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9)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58화
어두운 밤, 레카르도는 검은 연못 앞에 서 있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그의 은발을 흐트러뜨렸다.
결혼식 때만 해도 꽤 경직되어 있던 얼굴은, 조금 편해진 것처럼 보였다.
레카르도의 입술이 달싹였다.
“아이가 다 자랐소.”
트리샤 퀠른에게 바치는 회고였다.
그녀가 메키우스의 아이를 맡긴 순간부터, 레카로드는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곳은 철혈의 괴물들이 사는 윈체스터이고,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게 한다는 것은 어쩌면 메키우스의 실책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이의 성장과 함께 그러한 생각은 점점 옅어졌다.
“……매우 훌륭하게.”
저택에는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달콤함과 웃음, 그리고 행복이 군데군데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진 녀석도, 죽은 오셀로도, 그리고 레카르도 윈체스터 자신조차도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변해 갔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맑은 녹안과, 언행에서 느껴지는 화사한 진심은 아이에게 손을 뻗게 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여겨진 것이, 삭막한 주변의 풍경을 변화시키며 그것들과 눈부시게 어우러진다.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모든 게 변화하리라는 것을.”
트리샤 퀠른 역시 그러했었다.
윈체스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
그리고 그녀가 남긴 아이 샤샤는…… 윈체스터의 축복이다.
어둠만이 내리던 이곳에 아이는 은은하면서도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아버지로서의 기쁨을 알게 해 주었다.
동정과 사랑, 질투까지도…… 알지 못했던 감정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
고요한 연못의 표면을 보던 레카르도는, 십수 년 전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내게 딸을 선물해 주어서 고맙소.”
그리고 잠시 서 있다가, 천천히 발을 옮겼다.
레카르도의 입술에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밤하늘에는 언젠가 그 아이가 종알거리던 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줄이야.”
다음 날 나는 스퀘어로 신혼집을 정하자고 했던 것을 조금 후회하며 한숨을 쉬었다.
귓가에 아직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스퀘어는 시간의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짙은 푸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에반은 지친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스퀘어에서 보낸 첫날밤은…… 꽤 길었다.
그는 넘치는 체력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뭐…… 좋긴 했지만…….”
어젯밤의 일이 떠오르자 볼이 화끈거렸다.
에반은 여러 번 단단한 몸을 겹쳐 왔고, 지금껏 느껴 본 적 없는 감각을 선사했다.
숨이 가쁘도록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였었지.
– 그대의 몸이 약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빨리 보내 주지는 않았을 텐데.
만약 내가 힘들어서 더는 안 된다고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몇 번이고 나를 더 안았을 것이다.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떻게 그렇게 절륜할 수 있는 걸까. 정말 미쳤어.
“……게다가 그 아쉬운 눈빛은 뭔데.”
하룻밤을 아득히 넘어선 하룻밤을 보내고 이만 돌아가야겠다고 하자, 중요한 보물이라도 뺏기는 듯 형형한 눈빛을 보냈다.
어차피 이제 부부니까 매일 스퀘어에서 만날 텐데도 말이다.
‘헥토르 할아버지께 스퀘어의 시간 조정 기능이 없는지 여쭈어봐야겠어…….’
나는 붉어진 볼을 한 채 기지개를 켜며 생각했다.
계속 이런 밤이 이어지게 되면 내 체력이 다 고갈되고 말 거야.
그렇잖아도 생명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주의해야 하는데 말이다.
창문을 열자 내 방으로 환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에라시니스 화원에서 흘러드는 꽃향기는 내 정신을 일깨웠다.
“오라버니!”
그리고 문득 말을 타고 길을 걷는 진의 뒷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내 외침에 뒤를 돌아본 진은 말을 멈추었다.
“어디 가세요?”
“사냥.”
옅은 미소를 띤 그의 뒤에 큰 활과 화살이 보였다.
“널 위해 좋은 걸 잡아 올게, 샤샤.”
그의 등 뒤로 흑염이 넘실거린다.
‘좋은 것’이 맹수 사체일 확률이 높겠지만,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냥 떠나는 참에 싫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이내 진이 탄 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평온한 눈으로 저택의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밝은 얼굴의 고용인들이 즐겁게 일을 하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보였다.
