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93
93. 암흑기 귀환
이영호가 고척돔을 찾았다.
주전 유격수가 부상으로 짧게 이탈한 상황이었고 오늘 새로운 용병 투수가 선발로서 마운드에 오른다.
앤서니 호튼.
급하게 수급한 외국인 투수였기에 특급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4선발을 채워야 했고 자칫 잘못하면 팀 분위기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현재 대전 호크스는 우승권 전력이 아니었다.
물론 토종 선발진만 보면 우승에 걸맞은 성적이다. 용병이 아닌 국내 투수로 원투펀치를 가동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 대전이었다.
선발진만 두고 보면 좋은 전력이었지만, 야수들을 보면 아니었다.
최대한 FA로 구멍을 채웠건만, 아직도 여러 군데 구멍이 남아 있다. 다행히 새로 팀에 합류한 신인 유격수 유행운의 성적이 눈부시다.
MVP급 선수를 신인으로 영입했다는 소리가 돌았고 기존의 강타자 지선호 역시도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팀의 타선을 이끌고 있었다.
박준용이나 조석찬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오버페이였다는 논란을 뒤로하고 대전에게 필요한 타자였다. 그 둘이 없었다면 지선호는 물론 유행운까지 고립되었을 것이다.
“대전도 아니고 고척에서 만나자고 하십니까, 단장님은.”
아직 정식으로 은퇴를 한 것도 아니었고 선수 신분이지만, 서산에 눌러살며 선수들의 멘탈을 케어하고 있는 이승현이 이영호 단장 앞에 섰다.
“너 이제 발목 괜찮다며?”
“나이가 있어서 아직은 비 오는 날 좀 뻐근합니다.”
“최 감독이 부탁했어.”
“부탁이요?”
지금 두 사람이 위치한 장소는 흡연실이었다.
이영호가 전자담배를 한 모금 피우며 이승현을 보았다.
“너 붙잡아 달라고.”
“다들 왜 그러실까. 저 나이 먹어서 예전 같은 기량 안 나와요. 특히 지금처럼 발목 나갔으면 더더욱이요.”
“네가 타 팀이었으면 은퇴하라고 하겠지.”
사실 이영호는 부족한 내야진을 채우기 위해 트레이드 카드를 만지고 있었다.
임지혁과 최진영 가지고는 내야진을 채울 수 없었고 결국 신인을 콜업해서 실험하고 있다.
우승을 노리는 건 이영호도 마찬가지였다.
트레이드를 통해 자리를 잡지 못한 멀티 백업 겸 즉전감 자원을 찾으려 했는데, 프런트 전원이 반대했다. 심지어 현장 스태프까지.
“대전은 아직 네가 필요하다. 선수는 말이다, 팀이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뛰는 거야. 또 지금 대전 위에서 놀고 있다. 너도 하위권 맴돌면서 고생 많이 했잖아. 유종의 미, 그거 올해 거두자고.”
이영호도 트레이드 고집을 꺾었다.
이번에도 트레이드를 진행했다가 실패하면 자리를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팀 성적이 좋아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모가지가 날아갔을 이영호였다.
“염치가 없잖아요.”
“무슨 염치?”
“제 입으로 후배에게 자리 양보한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복귀한다고요?”
“그게 뭐 어쨌다고.”
이영호가 전자담배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실제로 승현이 너, 자리 비켜 줬잖아. 그래서 그 자리 먹은 놈이 있냐? 어떻게 된 게, 그 자리를 잡아먹는 놈이 하나가 없냐. 걔네들은 할 말 없어. 진영이도 방출을 걱정해야 하고 지혁이 이놈도 서산에서 정신 교육 바짝 해야 해. 너 없으니까 정줄 놓고 수비하고 정줄 놓고 타격하고.”
“…….”
“네가 말 바꾸면 좋아할 사람이 쏟아질 거다.”
“…….”
“프로선수의 생명줄은 팬에게 달려 있어. 팬이 계속 찾는 선수는 그 동력으로 계속 야구할 수 있다. 너는 아직 생명줄이 달려 있는데, 그만둘 이유가 없지.”
아직도 이승현은 망설인다.
집안에서도 잘나가는 대전 호크스를 보며 은퇴를 철회하라고 권유했다. 특히 와이프가 난리였다.
야구를 하면서 다치는 걸 가장 싫어하던 사람이 깁스를 한 모습을 보고도 은퇴는 없던 걸로 하란다. 아이들 앞에서 멋진 아빠가 되라고 말했다.
“우승, 네가 있어야 할 수 있어.”
