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0)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49화
[새로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스킬 ‘치유(S/LV.10)’가 개방됩니다.] [생명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일순간 내 눈앞에 새로운 스킬이 개방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내가 가진 이능은 인과율로 얽힌 특정인 몇에게만 적용된다.
하지만 이 스킬은 내가 원하면 아무에게나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성녀가 되어 버린 건가.’
나는 오른손을 뻗어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일순간 내 오른손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공중으로 쏘아졌다.
나조차 놀라 움찔 그것을 바라보았다.
“우와!! 와아아아아!!”
내 손에서 쏘아진 빛은 오색찬란한 거대한 용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것은 광장의 하늘을 한 바퀴 돌더니 사라졌다.
“메키우스시다!!”
“메키우스의 가호시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하늘을 보고 소리 질렀다.
개중에는 염원하듯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기적에 놀라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왜 갑자기 내 손에서 뻗어나간 빛이 용의 형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 일을 마음에 들어 하고 계시는구나.’
나를 통해 페르세토스의 파멸을 계획한 ‘메키우스’, 시초의 고룡 말이다.
* * *
서임식을 마치고 나는 조금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편한 옷이라 봐야 치마가 발목까지 닿는 원피스였지만, 아무튼 아까 성녀의 드레스보다는 편하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아버지가 잘 커버해 주실 거야.”
“하지만 성녀님의 서임식 기념 무도회인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할 일 다 마쳤는데 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어차피 ‘성녀’는 상징적인 존재이고 가문을 이끄는 것도 아니니, 나는 내 스킬로, 내가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며 지낼 예정이었다.
가문 간의 화합이 필요하다고 하면 종종 그런 일에는 좀 나서 주고 말이다.
“무도회보다는 야시장에 가고 싶어.”
강령을 통해 오셀로와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을 때, 우리는 잠깐 마을의 축제에 갔었다.
소규모의 야시장이어서 별로 살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꽤 즐거웠었다.
오셀로와 진은 게임을 해서 토끼 인형을 받아오기도 했었고…….
“알겠어요, 아가씨. 제가 핑계는 잘 대어 볼게요.”
마야에게 뒷일을 맡기고 나는 로브를 쓴 채 방을 나섰다.
이능을 제외하고도 ‘검은 지배’나 ‘피해 반사’처럼 실용적인 스킬이 많았기에, 마야는 혼자 놀러 나가겠다는 내 의견에 져 주었다.
어차피 보통의 병사나 기사, 귀족들 정도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래 봬도 윈체스터의 직계라고.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아무튼…….’
하녀들의 눈을 잘 피해 담장까지 넘은 나는 바깥의 공기를 마시며 기지개를 켰다.
“으음, 좋아.”
“뭐가?”
하지만 곧장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움찔 눈을 크게 떴다.
옆을 휙 돌아보니 에반이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놀라 내 입을 막았다.
잠시 뒤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가주님께서 왜 여기 계세요?”
에반은 천천히 검지를 올려 내 입술 위에 댔다.
“에반은 왜 여기 있어요, 해야지. ‘요’자 빼면 더 좋고.”
“…….”
어쩐지 나른한 그의 눈매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원래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능글맞아졌지.
“……아무튼, 왜 여기 있어요.”
무도회에 4대 가문의 가주가 빠지다니…….
“주인공도 빠지는데, 내가 갈 이유가 없지.”
“제가 안 갈 거 알고 계셨어요?”
에반은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귀를 타고 흘러들었다.
“그대가 가고 싶은 곳으로, 에스코트할게.”
잠시 망설이던 나는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렸다.
* * *
수도 로젠토는 매우 번화한 도시였다.
4대 공작가가 둘러싼 중심이기에 더욱 그러했고, 축제가 되어 버린 오늘 밤은 더욱 활기찼다.
여기저기에서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양옆에 끝도 없이 늘어선 천막들에서는 신기한 물건들도 많았고, 다양한 게임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는 에반이 들고 있는 주머니를 보며 힐끗 그에게 말했다.
방금 에반은 공 던지기 점포에서 1등 기록을 갈아치우고 걸었던 돈의 열 배를 따 왔다.
뭐, 푼돈이라서 가게에 손해가 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 치사하다.
“눈을 감고도 맞출 줄 알면서…….”
에반은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맞추었다.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 내며 말이다.
그리고 아무 의심 없이 열 배를 받았고.
“이런 거, 해 본 적 있어요?”
“많이 해 봤지.”
의외의 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푸른 매’에서 본 그의 과거 편집본은 워낙 정석적인 도련님이었기에, 평민들의 야시장 게임까지 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조금 걷던 에반이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아래로 향하며 말했다.
“자, 선물이다.”
점포를 돌며 돈을 구걸하고 있는 남루한 차림의 어린 형제들의 그릇에, 아까 딴 돈을 자루째 넣어 주었다.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은 돈 자루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우와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걸로 며칠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어!!”
도시에는 언제나 명과 암이 있다.
밝고 활기찬 거리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가난한 자들이 있고 말이다.
“……아…….”
내가 멈추어 멍하니 에반을 바라보자 에반은 피식 웃었다.
“돈은 원래 돌고 도는 것이지.”
그래, 에반 테일러스가 의미 없이 서민의 점포를 삥 뜯었을 리가 없다.
에반을 따라 피식 웃은 나는 그에게 말했다.
“테일러스답네요.”
야시장이 열린 구역을 지나자 점점 거리가 어두워졌다.
다른 구역으로 가려면 한 블록은 더 걸어야 할 것이다.
제가 입은 옷의 색깔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곳을 걷고 있을 때, 에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난 테일러스야.”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믿는 정의를 향해 끈질기게 나아가는 테일러스. 나는 언제나 정도를 걷는 이였지. 그러나 스물일곱 번이나 회귀하며 나는 점점 테일러스가 아니게 되었어.”
잠시 멈추어선 그가 나를 마주 보았다.
그의 뒤로 반쪽뿐인 달이 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테일러스로서의 가치를 잃은 내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함이 담긴 진중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대를 만나고 모든 것이 달라졌어.”
에반의 푸른 벽안이 나를 담고 있었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이 살랑거리며 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에반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대가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나는 깨달았어. 중요한 것은 테일러스도, 내가 배워 왔던 고지식한 정의도 아니라는 사실을.”
늘 에반은 생각이 많았고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그의 생각을 짐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에반.”
나는 입술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은 그의 모든 말에서 지금까지의 처절했던 내면의 사투가 느껴졌다.
고작 명계에서의 7년도 죽을 듯 살 듯 버텼던 나로서는 그가 겪었을 28회차가 될 때까지의 고통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이런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깨달음과 고뇌가 있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대가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고 싶듯, 나도 그러했다.”
에반의 말에 나는 눈을 일렁였다.
“그대는 내게 삶의 의지를 되찾아주었어. 검은색과 흰색뿐이었던 내 세상에 색을 입혀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그가 나직한 숨을 토해 냈다.
“……살아가고 있다.”
묵직한 감정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아까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런 감정이 말이다.
‘삶의 무게’란 모두에게 동일하지만은 않다.
세상을 짊어지고 스물여덟 번째의 삶에 다다른 그에게는 더더욱.
에반은 손을 뻗어 천천히 내 볼을 감쌌다.
그의 손은 조금 차가운 편이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내 녹안을 응시하며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니까 이제, 그대가 내 삶의 주인이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고 애절함이 담긴 벽안으로 그가 내게 말했다.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 샤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