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48
48. 처절한 구애의 몸짓
U-18 야구 월드컵 결승전.
미국과의 재대결은 선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말하자면 선수로서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아.”
이주영은 투수 최대어다.
비록 작년보다 못한 투수 최대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그럼에도 올해 고교 선수 중에 가장 공이 좋은 투수가 이주영이었다.
“괜찮아. 1점이야.”
이주영은 고교리그에서 유행운을 만나기 전까지는 압도적인 투수였다.
우물 안 개구리.
한국에서 좀 잘 던진다고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오늘 이주영은 두 번의 홈런을 맞았다.
시작부터 위기였다.
1회 초,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았고 그 다음 타자들은 아웃카운트를 차곡차곡 잡으며 위기를 넘기나 했는데, 그레이슨이 타석에 섰다.
다른 타자와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위압감. 그 순간, 이주영은 등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레이슨.”
“응?”
“거를 걸 그랬나.”
불안한 느낌대로 이주영은 그레이슨에게 홈런을 얻어 맞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5회 초, 그레이슨이 선두타자로 타석에 섰고 매섭게 배트를 돌렸다.
“빗맞았는데.”
억울했다.
처음 그레이슨에게 홈런을 맞았을 때는 그럴 만 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제구도 잘 잡혔다.
바깥, 존에 걸치는.
배트를 묵직하게 돌렸지만, 정타는 아니었다.
빗맞았다는 걸 알고 뜬볼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넘겼다.
엄청난 힘으로.
“아직 석점 차야, 괜찮아. 우리도 만회하면 돼.”
이주영이 재능의 차이를 느낀다.
그 재능이란 신체다. 앳된 한국 선수와 달리 미국 선수들은 체구부터 달랐다.
나란히 두고 보면 동갑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발육 좋은 미국인들과 비교해서 밀리지 않는 한국인은 단 한 명이었다.
민현웅.
민현웅은 그들 사이에 끼여 있어도 또래로 보이는 신체 조건을 갖고 있었다.
“가자.”
이주영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 하나하나에 온 힘을 실었다.
완급조절? 그런 걸 할 수 있을리가.
“수고했다.”
이주영은 분했다.
그레이슨을 제외한 타자에게는 분투했다. 주자를 쌓으면서도 실점을 억제하며 돌려세웠다.
그레이슨에게는 달랐다.
땅볼 하나를 잡아내긴 했지만, 그걸로는 위안이 되지 않았다.
두 개의 홈런.
하나는 심지어 빗맞은.
[5회 초, 아웃 카운트 한 개를 남겨두고 이주영 선수가 내려갑니다. 투구수가 80구를 넘기기 시작하면서 힘이 떨어지고 있기는 했거든요.] [그래도 4회 말에 만회를 했죠?] [네, 맞습니다. 유행운, 민현웅 조합이 이번에도 빛났습니다. 유행운 안타, 민현웅 투런 홈런. 한 점차로 턱 끝까지 따라붙었습니다.]4:3.
민현웅은 침묵을 깼다.
처음 크리스토퍼와 상대했을 때는 고전했다. 타이밍을 잡기 위해 배트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유행운의 말대로 포크볼을 노렸다.
하지만 타이밍이 살짝 밀리면서 장타가 나오기는 했지만, 애매했다.
“힘은 진퉁이라니까.”
유행운은 진지한 민현웅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크리스토퍼는 최고 구속 158km/h까지 찍는 파이어볼러. 비공식으로는 160km/h도 찍었었다.
드래프트 상위 순번 지명이었고 나름 메이저리그에서도 살아남은 투수였다.
한 마디로 고교리그에서는 보기 힘든 실력의 투수.
“행운아.”
경기는 치열하다.
4회 말, 민현웅은 크리스토퍼의 몸쪽 강속구를 잡아당겨 시원하게 넘겼다.
아주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나 미국갈까?”
손맛.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손맛을 민현웅이 느꼈다. 천재의 본능이 반응한다.
유행운이 알고 있던 미래가 달라지고 있었다.