그리고.
끝없이 망설이는 이승현을 향해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야구선수에게 우승은 영광이다. 우승 한번 못 해 보고 그만두는 선수가 널렸을 정도였다.
그 말을 들은 이승현의 눈이 흔들렸다.
“승현아, 우리 올해 제발 우승하자.”
* * *
앤서니 호튼.
한국에 오는 외국인 선수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생계형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유형이 생계형이었는데, 앤서니 호튼은 특히 그런 성향이 강했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역사도 없었고 방출을 연거푸 당하며 팀을 계속 옮겨 다녔다. 현재 트리플A에서 운동을 했었지만, 작년에는 그보다 못한 리그에서 선발로 뛰었었다.
즉, 한국에 오기에는 애매한 실력이었으며 성적이었다.
20대 후반인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분윳값도 벌기 벅찬 선수였다. 그러니 한국에서 들어온 오퍼가 얼마나 귀했겠는가.
“헤이. 오늘 럭키 보이 없으니까, 수비를 믿지 마.”
어제 선발 투수였던 윈스턴이 나름 조언을 한다.
코리 윈스턴은 나이가 제법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낸 경험도 있었고 일본에서도 선발로 뛴 경험이 있다.
그에게 KBO는 이제 야구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경험도 많다. 미국은 물론 일본 야구도 경험했고 한국에서 그 경험을 토대로 신인 선수들에게 조언도 많이 하고 있었다.
푸근한 인상.
돈도 많이 벌어서 여유가 생긴 모습.
생계형 투수에게는 워너비 같은 존재가 바로 코리 윈스턴이었다.
“힘들 땐 저기를 보라고. 바로 중앙 테이블석. 부인이 거기에 앉아 있지? 그럼 힘이 날 거야.”
나름 세심한 조언이었다.
돌려 이야기했지만, 분윳값을 생각하라는 뜻이었다.
* * *
[주전 유격수 없이도 2연승 …… 대전 호크스가 한층 더 견고해졌다]분유 파워가 효과를 보았다.
지난주, 불펜 투구에서 1이닝 2실점이라는 최악의 투구를 한 앤서니 호튼은 그런 모습은 싹 지워 버렸다.
시차 적응도 마쳤고 몸도 많이 올라왔다.
불안했던 제구도 잡혔으며 고속 슬라이더의 각이 예리하게 살아났다. 투심과 슬라이더의 조합은 필승이었다.
투심 역시도 묵직하게 날아가 타자의 배트를 구위로 눌렀다.
[불안했던 4선발 앤서니 호튼, 부진 딛고 6이닝 1실점 승리투수]└ 다행히 잘하더라
└ 영호 명줄 기네
└ 영호는 진짜 운도 좋아 ㅋ
└ 이대로만 던져주면 진짜 문제없다
└ 캬캬
└ 앤서니 승리요정 가보자고!!
그와 동시에.
[대타로도 눈부시다 …… 슈퍼 루키 유행운 1타점 적시타]유행운은 7회 초, 무사 1, 2루 상황에 대타로 나서 적시타를 날렸다.
선발은 아직이지만 감은 아직도 남아 있었고 부드러운 스윙으로 2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벌써 2세이브 기록! 대전의 새로운 클로저, 백유진 “세이브 생각 안 하고 던진다”]동시에 백유진은 6:4.
세이브 조건을 갖춘 상황에서 마지막 마운드를 지켰다.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맞긴 했지만, 바로 땅볼 유도에 성공하며 병살타를 잡았다.
오늘의 선발 유격수는 신인 강수호였는데, 전날 최악의 실책을 연거푸 저질렀던 임지혁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우리 오늘 키스톤 진짜 삐약 그자체다 ㅋ 강수호 윤우현 조합이라니 ㅋㅋㅋㅋ]└ 22 무게감 1도 안 느껴지는 키스톤 ㅋ
└ 333 삐약치고는 잘했음
└ 강수호 송구 불안했던 거 빼고는 임지혁보다 낫더라
└ 윤우현 얘는 2루 키워볼 만하지 않아? 오늘 멀티히트 경긴데
└ ㅇㅈ 임지혁 키울 바에는 그냥 윤우현 키울란다
└ 행운아 그립다
위닝시리즈를 확보한 상황에서 주말 3연전의 마지막 선발투수 이재희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재희는 항상 기복이 있다.
긁히는 날에는 무실점, 안 긁히는 날에는 안타 파티였다. 이재희 같은 경우는 내야 수비가 중요했다.
