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50
50. 야, 우냐?
날씨가 좋다.
조금 덥긴 하지만, 9월 중순에 접어드니 한없이 무덥고 습했던 날씨는 한결 나아졌다.
유행운은 오랜만에 외출을 나섰다. 운동이 아닌 개인 약속은 오랜만이었다.
“왔다, 물주.”
민현웅은 제일 먼저 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유행운이 저녁을 사기 위해 고른 메뉴는 짜장면이었다. 여러 메뉴를 생각했지만, 피자나 치킨은 안 된다.
운동부의 먹성은 대단하다.
그 먹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고기 뷔페를 생각했지만, 그건 주인에게 못할 짓이었다.
해서, 생각한 것이 중국집이었다.
“다 왔네.”
짧았지만, 함께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었던 주전 멤버가 모두 모였다.
사실 경원상고는 타 팀에 비하면 부원 수가 적었다. 그러다보니,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가 거기서 거기였다.
“신해원, 넌 왜 왔냐?”
유행운은 졸업생 사이에 끼여 있는 1학년을 지목했다. 바로 신해원이었다.
“저도 주전 아닙니까?”
“아직 졸업도 먼 놈이, 벌써 선배들 사이에 끼여?”
유행운은 꼰대다.
아무래도 꼰대가 확실해 보였다.
“서운합니다.”
유행운이 씩 웃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유행운은 드디어 마음을 다 잡았다. 민현웅이 먼저 거취를 정한 후에 계속 마음이 싱숭생숭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선을 정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후련했다.
“시켜.”
엄마에게서 신용카드를 받았다.
사실 제 힘으로 하고 싶었지만, 모친이 이번에도 카드를 넣어주며 확실하게 맛있는 걸 사주고 오라 당부했다.
사실 이제 유행운은 돈 걱정이 없다.
좋은 조건으로 국내에 남기로 했고 채리원은 1억이라도 더 받기 위해 대전을 사정없이 물어 뜯고 있었다.
아주, 아주 대단했다.
“민현웅, 너 영어 잘하냐?”
민현웅은 양키스로 떠난다.
이미 양키스는 작년부터 민현웅을 탐내고 있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민현웅을 영입하기 위해 총알을 계속 장전한 채, 숨 죽이고 있었던 구단이었다.
“못하지.”
“얘가 잘하겠냐?”
강수현이 기다렸다는 듯 꼽을 준다.
현재, 강수현은 대학에 필요한 실적을 채웠다. 드래프트에 초청 받은 사람은 경원상고에서는 백유진과 유행운이 유일했다.
대학 준비를 하는 선수는 강수현과 이장현, 그리고 류진운이 있었다.
“영어 과외 받고 있음.”
탕수육을 입에 밀어 넣고 오물거리며 민현웅이 말했다. 뭐, 금수저였으니 미국에 가더라도 확실히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50만 달러라는 거액을 챙겼으니, 양키스에서도 그만큼 지원을 해줄 것이다.
“너는?”
민현웅이 입에 묻은 소스를 냅킨으로 닦으며 유행운을 보았다.
“내일 드래프트 참여할 거야.”
다음 날이 KBO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는 날이다.
대전에는 최대한 확답을 미루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뜯기 위한 전략이었고 이건 유행운이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쉽네. 네가 미국에 있으면 좀 위안이 될 것 같은데.”
사이다를 마시던 민현웅은 생각에 잠겼다.
아마 미국행을 결정했지만, 낯선 곳이라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을 것이다.
저 생각 없어 보이는 인간이 저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니 조금은 어색했다.
“가서 입 조심해.”
유행운이 진심으로 충고했다.
“너 여기서 하던 대로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진짜 죽어.”
그 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 가장 격하게 끄덕이는 사람은 강수현이었다.
“맞아. 쟤는 진짜 입이 방정이야.”
“아닌데. 나는 사실만 말하는데.”
원래 사람은 본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법이었다.
결국, 어린 시절은 간다. 야구를 하면 여러 가지 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대화를 하고 웃는 일도 얼마 없을 지도 몰랐다.
“다들 몸 조심하고.”
강민하는 오늘따라 말이 없었다.
경원상고의 주장이었던 강민하는 항상 처지는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 노력했고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너도.”
유행운이 말했다.
“몸은 다 조심해야 하는 거야.”
강민하가 웃는다. 그 웃음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었다. 야구부원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였다.
야구, 그게 중심이다.
