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54
54.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자, 유재원의 야구 인생을 들여다보자.
김용재 수석 트레이닝 코치에게 쫓겨나온 유재원은 가깝게 지내는 후배들을 끌고 술을 마시러 나갔다.
유재원은 약 10년 전에는 초특급 고교 선수라는 말을 들었으며 넓은 수비 범위와 좋은 순발력을 갖춘 유격수였다.
천안 북원고 출신으로 말 그대로 충청도에서 낳은 스타 그 자체였지만, 사실상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북원고를 졸업하여 대전 호크스에 1차 지명 받은 유재원을 처음에는 세금을 먹여 가며 곱게 키웠다.
1년 동안 실책 파티를 해도 유격수 자리를 주었고 수비에서는 결점을 보일지언정, 타격에서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처음 대전 팬들의 희망은 유재원이었다.
유재원에게 세금을 먹이다 보면 언젠가는 대형 유격수가 될 거라 믿었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그 믿음은 쉽게 변치 않았다.
실제로 유재원은 인기가 좋았다.
유니폼 판매 1위를 달성한 해도 있었으며 벌크업과 함께 성적을 꼴아 박으면서도 유니폼 판매 순위 5위권에 자리 잡은 애증 같은 선수였다.
자, 지금의 유재원은 팬들에게 더 이상 애증이 아니었다. 그저 증이다.
대전 팬들은 그를 이제 버렸다. 그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유망주가 나타나면 두 손을 모으며 간절히 빌었다. 제발 유재원을 치우고 자리를 잡아 달라며. 세금 얼마든지 먹여 줄 테니까, 유재원을 쓰레기통에 박아 달라고.
그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다.
심지어 감독이 경질되면서도 유격수 FA는 무조건 사야 한다고 외쳤지만,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지금은 된다.
새로운 유격수 신성이 빛나게 떠올랐으니.
“뭐라고요?”
유재원은 술을 퍼마시고, 다음 날 훈련에 지각했다.
최정환 감독은 이미 관련 문제는 보고받은 후였고 연습 경기 결과와 함께 유재원의 처분을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지각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처분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시작부터 잡음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더더욱.
“짐 싸서 나가라.”
유재원은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예?”
“1군 스프링 캠프에 너는 필요 없다.”
“지금 이거 단장님하고도 의논된 거예요?”
최정환 감독은 유재원의 처분을 직접 본인에게 통보했다.
어제 관련 소식을 듣는 순간,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유재원을 팀에서 쳐 낼 생각을 하던 최정환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다. 이만큼 좋은 기회는 없었다.
다행히 이영호도 이제는 문제 인식을 하는 눈치였고 계획대로 흘러갔다.
“그 문제는 공항에 가면서-”
대전 호크스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문제점을 이번 기회에 뽑아 버릴 생각이었다.
유재원을 쳐 낸다면 그를 따르던 선수들도 자중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기강이 해이해진 선수단에게 경고를 줄 수 있는 처분이었다.
“직접 확인해 봐라.”
지금까지 팀을 주무르며 살아왔던 유재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유재원의 퇴출, 유행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이었다. 다들 대체 유재원과 유행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수군거렸지만, 유행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김용재 코치와 추가 훈련이 있었기에, 루틴을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막상 도착하니, 김용재와 언쟁을 벌이고 있는 유재원을 발견했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게 왜.
“유행운한테 화냈다던데?”
이런 흐름으로 만들어지는지.
“나가라고 했다던데, 꼴 보기 싫다고.”
대체 어디서부터 소문이 와전된 건지, 유행운 입장에서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유재원은 씩씩거리며 짐을 쌌다. 그때만 하더라도 최정환 감독의 독단적인 선택이라 믿었던 그는 이영호 단장과의 통화에서 그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직접 유재원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 사람이 이영호였다. 지금까지 유재원이 형이라 따랐던 이영호가 그를 손절했다.
“진짜야?”
유행운은 묵묵히 훈련을 소화했다.
오전에 벌어진 소란에도 신경 쓰지 않고 지선호와 타격 폼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뭘?”
어느새 백유진이 유행운에게 바싹 다가왔다.
“네가 유재원 선배 쫓아냈어?”
백유진도 알고 있다.
유행운을 탐탁지 않아 하던 유재원을. 그리고 유재원이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재원이 백유진에게 뭐라 했더라?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단다.
아마 그건 잘생긴 백유진의 얼굴을 시샘하는 말이 분명했다.
“내가 그럴 힘이 어디 있냐?”
“아, 그렇지? 내가 아는 너는 그럴 애가 아닌데…….”
“알면 됐다.”
