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89
89. 선배의 자존심
KBO 리그 올스타 투표가 시작되었다.
올스타에는 말 그대로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주로 뽑힐 것 같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우선 팬 투표로 올스타전에 출전할 선수가 정해지며, 그 후에는 감독 추천이 있었다. 대체로 팬이 많은 구단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으며, 팬이 많고 그해 성적이 상위권이라면 줄 세우는 것도 가능했다.
항간에는 이런 단점을 예로 들고 올스타 선정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팬과 함께하는 축제인 만큼 여전히 팬 투표로 베스트 멤버를 정하고 있었다.
– 행운이 무조건 팬 투표 1위 만들어야 한다 이건 자존심이다 이 빡대가리들아
└ 인정
└ 타율(0.384) 1위 홈런(16개) 1위 타점(27점) 2위 출루율(0.489) 1위 등등등 얘가 전체 1위가 아니다? 대가리 박아야 함
└ 양심 있으면 지인 동원해서 싹 다 투표해
└ 대전의 대들보 유행운
└ 럭키보이…… 사랑해
└ 타팀 영업하러 간다 지금
유행운은 당연히 올스타에 선정된다.
여기서 대전 팬들은 유행운을 전체 투표 1위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었다.
대체로 올스타는 두 팀으로 나뉘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구단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순위는 1, 2위가 조류 구단이었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
대전과 부산은 서로 팀이 달랐으며 두 팀 모두 인기 팀이기에 협조가 가능했다.
“투표했어?”
백유정은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싸면서 물었다.
“네 남친?”
“그렇게 말하지 말고.”
“부정은 안 하네?”
“아무튼.”
“했어. 가족들에게도 시켰고.”
“잘했어.”
열애설 이후 백유정은 대학교에서 ‘유행운 여친’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이제는 들어도 그냥 조용히 넘어간다. 두 사람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고 서로 일이 있어서 자주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서울에서 경기를 치를 때면 한 번씩 얼굴을 보았었다.
“오늘 야구 보러 가?”
백유정의 대학 동기가 묻는다.
“응. 서울에서 경기하거든.”
“어디로 가는데? 잠실?”
“아니, 고척.”
지금 백유정은 들떠 있었다.
오랜만에 경기를 보고 유행운을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얼른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었다.
“네 남친보다 네 동생이 더 잘생겼던데.”
싱글벙글 웃고 있던 백유정의 얼굴이 사늘하게 식는다.
“뭐?”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어머, 왜 정색하고 그래?”
“지금 뭐라 그랬냐?”
“……네 남친보다 네 동생이 더 잘생겼다고-”
“너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가방을 든 백유정은 살벌한 눈으로 동기를 응시했다.
물론 타인이 보면 더 잘생긴 사람은 유행운보다 백유진이 맞다. 하지만 백유정의 생각은 달랐다.
잘생긴 건 본업을 잘했을 때 통하는 말이다.
본업을 넘사벽으로 잘하는 유행운이 야구선수 중에 제일 미남이다.
이게 백유정의 생각이었다.
“어떻게 그딴 오징어를 비벼?”
“뭐? 오징어?”
“오징어지! 난 걔만 생각하면 짜증이 나.”
현실 남매는 그렇다.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백유정 눈에 백유진은 못생긴 오징어였고 백유진 눈에 백유정은 그냥 마귀할멈이었다.
“유정아,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너 시력 검사 좀 해 봐.”
“한마디만 더 하면 네 목 비틀어 버린다……!”
“알았어. 그럼 나 네 동생 좀 소개해 주라. 오징어 남동생.”
이번에도 백유정이 눈을 흘긴다.
“안 돼.”
“왜?”
“백유진은 내가 알아서 짝 찾아 줄 거야.”
“어이없네. 오징어라며!”
“오징어니까 짝을 잘 찾아 줘야지.”
이런 부분은 남매가 닮았다.
백유진이 누나의 연애에 간섭하는 것처럼 백유정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나 간다. 투표는 고마워. 나중에 밥 살게!”
그 말과 함께 백유정이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한국대학교는 관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수업은 꽤 타이트했다. 일부러 차를 끌고 등교했지만, 오히려 차가 막혀 경기 시간에 늦을 수도 있었다.
백유정이 차에 올라타며 빠르게 학교를 빠져나간다.
고척돔까지는 1시간 거리였고 주차까지 생각하면 더 여유 있게 도착해야 하는데, 역시나 퇴근길 도로가 꽉 막혔다.
“미치겠네.”
경기 시작까지 30분 남았다.
근처에 다다르긴 했지만,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주차는 어디에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디링.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유행운: 누나, 유진이가 안 챙겼을 것 같아서.] [유행운: 관계자 주차권이에요. 주차 신경 쓰지 말고 조심히 오세요.]차가 밀려서 답답했던 속이 순간 쿵 하고 떨어진다.
