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8)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57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어느 가을날, 하늘은 유독 높고 푸르렀다.
그리고 그날, 제국 최초의 성녀이자 윈체스터가의 공녀 샤샤 윈체스터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녀의 결혼 상대는, 오랜 세월 윈체스터와 반목했던 테일러스 공작가의 새 가주였다.
에반 테일러스, 스물일곱 번의 회귀와 한 번의 죽음을 겪고 가장 찬란한 현재를 쟁취해 낸 자.
“표정 풀거라.”
레카르도의 곁을 지나며 헥토르가 조용히 충고했지만 레카르도의 인상은 더 흉포해질 뿐이었다.
“쯧쯧, 아무리 보내기 싫어도 그렇지…….”
혀를 끌끌 찬 헥토르는 결혼식의 주례로서 단상에 올랐다.
그들의 결혼식장에는 4대 가문과 그 휘하의 귀족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식을 야외에 잡았음에도,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인다.
“위대한 메키우스께서 맺어 주신 두 사람의 인연을, 이곳에서 공표하려 하오.”
헥토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객들은 모두 설레는 표정으로 중앙의 은색 카펫이 깔린 길을 바라보았다.
“저기서 등장하시려나?”
“바보. 저쪽이거든.”
“근데 윈체스터 사람들, 역시 뿔이 나 있지는 않네?”
개중에는 지난번 테일러스가에서 샤샤가 놀아 주었던 아이들도 있었다.
“으음, 어떤 드레스를 입으셨을지 궁금해요.”
“말도 마세요. 제가 소문으로 듣기로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래요.”
샤샤를 동경하며 따르던 영애들도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가씨.’
샤샤의 성장을 지켜봐 온 로빈과 마야를 포함한 공작가의 사용인들도 긴장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샤샤 윈체스터는 윈체스터에 다시 없을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얼음장 같았던 공작가의 분위기는 에라시니스 화원처럼 활기차며 향긋해졌고, 뛰어난 두뇌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일에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저건…….”
사람들이 일순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덕에서부터 수많은 종이비행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제국민들이, 어린아이들이, 언덕에 서서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샤샤 윈체스터가 이룬 최대의 업적 중 하나는 신약의 보급이었다.
엘릭서를 희석하고 유효한 재료를 섞어 만든 신약은 병에 시달리는 많은 자들을 낫게 했다.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 가던 사람들은, 그녀가 배포한 신약을 통해 삶의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샤샤 윈체스터는 페르세토스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신약으로 사람들을 구했다.
아이들은 그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아름답구만…….”
헥토르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둘의 결혼은 세상 모든 이들의 깊은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아…….”
에반 테일러스의 잘생긴 외모와 늠름함, 그리고 고고하면서도 매력적인 분위기 역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지만…….
“믿을 수가 없어요.”
샤샤의 등장을 본 사람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우와…….”
“예쁘다아…….”
은색 실로 자아낸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상상 이상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푸른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한 여신처럼, 그녀의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빛이 났다.
아름답게 땋아 한데 올린 은빛 머리칼은 한결 성숙해진 그녀의 기품을 드러내었고, 영롱하게 빛나는 에메랄드빛의 눈동자와 오뚝한 코, 붉은 입술이 오밀조밀 모인 얼굴은 어느 예술 작품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입술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지 않았다면 인형으로 착각할 만큼 그녀의 미모는 현실감이 없었다.
풍성한 드레스 자락은 바람에 살랑거리며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에반의 앞에 선 레카르도는 샤샤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 그녀를 보내 주었다.
“…….”
에반은 조금 눈썹을 굳힌 채, 제게 와 준 소중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서로의 눈빛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둘 다에게 세상에서 가장 벅찬 날이라는 것을.
“…….”
에반 테일러스의 손을 잡은 샤샤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세상에 다시 없을 선남선녀의 자태였다.
역사상 반목했던 테일러스와 윈체스터의 결합.