유행운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유재원과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유재원은 훈련하는 내내 유행운을 응시했다. 수비 훈련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타격 훈련에서도 동일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작은 방울뱀이 입을 쩍 벌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구렁이도 못 되는 방울뱀 주제에, 유행운을 집어삼킬 수 있는지 가늠하는 모양새였다.
“행운아.”
“네, 선배님.”
유행운의 훈련 메이트는 지선호였다.
지선호는 후배 유행운을 직접 픽해서 아침부터 공식 훈련 일정이 끝날 때까지 함께했다.
“기분 나쁜 말일 수도 있는데.”
그 순간, 유행운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거 사실 아닙니다.”
“아, 그래?”
“네, 제가 무슨 힘으로 그 선배를 내칩니까?”
“그렇지?”
설사 유행운이 소문과 같은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지선호는 후배를 질책할 생각이 없었다.
스프링 캠프 첫날부터 유재원이 유치한 행동으로 유행운을 괴롭히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유행운과 함께 훈련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유행운은 잘될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후배가 성장한다면 팀에도 도움이 되며, 상대 팀의 집중 견제를 받던 지선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난 속 시원하다.”
유행운보다 더 유재원을 싫어했던 사람이 지선호였다. 이 팀을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에는 성적 부진도 있었지만, 사실은 사람 때문인 게 컸다.
유재원이 너무 싫었다.
제멋대로 구는 것도 싫었고 감독에게 항명하는 것도 싫었다. 제 입맛에 맞는 후배를 끌고 다니며 분위기를 흐리는 것도 싫었다.
그 꼴이 싫어서 제 발로 탈출하려 했는데, 스스로 나가떨어지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알 수 없었다.
“행운아, 고맙다.”
아니, 선배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요?”
이쯤 되니, 유행운은 조금 억울했다.
* * *
[대전 호크스, 유재원 1군 스프링 캠프에서 2군으로 이동 …… 이유는?]유재원은 한국을 거쳐 대만으로 향했다.
그 과정이 유재원에게는 굉장히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다.
이영호는 일부러 기사를 흘렸고 한국에서 스포츠 기자에게 유재원이 둘러싸이도록 했다.
차차 유재원의 처분은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그의 결말에 해피 엔딩은 없을 듯했다.
– 왜 유재원 서산 호크스 됨?
└ 썰쟁이 말에 따르면 감독에게 개겼다 함
└ 다른 썰쟁이는 코치랑 싸웠다는데?
└ 내가 들은 썰은 유행운하고 싸웠대
└ 유행운? 왜 이 썰이 가장 신빙성 있냐? ㅋㅋㅋㅋ
– 감히 황태자에게 대들었다고? 유재원 미쳤음???
└ 백퍼 행운이 괴롭혔을 듯 ㅇㅇ
└ 존나 이 새끼는 눈치가 없음 ㅋㅋㅋㅋㅋ
아침부터 대전 팬들은 유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 뭔지 몰라도 존나 속시원하다
└ 소화제 먹은 기분
└ 이대로 방출 ㄱㄱ
└ 얘는 진짜 방출 때려야 해 서산에서 애들 물든다;;;
└ ㅇㅈ 서산 호크스 망해
└ 서산 애들 물들까 봐 걱정이다 ㅅㅂ
유재원은 이렇다.
그 누구도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
유행운의 등장으로 더더욱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고 그 상황에서 방출이 이뤄진다면 그 누구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
본디, 사회생활은 눈치다.
눈치가 없으면 도태되는 게 정상이었다.
[최정환 감독, “유재원 없어도 팀은 문제없다. 올 시즌, 대전 호크스는 선전할 것.” 유재원과 선 그어] [21억 계약 유행운, “타순은 상관없지만 유격수는 포기 못 해” 당찬 포부] [황제 투수 강우성 “대전은 짜임새 있는 팀이 되었다, 이제 비상할 시간”] [지선호 “훈련 메이트 유행운, 참 괜찮은 후배”]여러 기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확실히 작년 시즌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 누구도 쉽게 ‘우승’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적어도 ‘가을야구’에 대한 야욕을 품고 있었다.
그 증거로 성적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던 이영호가.
[이영호 단장 “호크스는 올해 반드시 가을야구 할 것.”]이렇게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올해는 다르다는 말은 자주 해도 직접 성적에 관해서 확실한 답을 한 건 처음이었다.
– 야, 지는 게 뭐냐?
└ 우리는 강하다
└ 다 비켜
└ 지는 게 진짜… 뭘까?
└ 지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오랜만에 호크스 팬들은 신났다.
그 이유는 연달아 잡힌 연습 경기 결과 때문이었다.