과거 인생 1회차에서 한국은 오프닝라운드에서 일본에게 처참하게 패했다. 그리고 일본은 우승.
지금 한국은 우승을 향한 치열한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던 민현웅이 달라지고 있다.민현웅은 유행운을 견제한다.
이미 국내 여론은 유행운에게 힘을 실고 있다.
물론 유행운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채리원의 언플 실력이 대단한 것도 한몫했다.
“어차피 드래프트는 너한테 밀렸거든. 작년에 민현웅리그라고 떠들었는데, 이제와서 유행운리그? 못 참지.”
배팅장갑을 벗은 민현웅의 손바닥에는 굳은 살이 덕지덕지 붙었다.
그 손바닥이 유행운 눈에 들어왔다.
“너 설마 연습했냐?”
유행운이 미간을 좁히며 민현웅의 손을 보았다.
“아, 이거?”
민현웅은 연습하지 않는다.
그가 연습하기 시작한 시기는 프로에 진출한 후였다. 재능을 타고난 천재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런 민현웅이 노력한다?
그 사실 자체가 유행운이 알고 있는 미래가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연습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뭐?”
“너를 못 쫓아갈 것 같아서.”
민현웅이 달라지는 이유.
타고난 천재가 노력하는 이유.
그리고 미국으로 시선을 돌린 이유는-
“너한테 지기 싫어, 난.”
바로 유행운 때문이었다.
* * *
경기장에는 관중이 별로 없었다.
일본과의 대결에서는 만원 관중이었지만, 지금은 일본과 경기하는게 아니다.
그럼에도 교민들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선수의 이름을 크게 프린트한 종이도 흔들며 힘을 복돋아 주고 있다. 그 모습을 유행운을 눈으로 확인하며 타석에 섰다.
[6회 말, 어느새 점수 차는 석 점.]이주영은 5회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 이후에는 벌떼 야구를 추구하듯 투수를 투입하며 실점을 최대한 억제했지만, 다시금 점수는 벌어졌다.
7:3.
넉점 차로 밀리는 상황에서 유행운이 타석에 섰다.
[2사, 1루. 김한결 선수가 리드폭을 늘리고 있습니다.] [유행운 선수 앞에 주자가 생기며 찬스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연타석 홈런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행운 선수가 11홈런으로 선두를 지키고 있고 민현웅 선수가 어느새 10홈런으로 성큼 따라붙었죠?] [네, 맞습니다. 유행운 선수가 지금 본선에 들어서면서 홈런이 잘 안 나오고 있긴 하지만, 언제든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입니다.]유행운은 배트를 들었다.
지금까지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했다.
사실은 마음은 이미 정해졌지만,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으며 흔들렸었다.
1구, 몸쪽 깊게 들어오는 직구.
전광판을 보니 157km/h가 찍혀 있다.
“볼.”
유행운은 헬맷을 고쳐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타석에 선다.
크리스토퍼는 아직도 마운드에 있다.
완급 조절을 하며 한국의 타선을 잠재웠고 유행운과 민현웅을 만날 때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괴물같은 투수처럼 보이지만, 괴물은 아니다.
체력에는 한계가 있고 90구를 넘긴 지금, 처음같은 압도적인 모습은 확실히 없었다.
2구, 바깥으로 흐르는 슬라이더.
유행운이 좋아하는 구종이다.
배터박스에 바짝 붙는 유행운은 밀어치기로 담장을 넘기는 걸 즐겼다.
배트를 낸다.
손목에 힘을 주고 구위에 눌리지 않도록 빠르게 배트를 돌렸다.
따아악!
[2구, 타격!] [날아갑니다! 큽니다!] [어어어-]유행운은 배트를 집어 던지고 1루를 향해 내달렸다.
1루를 빠르게 지나치고 2루를 향해 달렸다.
이미 김한결은 여유롭게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고 있다.
치는 순간 느꼈다.
[담장에 맞고 떨어지네요.] [아쉽습니다.]이건 홈런이 아니라는 걸.
“젠장.”
U-18 경기를 치르며 유행운은 자신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숙제를 깨닫는다.
이미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온 몸으로 느낀 건 처음이었다.
