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5)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44화
말발굽에 뿌연 흙먼지가 퍼졌다.
“저 사람들은…….”
길목 주변에서 흙 놀이를 하던 어린 소년과 소녀는 급히 사라지는 말을 탄 사람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엄청 빨랐어.”
“그랬지?”
윈체스터에서의 통신을 가장 먼저 받은 엘리시온은 급히 윈체스터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쯤 아드리안 헤일로도 출발하였을 것이다.
이능을 가진 자가 아니면 방해만 될 것이기에, 각 가문의 직계 중에서도 용기 있는 자들만이 자원해 달리고 있었다.
‘페르세토스의 부활이라, 오래전 에시르의 일을 통해 언젠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현실이 될 줄은.’
윈체스터 쪽에서부터 서서히 퍼지는 검은 기운은 점점 온 대기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엘리시온의 손에서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어차피 얌전히 저택에서 죽거나, 혹은 윈체스터에서 적과 싸우며 죽거나…… 둘 중 하나인가.’
시초의 고룡 메키우스만이 상대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 페르세토스.
어느 인간도 그의 적수가 될 리 없다.
제국을 절반으로 쪼개어 놓을 수 있는 그 레카르도 윈체스터라도 말이다.
하늘을 점점 뒤덮는 저 검은 기운만 보아도…… 불가항력의 힘임은 너무도 여실히 드러났다.
마음속 절망이 짙게 올라왔지만 가주로서 이를 혈족들에게 티 낼 수는 없었다.
엘리시온은 더욱 말을 재촉했다.
무덤과 가까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데에엥-
어디에선가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오는 것 같았다.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바로 가까이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했다.
말을 멈춘 혈족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금 어디서 종소리가…….”
한 혈족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가주님!”
엘리시온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새카만 검은 기운이 뻗쳐나가는 가지처럼 증식하던 하늘에 작은 스파크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둠의 증식은 잠시 멈추었고, 짙어지던 어둠이 아주 미미하게 옅어지기 시작했다.
선와 악의 팽팽한 대립처럼 말이다.
엘리시온은 순간 입술을 달싹였다.
“……그 애야.”
엘리시온의 말에 혈족들이 의아한 눈빛을 했다.
“그 애라면…….”
“……누구입니까……?”
검은 연못의 아이.
종소리를 들을 때부터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샤샤 윈체스터.”
영원한 새벽의 시간을 끝내리라고 예언된 그 아이 말이다.
아이는 지금껏 존재하던 어떤 이능에 대한 설명으로도 규명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하고 현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윈체스터임이 아쉬울 정도로, 빛나는 아이였다.
눈물이 날 정도로 성스러운 저 공명과, 요동치는 청명과 흑염의 합치된 에너지는 분명 그 아이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이리라.
잠시 멈추었던 엘리시온은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뿐이었던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을 비추는 종소리.
절망에 휩싸였던 엘리시온의 뇌리에 그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 * *
촤라락-
스윽-
에반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페르세토스의 본체를 베고 또 베었다.
한때 검날 한번 들어갈 수도 없이 딱딱하던 페르세토스의 겉가죽은, 이 순간 두부를 썰 듯 쉽게 썰렸다.
샤샤가 발현한 이능 때문일 것이다.
에반의 몸에 최적화된 샤샤의 이능은 그가 페르세토스와 대등하게 맞서게 해 주었다.
이렇게 강렬한 감각은 무수한 회귀의 세월 중 처음이었다.
언제나 무겁게 짓눌리기만 했던 페르세토스에게 이리 대항하다니.
아무리 강한 바위라도 쉽게 짓이기던 페르세토스의 수많은 촉수들은 마비라도 걸린 것처럼 주춤하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에반이 그것들을 자를 때마다 검은 기운이 산산이 흩어졌다.
“…….”
에반은 문득 샤샤를 돌아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샤샤의 주위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반쯤 눈을 감은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아득한 옛 동화에 등장하는 ‘성녀’처럼, 신성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은사 같은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었다.
저렇게 아름답고 성스러운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순간을 의심할 정도로 샤샤의 존재감은 또렷했다.
