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6
6. 승부수
뚱, 뚱, 뚱땅, 띠리리리리리-
다음 날, 유행운은 지독하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퉁퉁 부어 있었다.
지난밤, 모친과 끌어안고 울며 신파를 찍었던 유행운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엄마.”
방에서 나와 엄마를 부르지만, 집은 적막감으로 가득했다.
거실을 두리번거리며 부엌으로 향한다.
모든 것이 옛날과 같았다.
이 낡은 빌라는 엄마가 어렵게 구한 집이었고 대출금을 갚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 먹어.
유행운은 식탁에서 익숙한 필체의 메모를 발견했다.
무뚝뚝하지만, 아들을 위해 준비한 엄마의 도시락이었다.
식탁에 앉아 도시락을 확인한 유행운은 내용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야구는 안 된다더니.”
삶은 닭가슴살에 고구마와 삶은 계란이 있었다. 유행운은 완숙보다는 반숙을 선호하는데, 그 취향도 딱 맞춘 삶은 계란이 눈에 띄었다.
예쁘게 반으로 잘라 도시락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작은 소금까지 준비했다.
“과일까지?”
요즘 과일값이 비싸다던 엄마였다.
다음 칸은 딸기와 방울토마토가 통에 가득 담겨 있었다. 집에 토마토는 있었어도 딸기는 없었을 것이다.
“이 시간에 과일 파는 데가 있나.”
그 생각을 하는데, 닫혀 있던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보니, 유행운처럼 퉁퉁 눈이 부은 모친이 서 있었다.
“그거 챙겨가.”
멋쩍은 듯 시선을 피하며 무뚝뚝하게 말을 건넨다.
“고마워요. 엄마.”
“출근한다.”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유행운은 엄마를 배웅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계란을 입에 넣는다. 보이는 것처럼 계란은 딱 적당히 삶아졌다.
“맛있네.”
오늘부터 유행운은 야구부 합류를 위해 몸을 만들 생각이다.
꽤 오랫동안 운동을 놓았으니, 몸은 힘없는 멸치 그 자체였다.
살도 찌워야 했고 체력도 키워야 한다.
중학시절에도 마른 체질 때문에 고생했던 걸 엄마도 알고 있었다. 매일 냉장고에는 삼겹살이 가득했고 살이 붙는다는 한약도 가득했었다.
오늘 이 도시락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말로는 야구는 안 된다면서 아들을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마음.
“······.”
그 마음을 알기에 유행운은 마음을 다시 잡았다.
* * *
“맥주 한잔하면서 계속 얘기하지.”
지금 경원상고 야구부 코칭스태프는 끝없이 회의 중이었다.
낮에는 야구부 훈련을 해야 했고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은 야간이 유일했다.
다들 피곤해 보였지만, 주말리그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힘을 짜내고 있었다.
“커피도 물렸는데, 맥주 좋네요.”
캔맥주를 손에 쥔 타격코치가 피곤한 눈으로 말했다.
사실 이형호는 술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굉장히 지쳐 있었고 커피보다는 기분이라도 좋게 하려고 맥주를 준비했다.
“감독님, 요즘 되게 잘 웃으시네요?”
“그랬나?”
요즘 이형호는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코칭스태프 전원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행운이 덕분에 웃으시는 거죠?”
그 이유는 유행운이었다.
“여러모로 팀에 도움 될 친구니까.”
이형호 감독은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신입 부원 테스트 결과를 두고 합격자를 가리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유행운은 합격이다.
그 누구도 그 결과를 의심하지 않는다.
유행운의 위치를 어디에 둘지, 그 생각에 집중하는 이형호였다.
“유행운 말이에요. 걔는 어떻게 훈련했을까요?”
맥주를 마시던 타격코치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공백기가 무려 4년이에요. 공백기 동안 대체 어떻게 훈련했기에, 그런 퍼포먼스를 보여줄까요? 말도 안 된다니까요. 어떻게 실전 감이 뚝 떨어진 선수가 홈런을, 그것도 두 번이나요!”
처음 유행운의 홈런을 보았을 때는 ‘운’에 가깝다고 판단한 타격코치였다.
두 번째는 경악이었다.
설마 또 홈런을 칠 줄 몰랐다.
선구안도 좋았다.
못 칠 것 같은 공은 손도 대지 않는다.
“심지어 유진이 공을 받아쳤잖아요.”
가장 그를 경악스럽게 한 대목은 역시 백유진을 상대하던 유행운이었다.
백유진이 실력이 어떻든 간에, 팀에서는 에이스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신입생의 공을 받아친 것과 백유진의 공을 쪼갠 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타격폼도 손댈 게 없어요. 간결한 밀어치기. 솔직히 프로 진출해서도 밀어치기 어려워하는 애들 널렸는데, 그걸 고등학생이 한다니까요?”
타격코치가 열을 올린다.
땅콩을 집어먹던 이형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이지.”
“그렇죠? 아무래도 약을 하는 게 분명-”
“너 잘리고 싶냐?”
이형호가 타격코치의 말을 중간에 끊고 땅콩을 집어던졌다.
“약한다고 그런 기술적인 타격이 가능해? 그런 약이 어디 있냐? 있으면 나도 좀 줘봐라. 복용만 해도 기술이 느는 약.”
이형호의 신경질적인 말에 타격코치가 기가 죽는다.
“아니, 그냥 신기해서 그렇죠.”
작게 한숨을 쉬고 이형호가 입을 열었다.
“전체적으로 운동을 쉬었다고 볼 수 없는 몸놀림이기는 했어. 수비에서도 생각보다 날렵했고. 무엇보다 타구 판단이 빠르고 탁월해.”