유행운의 세심함에 미소가 번지는 백유정이었다. 연락하면 할수록 유행운은 다정하다. 동생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세심함이 있었다. 미리 고척 테이블석도 챙겨 준 유행운이었다.
[유행운: 저 이제 핸드폰 끌거라 연락 안 될 거예요. 이따 경기 끝나고 봐요.]유행운은 항상 경기 시작 전에 핸드폰을 끈다.
야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고 지금도 전원을 끄고 캐비넷 안에 넣어 두었다. 간혹 경기 시작 직전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선수도 있지만, 유행운은 그런 유형은 아니었다.
“본업 잘하는 남자, 멋있어.”
백유정이 유행운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본업과 자신의 사생활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았다. 그건 백유정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직관을 보고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당분간은 직관을 하기 힘들었다.
차가 꽉 막혀서 결국 10분 늦게 경기장에 도착했다.
오늘 유행운이 선발 출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 이건 다행이 아니라는 생각을 불현듯 했다.
[유격수 실책! 이거 참, 오늘 연패를 끊으려는 대전인데 주전 유격수의 빈자리가 너무 커요.]오늘 대전의 선발 유격수는 임지혁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트레이드로 유재원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최정환 감독은 그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유재원이 1군에 있는 그 순간부터 암흑기 기운이 선수단에 퍼지기 때문이었다. 유행운이 손목 타박상으로 선발 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방안을 생각했던 최 감독은 그래도 경기 경험이 있는 임지혁을 선발 유격수로 선택했다.
서산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신인도 있지만, 1군 무대는 급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지혁은 시작부터 평범한 땅볼을 빠뜨리고 말았다.
“미치겠네.”
혀를 차며 백유정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중앙 테이블석.
경기장이 한눈에 보였고 관람하기에도 좋은 자리였다.
“유행운이 없으면 팀이 돌아가질 않네…….”
백유정 옆자리에는 여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혼자 왔는지, 유니폼을 입은 채 맥주를 마시며 작게 욕을 내뱉고 있었다.
“임지혁 저 새끼는 경험치를 처먹어도 저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냐. 네가 그러고도 프로냐? 프로야?”
화가 잔뜩 난 모습이었다.
백유정도 작게 동의를 한다. 차에서 중계방송을 틀어 놓고 운전했다. 팀 타선 타격 페이스가 내려앉은 건 알겠지만, 너무나 쉽게 아웃카운트를 헌납했고 말 그대로 순삭이었다.
수비에서도 시작하자마자 땅볼을 놓친 임지혁 때문에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오늘은 반드시 연패를 끊겠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패배 DNA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오늘 선발 투수는 코리 윈스턴.
그는 유격수 실책을 보고 땅볼 유도를 해도 아웃카운트를 만들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이 마음에 가득 찼다.
해서, 최대한 삼진으로 타자를 잡겠다는 그릇된 생각을 한다.
물론 작년까지만 해도 투수들은 야수를 믿지 않았다. 특히 유격수는 더더욱 믿지 않았는데, 지금 코리 윈스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따악!
[가볍게 밀어칩니다! 1, 2간을 꿰뚫는 안타! 순식간에 무사 1, 2루가 됩니다!]“미치겠네.”
덜덜덜덜.
백유정도 슬슬 다리가 덜덜 떨린다.
투수는 야수를 못 믿고 최대한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다가 안타를 맞는다. 포수가 마운드를 방문에 투수를 다독이고 있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코리, 실책 때문에 야수들 못 믿는 거 알아. 하지만 너무 직구만 고집하면 진짜 좆 돼.”
* * *
– 시발 진짜 우리 황태자 손목 돌려내 썬더스 놈들아 ㅠㅠㅠㅠ
└ 어제 행운이 나가자마자 와르르 ㅋㅋㅋㅋㅋ
└ 승리까지 가져감 썬더스놈들…
└ 우리 진짜 행운이 없으면 안 되는구나……?
└ 하… 행운아 너의 소중함을 알았다 빨리 돌아와다오 ㅠㅠㅠㅠ
└ 근데 뼈에 금간 것도 아니고 타박상 수준이라며 나올 수 있지 않나?
└ 미친놈아 아껴 써야지 시발 욕심부리다가 손목 망가지면 네가 책임질 거??
└ 손목 부었대 왼손목이라 다행은 무슨 다행도 아니다 ㅅㅂ 글러브끼는 손이라 손목 망가지면 글러브질 ㅈ됨
└ 최정환이 성적에 미친놈이 아니라 다행인 거임 부기 가라앉기 전까지는 선발 출장 없다고 오늘 못 박았음…….
