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77
77. 탁구장
인천 바이킹스.
이름만 들어도 강하다.
대전 호크스는 이름만 들으면 그냥 최약팀 느낌이 난다면 인천 바이킹스는 듣기만 해도 인천 왕조를 생각나게 했다.
팀의 이미지는 성적이 만든다.
대전 호크스를 비롯해 부산 마린스나 서울 스타즈 같은 팀이 약팀 느낌이 나는 이유는 모두 성적 때문이었다.
물론 대전 호크스에 비하면 마린스나 스타즈는 단연 강팀이다. 만년 최하위 팀과 묶일 종류는 아니었다.
“탁구장이네.”
인천 바이킹스필드의 느낌은 역시 작았다.
“여길 홈구장으로 쓰면 나도 10홈런은 더 치겠다.”
바이킹스의 홈구장은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었다.
유행운 역시도 이 구장에서 두 개의 홈런을 신고했다. 구장이 작은 덕분에 힘이 덜 실리더라도 공이 넘어가는데, 스탯을 쌓기에 딱 좋은 구장이었다.
“영찬이 공 좋아. 슬라이더 잘 던지는 거 알지?”
“네, 근데 저 슬라이더 좋아해요.”
“아, 그래?”
“네.”
타자마다 선호하는 구종이 있다.
유행운에게는 슬라이더였다. 이상하게 예전부터 슬라이더를 잘 때렸다. 궤적이 눈에 잘 들어오기도 했고 힘으로 윽박지르는 패스트볼보다는 슬라이더 같은 구종이 더 편했다.
[호크스 갤러리] 오늘 호구들 많이 왔네? 오늘 선발 이재희…… ㅎ└ 비 안오냐?
└ 해 쨍쨍이다……
└ 이영찬 요즘 잘함?
└ 응 꽤 함
└ 이제 1선발은 아니지???
└ 응 1선발임 ㅋ
└ 시바 에이스만 만나냐
└ 이재희 이번에는 그래도 퐁당퐁당이라 이번에는 잘 던질 차례임 ㅋㅋㅋㅋ
선발 싸움에서는 당연히 밀린다.
이재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일단 팀 사정상 5선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4선발은 결국 용병 교체에 들어간다. 한 달 넘게 기다렸지만, 타일러는 일어설 기미가 없었다. 결국 이영호도 버티지 못했고 교체 매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호크스 갤러리] 야 여기 탁구장이잖아 오늘 홈런 파티 쌉가능임└ 이거 찐 조석찬 여기서 홈런 제일 많이 갈굼
└ 지서노가 대놓고 얘기했잖아 인천 구장 좋다고 ㅋㅋㅋ
└ 그거… 퐈로 인천 언급한 거 아니냐…? 가고 싶다고……?
└ 아닥 서노는 대전에 평생 있을 거다
└ 행운이 벌써 군침 흘릴 듯 홈런 추가할 생각에 ㅋㅋㅋㅋㅋ
└ 이재희가 적당히만 못하면 돼 적당히 못하면 역전 쌉가능
└ 기대하지마 이렇게 기대하면 죽 쑤는게 빠따들임 ㅋ
벌써부터 대전 호크스는 역전을 생각한다.
그 말은 이재희에게 딱히 기대를 안 한다는 증거였고 대체로 그 사실은 자주 맞아떨어졌다.
* * *
바이킹스의 에이스 이영찬은 긴 다리와 훈훈한 외모가 특징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다양한 광고를 섭렵했고 인기도 좋았으며 실력도 갖춘 투수였다.
와일드한 투구폼과 순하고 맑아 보이는 인상, 그거와 반대로 속은 승부욕으로 부글부글 타오른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유형의 선수였다.
“1번부터 5번까지만 조심하면 돼.”
“네.”
“오늘 선발 보니까, 타격전 예상되거든?”
“그 말은 제가 잘 막으면 쉽게 이긴다는 뜻이네요.”
이영찬은 30대 중반으로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승부욕에 불탄다.
“특히 유행운.”
“네.”
“걔 빠따가 지금 심상치 않아.”
“뭐, 그래 봤자 아직 루키죠.”
오히려 이영찬이 신경 쓰는 상대는 조석찬이었다.
잘 던지는 투수에게도 천적은 존재한다. 그 천적이 조석찬이었다. 거액을 받고 대전에 들어온 조석찬은 사실 작년보다 못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대전이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나았다. 조석찬은 아마 이영찬 상대로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코치님도 아시잖아요.”
이영찬이 다리를 쭉 찢으며 말했다.
“하위 팀이 기세를 타면 무서운 거 인정. 근데 그 기세 한번 꺾이면 무섭게 내려가는 거.”
