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42
42. 야구 월드컵 1
“행운아, 여권.”
“네.”
“행운아, 옷은 그거면 되겠어?”
“네.”
“행운아, 가서 일본 음식 먹지 말고 간식 챙겨줄테니까, 이거 먹어.”
“네.”
“행운아.”
“엄마.”
U-18 참가를 위해 떠나는 날.
아침부터 유행운의 모친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 애 아니야.”
그 말에 이선영의 눈이 커진다.
“애가 아니라니?”
“어제 잘 알아서 챙겨놨어.”
“넌 애야.”
“엥?”
“아직 미성년자잖니.”
“······.”
그렇다.
아직 유행운은 미성년자 신분이었다.
요즘 이선영이 느끼기에 아들은 부쩍 큰 느낌이었다. 신체적으로 몸이 커졌다기 보다는 내면이 훌쩍 자란 느낌이다.
예를들어, 유행운이 과거로 회귀하기 전에는 방이 엉망이었다. 설거지도 제대로 안 하던 유행운이었는데, 요즘은 잔소리를 하기도 전에 침대 정리를 했고 먹은 건 알아서 치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요즘들어 자꾸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선영이었다.
“자, 급한 일 있으면 걱정하지 말고 엄마 카드 써.”
이미 유행운은 용돈을 모두 환전해서 준비했다. 게다가 어제도 모친에게 일본에서 사용할 돈을 받은지라, 카드까지 챙기는 모습이 의아했다.
“돈 쓸 일 별로 없어.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괜찮아. 나 엄마가 준 거로도 충분해.”
하지만 이선영은 기어코 아들의 주머니에 카드를 챙겨 주었다.
국내 대회도 아니었고 해외로 나가는 국제 대회라,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서는 탓이었다.
“이러다 늦겠다. 먼저 차에 타 있어.”
도로 카드를 돌려줄까 봐, 이선영이 아들을 집 밖으로 내몬다. 유행운이 그런 엄마를 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쓸게요.”
날이 덥다.
8월 말에 열리는 U-18 야구 월드컵이 끝나면 본격적인 드래프트가 다가온다. 이제 유행운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는 뜻이었다.
채리원은 느긋하게 생각하자고 말했다. 드래프트에 참가하더라도 최대한 몸값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U-18만 한 대회가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
트렁크에 짐을 싣고 차에 올라탄 유행운이 모친을 보았다.
“엄마는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미국으로 갔으면 좋겠어?”
그 물음에 이선영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인천공항’을 입력하고 출발한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던 이선영은 뭐라 말하려 입을 달삭이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뭐라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어떤 대답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대답이기도 했다.
엄마로서 이선영은 아들이 먼 곳에 가지 않기를 바랐다. 단순히 프로 진출을 하는 것도 도전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고생할까 봐 걱정이었다.
‘엄마가 나 없이 살 수 있을까?’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선영이 지금까지 살던 곳을 포기하고 아들을 따라 미국을 갈 수는 없다.
유행운을 끝없이 고민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랑하는 엄마였고 두 번째는 실력이었다.
과거로 회귀해 운동을 다시 시작한지 고작 6개월이 지났다.
갑자기 운동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에 무리가 간다. 중간에 쉬는 텀이 길었던 유행운은 부상을 가장 조심했다.
그걸 이형호도 알고 있었기에 중요한 전반기 시즌이 끝나자, 유행운에게는 개인교습 시간을 늘리고 과한 훈련은 금했으며 출전 시간도 확 줄였다.
‘내 몸이 견딜 수 있을까?’
아직 미완성인 몸.
과거로 회귀해서 보여준 시간도 그 누구보다 작았다.
해외 구단들이 유행운에게 관심을 보이면서도 적극적인 배팅을 피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최대한 조건을 따져 미국으로 간다 해도 여유로운 생활은 불가능하다.
“엄마, 가는 길 조심하고. 도착하면 전화할게.”
“응, 잘 다녀와.”
“걱정하지 말고 문단속 잘하고 있어요.”
“엄마가 애니.”
“어서 가요.”
캐리어를 들고 멀어져가는 낡은 차를 바라본다.
다양한 생각이 든다. 더운 바람이 유행운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다.
* * *
[U-18 한국의 유행운, 일본의 오카모토, 미국의 그레이슨······ 가장 빛나는 별은?]채리원이 U-18 직전에 공격적으로 뿌린 보도자료의 타이틀이다.
당연히 지금 한국에서 떠오르는 유망주는 유행운이었다.
일전에 박동욱은 인천 바이킹스 2군과 연습 경기를 잡았고 그 경기에서 유행운은 홈런 두 개를 쏘아 올리며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경기 결과는 12:4.
완승을 거두었으며 타격에서 눈에 띄는 선수는 단연 유행운이었다.