“이제라도 대학으로 방향을 바꾸는게 어때?”
말이 없던 백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난 할 만큼 했어.”
강민하는 야구를 그만둔다.
이제 사랑하는 야구를 취미로 둘 생각이었다.
“나름 그래도 전국대회에서 8강까지 가보고. 주전으로 뛰어보고. 주장도 해보고. 좋았어.”
백유진과 강수현이 기회를 잡기 위해 경원상고로 온 것처럼, 강민하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민하는 느꼈다.
재능의 차이를.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그 재능의 크기를.
“봉황대기 뛰면서 생각 많이 했거든. 유진이나 행운이, 그리고 현웅이 없이 우리가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 다행히 16강에 진출해서 내가 괜히 야구를 한 건 아니구나, 생각도 했고.”
경원상고에서 야구를 한 건 즐거웠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폭력적이지 않고 진심으로 선수를 대해주었고 함께 했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봉황대기 끝나고 느꼈어. 나는 여기까지라는 걸. 그걸 인정하는 것도 용기더라고.”
강민하가 웃었다.
야구는 이제 추억에 묻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난 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일 뿐이다.
인생에 있어서 정답은 다양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으며 야구를 그만두는 일이 패배를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공부할거야? 수능 두 달 남았는데.”
“아니.”
강민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할 거야.”
그 순간, 강민하를 향한 아쉬움이 싹 사라진다.
“너.”
강수현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금수저였구나?”
그러했다.
* * *
KBO 신인 드래프트 D-1.
만년 꼴찌팀, 대전 호크스는 드래프트 하루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은 유행운 때문이었다.
채리원이 끝까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이미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다.
“크흠.”
이영호 단장이 헛기침을 연거푸 한다.
계속 엉덩이를 들썩이고 핸드폰을 보고 또 본다. 처음에는 유행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이영호는 지금 그 후폭풍을 온 몸으로 받고 있었다.
부르르르르-
그 순간,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이영호의 핸드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어!”
밤 늦도록 회의 아닌 회의를 진행하던 프런트 직원의 시선이 이영호 단장의 핸드폰이 닿았다.
“쉿!”
덥석, 핸드폰을 든 이영호가 ‘채리원’의 이름을 확인하고 직원들에게 주의를 준다.
“네, 이영호입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니, 사실은 차분한 척을 하고 있었다.
최준혁 팀장의 눈에는 보였다. 이영호가 얼마나 지금 똥줄이 타고 있는지.
달달달달달.
이 소리는 이영호가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소리였다.
“정말입니까?”
지금까지 떨림을 감춘 채, 통화를 이어가던 이영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것도 잠시.
“아, 1억 더요?”
그럼 그렇지.
채리원이 지금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던 이유는 한 푼이라도 더 뜯기 위해서였다.
이영호가 직원들을 바라본다. 최준혁이 손으로 오케이 표시를 하고 메모지에 휘갈기듯 글을 썼다.
그 내용은.
– 쉽게 수긍하지 마시고. 고민하는 척 10초만 하시고 오케이 하세요.
최준혁의 메모를 본 이영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하는 척, 신음을 내뱉었지만.
– 싫으세요?
채리원의 그 말에.
“아니요. 알겠습니다.”
마치 무슨 자석에 끌려가듯, 채리원에게 파리처럼 싹싹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21억, 계약금은 그렇게 알아두도록 하겠습니다.”
최준혁이 뒤늦게 마음이 놓이는지, 안경을 벗어 마른세수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아직 프로에서 실력을 보여준 적 없는 한낱 고졸 신인에게 21억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이 합당하느냐고.
그 물음에 최준혁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대전 프리미엄.’
한낱 고졸 선수도 안다.
대전 호크스는 쉽지 않은 팀이라는 걸.
리빌딩을 수없이 외쳤지만, 팀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선수 전체에게 퍼진 악영향은 패배감 내지는 무력감이었다.
그 분위기를 깨고 실력을 보이는 선수도 있다. 그런 선수는 미국 진출에 성공한 강우성이 있었으며 대전의 4번타자이자, 국대 5번타자로 자리잡은 지선호가 있다.
신인급 중에는 윤규민.
이 선수들은 대전을 벗어나면 더더욱 날개를 펼치고 재능을 떨칠 수 있는 S급 선수다.
이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대전을 지탱하던 A급 선수들이 타 구단으로 이적한 후에, 그 이상의 성과를 항상 보여주었다.