이번에는 수비코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유행운은 몸은 고등학생이지만, 치열하게 야구를 하고 프로까지 진출한 선수였다.
그 경험과 어린 몸이 만나 시너지를 만들었다. 그 사실을 모르기에 유행운이라는 선수의 포텐이 어마어마해 보였다.
“우리 주전 유격수 말이야.”
이형호는 계속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신생팀을 맡아 약팀이라 하더라도 성적을 내야 한다. 그 성적은 감독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역량 역시도 중요했다.
“등급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지?”
수비코치가 난데없는 질문에 경원상고 주전 유격수를 임영원을 생각했다.
“좋게 봐주면 C등급이죠.”
이형호가 크게 한숨을 쉰다.
지금 이형호가 맞추고 있는 퍼즐에서 가장 모난 부분이 유격수였다.
“우리 팀이 투수력이 약할 수밖에 없어서 유격수가 중요한데.”
“그렇죠. 내야 땅볼 유도할 때, 그걸 깔끔히 처리해 줄 유격수가 정말 중요하죠. 사실 강수현은 괜찮아요. 타격이 좀 부족하지만, 발이 빨라서 작전 수행 능력도 좋고. 그 빠른 발로 빠지는 공도 종종 낚아채니까.”
경원상고에서 부족한 포지션은 널렸지만, 그중에서도 유격수는 수준이 심각했다.
“감독님이 젊어지셔서 유격수 맡아주면 딱인데 말입니다.”
수비코치의 말에 이형호가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난 빠따가 안 되는데?”
“그래도 수비 하나는 국대급 아니셨습니까.”
“그건 맞지만, 우스갯소리는 그만하자고.”
꿀꺽꿀꺽.
맥주를 들이켠 이형호가 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코치진을 둘러보았다.
“유행운 말이야.”
“네.”
“알아보니 목운중에서 유격수로도 경기를 뛰었다더군.”
“그래요?”
“일단 지켜봐야겠지만, 오늘 본 행운이 수비라면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아.”
“하지만 그게 될까요? 유격수는 쉬운 위치가 아니니까요.”
“흐음.”
오늘 이형호 감독은 유행운을 전체적으로 유심히 지켜보았다.
프로 시절, 국가대표까지 경험했던 이형호였지만 타격에서는 재능이 모자랐다.
수비 전문 선수로 불렸던 이형호는 유행운의 수비 움직임을 면밀하게 체크했다.
“행운이 수비 범위가 넓어. 발도 빠르고. 무엇보다 가장 탁월한 게 센스야. 어떻게 해야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지, 그걸 알아.”
수비코치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네, 맨손 캐치만 봐도 그렇죠. 종종 맨손 캐치 하다가 송구가 흔들릴 때도 있는데, 그런 거 없이 물 흐르듯이 진행했어요.”
다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경원상고 코칭스태프 전원이 현재 팀의 유격수가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유격수는 야구 센스가 있는 친구가 해야 해.”
냉정하게 생각해도 임영원은 비큐도 부족했고 타격 능력도 출중하지 않다.백업에 딱 맞는 사이즈였다.
“공백기가 마음에 걸리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때가 타지는 않았어.”
가끔 운동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못된 버릇이 몸에 붙는 경우가 있었다.
유행운이 어디서 어떻게 운동했는지, 아직도 이형호는 미스터리였다.
게다가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좋은 폼을 만들었는지도 의아했다.
하지만 의구심보다는 믿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천천히 확인해보자고.”
경원상고 사령탑을 맡으며 이형호는 때때로 굉장히 조급했다.
민현웅을 팀에 데려오는 과정도 지난했다.
머리로는 애제자를 모셔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차마 신생팀으로 제안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팀에도 스타플레이어가 있으니까요.”
타격코치가 민현웅을 돌려 이야기했다.
민현웅은 스스로 이형호에게 찾아왔다.
독특한 성격을 가진 민현웅은 기존 야구부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은 고삐를 지나치게 잡아채려 하면 곤란하다.
그 사용법을 알고 있는 이형호였지만, 차마 가시밭길로 애제자를 밀어 넣는 것 같아 처음에는 거절했다.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지만.’
지금도 민현웅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있는 이형호 감독이었다.
“그 스타플레이어가 신경을 쓰더군.”
처음이었다.
“현웅이가 누군가를 신경 쓰는 건 처음이야.”
민현웅은 또래에게 관심 없다.
자기 잘난 맛에 야구를 하는 녀석이었고 실력이 좋은 사람만 가까이한다.
그런 민현웅이 유행운을 신경쓰고 있었다. 그 사실이 이형호에게는 또 다른 좋은 징조로 느껴졌다.
“어쩌면 좋은 콤비가 될 수도 있겠어.”
문득 이형호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행운이가 현웅이를 잘 이끌어 주면 좋겠군.”
“하하, 유행운이 우리 현웅이를 이끄는 건가요?”
타격코치의 말에 이형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행운이는 속이 깊어. 하지만 현웅이는 아직 애 같지. 그 성격 탓에 게임 체인저 역할을 제대로 못할 거야.”
게임 체인저.
존재감 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
민현웅은 실력은 좋지만, 팀원들의 신뢰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감독님 말씀 들으니, 현웅이가 더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수비코치도 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앞으로 한 달, 유행운을 유격수로서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네.”
감독은 팀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때때로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우리의 승부수는 유행운이 될 거야.”
이제 주말리그가 한 달 남았다.
그 시간 동안 이형호 감독은 유행운을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