“그렇지. 근데 아직 기세가 안 꺾였잖아.”
“오늘 기세가 꺾이는 날이 될 거예요.”
“글쎄…….”
대전 호크스에게 항상 강했던 이영찬이었기에 자신감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늘 하던 대로 스윕 가져오자고요.”
그리고.
“쟤네 옆구리 병신들이잖아요.”
그 순간, 계속 경계를 하고 있던 투수 코치가 웃음을 터트렸다.
인천 바이킹스 선발진에는 대표적인 옆구리 투수가 있다. 바로 박현성이었다. 박현성은 부상을 입거나 부진에 빠져 허덕일 때, 항상 페이스를 끌어올릴 상대로 대전을 지명했다.
박현성이 특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대전에게는 특급이었다.
심지어 박현성이 지독한 부진으로 선발진에서 빠져 있을 때도 대전과 하는 경기가 있으면 바로 선발에 투입했다.
그 정도로 대전은 옆구리 투수에 약했고 내일 선발이 공교롭게도 박현성이었다.
이건 의도적이다.
현재 3위를 마크 중인 바이킹스가 대전과의 대결에서 삼연전 모두 승리를 가져오기 위한, 의도적인 선발 배치였다.
“공교롭게도 우리 1라 복덩이도 옆구리잖아요?”
그 순간, 이주영이 바짝 긴장한다.
“오늘 백퍼 우리가 이깁니다.”
1회 초.
이영찬이 특유의 와일드한 폼으로 공을 뿌린다.
짧았지만 미국 물도 경험한 그는 강우성이 없는 국대를 이끌었던 에이스였다. 지금은 점차 나이가 먹어 예전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고 해도, 커리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전 호크스는 언제나 식은 밥 같았다.
힘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밥. 뜨겁지 않아서 수저도 필요 없이 그냥 손으로도 먹을 수 있는 식은 밥.
올해 대전이 달라져 봤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물이 투입되며 팀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거기서 끝이다.
대전 호크스보다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부산 마린스가 왜 항상 봄린스로 끝나겠는가?
전면 드래프트 전에는 돌아가며 최대어를 먹었던 서울 스타즈가 투자까지 진행하면서도 우승을 왜 하지 못하는가?
같은 서울권에서 같은 구장을 사용하는 썬더스가 가을야구를 밥 먹듯이 가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때, 서울 스타즈는 그걸 구경만 해야 했다.
다 이유가 있다.
하위 팀에게는 승리 DNA가 없으며 우승 DNA도 없다.
우승도- 해 본 놈이 하는 거다.
‘준용이는 눈이 좋지.’
선구안이 좋은 박준용.
리그의 대표적인 똑딱이 타자 박준용은 리드오프에 어울리는 남자다.
똑딱질로 3할 타율, 출루율은 4할, 볼넷도 잘 얻어 내는 박준용은 확실히 대전 호크스가 원하던 리드오프였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다.
[1구, 박준용 선수 배트를 내지 않고 지켜봅니다.]“스트라이크!”
박준용은 자신만의 존이 확고하다.
이영찬의 포심은 살짝 존을 벗어났다. 여기서 주심은 스트라이크 선언을 했고, 이 순간 이영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됐네.’
걸치지도 않은 공에 스트라이크 선언을 했다면 비슷한 공 모두 존을 통과한 공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박준용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주심을 돌아보고 있었다.
2구, 이영찬은 고속 슬라이더를 던진다.
좌타자의 바깥쪽에서 홈 플레이트에 당도할 즈음에 존 안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슬라이더였다.
그 순간, 박준용이 배트를 낸다.
애매하게 배트 끝에 맞은 공이 힘없이 유격수 방면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박준용이 배트를 던지고 내달린다. 발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타자였고 좌타였기에 우타보다는 1루 베이스 거리가 가까웠다.
유격수가 대시하여 공을 맨손으로 잡고 1루를 향해 러닝 스로우를 시도했다.
“아웃!”
흠 잡을 데 없는 좋은 수비였다.
인천 바이킹스가 강팀에 어울리는 이유는 이 탄탄한 수비에서 나왔다.
실수가 별로 없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끔 실책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빈도수가 현저히 적었다.
– 대전의! 럭키럭키럭키럭키보이! 대전의 럭키럭키럭키럭키보이! 유! 행! 운!
실망은 잠시.
앰프에서 울려 퍼지는 응원가는 대전 팬에게 다시 기대감을 가져온다.
유행운은 이제 익숙해진 응원가를 작게 중얼거리며 타석에 섰다. 가볍게 무릎을 굽히며 몸을 푼 유행운은 발로 땅을 고르고 배트 손잡이를 두 손바닥으로 휙휙 돌렸다.