└ 다 낫고 와야해 유행운 원투데이 볼 것도 아닌데
└ 하…… 그립습니다 행운이형…… ㅠㅠ
유행운은 어제 경기에서 투수가 던진 공에 손목이 스치는 타박상을 입었다.
정통으로 맞은 건 아니었지만, 감독은 그 즉시 유행운을 교체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공에 스쳤다고 해도 부상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경기 결과보다 중요한 게 유행운이다. 해서, 바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고 서산에서 내야수를 콜업해 새로운 키스톤을 만들었다.
당연히 마음에 안 든다.
시작부터 실책을 저지른 임지혁을 보며 혈압도 올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전 유격수의 손목이 더 중요한 것을.
“됐다!”
코리 윈스턴이 다시 땅볼 유도에 성공했다.
포수의 조언을 알아들었는지, 직구 승부를 버리고 적당히 변화구를 섞으며 타자를 상대했다.
배트 끝에 맞은 공이 2루수 윤우현에게 굴러갔다.
신인 윤우현이 대시하며 공을 건져냈고 유격수에게 송구한다.
[1루 주자 아웃!]여기까지는 괜찮다.
공을 받은 임지혁이 슬라이딩을 피하며 1루를 송구하는 그 순간.
[아! 공, 공이 빠집니다!]“미친.”
이 순간에는 유행운의 입에서는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난한 병살 타구를 처리하지 못하고 타자를 살리는 동시에, 1루수가 잡지 못하게 높게 형성된 송구가 뒤로 거하게 빠지며 진루까지 허용했다.
[실책으로 타자 주자, 2루에 안착합니다! 아, 대전 호크스 시작부터 쉽지 않은데요?]“What the fuck!”
결국 윈스턴이 화를 낸다. 임지혁을 째려보며 두 팔을 올리는 리액션에서 그의 분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실책한 유격수였으니, 코리 윈스턴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건 당연했다.
“쏘리.”
임지혁이 진심으로 할 말 없다는 듯 투수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사과했다.
윈스턴이 씩씩거리며 스파이크에 박힌 흙을 벅벅 긁어낸다. 지금 열은 받고 화도 나는데, 이제 겨우 1회 말이라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유행운은 심각한 얼굴로 경기를 보고 있는 감독에게 다가갔다.
“이해되네요.”
최 감독이 시선을 옮겨 유행운을 응시했다.
“저 없으면 10연패라는 말, 괜히 하신 말씀 아니네요…….”
이게 팀이냐?
* * *
1회 말, 임지혁은 호러블한 수비를 보여 주었다.
두 개의 실책 이후에는 다행히 뇌를 뺀 수비는 없었지만, 이미 분위기는 가라앉아 버렸다.
코리 윈스턴은 1사 1, 3루에서 희생 플라이 하나를 맞아 1점을 내주었다.
그 이후에는 삼진을 잡으며 이닝을 겨우 마쳤고 더그아웃에 돌아오자마자 글러브를 패대기쳤다.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윤규민이 얼굴이 붉어진 윈스턴을 보며 중얼거렸다.
동병상련이었다. 어제 1점 차 리드를 빼앗긴 순간이 생각났다. 그 순간에 유격수 자리에는 임지혁이 아니라 신인이 있었다.
그 신인도 긴장을 잔뜩 했는지, 송구 미스에 포구 실수까지 연달아 하며 투수의 멘탈을 박살을 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유격수가 얼마나 중요한 포지션인지 깨닫게 해 주는 날이었다.
“행운아, 이리 와 봐.”
강우성이 파스를 들고 유행운에게 다가갔다.
유행운이 다가오자 왼 손목에 파스를 치이익 뿌리는 강우성이었다.
“괜찮아요. 그냥 좀 부은 정도예요.”
“알아. 네 손목은 귀중하니까.”
그 순간, 코리 윈스턴이 물을 마시며 유행운에게 다가왔다.
“럭키 보이.”
유행운을 보는 그의 눈이 촉촉했다.
눈물을 참는 듯한 얼굴이었고 유행운을 보는 눈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유행운은 싫었다.
덩치 큰 사내들의 사랑을 굳이 받고 싶지는 않았다.
“건강해야 해…….”
와락.
윈스턴이 그 큰 몸으로 유행운을 끌어안았다.
유행운의 눈이 커진다. 그대로 얼어붙은 채로 강우성을 바라보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윈스턴이 유행운을 더 강하게 끌어안는다.
키가 크고 덩치도 큰 윈스턴은 흡사 유행운을 잡아먹는 듯한 모양새였다. 멸치가 그대로 소멸할 위기였다.
“윈스턴.”
