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44
44. 야구 월드컵 3
“차장님,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네요?”
“아,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야구요? 야구 보시려고 그러는 거죠? 아드님, 요즘 엄청 유명하잖아요.”
월요일, 이선영 차장은 야근을 하지 않고 칼퇴근을 준비했다.
지금 출발해도 빠듯하다.
핸드폰으로도 야구를 볼 수 있는 좋은 시대였지만, 운전을 하면서 보기에는 위험했다.
아들이 나오는 경기인데, 운전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제 이선영은 잠을 못잤다.
이유는 U-18 야구 월드컵 때문이었다. 아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를 뛴다는 그 사실이 자꾸만 마음을 졸이게 했다.
실수를 할까 봐 걱정이었고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걱정이 앞선다.
이별, 그걸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차장, 아들이 그 선수 맞지? 유행운!”
지점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흥분에 겨워 입을 열었다.
사실 그는 야구를 좋아한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한 그는 부산 마린스의 광팬이었다. 그러니 야구 소식에 항상 밝았고 이 차장 아들이 유명한 아마추어 선수라는 걸 알고 계속 눈치를 봤었다.
뭐라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은데, 기회는 없고.
이 차장은 먼저 아들에 대해 얘기하는 성향도 아니었고.
틈만 보고 있었는데, 마침 부하직원이 좋은 화제를 던졌다.
“나한테만 살짝 말해 봐. 이 차장, 응?”
간절한 눈으로 지점장이 다가왔다.
이선영은 난감한 눈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미국 가?”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작게 속삭인다.
“안 가지? 응?”
부산 마린스는 2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다.
유행운의 거취 문제는 부산팬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만약 유행운이 미국에 가게 된다면 부산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유행운이 국내에 머물러야만 민현웅을 먹을 수 있는데, 그 이유 때문에 부산팬은 요즘 유행운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이 말은 사실이었다.
이선영도 아들의 마음을 아직 정확히 모른다.
요즘 부쩍 커버린 아들 생각을 하면 잠도 설치는 이선영이었기에, 지점장의 관심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 이왕이면 한국이 낫잖아. 충분히 경험 쌓고 미국가도 늦지 않아. 아, 왜- 그 강현민처럼 말이야. 들어보니까, 리원 들어갔다며?”
상사의 말이 길어진다.
“채리원, 그 여자가 보통이 아니더라고. 얼마나 땡길지는 모르겠지만, 이 차장 완전 로또네? 아들이 로또를 입에 문 거나 다름 없잖아.”
또 선을 넘는다.
이선영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고 있는 걸, 눈치 없는 지점장은 모르는 듯했다.
“아들 잘 뒀어, 정말. 우리 아들은 운동신경도 없고 공부도 못해. 내가 이 차장만 보면 부러워서 죽겠다니까? 진짜 잘 키웠어. 로또를 문 아들이라니!”
참다 못한 이선영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점장 님.”
“응?”
“제 아들은 로또가 아니에요.”
“왜 그래에, 내 말이 좀 그랬어?”
“로또는 운이잖아요. 복권 따위에 우리 아들을 비교하지 마세요.”
마음 같아서는 지점장의 안경을 부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회 생활, 참아야 한다.
“아이고. 되게 예민하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말 실수 했네.”
음흉하게 웃는 그에게 대충 목인사를 한 이선영이 급하게 은행을 벗어났다. 오랫동안 근무한 직장이지만, 언제나 그녀의 숨을 막히게 한다.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숨이 돌아오는 듯했다.
심호흡을 하고 가방에서 약을 꺼내 물도 없이 씹어 삼켰다.
“아, 늦었어······.”
아들의 경기가 궁금했지만 운전에 집중을 못해 사고라도 날까 봐, 핸드폰으로도 영상을 틀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소파에 두고 티비를 켰다.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이리저리 옮긴다.
[1사 1루. 유행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일본전에서는 선취점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득점이 날까요?] [네, 지금 박동욱 감독이 가장 믿는 선수가 유행운 선수거든요. 저는 여기서 유행운 선수가 충분히 해결해 줄 거라 믿습니다.]다행히 아들의 첫 타석은 놓치지 않았다.