그리고.
“쟤 오카모토지? 그 케이슨지, 뭔지.”
“어. 맞는 듯.”
일본 도쿄에 도착한 U-18 대표님은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짧은 비행 시간으로 여독이 있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취재진 겁나 많네.”
숙소로 사용하는 호텔 로비에는 취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열띤 취재의 중심은 오카모토였다.
오카모토는 일본에서 기대하는 유망주였다.
대형 유격수가 탄생했다며 이미 작년부터 시끄럽게 떠들어댔고 올해는 오카모토가 속한 학교가 고시엔 우승까지 거머쥐자, 더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항간에는 고시엔 일정을 앞당긴 이유가 자국에서 열리는 U-18 야구 월드컵에서 정예 멤버로 출전하기 위해서라는데, 유행운이 보기에는 기정사실로 느껴졌다.
“음, 라이벌로 느낄만 한 팀은-”
마이크를 들고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오카모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당최 알 수 없다.
유행운 역시도 신경 끄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이동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가끔 고개를 돌려 힐끔거리기는 했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한국? 당연히 아니고.”
그 순간, 취재진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자 한 명이 뒤를 돌아 한국팀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마치 오카모토에게 저기 한국 대표팀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듯.
“아, 미안하게 됐네요.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일본의 라이벌은 미국 정도? 네, 어쩔 수 없죠. 요즘 한국은 대만보다 못해서.”
일본 취재진이 과장된 웃음을 터트린다.
묘한 그림에 유행운의 얼굴이 굳었으며 나머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적으로 지금 일본어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개소리 지껄이나 보군.”
가장 앞에 서 있던 박동욱이 혀를 찬다.
일본이 자극적인 인터뷰를 하는 건,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일본이 우승하려고 벼르고 있더라고요.”
“그렇겠지, 늘 거긴 그렇게 얘기하지.”
한국과 일본의 관계.
역사로 얽힌 그 관계는 하루 아침에 정리될 수 없다. 그렇기에 많은 선수들이 한일전에서 투혼을 발휘해, 어떻게든 승리를 거머쥐려 한다.
그건 지금 이 어린 선수들.
U-18 청소년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가자.”
박동욱 감독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따로 알아보지 않아도 나중에 기사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아직 어린 친구가 하는 말에 휘둘릴 필요도 없었다.
모든 걸 실력으로 보여주면 해결 될 단순한 일이었다.
* * *
“허어.”
방 배정은 랜덤이다.
그리고 하나의 규칙이 있었는데, 팀이 하나로 뭉치기 위해 같은 학교끼리 방을 쓰지 못하는 규칙이었다.
고로 유행운은 백유진과 민현웅과 떨어져야 했고 방 문을 열자 보이는 얼굴은.
“이주영이네.”
북성고 에이스이자 U-18 에이스 이주영이었다.
“침대가 세 개니까, 한 명 더 올텐데.”
유행운은 구석 자리에 제 짐을 가져다 놓은 이주영과 가운데를 비워 두고 통로에 가까운 침대에 또 다른 짐이 놓인 걸 확인하고, 하는 수 없이 가운데 침대로 다가갔다.
“박치열이야.”
“방 배정 랜덤 아니었냐?”
아주 묘하다.
이주영과 달리 박치열은 유행운에게 유격수 자리를 뺏긴 선수였다. 그리고 지금은 키스톤 호흡을 맞출 사람이었다.
“너 오카모토 어때?”
“왜?”
“걔 잘하는 거 같아?”
“나도 영상으로 본거라 실제로 확인하긴 해야 하는데, 솔직히 걔보다는 그레이슨이 더 위험하지 않나?”
그레이슨 버드.
야구 종주국 미국은 당연히 강팀이다.
그리고 그레이슨 버드는 유행운도 알고 있는 선수였다. 미래를 살펴보면 오카모토보다 더 유명해지는 선수는 단연 그레이슨 버드였다.
그레이슨 버드는 외야수로 드래프트 상위 라운더였다. 사실 U-18 자체는 그리 화제성이 없었다. 미국에서도 그리 주목 받은 대회가 아니었기에 정예 멤버로 나서는 일이 드물다.
늘 미국은 강팀이지만, 올해 미국팀은 더욱 강하다.
일본이 우승을 노리고 정예 멤버를 꾸린 것처럼 미국의 전력 역시도 심상치 않았다.
그레이슨을 포함해 드래프트 중상위 순번이 총 다섯 명이다. 그레이슨을 제외하면 모두 투수였고 하나 같이 무시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오카모토는 강속구 경험이 별로 없을걸?”
유행운이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일본은 어릴 때부터 구속에 집착하는 거 보다는 나이를 먹고 천천히 끌어올리는 경향이 강해.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이 나이에는 150을 넘나드는 공을 던지는 투수가 귀하니까.”