즉, 팀 전체에 퍼진 무력감이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대전에 FA로 영입하는 선수에게 특별한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10억 차이? 그 정도면 그냥 다른 구단에 간다. 최소 20억, 아니, 그 이상도 생각해야 한다.
그게 바로 대전 프리미엄이었다.
“드, 드,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해도 되는거죠?”
이영호가 말을 더듬는다.
그 모습에 최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이영호는 채리원이 친 거미줄에 그대로 걸렸다.
채리원은 항상 협상을 할 때 급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특히 갑의 위치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영호는 이미 을이었고 을이라고 치는 것도 좋게 표현한 셈이었다.
사실상, 여왕거미에게 먹힐 맛 좋은 애벌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네, 네,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이영호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영호는 선수 시절, 팬들에게 귀족 취급을 받았다. 강우성만큼 압도적인 성적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토종 1선발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 카리스마는 은퇴 후에 모두 말살된 걸까?
“됐다.”
침묵 끝에 이영호가 입을 열었다.
“유행운, 전체 1순위로 부를거다.”
떨리는 목소리.
다시금 눈을 감은 이영호는 마치 눈물을 참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 모습을 보던 직원 하나가 눈치없이 입을 연다.
“저, 단장님. 설마 우세요?”
야, 우냐?
* * *
KBO 신인 드래프트 당일.
10구단 팬들이 집중하는 그 날이 왔다.
유행운은 유니폼을 입고 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선영은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며 백화점으로 끌고 갔다. 해서, 지금 유행운은 불편한 수트를 입고 있었다.
“아우, 우리 선수님. 정말 옷이 날개다.”
채리원은 아무래도 전생에 ‘딸랑이’가 아니었을까?
흔들 때마다 딸랑거리는 종. 유행운은 가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 머리 너무 잘어울리지 않아요?”
“네, 뭐. 그러네요.”
딸랑이는, 아니, 채리원은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유행운은 채리원에게 있어서 복덩이 그 자체였다. 복덩이가 시작부터 21억이라는 거액을 물었다.
이 말은.
‘FA는 얼마야? 미국 진출하면?’
미래는 더더욱 큰 돈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유행운은 머리를 잘랐다. 요즘 유행하는 가르마펌도 했는데, 짧아진 머리가 어색하면서도 거울을 보면 괜찮기는 했다.
“훈남 야구선수.”
짝!
채리원이 박수를 경쾌하게 치며 말했다.
“지금 그거 절반 정도는 완성됐어요.”
그리고.
“절대 백유진 선수 옆에 있으면 안 돼요. 알죠?”
이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근데 원래 같은 학교끼리 앉-”
“그래도 옆에 좀 감자 같은 친구 하나, 아이 참. 이럴 때는 민현웅 선수가 딱인데.”
아마 이 순간, 미국행을 준비하는 민현웅은 귀가 좀 가렵지 않았을까?
“네, 아무튼 엄마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제가 프라이빗한 공간을 준비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유행운 선수!”
사실 이선영은 채리원이 부담스럽다.
그냥 집에서 편하게 드래프트를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채리원이 부산을 떨었다.
유행운이 머리를 하는 동안, 이선영도 덩달아 머리 손질을 받았다.
한동안 일에 치여서, 잃은 재산을 다시 모을 생각만 하던 이선영이었기에 고급 샵 자체가 조금 낯설었다.
“다녀올게요. 엄마.”
유행운이 넥타이를 매만지며 어색하게 말했다.
모친이 준비한 수트도 어색했고 한껏 꾸민 머리도 어색했다.
그 사이, 채리원은 또 다시 딸랑거린다.
“어머니, 저희도 갈까요? 바로 옆 건물에 고급 호텔 잡아놨어요. 아주 프라이빗하고 거기 룸서비스가 기가 막히거든요.”
대단하다.
유행운은 채리원의 처세술에 혀를 내두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수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유행운은 결국 대전 호크스를 결정했다.
그 결정이 어떤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갈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네, 대전 호크스 지명하겠습니다.”
후회는 없었다.
“대전 호크스는 경원상고 유격수-”
유행운은 객석에 앉아 마이크를 든 이영호를 지켜보았다. 그는 일부러 이 순간을 만끽하듯, 길게 말을 늘리고 있었다.
“유행운 선수, 지명하겠습니다.”
그 순간.
대전 호크스 갤러리가 폭발하는 동시에, 부산 측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