“휴.”
크리스토퍼가 유행운을 보며 놀란 가슴을 쓸었다.
‘아, 이 둘만 없으면 쉬운데.’
강타자를 넘겼더니, 타석에 또 강타자가 나타난다.
그 순간, 미국의 더그아웃이 소란스럽다. 크리스토퍼가 코치를 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민현웅은 고의4구.
“내가 여기서도 걸어가야 하냐.”
미국이 민현웅을 거른다.
한국은 그레이슨을 거르지 않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했지만, 미국은 더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한 선택을 했다.
“너무하네.”
5번 타자 양희성이 타석에 선다.
오늘은 무안타. 하지만 한 방은 있는 선수였다.
[여기서 한 점 더 따라 붙어야 합니다.]양희성은 안타를 치기 위해 집중한다.
크리스토퍼가 완급조절 따위는 잊고 공을 던졌고 양희성은 초구부터 배트를 돌렸다.
딱!
[아, 아쉽네요. 잘맞은 타구인데 2루수 호수비에 막힙니다.]한국은 끝없이 역전을 위해 두드리지만, 매번 코 앞에서 좌절했다.
‘야구를 더 잘해야 해.’
유행운은 경기를 하며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어야 한다.
[백유진 선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사실 이번에 경원상고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어요. 백유진 선수는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지금 0점대 자책점을 기록하고 있거든요?]여기 하나.
미래가 달라진 선수 하나가 더 있다.
백유진은 애초에 U-18에 합류조차 할 수 없었던 선수였다.
드래프트 하위 순번이었던 그는 현재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현재 승부는 팽팽하다.
미국은 3점을 지키고 있고 한국 역시도 추가 실점 없이 버티고 있다.
어느새 9회 초,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거운 백유진은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진다.
딱!
[아, 정말 땅볼 유도를 너무 잘해요. 저 어린 선수가 정말 노련하네요.]유행운이 먹힌 타구를 대시하며 잡아낸다. 지체하지 않고 러닝 스로우.
공이 1루에 정확히 도착한 걸 확인하고 백유진을 보며 엄지를 세웠다.
다시 과거로 회귀한 유행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리고 유행운 역시도 달라지고 있다.
“아.”
이번에는 그레이슨이 미간을 좁힌다.
못마땅한 듯 투수를 보던 그레이슨이 이내 배트를 내려 놓고 1루로 향했다.
뭐라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승부처에서 먼저 강타자를 거른 팀은 미국이었다.
“후욱!”
여기 모인 모든 선수가 승리를 위해 뛴다. 백유진은 안타 하나를 얻어 맞고 위기를 자초했지만, 이내 커터를 섞어쓰며 땅볼을 유도했다.
이번에도 유격수 정면.
유행운이 전진하면서 공을 건져내 3루 주자를 눈으로 확인하고 2루에 송구한다.
공을 받은 박치열 역시도 슬라이딩을 피하며 깔끔하게 1루 송구에 성공했다.
[네, 위기를 맞은 마무리 투수 백유진이 병살 유도에 성공하며 더 이상의 실점은 허용하지 않습니다.]이제 마지막 공격.
9회 말, 선두타자 유행운이 등장했다.
‘석점 차.’
투수는 바뀌었다.
확실히 크리스토퍼와 비교하면 그 무게가 덜하다.
[1구, 바깥으로 빠집니다. 볼.]유행운은 배팅장갑을 고쳐 끼며 생각을 정리한다. 타석에 서고 자세를 잡은 유행운이 배트를 돌렸다.
따악!
[깔끔합니다! 1,2간을 꿰뚫는 안타!] [선두 타자가 1루에 안착합니다.]욕심은 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배트를 돌리는 건 팀에게는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이었다.
[민현웅 선수, 타석에 섭니다.]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끓을 거예요. 직전 타석에서는 민현웅 선수를 걸렀단 말이죠? 이번에는 어떨까요.] [아! 승부하네요.] [초구, 몸쪽에 바짝 붙입니다. 스트라이크.]유행운은 리드폭을 길게 가져간다.
