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97
97. 네가 천재라서 그래!
경원상고의 주전 2루수였던 강수현은 프로 진출에는 실패하여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여러 대학에 원서를 내고 진학에 대해 고민하던 강수현은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 충청권에 위치한 동하대학교에 입학했다.
요즘 강수현은 프로에 한발 앞서 진출한 친구들을 보며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야구로 대학까지 온 마당에 중도에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 아마추어 야구선수의 최종 꿈은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일이었다. 일단 프로에 진출해야 그다음이 있다. 야구로 계속 밥벌이를 하려면 자신만의 타이틀이 필요했는데, 그게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일이었다.
“오랜만!”
강수현의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고등학생 때는 야구를 계속하기는 했지만, 어딘가 진지함은 없었다. 그러다 경원상고를 졸업하고 나이를 먹는 동시에 조금씩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에는 주전 자리를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경기에 출장하여 자신만의 위치를 잡는 걸 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더 현실적인 목표를 두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경기하는데 굳이 대전까지 왔냐?”
유행운은 유니폼 바지에 구단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예전 고등학생 시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 강수현은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실내에 와 있었다. 동하대학교 야구부 점퍼를 입은 채로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도 있었고 프런트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강수현은 낯선 사람이었다.
동하대 점퍼를 입고 있는 강수현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쳐다보았고, 괜히 위축된 강수현은 얼른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 대전에서 대학 다니는데?”
“아, 맞다. 그랬지.”
오늘 강수현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경기를 보는 것도 목적이지만, 사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왔다.
“일단 초코우유 받아.”
가방에서 강수현이 초코우유를 꺼내 유행운에게 내밀었다. 우유를 받아 든 유행운의 눈이 가늘어진다.
매직으로 뭐라 쓰여 있었는데, 그 문구를 읽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 ♡천재 유격수 유행운♡
“너 진짜 이런 짓 좀 하지 마.”
악필로 휘갈긴 글씨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강수현은 고등학생 시절에도 유행운의 캐비넷에 메모지와 함께 초코우유를 넣어 두곤 했었다. 그때마다 유행운은 소름이 돋았는데, 다시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내 마음이지.”
“네 마음은 필요 없어.”
유행운이 냉정하게 강수현의 마음을 거부했다.
“너만 왔어? 유진이는?”
“지금 선배들에게 붙잡혀 있어서.”
“아, 그래?”
“곧 올 거야.”
강수현은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들고 다니는 가방이었고 그 안에는 배트와 글러브가 들어 있었다.
“나 부탁 하나 해도 돼?”
“뭔데.”
“내일 경기 쉬잖아.”
“안 돼.”
“왜?”
“나 데이트해야 해.”
유행운은 바쁘다.
경기도 뛰어야 하고 훈련도 해야 한다.
휴일에도 놀러 다니지 않는 유행운은 푹 잠을 자고 오전에 개인 훈련을 했다. 그 이후에는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 다음 달에 무적야구 경기 나가.”
“무적야구?”
요즘 JTB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야구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였는데, 은퇴한 프로선수를 중심으로 하여 아마추어 선수들과 대결을 펼친다.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와도 매치업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프로 구단에도 대결을 요청하고 있었다.
듣기로 서산 호크스에도 섭외가 들어왔다고 했는데, 칼 거절을 한 모양이었다. 굳이 대결을 펼쳤다가 패배라도 하게 되면 그 뒷수습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섭외 들어왔어. 동하대.”
“아, 그래?”
“거기서 잘하고 싶어.”
“그래서?”
“도와줘. 나 오늘 타격폼 좀 봐주면 안 돼?”
강수현의 목표는 프로 진출이었다.
요즘 대학에 진학 중인 아마추어 선수들은 얼리 드래프트가 가능해졌다.
대학 자체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지고 있었고 선수 수급이 수월하지 않아 KBO에 얼리 드래프트를 요청했고, 2022년부터 시행된 제도였다.
강수현은 내년에 얼리 드래프트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최대한 빨리 프로에 진출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기에는 늦다. 군 입대로 인한 공백도 생각해야 하는데, 최대한 빨리 프로에 입단해야 뭐라도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무적야구와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무적야구에 소속된 소수의 아마추어 선수들은 방송에 꾸준히 노출되면서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일이 잦았다.
거의 80% 비율로 프로에 진출했고 강수현 역시도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이득이다.
특히 무적야구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음.”
유행운은 생각에 잠긴 채, 강수현의 몸을 살펴보았다. 고교 시절 강수현은 하체가 부실했었다. 빠른 발에 의지해서 타격하던 버릇이 있는 전형적인 똑딱이였다.
지금은 제법 하체가 튼실해졌다. 나름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몸이었다.