내야의 핵심 유행운이 빠진 상황이라 더욱 불안함을 가진 채, 마운드에 올랐다.
[초구 타격! 삼유간을 깔끔하게 빠져나가는 안타!]1회 초.
이재희는 시작부터 안타를 처맞는다.
“아, 행운이면 막아 주는데…….”
그 말도 맞다.
유행운이었다면 막아 줬을 확률이 절반 이상이 넘어간다. 어려운 타구도 곧잘 잡아 내고 강한 송구로 정리하는 유격수가 유행운이었다.
지금은 평범 이하의 유격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호수비는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아, 이재희 선수 흔들리네요. 긴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줍니다. 무사 1, 2루.]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쭉 뻗는다.
다행히 2루수 윤우현이 몸을 던져 타구를 건졌고 지체 없이 1루 송구를 하며 타자 주자를 잡아냈다.
1사 2, 3루.
윤우현이 아니었다면 1점을 쉽게 내줄 위기였고 이재희 역시도 숨을 돌렸지만.
[쉽지 않네요. 10구 승부 끝에 또 만루를 만드는 이재희.] [지금 제구가 안 돼요. 반대 투구도 너무 많고요.]따악!
따악!
따악!
위기는 극복할 수 없었다.
고척 데빌즈는 연패를 막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섰다.
[데빌즈의 방망이가 뜨겁습니다! 연속 3안타! 1회부터 4점을 쓸어 담으며 빅이닝을 만듭니다!]그렇다.
시작부터 빅이닝.
당연히 이재희의 멘탈은 나갔고 겨우 병살을 잡아 1회 초를 정리했지만.
[오늘 이재희 선수는 잠이 안 오겠어요.] [네, 맞습니다. 1회 초에 5실점, 2회 초에도 1실점, 3회 초에도 1실점……. 투수로서 잠이 안 올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극복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다 경험치로 돌아오거든요.]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다음 날은 휴식일이었기에 최정환 감독은 이재희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간다. 어차피 흐름은 넘어갔으니 투수를 아끼는 게 가장 좋았다.
그 결과.
[최종 스코어 18:1, 고척 데빌즈가 화끈한 타격쇼를 보여 주며 연패를 끊습니다!]압도적인 점수 차로 패배를 했고 최 감독은 경기 중반, 주전들을 모두 교체하며 체력 안배에 힘을 썼다.
이재희는 오늘 인생 최악투를 경신했다.
글러브를 던질 힘도 없는지, 바로 화장실로 가 눈물을 쏟았다. 아직 불안한 5선발, 기회를 꾸준히 받고 있는 이재희가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 준다면 김민준에게도 기회가 간다.
그걸 아는 이재희였기에 울컥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오늘 대전은 5회 말에 주전 선수들을 모두 교체했어요. 체력 안배로 보이죠?]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선수층이 얇은 대전이거든요. 최 감독이 이미 분위기는 내주었으니 주전들에게는 휴식을, 그리고 백업 선수들에게는 경험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대전 호크스가 1위를 지키고 있고 오늘 부산 마린스가 드디어 연패를 끊었거든요? 6연패 끝에 승리. 간신히 부산도 2위를 지키고 있는데, 요즘 순위 경쟁이 참 재밌네요.] [고척 데빌즈와 서울 스타즈의 4위 경쟁도 볼만합니다. 서울 스타즈가 1경기 차로 바짝 고척을 따라붙고 있고요, 사실 3위하고도 차이가 크지 않아요. 서울 썬더스가 연승이 끊기긴 했지만, 2위 부산을 위협하고 있고 고척과 서울 스타즈에게 쫓기고 있거든요.] [그 어느 때보다 순위 경쟁이 치열한 KBO. 승률 3할대에 머물던 대전 호크스가 선전을 하면서 최약팀이 없다는 것이 지금 이 치열한 순위 싸움을 만든 것 같습니다. 과연 다음 주에는 순위 변동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 치열한 중위권 경쟁.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기는 고척입니다.]* * *
[대전 호크스 이승현, “은퇴 철회, 팀이 날 원한다면 계속 뛰겠다”] [최정환 감독 “아직도 2루수가 불안하다, 우승을 위해 이승현 붙잡았다”]└ 이거지
└ 됐다 임지혁 치운다
└ 이승현 주전, 윤우현 백업 어떠냐?
└ 윤우현 백업 동의
└ 우현이 선발로 나와서 멀티히트도 치고 괜찮더라
└ 윤우현 빠따 재능 있음 키워야 함
└ 임지혁은?
└ 컴활 따라 해
이승현이 결단을 내렸다.