뒤늦게 강우성이 참견한다.
“그러다 럭키 보이 갈비뼈 나간다.”
“웁스!”
효과는 탁월했다.
유행운에게서 떨어진 윈스턴이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화가 나서 씩씩거렸던 윈스턴인데, 이제 조금 속이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아프지 마, 알았지? 너 없으면 나 죽어. 알지? 럭키 보이.”
그의 말에 유행운이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말했다.
“오케이.”
벗, 돈 터치 미.
* * *
[LIVE] 대전 호크스 0 VS 1 고척 데빌즈– 4번 타자 지선호
– 1구 볼 (포심)
– 2구 스트라이크 (포심)
– 3구 볼 (커브)
– 4구 헛스윙 (슬라이더)
– 5구 파울 (포심)
– 6구 타격!
└ 어? 어? 어? 어? 어? 크다????
└ 가나요?
└ 동점? 동점? 동점?
└ 서노형 난 믿었다구!
└ 미쳐따 ㅠㅠㅠㅠㅠ
└ 그치 우리 팀에 행운이만 있는게 아니었지 ㅠㅠㅠㅠ
└ 서노서노 지서노 ㅠㅠㅠㅠ
└ 형 존나 멋지다……
└ 형이야
지선호는 오늘 경기 부담감을 안고 출전했다.
팀이 연패에 빠졌고 주장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할 시점이었다. 최근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이던 주전 유격수가 결장했다.
공격에서도 구멍이 생겼지만, 당연히 수비에는 더 큰 구멍이 생겼다.
수비 이닝이 길어졌고 유격수라는 포지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지선호였다.
“가자.”
휘익.
배트를 집어 던지고 그라운드를 돈다.
대전을 대표하는 강타자 지선호는 이 홈런 하나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앞에 주자가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선호의 홈런은 의미가 있었다. 패배 DNA가 발동하는 시점에 관중을 일깨웠고, 선수들을 향해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걸 알기에 지선호는 멀리 배트를 던지고 큰 모션과 함께 베이스를 돌았다.
[지선호 선수가 드디어 6월 첫 홈런포를 가동하네요!] [시즌 15호! 수렁에 빠진 팀을 구원하네요. 그렇죠! 대전에는 유행운 선수만 있는 게 아니죠! 팀의 대들보 지선호 선수가 살아 있습니다! 유행운 선수와 홈런왕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 홈런 하나로 참 재밌어집니다. 홈런 개수가 단 하나 차이예요.] [그렇습니다. 참 중요할 때 홈런이 터졌어요. 대단합니다.]거포 지선호.
자존심이 살아 있다.
유행운이 슈퍼루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보다 크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하지만 거포로서 홈런 개수로는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현재 지선호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 40홈런 이상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행운이라는 존재가 지선호를 일깨웠다. 지금까지 보람도 없이 경기를 뛰었던 지선호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팀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경험할 수도 있다.
어쩌면 시즌 1위로 포스트시즌을 준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이 느슨하게 야구를 했던 지선호의 고삐를 바짝 잡아챘다.
“나이스!”
“대전의 영원한 4번 타자!”
여기저기서 애정이 담긴 손길이 다가온다.
가장 기뻐하는 선수는 역시 선발투수 코리 윈스턴이었다. 하이파이브 한 지선호는 구석에 앉아 있는 유행운에게 다가갔다.
“행운아, 이 형님이 치는 홈런 잘 봤냐?”
“네, 멋졌습니다.”
밋밋하게 떨어지는 커브를 강하게 퍼 올려 넘겨 버리는 모습을 아주 잘 봤다.
순간 민현웅의 타격이 떠오르는 거포다운 모습이었다.
“형, 아직 안 죽었다.”
오늘 지선호는 유행운 없이도 팀이 승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전날, 유행운이 선발 출전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배트를 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신인 선수에게 기대는 팀은 오래갈 수 없다.
지금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고꾸라지게 될 거다. 그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선호였다.
대전 호크스에는 소년 가장이 있었다.
1대 소년 가장은 강우성이었고 2대는 지선호였으며 3대는 윤규민이었다. 마지막 4대는 바로 유행운이다.
그걸 알고 있는 지선호였기에, 개인에게 기대는 야구가 얼마나 독인지 알고 있었다.
“너 없어도 이겨야 선배들이 고개를 들 수 있지 않겠냐.”
이긴다.
오늘 지선호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했다.
“오늘 기필코 이긴다.”
빠아아악!
“엉?”
갑자기 터진 엄청난 타격음에 지선호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순간, 타석에 선 프레드릭이 긴 수염을 흩날리며 거대한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거, 거봐.”
이건 예상 못 했나 보다.
“형이 이긴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