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1)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50화
어두운 밤하늘에 흩뿌려지는 폭죽의 빛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에반의 검은 머리카락이 붉은빛으로, 푸른빛으로 시시각각 물든다.
펑, 퍼퍼펑-!
그러나 불꽃이 터지는 소리도, 사람들의 환호성도 유독 작게 느껴졌다.
방금 에반이 내게 했던 말만이 내 귓속에 깊이 박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 사랑하고 있다.
에반은 나를 응시하며 묵묵히 서 있었다.
“…….”
머릿속이 멍해졌지만 불꽃놀이가 끝나갈 때쯤에는 조금 차분해질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일이 끝났으니 대답해야 할 때가 왔다.
에반과 함께 있을 때 유독 빠르게 뛰던 심장의 이 두근거림에 대해서도, 그리고 지금 에반의 고백에 대한 나의 진심도 말이다.
“저는 원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대답을 하기 전 에반에게 말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 말이다.
“에반처럼 회귀한 것도 아니고, 저는 다른 세상에 살다가 사고로 죽게 된 뒤, 이곳에서 환생했어요.”
세상에 태어났을 때 첫 숨을 들이마시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가 책 속에서 보았던 샤샤 윈체스터의 몸에서요.”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었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새로 얻은 삶을 달려왔고, 나는 지금 내가 읽었던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 앞에 서 있다.
“……그랬었군.”
에반이 입술을 달싹였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말을 이었다.
“그대에게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했었어. 스물일곱 회차 중 어느 모습과도 달랐으니까. 하지만 아예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놀랍긴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반에게 말했다.
“에반은…… 내가 읽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어요.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던 에반을 보고 힘을 얻었어요. 그건 에반의 1회차의 이야기였어요.”
소설을 읽으며 늘 그를 응원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책은 아마 세계와 세계의 연결점이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널 죽이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웠겠지.”
에반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그래서 손을 뻗어서 나를 일으켜 세웠던 건가?”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끝나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빛으로.”
잠시 일렁이는 눈으로 에반을 바라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저를 위한 일이었어요.”
에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였다.
세상이 멸망하면 엘릭서고 뭐고 다 필요 없어지니까.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끝까지 에반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정작 ‘에반 테일러스’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나 자신밖에 보지 못했어요.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에 급급해 주변을 보지 못했어요.”
내게 드리워지고 있는 따스한 온기를 알지 못했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가족들을, 그리고…….
우리의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에반이 명계에 다녀왔다는 걸 알고 저는 부끄러웠어요. 제가 서운해하던 감정은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었고, 그럼에도 에반은…….”
그의 짙은 벽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언제나 같았어요. 언제나 같은 눈으로, 그 자리에서 저를 보고 있었어요.”
그를 인간으로서 이해해 보려 하지 않았기에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영웅이었으며, 영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가 정작 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려 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을 위해 죽을 각오로 7년이나 명계를 떠돌았다는 것은…… 동료애라는 감정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그 에반 테일러스라고 해도 말이다.
“바보 같게도 명계에 가서야 에반의 마음을 알았어요.”
나는 에반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아직도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도처에 죽음의 신음이 있고,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그곳,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해 되뇌고 되뇌어야 하는 곳.
나는 나의 삶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갔었지만, 에반은 오로지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에반이 천천히 내게 손을 뻗었다.
“……샤샤.”
나를 부르는 나직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릴 적 이능의 폭주를 잠재웠던 그 순간부터 에반은 나를 늘 이런 눈빛으로 보았는데 말이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눈빛.
반복되는 회귀 속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목숨조차도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진심.
페르세토스를 물리치던 순간조차 그가 구하고자 하던 것은 더 이상 세상이 아니었다.
내가 보았던 책 속 영웅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에반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도요.”
나는 에반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에반을 보면 늘 손끝이 간지러웠는지, 왜 심장은 조금 다른 속도로 뛰었는지, 왜 그를 만나고 오면 얼굴이 조금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는지…….