현재 발목 회복기에 접어들며 재활 운동을 하고 있던 이승현은 대전에 돌아오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했다.
7월에는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이 있으니 늦어도 그 중간 휴식기 이후에는 1군에 합류할 수 있다.
여러모로 선수층이 얇은 대전에게는 호재였다.
“통증 없고, 붓기도 가라앉았고. 이제 수비 나서도 되겠어.”
유행운은 나흘을 쉬었다.
월요일 휴식일까지 하면 나흘.
요즘 유행운은 수비나 타격 연습은 하지 않고 하체 운동을 주로 했다. 손목을 쓰는 일은 최정환 감독이 금지시켰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계속 대전에서 경기를 한다.
이동할 일이 없다는 건 확실히 몸이 편했다. 그동안 부상 회복을 하며 휴식을 취한 유행운은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오전에는 하체를 조졌고 손목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는 상체를 조졌다. 단백질 드링크를 마시며 차에 탄 유행운이 익숙하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이제 훈련 끝났어.”
유행운이 연애를 시작했다.
“이제 손목 괜찮대. 내일부터 선발 출장 가능해.”
그 상대는 당연히 백유정이었다.
입맞춤과 함께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야구선수에게는 휴식일 외에는 시간이 없어서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 애정이 깊어진다.
마음은 불타오르는데, 만날 시간이 없으니 더더욱 애가 탈 수밖에.
– 나도 이제 수업 끝났어. 저녁 먹고 과외 가야 해.
백유정은 과외로 용돈을 번다.
명문대 출신이었기에 고액 과외 정도는 가뿐한 백유정이었다.
“누나.”
– 응.
“방학 언제야?”
– 좀 걸려. 보름은 기다려야 해.
“이제 시험 기간이겠네?”
– 응, 그래서 슬퍼.
“왜? 공부하기 싫어서?”
– 아니, 공부는 쉬워. 나는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던데?
유행운이 미간을 찌푸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거 되게 좀 별로인 발언인 거, 알아?”
– 뭐가? 공부가 쉬운 거?
“응.”
–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공부는 그냥 앉아서 오래 버티는 사람이 잘하는 거야. 내가 그걸 잘하는 거고.
“그것도 재능이야. 나는 공부 못 하겠거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셔.”
– 미국 가신다면서요.
“가야지.”
– 그럼 영어 공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해야지…….”
– 내가 가르쳐 줄까?
“집중이 될까? 누나 보느라, 내가 영어가 눈에 들어올까?”
– 내가 가르쳐 줄게. 나 영어 잘해. 유진이 영어 엄청 못하거든? 내가 볼 땐, 비슷한 수준일 것 같아. 그니까, 지금부터 시작해야 나중에 미국 가서 써먹을 수 있을 거야.
“…….”
– 방학 시작하면 내가 대전 자주 갈게.
“과외는 어쩌고?”
– 돈 많이 벌어 놨어. 너 내가 얼마 받고 애들 가르치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그래?”
유행운은 지금 백유정의 방학만 기다리고 있다.
현재 유행운은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야구를 하고 있고 휴식일에도 개인 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는 우천 취소가 되면 PC방으로 달려가 게임을 하는데, 그 시간에 유행운은 스트레칭을 하며 컨디션을 조절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없었다.
여자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고 백유정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를 다니고 주 3회 과외를 한다. 과외가 없는 날에는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자료를 수집하고 따로 공부도 했다.
직관을 자주 가기는 하지만, 이제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그럴 수도 없다. 즉, 서로가 바빠도 너무 바빴다.
“누나, 방학 동안만 대전에서 눌러살래?”
유행운이 생각을 정리하고 흑심을 표현한다.
“내가 오늘 아파트 하나 계약해 놓을까?”
미친놈이다.
– 뭐? 그러지 마.
“작은 거, 투자 목적으로. 누나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집.”
– 됐어. 너 어머니랑 같이 산다며.
“누나, 유정아.”
유행운이 설득한다.
“나 편하게 안 보고 싶어? 누나, 방학하면 대전에 자주 올 거잖아. 그러면 내가 집을 사 두는 게 낫지 않을까?”
백유정은 쉬이 대답하지 않았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아파트를 사겠단다. 유행운의 실행력에 혀를 내둘렀다. 내심 좋기는 했지만, 아직은 너무 이르다.
– 내가 뭐, 대전에 얼마나 갈 거라고.
“자주 올 거 아니야? 유정아, 나 안 볼 거야?”
– 근데 왜 너 자꾸 이름으로 불러?
“싫어?”