“오늘 끝나고 나 개인 훈련 할 거야.”
“진짜?”
“짧게 봐줄게.”
“고마워! 타격 코치님께도 부탁드리면-”
“응, 안 돼. 내 선에서 끝내자.”
“알았어.”
강수현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백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깝수!”
오랜만에 듣는 별명이었다.
“얼굴 완전 탔네? 이제는 깜수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강수현이 미간을 찌푸린다.
먼저 ‘깝수’라는 별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백유진이 생각보다 말이 많아져 놀라서였다.
항상 야구부의 프린스답게 무게만 잡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별명 딱 질색이야.”
“너 요즘도 타격에서 깝치냐?”
유행운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너 레그킥 들었다가 내려놓고, 갑자기 엉덩이 실룩대고, 타격 다 마치기도 전에 대충 치고 뛰는 거. 아직도 그래?”
* * *
토요일은 우천 취소.
김명중은 다행히 선발 로테이션은 거를 수 있게 되었다. 부산에게는 작은 행운이었다. 김명중을 아끼고 주말 3연전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대전에게 약한 김명중이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부산의 선발은 이태선.
한때는 강우성의 라이벌이라 불렸지만, 결론은 라이벌로 묶을 수 없었다. 젊을 때는 부산의 1선발급이었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어 4선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산은 이태선을 사랑했다. 근 10년간, 이태선 말고는 오랫동안 선발 마운드를 든든히 지켜 준 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전의 선발은 윤규민이었다.
현재 김명중과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김명중와의 맞대결에서는 항상 승리를 점쳤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전을 상대하는 김명중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김명중이 아니라 김땡중이 되는 것 같다.
“개새끼들, 또 파업하네. 또 파업해.”
윤규민은 나쁘지 않게 공을 던졌다.
컨디션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거두었다. 하지만 팀 타선이 터지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위로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유행운의 2루타였다.
비록 득점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어제 하루 푹 쉰 유행운은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LIVE] 부산 마린스 3 VS 0 대전 호크스– 6회 말
– 2사 1루
– 2번 타자 유행운
– 볼 (투심)
– 스트라이크 (슬라이더)
– 볼 (슬라이더)
– 스트라이크 (투심)
– 파울 (투심)
– 파울 (커브)
– 파울 (투심)
– 파울 (슬라이더)
– 파울 (커브)
– 볼 (투심)
승부가 길어진다.
윤규민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여기서 따라가는 점수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는 철저히 부산에게 끌려갈 것이다.
지금 이태선은 투구 수도 넉넉했다. 그만큼 대전 타선이 제대로 일을 안 했다는 뜻이었다.
유행운이 헬멧을 벗고 땀을 닦는다.
다시 자세를 잡는다.
“제발!”
윤규민이 간절히 기도하는 그 순간, 이태선은 짜증이 치밀었다. 왜 이렇게 질기게 구는지.
커트를 연거푸 당하면 투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다. 잘 들어간 커브도 배트 끝으로 건져 내니, 투수 입장에서는 허탈하고 기분도 나빴다.
로진백을 문지르고 마운드를 가볍게 한 바퀴 돌며 어깨를 풀었다. 오늘 긁히는 날이었고 타선도 적당히 득점을 내주었다.
당연히 승리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후우.”
숨을 고르고 자세를 잡는다.
눈으로 1루를 체크하고 있는 힘을 다해 공을 뿌렸다. 유행운이 날아오는 공을 바라본다. 무게 이동과 함께 배트를 낸다.
몸쪽에서 바깥으로 휘는 슬라이더.
유행운이 그 궤적을 따라 배트를 크게 돌렸다.
따아아악!
경쾌한 타격음.
쭉 뻗어 가는 타구는 대형 타구를 직감케 한다. 유행운이 배트를 툭 떨어뜨렸다. 관중석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모습과 함께 긴 무득점에 지쳐 있던 팬들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윤규민 역시도 벌떡 일어나 수건을 빙글빙글 돌린다.
1루 주자 박준용이 산책을 하듯이 베이스를 돌고.
유행운 역시도 환호하는 관중을 바라보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 2점 홈런 (117M)
└ 행복사
└ 행운사
└ 그냥 거르지
└ 감독 돌임? 쟤 오늘 타격감 미쳤던데 상대를 왜 해???
└ ㅋㅋㅋㅋ 그치 2사지랄 국룰이지
└ 오늘 지면 뒤진다
└ 이태선 지쳤다 바꿔라
└ 아…… 시바 쎄하다?
└ 쟤 트레이드 안 되냐?
└ 누구랑?
└ 유재원이랑
└ 양심 있냐?