투수를 흔드는 건 주자의 역할이었다. 흔들면 흔들수록 민현웅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스스슥.
리드폭을 늘린다.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고 유행운은 재빠르게 1루 베이스로 돌아왔다.
탈탈, 벨트에 들어간 흙을 털어내고 다시 리드폭을 조심스럽게 늘린다.
[2구, 뚝 떨어지는 느린 커브! 스트라이크.] [이게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아요. 이 투수가 공이 빠르거든요? 갑자기 느린 커브를 던지면 타자는 좀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민현웅 선수가 웃는 걸까요?]다시금 리드폭을 늘린다.
투수는 눈으로 주자를 견제하고 세트 포지션에 들어갔다. 유행운은 투수의 모션을 눈으로 확인하며 타이밍을 잰다.
빠르게 도루를 감행하던 유행운이었지만-
빠아아악!
고막을 치는 듯한 호쾌한 타격음 소리에 그럴 필요가 없었음을 느꼈다.
“하, 정말 사기네.”
멸치가 날아가는 공을 바라본다.
사실 유행운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개인의 욕심보다는 팀을 위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막상 민현웅이 거대한 홈런포를 쏘아올리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속이 쓰렸다.
민현웅이 유행운에게 느꼈던 종류의 감정이다.
“됐다.”
그 감정을 훌훌 털어낸 유행운이 그라운드를 돌며 생각했다.
‘멸치도 거포가 될 수 있어.’
미래를 꿈꾼다.
* * *
U-18 야구 월드컵이 끝났다.
[잘 싸웠다! U-18 야구 월드컵 연장 접전 끝에 1점 차 패배]그렇다.
연장 승부 끝에 한국은 패배했다.
민현웅의 투런포. 이어서 연속 안타가 터지며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12회 초, 그레이슨의 솔로 홈런이 터졌고 그 이후에는 득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한국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주 오랜만에 채리원을 만난다.
채리원은 일본에 계속 있었지만, 대회 기간동안 유행운에게 피해를 줄까 봐, 따로 미팅을 요청하지 않았다.
작은 커피숍.
유행운은 우유를 마시며 채리원이 준비한 자료를 보았다.
“그 소식은 들으셨어요?”
“어떤 소식이요.”
“민현웅 선수.”
“아, 네.”
민현웅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미국행을 결정 지었다.
[민현웅, 미국 간다 “뉴욕 양키스와 250만 달러 계약 체결”]나쁘지 않은 계약금이었고 U-18에서 보여준 민현웅의 활약을 양키스는 높게 평가했다.
“신경쓰이지 않아요?”
“전혀요.”
유행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민현웅이 미국행을 결정 지었다. 이미 언질을 받긴 했지만, 진심으로 미국으로 떠날 줄은 몰랐다.
유행운의 과거에는 민현웅의 미국행은 대전 호크스에서 서비스타임이 모두 끝난 후에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제 조건은 간단해요.”
대충 해외 구단의 내용을 확인한 유행운이 서류를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저를 확실히 서포트 해줄 수 있는 구단이어야 합니다.”
채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금전적인 문제도 중요하고요. 전체적으로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구단.”
국내든 해외든 상관 없습니다.
“저에게 모든 걸 맞출 수 있는 구단을 알아봐 주세요.”
채리원은 유행운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했다.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선수에게 맞출 구단은 얼마 없다.
하지만 지금 똥줄이 타고 있을 그 구단이라면-
‘간도 쓸개도 다 내줄테지.’
가능했다.
* * *
현재 민현웅이 양키스로 떠나자 똥줄이 탄 구단이 있다.
“감독님, 이게 다 뭐에요?”
“뭐긴, 뇌물이지.”
“이거, 대전 호크스에서 보냈네요?”
경원상고에는 야구공 천 개와 연습용 나무배트가 배달왔다.
대전에서 보내기에는 연고지 관련도 없었다.
그저 이건 누군가를 위해 보내는 뇌물, 그리고 처절한 구애의 몸짓이었다.
“행운이에게 잘 보이려고 보낸거다, 이거.”
처절한 구애의 몸짓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