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5
5. 야구는 안 돼
백유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유행운이 몸쪽 직구를 쪼개는 그 순간, 홈런을 직감했다.
이번에는 좌익수 방면이었다.
좌익수가 뒤로 달려가며 타구를 확인했지만, 이내 담장에 가로막히며 넘어가는 공을 바라만 봐야 했다.
“놀랍다, 정말.”
이형호 감독은 보더라인에 걸치는 깊숙한 공을 그대로 잡아당긴 유행운에게 감탄했다.
백유진의 실투가 아니었다.
몰린 공이었다면 투수가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제구가 잡힌 공을 바짝 옆구리에 팔을 붙이고 당겨버렸다.
“유진이 괜찮을까요?”
백유진은 여전히 홈런의 잔상이 있는지, 마운드를 방문한 포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겨내야지.”
이형호 감독 역시도 한순간에 홈런을 맞아버린 에이스를 걱정했다.
언제나 그렇듯 에이스는 팀의 기둥이다.
백유진이라는 투수를 팀에 데려왔을 때, 이형호가 그에게 원했던 것이 에이스라는 자리였다.
“저건 유진이 탓이 아니야. 깝수나 임영원 같은 애들은 루킹 삼진이거든.”
멀리멀리 날아가는 타구를 확인한 민현웅도 물개 박수를 쳤다. 유행운은 예상한 그 이상을 보여주는 타자였다.
“야, 말이 좀 심하지 않냐?”
임영원이 발끈한다.
“누가 깝수야, 누가?”
또 저격 당한 강수현도 마찬가지였다.
“유진이 공 쉽지 않아. 몸쪽에 바짝 붙인, 그것도 존에 걸치는 공을 너희가 어떻게 쳐?”
나불나불.
악의는 없지만, 팀원의 성질을 습관적으로 긁고 있던 민현웅이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
“민현웅.”
“감, 감독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아닙니다. 입,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이형호 감독이 민현웅의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따라서 함께 열을 올렸던 강수현과 임영원도 입을 다물었다.
이형호는 가만 민현웅을 응시했다.
눈치를 살피던 민현웅이 감독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현웅아.”
“네?”
“내가 보기에는 행운이는 4번타자를 맡겨도 잘할 것 같은데.”
“······ 예?”
“알아서 생각해 봐라.”
그 순간, 유행운이 B조의 환대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입장했다.
경원상고 에이스를 두드린 남자.
유행운의 헬멧 위로 손바닥이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홈런을 치고 환영을 받고 있으니 웃음은 나오지만, 아프다. 게다가 같은 B조에 속한 녀석들 대부분이 1학년이었다.
“나 3학년이야.”
결국, 유행운이 진지하게 꼰대짓을 했다.
“아, 죄송합니다.”
“농담이야.”
피식, 유행운이 웃으며 헬멧을 벗었다.
이형호 감독이 유행운을 응시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예쁘다. 이형호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고생했다, 행운아.”
“아닙니다.”
“이번엔 잡아당기던데?”
“배터리가 집요하게 몸쪽 승부해서 당겨봤습니다.”
“타격 기술이 아주 좋아. 멸치처럼 말랐는데,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거냐?”
“손목 힘이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재능이네.”
유행운이 대답 없이 웃었다.
이형호 감독의 말대로 유행운은 멸치처럼 말랐다. 앞으로 살을 찌울 계획이지만, 민현웅처럼 타고난 체격은 없었다.
일단 투수가 던지는 공에 최대한 배트 중심에 맞게 하기.
두 번째는 손목 힘이었다.
상대 구위에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타고난 손목 힘 덕분이었다.
“강수현.”
감독과의 대화를 끝내고 유행운은 강수현을 찾아갔다.
강수현은 굳은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바로 앞에 유행운이 있음에도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네가 나한테 왜 그렇게 경쟁심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열등감을 가질 거라면 제대로 가져. 상대에게서 좋은 걸 취할 생각을 해야지, 시기 질투만 하면 아무것도 안 될걸?”
사실이다.
유행운은 과거 시기 질투보다는 상대의 장점을 취할 생각을 했다.
한 발이 아니라 두 발, 그 이상을 뒤처진 사람은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취할 시간이 없었다.
“계속 그렇게 열등감만 가지고 있으면 넌 아무것도 안 돼.”
순간, 유행운은 자신이 ‘꼰대’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먹고 강수현을 보니, 한없이 어린애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터진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난 열등감에 취해 야구하지 않아.”
그게-
“너와 나의 차이야.”
* * *
신입 모집 테스트 경기는 B조의 승리로 매듭지었다.
사실상 승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A조와 B조 모두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자리였고 실력을 보여준 참가자는 야구부 합격을 할 것이다.
유행운은 가방을 챙겼다.
합격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한다.
“행운아.”
“네, 감독님.”
이제 집으로 향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형호 감독이 유행운을 불렀다.
“다음 주에 보자.”
“네.”
“살 좀 찌우고.”
“노력하겠습니다.”
유행운은 타고난 마른 체질이었다.
성인이 되어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계속 살을 찌우기 위해 고칼로리 음식을 끊임없이 섭취했지만, 쉽게 살이 붙지 않았다.
이번에도 체중 증량은 유행운의 목표가 될 것이다.
“감독님.”
“그래, 더 할 말 있어?”
“제가 계속 야구를 해도 괜찮겠죠?”
“이상한 소릴 하네. 너 오늘 홈런 두 개 깠어.”
“네, 자세한 건 다음 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행운아.”
이형호 감독이 유행운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 부정맥 있다.”
“아, 네.”
“조심히 가고. 다음에 보자.”