그의 마음을 아니, 내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쩌면 순서가 반대일지도 모르겠지만.
“…….”
내 고백에 에반의 벽안이 일렁였다.
하늘에 뜬 커다란 구름이 달을 가리며 주위를 어둡게 만들어, 나는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입술을 떼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에게 입 맞추고 싶어.”
숨결이 닿을 만한 거리, 에반이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구름이 지나가며 달이 다시 나타나고 에반의 얼굴이 드러났다.
형형한 그 눈이 애타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나는 입을 여는 대신 눈을 천천히 감았다.
“…….”
다시 세상이 암전에 휩싸이자마자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입술에 포개어졌다.
부드러운 첫 키스였다.
코끝에 향기가 느껴지지 않음에도 마치 꽃밭에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열린 문 앞에서 갈구하듯 그는 부드럽게 내 입술을 여러 번 두드렸다.
달콤한 첫 키스를 마치고 우리는 잠시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
늘 희던 에반의 볼이 붉었다.
내가 보았던 그의 모습, 그리고 어느 기억에서도 이렇게 볼이 붉은 에반은 본 적 없었다.
불꽃놀이는 이미 끝났음에도 그는 귀까지 붉히고 있었다.
눈은 언제나 싸늘하던 원래의 표정과는 달리, 툭 치면 울 것 같은…… 그런 빛이다.
‘나쁜 생각인가.’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싱긋 미소 짓자 그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이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에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알 수 있을 리가 없…….
“하.”
이내 더 못 참겠다는 듯한 그의 호흡이 거칠게 느껴졌다.
다시 훅 에반의 입술이 다가온다.
우리의 호흡은 뒤엉키고, 그는 갈증이 난 사람처럼 내 입술을 삼켰다.
두 번째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여러 색의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 버린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 * *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내 손을 꼭 잡은 에반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우리 저것도 볼까요? 개구리 경주라니!”
인파가 북적이는 야시장으로 돌아온 나는 손가락을 뻗어 어느 광고판을 읽었다.
물론 엄청 재미있어 보이기보다는,
‘어색해…….’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데이트하는 이 상황이 어색했다.
슬프게도 샤샤로 태어나기 이전의 삶에서 나는 모쏠이었으니까.
내가 오버하며 몸을 옆으로 쑥 내밀다가 앞에 오는 사람과 부딪칠 뻔하자 에반이 내 몸을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그의 넓은 품에 안겨 위를 보자, 에반의 눈이 보였다.
움찔-
나는 에반의 품에서 천천히 벗어나서 괜히 머리카락만 귀 뒤로 넘겼다.
‘더 어색해졌어.’
키스까지 했으니 이런 걸로 어색해할 필요는 없는 것도 같고…….
아니, 오히려 키스를 했으니 지금 더 어색하다.
아무튼 얼른 들어가서 씻고 자고 싶었다.
“개구리…… 볼 건가?”
“아니요, 그냥 다음에 볼게요.”
가까이 들이민 에반의 얼굴에 시선을 피하며 나는 대답했다.
에반은 한번 손을 잡은 뒤, 줄곧 내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북적대는 야시장을 걸었다.
구경할 것은 많았지만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힘든데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는 걸까.
계속 심장도 뛰고……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인파를 뚫고 야시장을 나온 우리는 우리가 처음 함께 걷기 시작했던 곳으로 향했다.
야시장을 벗어나니 조금은 주위가 한산해졌다.
그가 꼭 잡고 있는 손의 감각 때문인지, 가슴이 뛰는 건 여전하지만 말이다.
이내 궁전 앞에 멈추어 서자 에반이 손을 놓아주었다.
“그럼…… 저, 들어가 볼게요.”
오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잠을 잘 수나 있을까, 간질간질한 손으로 주먹을 쥐던 그때 에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에게…….”
에반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그대의 죽은 오라비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