딱히 정해진 타격 루틴은 없었고 항상 하고 싶은 대로 즉흥적으로 루틴을 이어 가는 유행운이었다.
“생각보다 압박감이 느껴지네?”
이영찬이 미소를 지었다.
항상 마운드에서 타석에 서는 타자를 볼 때,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부류가 있다면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하찮은 존재도 있었다.
유행운의 타격은 자주 지켜보았다.
지난달, 첫 시리즈에서 홈런을 쏘아 올리던 그 모습도 더그아웃에서 지켜본 이영찬이었다.
이영찬은 자신감은 넘치지만, 유행운을 우습게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섭지는 않았다.
이유는.
‘루키는 루키.’
딱 그 정도일 테니까.
* * *
이주영은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1군 첫 콜업. 오늘 데뷔전을 치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맞붙는 상대 팀은 이주영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백유진이다.
그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이주영은 승리를 거머쥔 적이 없다.
그 사실이 이주영을 괴롭혔다. 비록 백유진의 등 뒤에는 유행운과 민현웅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정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두 번째는 단연 유행운이다.
유행운은 처음으로 이주영에게 지독한 패배감을 안긴 타자였다. 유독 그의 앞에만 서면 무력해지던 이주영은 오늘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영찬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
“눌러 버려, 이영찬!”
더그아웃에서 이영찬을 응원하고 있다.
지금 유행운은 초구를 지켜보았고 박준용이 당했던 그 공에 스트라이크를 빼앗겼다. 그 이후에는 헛스윙이었다. 바닥에 처박히는 커브에 당했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
타자가 수세에 몰린 만큼 이영찬이 유리한 고지를 점쳤고 더그아웃 분위기가 불타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아니야…….”
이주영은 알고 있다.
“저 새끼는 지금부터가 진짜라고요…….”
유행운은 이상한 놈이었다.
수세에 몰렸을 때 더욱 집중력을 발휘하는 타자였다. 처음 그를 상대했을 때가 생각난다. 초구에 얻어터졌고 그 이후에는 투 스트라이크를 잡으며 조심스럽게 승부를 걸었다.
그럼에도 얻어터졌다.
이주영이 느끼기에는 초구에서 얻어터진 것보다는 유리한 고지를 밟았을 때 얻어터진 그 기억이 더 뼈아팠다.
따아아악!
왜 불길한 예감은 사실이 되는가.
이영찬은 유행운의 몸쪽에 바싹 포심을 붙였다. 제구는 잘 잡혔지만, 유행운이 예상했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유행운은 쉽게 승부하면 안 되는 타자였다.
하지만 루키라는 사실에 이영찬은 3구에 승부를 걸었고.
“뜬볼! 뜬볼!”
다른 구장이라면 담장 앞에서 잡힐 평범한 뜬볼이었겠지만-
“하, 탁구장이잖아요…….”
여기는 탁구장이었다.
* * *
[오늘 유행운 선수가 날아다닙니다. 그 홈런포 가동했을 때, 김상석 해설위원님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실제로 넘어갔습니다. 컥, 저 목 막혔잖아요. 하하, 그만큼 멋진 홈런이었어요. 루키가 에이스 상대로 넘기는 모습은 언제나 시원하네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지금 이정우는 경기를 보며 타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올해 시즌이 시작하는 동시에 대전에 둥지를 튼 이정우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을 제외하면 항상 투수만 했던 이정우는 타자로서 변신을 예고했고 녹록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총 열두 번 선발 출장했고 포지션은 지명타자였다.
성적은 43타석 11안타 2볼넷으로 타율은 0.289였다.
나쁘지 않다. 이제 막 타자로 전향한 그에게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였지만, 문제는 여긴 서산이라는 점이었다.
2군에서 3할도 되지 않는 타율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이정우가 이제 막 타자로서 발을 내디뎠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부웅!
그럼에도 이정우는 상심하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자주 경기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나름 기회를 받고 있었다. 대전 호크스는 계속 꼴찌를 했기에 좋은 유망주가 많았다.
그 친구들이 받아야 할 기회를 조금씩 가져와 타석에 서고 있다. 기회가 적다고 해서 불만을 가지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었다.
[5회 초, 유행운에게 급습당했지만, 역시 이영찬은 이영찬입니다.] [네, 1점을 내준 거 외에는 결점이 없는 투구입니다. 이번 공격은 지선호 선수부터 시작인데, 어떤 결말이 나올지 궁금합니다.]다시 핸드폰 화면에 유행운이 홈런을 치는 모습이 잡힌다.