“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꾸벅.
유행운이 인사를 하고 야구장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리 상쾌하지는 않았다. 오늘 테스트 경기만 두고 보면 만족할 만한 성적을 냈다.
과거에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그대로 교체되었지만, 이번에는 시작부터 홈런이었다.
게다가 합격도 했다.
마음이 가벼워야 하고 들떠야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다.
“야구는 안 돼.”
바로 그의 모친이었다.
“야구는 절대 안 돼.”
유행운의 모친은 남편이 죽은 후에 지독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남편이 보증을 서고 빚더미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다툼이 있었지만, 죽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높은 건물에서 몸을 던진 남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에 대한 미움과 후회가 마음을 갉아먹었다.
“엄마.”
“야구는 안 돼. 그걸 지금 어떻게 해? 너는 엄마가 매일 일에 치여 사는 거 안 보이니? 너도 아빠랑 똑같아. 한없이 이기적이야. 자기밖에 생각 못 해! 그이도 그랬겠지? 가족보다 친구가 더 소중했을 테니까, 터무니없이 빚보증이나 섰겠지? 그래서 이렇게 됐어. 나만 인생 망친 게 아니라, 내 아들, 내 귀한 아들까지-”
“엄마.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나아져?”
모친은 남편을 보내고 한없이 날카로워졌다.
성격이 예민해지고 걸핏하면 화를 냈다. 그러다가도 술에 취해 아들의 손을 붙잡고 미안하다고 울던 사람이었다.
유행운은 부모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와 젊은 엄마를 보는 순간, 미움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못된 말로 마음이 나아진다면 마음껏 해. 하지만 엄마 마음 편하지 않잖아. 나한테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도 후련하지 않잖아.”
이 나이에 유행운은 엄마와는 대화라는 걸 하지 않았다.
야구선수라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하면서는 더더욱 단절된 생활을 했다.
엄마는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었다.
평일에는 은행원 일을 했고 주말에는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집 마련에 몰두했다.
유행운은 야구를 놓을 수 없었다.
경원상고 야구부원 테스트에 불합격하고도 야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돈을 모아 글러브를 사면 모친은 힐난했다.
돈, 그놈의 돈 이야기를 걸핏하면 했다. 그래서 유행운은 입을 닫았고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혔다.
“아빠와 닮았다는 말은 취소해요. 그것만큼은 동의할 수 없어.”
유행운은 엄마에게 다가갔다.
식탁에는 담뱃갑이 있었다. 남편이 죽은 후로 설움을 술과 담배로 풀던 엄마였다.
“엄마가 술을 마시든, 담배를 피우든 그건 상관 없어요. 건강이 나빠져도 엄마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해.”
근데요.
“엄마, 나는 이 감정을 풀 수가 없어. 아버지가 죽고 나서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는데, 그걸 풀려면 야구를 해야만 해.”
단 한 번도 이런 대화를 모친과 나눈 적이 없었다.
군대에 다녀오고도 야구에 미쳐 사는 아들을 모친은 이해하지 않았고 아들은 그런 엄마를 이해시킬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엄마.”
입을 다문 엄마에게 다가간 유행운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느새 모친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런 엄마의 손을 그러쥐며 말했다.
“딱 1년 만요.”
간절한 목소리였다.
과거 열아홉의 유행운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입을 다무는 것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단절했지만, 서른의 유행운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1년만 야구할게요. 야구로 결과가 안 나오면 그때, 그때 그만둘게.”
경원상고 야구부 테스트를 통과하고 유행운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이 나이부터 야구를 시작하면 미래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프로 지명 못 받으면 그때 깔끔히 정리할 테니까, 제발요. 엄마.”
모친이 잡힌 손을 빼내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젓는다.
지금 그녀는 후회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을. 야구라는 세계를 알려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차라리 공부를 해. 그건 엄마가 어떻게든 지원할 테니까, 차라리 입시 학원을, 응? 행운아. 엄마가 부탁할게.”
유행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켜켜이 쌓인 갈등이 한순간에 풀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안해, 엄마.”
유행운은 효자가 아니었다.
지난 과거도 그렇지 않았는가.
그토록 반대하고 싫어하는 야구를 질기게 붙잡고 있던 유행운이었다.
그럼에도 새롭게 시작된 인생에서도 야구를 놓을 수 없었다.
더더욱 깊게 갈망한다.
“야구할 거예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어조였다.
“지원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내 야구는 내가 알아서 만들어 갈 거야.”
“제발, 행운아. 엄마, 숨 좀 쉬게 해줘······.”
“야구를 못하면 내가 숨을 못 쉬어······.”
유행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 아들을 외면하던 모친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화목하던 집안은 아버지의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망가졌다.
아버지는 지독한 회피형으로 남은 가족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끝까지 가족에게 상처만 남기고 가버렸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고개를 숙이며 운다.
유행운은 흐느끼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점점 말라가는 엄마의 옹송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엄마가 미안할게 뭐가 있어.”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엄마, 조금만 마음을 덜어보자. 우리 아버지 생각 그만하자. 우리 버리고 간 사람, 이제 더 이상 추억조차 하지 말자······.”
예전 열아홉의 유행운은 엄마와의 관계마저 단절했지만, 서른의 유행운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만약 정신이 여전히 열아홉 그대로였다면 유행운 역시도 엄마와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해, 미안해······.”
그의 모친은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야구를 하게 한 것.
그 세상을 알려주고 현실이라는 냉혹한 이유로 빼앗아 버린 것.
그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요······.”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나아갈 수 없다.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의 유행운은 모친의 손을 잡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의 슬픔은 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