그들은 서로를 악당과 위선자로 지칭하며 끊임없이 헐뜯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그러한 역사가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두 가문뿐 아니라 제국의 화합을 의미하는 결혼이기도 했다.
“…….”
진은 조용히 서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샤샤의 모습은 심장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서 가슴이 조금 욱신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축하해, 샤샤.’
진은 종이비행기가 떠다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그 녀석도, 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 * *
샤워를 마치고 스퀘어에 들어서자, 얇은 셔츠와 바지를 입은 에반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흠칫한 나는 눈을 도르르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우리의 첫날밤이다.
마음의 준비…… 를 하려 했지만 막상 실전에 닥치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다.
조명이 원래 저렇게 야한 붉은빛이었나. 침대 시트는 왜 저렇게 새하얀 거야.
“…….”
그래도 되돌아 나갈 수는 없으니까 다가가야겠지.
나는 주먹을 꾹 쥐고 오늘 밤을 무사히 치르리라 결심했다.
그래, 남들 다 하고 사는 건데…… 우리도 부부가 되었잖아.
한 걸음을 내딛는데 에반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는 다시 움찔 놀라 그대로 멈추어 섰다.
“…….”
아까의 비장한 결심 따위는 내 뇌리에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어떡해…….’
에반에게서는 시원한 향기가 났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은 계속 뛰고 있고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에반이 천천히 내게 손을 뻗는다.
“…….”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지만, 별다른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눈을 떠 보니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댄 에반과 눈이 마주쳤다.
“맹수를 보고 겁먹은 듯한 눈길이군.”
그의 미소를 띤 입술 사이로 핀잔이 새어 나왔다.
어쩐지 놀리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순간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며 에반을 지나쳐 침대로 폴싹 앉았다.
“그냥, 밤에 같이 있어 본 적은 처음이니까요.”
심장아 나대지 마라, 내 꼴 우스워진다.
나는 태연한 척 침대 머리받이에 등을 대었다.
그래, 첫날밤에 꼭 거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요.”
그러자 나를 바라보던 에반이 피식 입꼬리를 올리더니, 상체를 내게 숙였다.
이내 그의 무릎이 푹신한 침대에 닿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새카만 머리카락 아래 에반의 벽안은 내 시선을 옭아매고 있었다.
내가 스리슬쩍 눈을 피하려 하자 그는 내 입술에 얕게 키스했다.
그리고 마치 새침한 고양이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내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
이내 에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렇게 볼은 빨갛고 입술은 뜨거운데, 그대도…….”
에반의 입술이 귀 가까이 와 닿았다.
그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심장이 뛰었다.
“나와 같은 것을 기대하길 바라는데.”
손이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그가 다시 내 입술에 키스했다.
아까보다는 짙은 키스였다.
에반의 손길이 서서히 내 턱선을 훑었다.
“사실 그대가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계속 좋지 않은 상상을 했어.”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설마…… 결혼식에서도요……?”
내 질문에 그의 눈빛이 일렁였다.
레카르도의 손을 놓은 뒤 잡은 에반의 손은 유독 딱딱했었다.
대답 대신 그는 깊게 입을 맞추었다.
갈증이 난 사람처럼 내 입술을 탐했다.
그의 호흡이 나의 호흡을 얽어매고, 잡을 것을 잃은 내 손을 그의 손이 맞잡았다.
나는 이내 침대 위로 완전히 쓰러졌다.
내 위에 엎드린 에반의 눈이, 정말 굶주린 짐승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고 호흡은 평소와 달리 조금 가빴지만, 제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손길은 침착하고 정확했다.
넓은 어깨와 단단한 가슴 근육, 그리고 단련된 복근까지…… 완벽한 그의 몸이 보였다.
“……에반…….”
셔츠를 풀어낸 그가 내게 다시 입을 맞추어 왔다.
탐닉적이며 지독히도 야한 키스였다.
머릿속이 새하얀 열기에 휩싸였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귓가에 그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해, 샤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