오카모토가 고시엔에서 MVP를 먹었든, 홈런왕이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걔한테는 네 공이 충분히 먹혀. 네가 매일 나한테 얻어 터지는 몸쪽 승부? 해도 돼. 초반에 깊숙이 박고 나면 쫄아서 물러설 거니까, 네가 하던 패턴 그대로 가져가도 됨.”
이주영이 태블릿PC를 든 채로 유행운이 하는 말을 집중해 들었다.
“근데, 그레이슨은 안 돼.”
유행운이 말을 이었다.
“걔한테는 조심히 접근해야 해. 걔는 빗맞아도 힘으로 넘길 수 있는 타자라서, 몸쪽 승부 쉽게 했다가는 나처럼 얻어 터질 걸?”
사실이다.
그레이슨 버드는 미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스타 플레이어이자 4번타자로 거듭난다. 그리고 국제 대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앞으로 계속 마주칠 상대기도 했다.
“내 몸쪽 공이 그렇게 쉬워?”
어딘가 이주영은 불쾌한 얼굴이었다.
“응.”
유행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몸쪽 공 던질 때는 제구 신경 쓰느라, 일직선으로 옴.”
즉, 볼끝이 더럽지 않았다.
* * *
WBSC U-18 야구 월드컵.
총 12개 국가가 참가하는 아마추어 국제 대회는 총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예선이라 할 수 있는 오프닝 라운드를 진행한다.
오프닝 라운드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조 3위 안에 들어야 한다. 즉, 절반은 떨어지고 절반은 슈퍼 라운드로 진출이 가능하다.
[U-18 야구 월드컵, 오카모토의 도발 “라이벌? 한국은 당연히 아니다”]오프닝 라운드의 첫 상대는 캐나다였다. 그리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야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한국은 A조에 속했다.
A조에는 한국, 캐나다, 일본, 호주, 중국, 네덜란드가 속했다.
[U18 유행운 “오카모토가 누구? 실력으로 보여줄 것”]뭐든 입을 털 거라면 실력이 먼저가 되야 한다.
유행운은 태극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괜히 슥슥 손바닥에 문지르며 미소를 지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플레이 볼!”
경기가 시작되었다.
유행운은 늘 익숙한 3번타자로 시작한다.
듣기로 박동욱은 유행운의 타순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3번으로 정한 이유는 첫 공격 시작에 무조건 타석에 서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해줄 것 같은 선수가 박동욱에게는 역시 유행운이었다.
따악!
대기 타석에서 캐나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살피며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선두타자 정유찬이 방망이를 매섭게 돌렸다.
3루수 옆을 스치는 단타.
“국대는 국대네.”
항상 빈 밥상만 받던 유행운이 미소를 지었다.
한국은 빠르게 승부를 결정 짓겠다는 듯,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따악!
연달아 터진 안타.
무사 1,3루.
“야, 너 여기서도 다 먹기만 해 봐.”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상황.
U-18 4번타자 민현웅은 항상 유행운에게 밥상을 빼앗겨 왔다.
“남길 생각 없는데?”
유행운이 씩 웃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의 공 하나를 지켜본다. 대기타석에서 보는 것과 타석에 선 상황에서 보는 건 언제나 느낌이 달랐다.
초구를 지켜보고.
제구는 잡혔지만, 볼 끝이 더럽지 않다는 걸 확인한 유행운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구,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
“볼!”
제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포수 미트에 박히는 소리도 강렬하다. 하지만 못 칠 공은 아니었다.
3구, 바깥 보더라인에 걸치는 투심.
부웅!
망설임 없이 배트를 낸다.
따아아악!
주말리그 전반기 이후.
유행운은 더욱 몸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도 이상적인 몸이 되려면 멀었지만, 확실히 힘이 붙었다.
“좋네.”
바깥에 꽉 찬 포심을 밀어친 유행운은 만족스러운 듯, 배트를 내려놓고 손목을 빙글 돌렸다.
가볍게 그라운드를 도는 유행운은 컨디션이 좋음을 느꼈다.
상대의 공도 눈에 잘 들어왔고 이번 U18에서 충분히 좋은 기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 * *
“저 친구 괜찮은데?”
7회 14:1.
한국팀의 콜드승을 확정지은 그 순간.
“보기와 다르게 힘도 있고. 선구안도 좋고. 수비도 나무랄데 없고.”
안경을 쓰고 머리가 살짝 벗겨진 백인 남성이 수첩에 뭐라 열심히 적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은 그는 뭔가 굉장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올 걸 그랬네.”
그 등 뒤로.
“안녕하세요? 메이슨 씨?”
유창한 영어 솜씨를 뽐내며 귀신같은 여자, 돈에 미친 여자가 접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