회에 접어들었음에도 이형호는 쫓기는 기분이었다.
백유진이 한계가 왔다. 지금 힘이 떨어져서 팔 각도가 내려가는게 보였다.
“올라가자.”
백유진은 최선을 다했다.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백유진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투수 교체를 위해 이형호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유진아. 오늘도 너는 멋진 투수였다.”
6.1이닝 1실점.
총 101구를 던진 백유진은 누가 뭐라 해도 경원상고를 대표하는 투수 그 자체였다.
“아직 더 던질 수 있어요.”
“내가 투수 출신은 아니지만, 힘 빠진 투수를 계속 마운드에 두면 어깨에 무리가 간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결국 백유진이 마운드를 내려온다.
그리고 북성고의 화력이 불타올랐다.
* * *
백유진이 내려간 경원상고의 마운드는 몹시 빈약했다. 야금야금 점수를 내주던 방화범들이, 기어코 8회 초에는 동점까지 내주었다.
“우리가 쉽게 이기는 방법이 뭔지 알아?”
북성고 포수가 말을 걸었다.
“나 거르는 거?”
“맞아. 솔직히 너나 민현웅, 둘 중 하나만 걸러도 쉬워져.”
“쪽팔린 줄 알아라. 프로가서도 그럴래?”
유행운은 배팅 장갑을 동여 매고 타격 자세를 취했다.
“억울해서 그렇다. 쉽게 이길 수 있는데, 우린 써먹지도 못했으니까.”
“놀고있네.”
사실 8회 말에서 점수를 낸다고 해서 승리를 예상하기는 힘들다.
이미 선두타자 류진운은 힘없이 퇴장했고 유행운과 민현웅이 합작하여 점수를 낸다고 해도, 그게 끝이었다.
그 다음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유행운은 배트를 쥐었다. 점수를 내는 것이 승리를 향한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1구, 바깥으로 멀리 빠지는 직구.
“볼!”
2구, 타자 몸 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3구,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
“볼!”
4구, 타자 눈 높이에 맞춘 높은 볼.
“볼!”
5구, 바깥을 찌르는 직구.
“흐읍!”
유행운이 노리는 공이 들어오자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그대로 밀어서 2루수 키를 넘겨 버린다.
외야로 굴러가는 공을 보던 유행운이 아쉬운 듯 1루 베이스를 밟았다.
“멸치 밥상이 왔구나.”
민현웅이 헬멧을 두드리며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도 알고 있다. 여기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패배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이 타선이 득점을 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9회 말은 점수가 없다. 점수가 날 확률은 10% 남짓.
“휴우.”
스스스슥.
민현웅이 숨을 고르는 그 순간에 유행운은 도루를 위해 리드폭을 슬금슬금 늘리고 있다.
유행운에게 장타력과 좋은 수비만 있는게 아니었다. 빠른 발은 투수에게 위협감을 줄 수 있었고 충분히 2루 베이스를 훔칠 수 있었다.
“세이프!”
투수가 계속 유행운을 확인한다.
주자가 득점권에 들어가면 굉장히 피곤해진다. 더군다나, 민현웅은 까다로운 타자였다.
충분히 장타를 생산할 수 있는 힘 있는 타자였기에, 주자를 계속 1루에 묶어야 했다.
스스스슥.
그럼에도 유행운은 리드를 길게 가져간다.
투수가 연거푸 견제를 진행하고 그때마다 유행운은 몸을 던져, 베이스를 터치했다.
“세이프!”
투수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간다.
도루 각을 보던 유행운이 빠르게 스타트를 끊었다.
포수가 공을 받는다. 바로 공을 빼고 던지려 했지만, 이미 베이스를 향해 몸을 던지는 주자를 확인하고 송구를 포기했다.
2루 베이스를 밟은 채로 유행운이 흙을 탈탈 털었다.
이제 남은 건 민현웅에게 달렸다.
“행운이 엄마는 좋겠어요. 아들이 저렇게 야구를 잘해서.”
오늘 이선영은 연차를 쓰고 야구장을 찾았다.
사실 요즘 이선영은 시간이 없었다. 아들의 야구를 지원하려면 그만큼의 돈이 필요했고 이런 저런 일까지 끌어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 경기를 찾은 건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뒤늦게 경원상고에 대해 알아보았다.
경원상고는 선전을 하고 있지만, 우승까지는 힘든 팀이었고 8강에 붙는 북성고는 우승을 노리는 팀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나니, 휴가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한 칭찬이에요.”
사실 이선영은 학부모들과 함께 경기를 보는게 조금 힘들었다.
예전에도 아들이 운동을 할 때, 학부모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조금 떨어져서 보는 걸 선호했었다.
“행운이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안 그랬으면 우리 예선 탈락이었을텐데.”
경원상고 학부모들은 생각보다 수더분했다.
아들의 야구를 지원하려 전학도 감수했으니, 그럴 수밖에.
민현웅이나 백유진을 제외하면 다들 대학에 아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행운엄마는 대체 어떻게 아들을 키웠어요? 비결 좀 알려줘요.”
그 질문에 이선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남편이 죽은 후, 이선영은 아들과의 추억이 없었다. 서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아왔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엄마로서 미치도록 미안한 이선영이었다.
“저는 아무것도 안했어요.”
이선영은 3루 도루까지도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정신 차려보니까, 아들이 알아서 컸더라고요······.”
따악!
그 순간, 민현웅의 배트가 돌았다.
학부모들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유행운은 타격음과 동시에 스타트를 끊었다.
“짧은데?”
어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
유행운은 3루를 돌아 홈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중견수가 빠르게 홈 송구를 시도한다.
촤아아악!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한 유행운이 홈 태그를 피해 왼손을 빼냈다. 그리고 허리를 비틀며 오른손으로 베이스를 터치한다.
그 짧은 순간, 유행운은 놀라운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세이프!”
그 소리와 함께 학부모들이 얼싸안고 난리가 난다.
이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득점에 성공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이 분위기에 아무 생각없이 동화되었다.
“유행운!”
“유행운!”
큰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적은 수의 관중 사이에서 터진 응원소리는 이상하게 이선영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행복해 보이는 아들의 얼굴.
흙투성이가 되어 폴짝 뛰며 즐거워하는 아이같은 모습에 마음이 울렸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해맑은 얼굴이라서.
“엄마, 왜 울어?”
경기가 끝나고 이선영은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냥.”
“경기에 질 수도 있지.”
7:6.
경원상고는 끝까지 상대에게 맞섰지만, 승리를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엄마, 벌써 그렇게 울면 안 돼.”
유행운은 씩씩했다.
오늘 경기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웃을 수 있었다.
“앞으로 난 야구를 하면서 많이 질 수도 있어.”
유행운이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내가 약팀으로 가면 밥 먹듯이 질 수도 있는데, 엄마가 이렇게 슬퍼하면 내가 미안하잖아.”
사실이다.
드래프트에 참가한다면 유행운은 만년 하위팀으로 팔려갈 운명이었다.
“그러니까, 엄마.”
유행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야구에 있어서는 보살이 되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