서울 스타즈와의 첫 연습 경기에서 5점 차로 승리를 거두었고, 두 번째 연습 경기 상대인 대구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 강우성 5이닝 무실점 윤규민 6이닝 1실점 미쳤다
그렇다.
강우성은 역시 건재했고 윤규민도 작년 성적이 플루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 우리 형 봤어?
(배트 들고 있는 지선호 사진)
└ 우리 형 미쳤다
└ 우리 형 올해 폼 돌았다
└ 역시 우리 형님…
└ 형, 어디 가지마… 우리랑 영원히 함께해
지선호는 연습 경기에서 홈런포를 가동하며 폼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된 건 아니었다.
시범 경기를 거치고 정규 시즌에서 성적을 내야만 진심으로 호크스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 우리 황태자님 4타수 2안타 1홈런 ㅋㅋㅋㅋ
└ 삼진 빼는 거 보소 ㅋㅋㅋㅋ
└ 우리 황태자님 봤냐? 안타기계야 이건
└ 진짜 타순 어디에 놔도 잘하더라…
└ 개인적으로 우리 황태자님 부담 갖지 않게 7번이나 8번에 놨으면 좋겠어
└ ㅇㅇ 너무 부담주면 안 돼 곱게 키워야 함
유행운도 서서히 적응하고 있다.
김용재와 시즌을 치를 몸을 만들었다. 서서히 몸이 탄탄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고, 급하지 않게 단계를 밟아 가며 벌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첫 홈런, 축하한다?”
지선호는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시범 경기에서도 맹타를 휘두르는 것보다는 감을 찾고, 정규 시즌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타격감을 최대한 올리는 게 그의 목표였다.
참고로 대전 호크스는 항상 시범 경기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팀 분위기 때문이었다.
정규 시즌에서는 항상 맥을 못 추기 때문에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범 경기부터 도전적으로 나선다.
다른 팀은 지선호처럼 페이스를 천천히 끌어올리는 경향이 강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규 시즌에서는 바닥으로 꼬라박으며-
– 연습경기에서 이기면 뭐하냐? 본 시즌에서 잘해야지.. ㅉㅉ
이런 소리를 듣는다.
연습 경기는 연습 경기일 뿐이다.
그리고 시범 경기 역시도 시범 경기일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첫 홈런은 정규 시즌에서나 의미가 있죠.”
“잘 아네. 그래도 프로 선수 상대로 홈런을 생산했다는 건 너한테는 의미가 있는 일이야.”
그 말에 유행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범 경기가 열리고 10구단 팬이 기다리는 2028년 정규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유격수에는 유행운. 백업으로는 임지혁.”
이미 결정 났다.
작년 시즌 주전 유격수였던 유재원은 팀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서산에 처박혔다.
아마 오래지 않아 방출이 예상되었고 감독 최정환은 새로운 유격 라인을 구축하고 있었다.
“행운이는 첫 시즌인 만큼 체력 안배가 필요해. 임지혁이 연습 경기를 보니,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야.”
팀의 유격수가 젊어진다.
유행운은 이미 주전 유격수로서 연습 경기에 출전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실책은 없었다.
수비 범위가 넓은 것은 물론이고 기본기도 잘 잡혀 있었다.
수비만 두고 봐도 리그 상위권인데, 공격력도 갖추고 있다. 감독으로서는 흡족한 인재일 수밖에 없었다.
“타순이 문젠데.”
지금 유행운은 프로에서도 타격이 충분히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타격 폼이 잘 잡혔어요. 요즘 선호하고 자주 다니는데, 둘이 죽이 잘 맞던데요? 행운이는 어디에 둬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타격 코치가 기분 좋은 듯 말했다.
확실하다. 배트에 공을 맞히는 재능이 타고났고 마른 체구임에도 손목 힘을 바탕으로 장타를 만들어 낸다.
어디에 둬도, 제 몫을 해낼 타자였다.
“9번.”
아무리 생각해도 첫 시즌이다.
처음인 만큼 부담 없는 자리가 좋다. 그렇다고 9번 타자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9번에서 출루를 해 주면 자연스럽게 상위 순번으로 찬스가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당분간은 9번에 두고 지켜보지.”
본격적인 시즌이 열린다.
공격적인 FA 영입과 강우성의 귀환, 그리고 역대급 거액을 받은 신인의 등장까지.
올해는 다르다며 늘 같은 말을 외치는 대전 호크스가 시범 경기 문을 열었다.
상대는.
– 부산 마린스? 시범이라지만 꼴린스는 그냥 밥이지
└ 응 작년 승률 3할따리 마린스의 밥 꼴칰~
└ 올해는 다르다
└ 올해는 꼴칰의 밥이 꼴린스다 ㅇㅇ?
공교롭게도 조류 대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