이정우는 잠시 배트를 내려놓고 유행운의 타격을 바라보았다.
[아, 다시 봐도 슈퍼 루키 그 자체입니다.]슈퍼 루키.
유행운이 현재 슈퍼 루키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이정우도 마찬가지였다.
부산 마린스의 슈퍼 루키 이정우.
그 별명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아쉬울 것도 없었다.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제 탓으로 돌릴 뿐이었다.
“정우야.”
다시 배트를 들고 타격폼을 몸에 입힐 준비를 하던 이정우가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승현이 형?”
은퇴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야구에 미련을 거두지 못한 승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정우가 뒤를 돌아보니, 그의 손에는 편의점 로고가 그려진 투명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 속에는 맥주캔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맥주 한잔할래?”
“연습 중이에요.”
“그니까. 숨 좀 돌리라고.”
바닥에 털썩 앉은 이승현이 맥주캔을 치익 딴다.
[삼자범퇴! 이영찬이 이를 악물고 강타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순식간에 5회 초가 끝났다.
이정우는 한 번 더 배트를 돌리고 이승현 앞에 자리를 잡았다.
“캬, 맥주 맛 죽인다.”
벌컥벌컥 맥주를 마신 이승현이 시원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정우도 망설이다가 봉지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낸다.
“…….”
“…….”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그사이, 이정우의 핸드폰에서는 중간 광고가 흘러나왔다.
“타격 봐줄까?”
침묵을 깨고 이승현이 입을 열었다.
“혼자 휘두르는 것보다는 누가 봐주는 게 더 효과적이거든.”
이정우가 타자 전향을 하면서까지 야구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이승현도 마찬가지였다.
뼈는 붙어 가고 이제 거동도 문제없다.
다음 주부터 재활이 잡혀 있었고 이제 마음을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자꾸만 늦은 시간 야구장에 가게 된다.
지금 1군은 원정길을 떠났고 만만한 게 서산이었다.
“그럼 고맙죠.”
“영상 찍어 줄게. 보여 줘 봐.”
“네.”
이정우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야구 말고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짧고 굵게 마운드 위에서 실력을 보였고 그 이후에는 수납이었다.
부상 회복 후 다시 복귀해도 그의 공에는 위력이 없었고 쭉쭉 뻗어 가는 타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부웅!
“오.”
부웅!
“생각보다 잘 잡혔는데?”
부웅!
영상을 찍으며 이정우의 폼을 지켜보던 이승현이 미간을 좁혔다.
어디선가 많이 본 폼이었다.
누군가를 유심히 지켜보고 관찰하여 제 몸에 입힌 듯한 느낌이 났다.
[오늘 이재희 선수 공이 좋습니다. 제구도 잘 들어가고요. 지금 얼굴에서 자신감이 넘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오늘 이재희가 공에 힘이 있어요. 수세에 몰려도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고요. 1: 0. 예상하지 못한 투수전이라, 참 재밌습니다.] [이응혁, 4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쉽지 않은 산이죠?] [네, 맞습니다. 현재 홈런 13개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응혁 선수입니다.]부웅!
이정우는 여전히 배트를 돌린다.
그의 앞머리는 땀으로 젖어 있었고 찢긴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묵묵히 공식 훈련을 마치고 항상 혼자만의 개인 연습을 해 나가는 이정우였다.
[따악!]그 순간, 핸드폰에서 경쾌한 타격음이 울린다.
이정우와 이승현이 동시에 핸드폰 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행운 점프 캐치! 머리 위로 빠지는 타구를 귀신같은 반응 속도로 건져냅니다!] [대전 호크스의 주전 유격수 유행운이 슈퍼 루키다운 좋은 수비를 보여 주네요.]아, 기억났다.
“정우야.”
“네.”
“너 그 타격폼 행운이 폼 가져왔니?”
그 물음에 이정우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참 어린 후배의 타격폼을 배운다. 이정우는 매일 유행운의 경기를 보았고 유행운의 타격폼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하며 보았다.
이정우가 생각할 때, 배우고 싶은 이상적인 타격폼이었다.
차마 후배에게 가르쳐 달라고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참고하는 건 괜찮겠지, 그런 마음이다.
“좀 그런가요? 저보다 한참 어린 후배 폼을 베끼는 거…….”
“아니, 무슨 타격폼에 표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간결하고 부드러운 게 행운이 생각나서 물어본 거야.”
“네, 맞아요.”
이정우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행운이가 요즘 제일 잘 치는 거 같아서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존심 따위는 버릴 수 있다.
이정우는 그런 남자였다.
“그래서 참고했어요.”
야구, 계속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