– 아니, 뭐 좋은 거 같아.
“그치, 유정아?”
– 아무튼, 너무 일러. 서울에서도 경기 많이 하는데 그때도 보면 되잖아. 또 우리 엄마도 가끔 대전 가서 유진이 보러 가는데, 안 돼. 눈치 보여.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뭐…….”
사실 유행운이 대전에 따로 아파트를 사겠다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인은 외출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서울에서 백유정을 만나도 따로 외출을 하려면 코치는 물론 감독에게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해서, 대전에서나마 편하게 만나고 싶은 욕심이었다.
집은 모친과 함께 살아 불편하니 아파트가 있다면 퇴근 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요즘 나 야구 공부한다? 사실 나 성적 맞춰서 전공 선택했거든. 기자는 되고 싶진 않고 그래서 그냥 학벌로 대기업에나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야구가 너무 재밌어.
“누나가 야구 좋아해서 다행이야.”
– 응, 그래서 스포츠 아나운서 같은 거 해 볼까?
“누나.”
– 응.
“방송 타면 안 돼.”
– 왜?
“백유정 지금도 유명한데, 아나운서 하면 더 유명해지잖아.”
그 말을 하며 유행운은 부동산 앱을 켰다.
적당한 가격의 매물을 둘러본다. 매매가 아니더라도 월세도 좋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백유정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다.
– 너 이럴 때, 되게 귀여운 거 알아?
유행운이 경기장 근처에 깨끗한 신축 오피스텔 매물을 확인하며 말했다.
“내가 귀여워서 다행이네. 나도 백유정 귀여운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꽤 오래 이어진다.
유행운은 운전을 하면서 계속 대화를 나누었고 백유정도 과외 약속 시간 전까지 통화를 끊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 날.
[대전 호크스 라인업 공개]– 1번 박준용 2번 유행운 3번 조석찬 4번 지선호 5번 프레드릭 6번 김정환 7번 윤우현 8번 김지환 9번 김혁찬 선발투수 강우성
└ 크으 갓행운 복귀 ㅊㅋㅊㅋ
└ 행운아 보고 싶었다!
└ 오늘 백퍼 이긴다 갓우성 선발에 갓행운 복귀전 ㅋㅋㅋㅋㅋ
└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 행운아 네가 대전의 핵심이다
└ 깨지지 마 유행운!
화요일.
유행운의 복귀전이 열렸다.
“쯧, 하루만 더 쉬지.”
그리고.
대전 호크스의 상대팀 부산 마린스의 감독 김형태는 유행운의 복귀에 심기가 불편했다.
지난달, 호크스와 맞붙었을 때 마린스는 2승을 거머쥐었다. 선두 싸움이 벌어지던 순간이었고 대전에게서 2승을 챙기며 팀 분위기가 상승했었다.
하지만 지금, 마린스는 선두 경쟁이 아니라 2위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ㅋㅋㅋㅋ 야, 유재원 1군 콜업됨 ㅋㅋㅋ]└ 찐?
└ ㅇㅇ 찐
└ 백업 용도인듯
└ 지금 주한성 수비 이닝 행운이 제치고 1위임
└ 낡은이 주한성 요즘도 잘함?
└ 개잘함;;;
└ 행운이 급은 아닌데…… 잘하긴 하지
└ 지금 유격수 성적 2위가 주한성
└ ㅋㅋㅋㅋㅋㅋ 유재원 존나 개쩌리던데?
└ ㅇㅇ 걔 지금 방출 걱정해야 함
└ 근데 왜 콜업?
└ 주한성이 늙었잖아 슬슬 체력 안배 해야 해서 올린 듯
└ 부산 좆됨 유재원 필패의 아이콘 암흑기의 주역임
└ 유재원 출장하는 그 순간 실책 파티나 걱정해랔ㅋㅋㅋ
└ 1군 경험 풍부한 백업이 유재원이라 콜업한 건가??? 악수일텐데……
└ 대전 팬은 안다 유재원은 없는게 낫다
└ 어디서 암흑기 냄새 안 나요? 킁킁 이건 부산에서 나는 건가?ㅋㅋㅋㅋ
└ 폭투에 헛싕 하는 거 봐야 유재원 다시는 안 쓰겠지 ㅋ
└ 오늘 필승이네요 대전에게 운이 따르나요????
└ 내일 김명중 나오냐? 또 피하냐? 도망가냐? 앙?
└ 암흑기가 몰려온다! 부산에게로!
“…….”
유재원이 수척해진 얼굴로 부산 마린스 더그아웃에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