└ 유재원을 트레이드 보낸 너넨 양심이 있고????
기세는 동점은 물론 역전까지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충청도식 느린 파도타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조석찬은 분위기를 이어 가지 못하고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태선은 오늘 제 할 일을 충분히 해냈다.
6회 말, 아웃카운트를 두 개를 잡아 놓고 맞은 투런포가 뼈아프기는 했지만, 역전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불펜 싸움.
“하.”
어이없다는 듯 윤규민이 웃는다.
아이싱을 한 채로 때아닌 불쇼가 벌어진 걸 보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따악!
따악!
따악!
이 소리는 대전 소속 타자들이 공을 치는 소리가 아니다.
부산 소속 타자들이 맹타를 휘두르는 소리였다.
“세상이 나를 억까 하나……?”
석 점을 추가로 내준 불펜 투수들.
7회 초를 막는 데 투수 세 명이 들어갔다. 하나같이 공이 날리는 모습을 보였고 분위기는 이미 넘어가 버렸다.
[그렇죠. 부산 마린스는 화끈한 타격이 매력적인 팀이죠. 턱 끝까지 따라온 대전 호크스를 다시 멀리 보내 버리네요. 대단합니다.] [오늘 대전 호크스는 전체적으로 타선이 침체되어 있죠? 이틀 전, 경기에서 보여 준 화려한 득점력이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실종, 그 자체네요.]“허허허허…….”
패전 투수가 된 윤규민은 실성한 듯 웃었다.
요즘 잠잠했던 불펜들이 화끈한 배팅볼쇼를 보여 주며 부산의 침체되었던 타격감을 쭉 올려 주었다.
그 결과.
[최종 스코어 8: 2. 대전의 연승이 끊기는 동시에 부산이 승리를 거두며 2위 자리를 지켜 냅니다!]“나쁜 새끼들…….”
윤규민은 패전을 피하지 못했고 그는 억울함에 또 눈물을 쏟았다.
* * *
따악!
“몸통 더 확 돌려.”
따악!
“테이크백 너무 길어.”
힘을 실어 주는 동작이 테이크백이었다.
유행운은 이 힘을 모으는 동작을 최대한 간결하게 진행한다. 특히 150km/h가 넘는 강속구 투수에게는 이 간결한 테이크백이 중요했다.
물론 강수현이 무적야구에서 강속구 투수를 만날 일은 없겠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불필요한 동작은 줄여야 했다.
따악!
“중심 앞으로 쏠렸다.”
따악!
“뒷다리에 힘을 싣고 바로 부드럽게 이어 가야지. 테이크백 너무 길다니까? 어?”
점점 유행운의 목소리가 커진다.
개인 훈련을 진행하는 동안, 강수현은 혼자 타격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맥이 있어서 이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사실은 안 된다.
모두 유행운이 대전의 슈퍼스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고치라는 거, 왜 아직도 못 고쳤어?”
유행운은 개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강수현의 타격폼을 보고 문제점을 짚어 주었다. 열심히 메모하며 귀담아들은 강수현이 거울을 보며 연습을 했지만, 단시간에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노력했어…….”
“그 정도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못 해. 내가 말해 준 거 하나도 고치질 못했잖아. 무적야구 나오는 선배님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야. 구속은 떨어져도 야구 지능만큼은 젊은 선수 이상이라고. 너 대학 가서 3할 친다며. 그거 다 뻥이지?”
“나 진짜 3할 치거든?”
“근데 타격폼이 이렇게 구려?”
“…….”
“이렇게 구린데 어떻게 네가 3할을 쳐?”
하.
오랜만에 강수현이 빠직한다.
“네가 천재라서 그래!”
“뭐?”
“야구 잘하는 놈들은 말은 쉽지! 민현웅도 그러더라. 요즘 미국에서 외롭다고 징징거려서 타격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그냥 힘으로 넘기면 된대. 타이밍 맞춰서 치면 넘어간대. 그게 말이야? 어? 하여간 야구 잘하는 놈들은 말하면 말하는 대로 다 착착 되는 줄 알아.”
결국 강수현이 폭발한다.
고교 시절에는 유행운이 욕하면 그냥 들었다. 그때는 사실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원상고 시절에는 3할 근처에도 못 갔던 그는 대학에 와서 타격폼을 손보면서 타율이 올랐다. 예전과 달리 진지하게 야구를 하고 있었고 오늘도 기숙사 옥상에서 타격 연습을 하고 왔던 강수현이었다.
서러웠다.
유행운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강수현 눈에는 천재였다. 쉽게 말하면 노력하는 천재가 유행운이었다.
“이래서 천재들은 안 돼……!”
울분에 찬 목소리가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