배팅 장갑을 동여 매고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던 이선영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네, 초구. 몸쪽 깊숙한 직구, 유행운 선수 살짝 뒤로 물러서며 공을 피합니다. 볼.] [네, 확실하게 견제를 하고 있죠? 이게 그만큼 투수가 유행운 선수를 과하게 의식한다는 뜻이거든요.]승부가 계속된다.
유행운은 몸쪽 깊숙이 들어온 볼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여전히 배팅박스에 바싹 붙은 채, 승부를 이어간다.
[다시 몸쪽!] [선구안이 참 좋아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투 볼.]유행운은 선구안이 좋다.
과거 프로 시절, 성적을 내기 위해 히팅 포인트를 뒤로 두고 간결한 스윙을 주로 가져갔다.
그 타격폼이 몸에 베여 있었고 회귀한 후에는 타격폼을 재정비했다.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두고 장타를 늘릴 수 있는 타격폼으로.
[자, 투볼이니까 여기서 한번 승부를 해 봐도 좋은데요.]유행운이 자세를 잡는다.
투수가 이를 악물고 공을 뿌린다.
지금까지 공을 지켜보던 유행운의 배트가 매섭게 돌았다.
[따아악!]강렬한 타격음 소리.
중계를 보던 이선영이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거침없이 뻗어가는 타구를 바라보았다.
[가나요? 가나요? 가, 가, 가, 가가가갑니다아아-! 유행운의 호쾌한 투런포! 여덟 개의 홈런이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 *
유행운은 배트를 휙 던졌다.
U-18 예선 경기를 치르면서 과한 액션을 하지 않았던 유행운이지만, 오늘은 상대가 일본이었기에 더욱 강하게 배트플립을 선보였다.
그와 동시에.
– 우우우우우우.
일본인으로 꽉찬 관중석에서 야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상관없지.’
유행운이 산책하듯 베이스 러닝을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일본은 에이스를 숨겼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선발투수 체급으로 따지면 살짝 밀리는 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선취점이 중요했다.
오늘 선발투수로 나선 에노시마 타츠토는 기교파 투수였다. 그러니까, 주태양처럼 150km/h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지만, 여러 변화구를 구사할 줄 아는 기교파.
물론 두 번째로 나서는 투수도 아니다.
3순위, 지금 일본은 한국 상대로 에이스를 소모하는 것도 아깝고 두 번째로 준수한 투수도 아깝다는 듯 세 번째 옵션을 내세웠다.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쁠 수가 없었다.
“반찬이 또 사라졌네.”
항상 민현웅은 유행운에게 경쟁 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은 인상 쓰지 않고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있었다.
원래 일본은 함께 패는거다.
“쳐라.”
민현웅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유행운이 말했다.
“이 경기장 뚫어버려.”
홈런은 투수에게 치명적인 내상을 입힌다.
지금 에노시마는 아마 꽤 머리가 어지러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연타석 홈런을 맞는다?
그건 투수의 정신줄을 싹둑 자르는 거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 우우우우우우.
저 지랄맞은 원숭이 소리도 사라지겠지.
– 우우우우우우우.
빠아아악!
유행운의 생각대로 곰 한 마리는 밋밋하게 떨어지는 포크볼을 그대로 퍼올렸다.
나름 정보를 찾아보긴 한 듯한데, 민현웅은 이미 과거와 달리 약점을 극복한 상태였고 밋밋한 포크볼은 타고난 거포에게는 그냥 밥이었다.
“진짜 뚫겠는데?”
발사각이 다소 높지만, 타구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마치 공에 미사일을 단 것처럼 날아가던 타구가 담장을 넘어 장외까지 쭉 뻗어갔다.
“이제야 조용하네.”
그 순간, 지독하게 야유를 보내던 관중의 소리가 사라졌다.
* * *
주태양.
190이 넘는 키를 자랑하는 타고난 신체조건과 강한 어깨.
겉으로 보기에는 주태양은 이주영보다 압도적인 투수다. 하지만 항상 주태양은 이주영에게 밀렸다.
주태양이 이주영에게 번번히 밀리는 이유는.