‘진정한…… 평화네.’
그리고 그때 눈앞에 어떤 창 하나가 떠올랐다.
[계정, 샤샤 윈체스터] [‘메키우스의 열쇠’의 운명에 부여된 모든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목표 달성과 함께 예측하지 못한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세상의 위협이 뿌리뽑히고 진정한 평화가 가득합니다.] [‘위대한 기적’ 보상으로 생명력이 50 증가합니다.] [당신의 앞날에 메키우스의 축복이 깃듭니다.]나는 떠오르는 창의 내용을 읽고 눈을 크게 떴다.
내게 주어진 모든 업적을 달성하였다고?
게다가 업적 보상이…….
“…….”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 몸에 흘러넘치는 생동력을 느꼈다.
정말 내 생명력이 50이나 채워졌다면, 무려 100이다.
충분히 보통의 사람들만큼 건강한 상태.
‘……에반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해야 하려나.’
입가에 미소가 고였다.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기쁨이 차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살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그래서 나아가려 했을 뿐인데,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언제까지나 이런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기를.
‘그리고…….’
나는 기도하듯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그 역시 어딘가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 * *
대한민국 서울,
캠퍼스에 따스한 봄날이 오고 있었다.
벚꽃나무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이 살랑거리며 떨어졌고, 이 풍경 속에 사진을 찍는 학생들은 다들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사이를 묵묵히 걸어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모델인가?”
“연예인 아니야?”
사진을 찍다가도, 모두가 한 번씩 힐끗댈 만큼 우월한 외모의 남자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봄바람에 살랑대고 있었고, 조금 서늘하고 시크해 보이는 눈매 안의 눈동자는 유독 짙어 보였다.
남자의 왼쪽 눈 아래는 미인 점 같은 점이 하나 있었다.
콧대와 턱선은 깎은 듯 유려했고 키는 최소 185센티미터 이상에, 백 미터 밖에서 봐도 눈에 띌 비율.
“와, 데이트 어플 0.01퍼센트가 저런 사람이겠지?”
“저런 존잘이 데이트 어플에 왜 가입해.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다가올 텐데.”
구장에서 캐치볼을 하던 남학생 둘도 동경하는 시선으로 수군댔다.
벚꽃이 날리는 풍경 속, 걷는 것만으로 화보 촬영을 방불케 할 미모의 남자가 문득 교내의 연못 앞에서 멈추어 섰다.
검은빛을 띠는 연못이지만 나름의 생태계가 훌륭히 구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오리 부부가 산책을 하고 있었고 부레옥잠 위에 붙어 있는 개구리도 보였다.
“…….”
남자의 눈은 뭔가 그리운 것이라도 보듯 연못을 보며 일렁였다.
이내 연못을 향해 뻗으려던 그의 손이 움찔했다.
몇 초 동안 연못을 더 바라보던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네가 왔던 세상은…… 이런 모양이었구나.’
그의 눈앞에는 푸른 형태의 상태창이 떠올라 있었다.
며칠 전 이 몸에서 깨어나게 된 뒤 떠올랐던 그 내용이 말이다.
[새로운 계정이 생성됩니다 : 나선시계로부터 선택받은 자] [위대한 업적을 쌓아 새로운 능력을 개방하세요.]이내 그가 학교 교문에 다다르자 검은 외제 세단에서 내린 기사가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남자는 말없이 세단의 뒷좌석에 올랐다.
기사가 문을 닫자, 그는 작은 생수병의 뚜껑을 가볍게 돌려 뜯고 물을 마셨다.
조금 마른 목 안으로 물이 흘러들고 목울대가 움직인다.
벚꽃에서는 그 아이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내 차량이 조용히 출발했다.
그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윈체스터에 불어오는 바람보다는 텁텁하고 후덥지근했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
오셀로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만든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 널 만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어.’
살랑이는 바람이 그의 티 없는 피부를 간지럽혔다. 제게 무릎베개를 해 주었던 소중한 녀석의 시선처럼 따스하게.
‘샤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