– 곁에 있을게.
그녀의 목소리는 이 오랜 시간이 지나기까지 에반의 뇌리에서 잊힌 적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승리의 여신으로서 에반과 함께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에게 듣지 못한 답이 있어.’
에반의 푸른 눈동자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꼭 이 싸움을 끝내려고 해.’
이내 검에 청명의 힘을 실은 채 에반은 페르세토스에게 질주했다.
지겨운 이 운명의 마지막 장을 향해 검끝을 겨누었다.
데엥-
에반의 귓속에 다시 한번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온몸이 거대한 청명의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쿠과과과광-
한발 앞서 레카르도의 검이 대지에 꽂히며 페르세토스가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칠 때, 에반은 기꺼이 그의 숨통을 끊었다.
* * *
쿠과과과광-!
레카르도와 에반의 혼신의 힘을 실은 시간차 공격이 있었다.
일순간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모든 것이 잠시 정지하더니 엄청난 팽창의 힘이 주위의 모든 것을 덮쳤다.
대지를 진동하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충격이 밀려왔다.
바위처럼 쪼개진 본관 건물의 잔해들이 다시 굴러다닐 정도로 강한 바람이 일었다.
물론 나도 같이 날아갔어야 맞는 상황이지만 어떤 보호막이 내 앞을 가로막아 그 충격은 모두 내 양옆으로 비켜 갔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틀대다가 겨우 몸을 바로 세웠다.
“……할아버지?”
헥토르 할아버지가 내 옆에 서서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눈썹 사이로 깊은 주름이 보였다.
우리의 발밑에 견고한 보호막을 만들고 있는 흑염의 기운과 내 주변에 동그란 형태로 날카로운 잔해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헥토르가 아니었다면 저것들에 깔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내 헥토르가 펼친 흑염의 기운이 옅어졌다.
“다친 곳은 없이…… 무사히 돌아왔느냐, 샤샤.”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네, 할아버지…….”
많이 무서웠어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정말 힘들게 버텼어요.
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지켜야 할 것들과, 찬란할 제 미래를 생각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잠시 미뤄야겠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헥토르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깊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토닥, 토닥.
이내 어깨를 토닥이는 그 손에 코끝이 찡했다.
어쩌면 울어 버릴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주먹을 꼭 쥐어야만 했다.
아직은 아니다.
우리의 전쟁이 정말 끝난 것인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한참의 시간 뒤 흙먼지가 가시고 나서야 시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 있는 페르세토스의 잔해들이 보였다.
그것은 완전히 파훼되어 더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에반…….”
그리고 그 중심에 서늘한 벽안을 빛내는 에반의 모습이 보였다.
흙바람에 그의 망토는 휘날리고 있었고, 그 눈동자는 서서히 나를 향했다.
일순간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가슴이 덜컹였다.
모든 것이 뒤집히고 새 세상이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
그리고 에반의 뒤, 먼지가 걷히며 레카르도의 모습이 보였다.
대지에 꽂힌 레카르도의 검에는 아직도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페르세토스의 촉수들이 까맣게 탄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레카르도의 입술이 달싹이는 모습이 보였다.
“샤샤.”
비록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입 모양으로 전해진 내 이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나는 앞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오셀로……!”
마지막으로 먼지가 걷힌 그곳에는 주저앉아 있는 진의 뒷모습과, 누워 있는 오셀로의 모습이 보였다.
쿵, 쿵, 세차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페르세토스에 대한 승리를 만끽할 새도 없이 나는 그곳으로 달렸다.
‘제발, 제발…… 제발!’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고 그 말만 줄기차게 속으로 되뇌며 말이다.
이내 그들의 앞에 도착한 나는 발을 멈추었다.
“……컥…….”
그곳에는 가슴에 단검을 꽂은 채 진의 무릎에 누워 있는 오셀로가 보였다.
저 단검은…… ‘찬탈자의 단검’.
오셀로가 서임식 때 가보로 받은 단검이었다.
핏기 서린 오셀로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의 입술 새로 피가 고여 있었다.
“오셀로!!”
나는 비명을 지르듯 그의 이름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