‘새가슴.’
투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새가슴 때문이었다.
물론 이주영 자체도 멘탈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태양에 비하면 강철 멘탈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파앙!
연습투구가 꽤 길어진다.
그리고 제구가 사방팔방 날린다.
몸 풀기 용도로 공을 던지는데, 하도 하늘 위로 솟아나서 포수가 점프 캐치를 해야할 정도였다.
파앙!
웃기는 건, 소리는 기가 막히다.
그만큼 구위는 좋다는 뜻인데, 제구가 잡히지 않으면 그 좋은 구위는 쓰레기가 되버린다.
‘글렀군.’
마운드에 오른 주태양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그리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걸 보니, 오늘도 얻어 터질 운명인 듯했다.
유행운은 주태양을 보는 순간, 오늘은 투수를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돌려 2루수 박치열을 본다.
박치열 역시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투수가 흔들릴 것 같으니, 믿지 말고 수비로 지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눈빛으로 주고 받았지만.
“볼넷.”
무사 1,2루.
주태양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연달아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유행운의 투런포와 민현웅의 홈런. 그리고 뒤이어 터진 2루타와 적시타까지.
1회만 넉점을 쓸어담은 한국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어째 쫓기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유행운이 연습 스윙을 하는 3번타자 츠모이를 보았다. 그리고 박치열을 바라본다.
츠모이는 우타자였으며 잡아당기는 걸 즐기는 타자였다. 그 말은 3루 방향 타구가 자주 나온다는 뜻.
박치열과 눈을 마주치며 수비 위치를 조정했다.
“태양아, 구위 좋으니까 존에 넣어도 돼.”
포수 성준열이 올라와 주태양을 다독인다.
주태양은 죽을 상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새가슴이 한순간에 나아질 리는 없었다.
관중이 다시금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니폰이라 외치는 것도 같고. 다음 타자인 ‘츠모이’ 이름을 외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아주 격하게 응원하고 있다.
내적 응원만 하는 일본 답지 않게.
“배트를 들 필요가 있나?”
원숭이가 타석에 선다.
일본어로 뭐라 중얼거리는데, 좋은 뜻은 아닐거라 생각된다.
포수 성준열은 상대를 싹 무시했다.
그저 한가운데 미트를 들고 흔들림 없이 주태양을 바라볼 뿐이었다.
“볼!”
초구는 또 볼이다.
최악은 볼넷으로 만루를 채우는 일이었다.
그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고 상대에게는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
“볼!”
순식간에 투볼.
로진백을 두드리는 주태양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유행운이 잠시 글러브에서 손을 빼고 땀을 유니폼에 문질러 닦았다.
다시 글러브를 끼고 자세를 잡는다.
‘제발 가운데.’
주태양의 등을 보며 간절히 빌었다. 가운데에만 꽂아도 타자는 생각이 많아진다.
어차피 주태양의 제구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차라리 한복판에 던진다는 생각으로 영점을 잡는게 나았다.
한복판에 던진다 해도 한복판에 꽂힐 확률은 30% 미만일 테니까.
“후우.”
심호흡을 한 주태양이 1루를 곁눈질로 살피고 세트포지션에 들어간다.
슬라이드 스텝을 빠르게 가져가며 공을 강하게 뿌린다. 큰 손가락에 걸리는 실밥의 느낌이 제대로 긁혔기를 간절히 빌었다.
딱!
삼유간을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직선타.
– 와아아아아!
그 순간, 관중석에서 함성 소리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물론 이건 완벽한 설레발이다.
지금 유행운은 타구 판단을 빠르게 마치고 몸을 던지고 있었으니까.
“어?”
1루를 향해 내달리던 츠모이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동시에 2루와 1루 주자도 마찬가지였다.
놀란 눈으로 귀루를 시도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웃!”
유행운의 그림같은 다이빙캐치는 츠모이를 돌려 세웠고.
무릎을 굽힌 채로 박치열에게 송구하여 귀루하던 2루 주자를 잡았으며, 뒤이어 박치열이 1루로 되돌아가려다 포기한 주자를 태그하여.
“아웃!”
완벽한 삼중살 플레이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