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
01. 단장 백준석(1)
요즘 뉴스는 저 보이스피싱 얘기만 온종일 보도했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보이스피싱 까지··· 말세다 말세야.”
어느 채널을 틀던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 뉴스만 한가득이라 도통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TV를 끄고 리모컨을 구석에 있는 침대로 던졌다. 근래 아침은 늘 이런 식이었다.
밥을 먹는 건지, 오늘 해야 할 일을 체크하는 건지도 구별이 안 될 정도.
나는 테이블에 올려진 태블릿 PC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리얼을 한 움큼 퍼서 입에 넣었다.
‘프리시즌 전지훈련 장소 섭외랑 재계약 및 방출 선수, 그리고 부실한 포지션 영입 선수 명단까지··· 하.’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꽉 찬 일정.
테이블에서 미친 듯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았다.
나는 한숨과 함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스마트폰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박진수.
우리 구단 스카우트팀 소속 직원.
아침부터 부재중 전화가 쌓여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무슨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아침부터 왜.”
피로함에 상당히 다운된 텐션으로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큰일 났어요! 강원 유나이티드 SNS 확인하셨어요?
“잠깐만 기다려.”
요새는 예전처럼 신문을 통해 구단의 소식을 접하지 않았다.
구단 측에서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각종 소식을 발 빠르게 올리는 게 추세였다.
나는 남은 시리얼을 마저 퍼서 입에 쑤셔 넣곤, 태블릿 PC를 통해 강원 FC의 SNS를 들어갔다.
들어감과 동시에 상단에 있는 게시물 동영상이 자동 재생되면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나는 클럽 풍의 영상 속에서 천천히 검은 실루엣의 남성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손에 든 굿즈를 땅에 떨어트리며 팔짱을 낀 채 환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하는 선수가 보였다.
“하··· 또 뺏겼네.”
영상 속 남성은 우리 구단에서 작년부터 공들여 영입하려 했던 선수였다.
분명히 긍정적인 답을 들었을 터인데, 이렇게 빠르게 타 구단에서 낚아챌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쩌죠? 우리 3선 미드필더 필수잖아요···
“혹시 감독님 출근하셨니?”
나는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직 안 하셨어요.
“오후에 감독님이랑 코치님들 전부 회의실로 와달라고 대신 좀 전해줘. 나도 그때쯤 클럽하우스로 갈 테니까.”
-단장님 근데 저희 괜찮은 거 맞아요? 벌써 2명이나 뺏겼는데···
진수의 목소리는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2명. 말이 2명이지, 사실상 최우선 보강 포지션 선수들을 차례로 뺏겼다.
그것도 유소년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선수들을 말이다.
‘요즘 되는 게 없네, 진짜···’
나는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진수에게 말했다.
“밥 먹었냐?”
내 뜬금없는 말에 당황했는지 그는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네, 네? 아, 아직이요.
“그래, 이왕 안 먹은 거 먹지 말고 3선 미드필더 FA나 계약기간 얼마 안 남은 선수 리스트 좀 정리해놔라.”
-아니! 그건 다음 주 까···!
전화기 너머로 불만을 토로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뺏긴 선수에 연연하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없으니까.
나는 시리얼 그릇을 대충 싱크대에 던져놓고는 의자에 걸쳐둔 코트를 입었다. 현관 벽 쪽에 붙어있는 거울엔 초췌한 내 얼굴이 비쳐 있었다.
검은 반곱슬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눈 밑엔 진한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나는 대충 눈에 붙은 눈곱을 떼어낸 뒤 현관문을 열며 생각했다.
‘일단 가서 생각하자.’
* * *
꽉 막히는 출근길, 라디오마저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주제가 흘러나왔다.
한숨을 쉬며 곁눈질로 거치대에 끼워둔 스마트폰을 보자 이미 수십 통의 메시지가 번쩍이고 있었다.
아직 출근조차 하지 않았지만, 잔뜩 쌓여있는 업무에 가슴 한쪽이 답답해졌다.
‘간다. 가. 앞 차가 비켜야 갈 거 아니야!’
크락션이라도 미친 듯이 눌러 내 짜증을 해소하고 싶었지만, 부질없는 것에 힘 빼는 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게 따로 없었다.
가만히 차내에서 답답한 도로를 쳐다보느니 기다리는 동안 어떤 일 때문에 메시지가 잔뜩 와있는지 확인해봤다.
[단장님. 내일까지 구단 전지훈련 스케줄···] [아침에 지시하신 영입 리스트입니다. 맨 위부터 3선 미드필더예요. 아 그리고···]정말 수많은 업무 문자가 와있었다.
‘하··· 오늘도 야근이겠구나···’
한숨을 쉬며 메시지창을 쭉 내릴 때 이상한 번호로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뭐야 이건?’
수신자 번호 010101. 안에는 간단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원하시는 능력을 말씀해 주세요]딱 봐도 스팸 문자였다.
‘하··· 짜증 나네. 이런 거나 잡으란 말이야. 백날 보이스피싱에만 매달리지 말고···’
신경질적으로 문자를 삭제하려고 하자 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사용자가 간절히 원하는 능력으로 설정했습니다]그러자 환한 빛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빛줄기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을 확인해봤지만, 스팸 문자는 사라진 상태였다.
‘이젠 임의로 다른 사람 핸드폰까지 조종할 수 있어? 진짜 말세다 말세···’
나는 고도로 진화된 스팸 문자에 혀를 차며 조심스럽게 액셀을 밟았다.
* * *
다행히 출근길 정체 구간을 벗어나자 뻥 뚫린 도로가 나타났다. 한쪽 팔로는 창틀에 팔을 걸친 채 오늘 봐야 하는 선수들에 대해서 떠올렸다.
‘벌써 이적시장이 2주나 지났어, 최대한 빨리 영입해야 다음 시즌 준비를 할 텐데···’
외곽 도로를 타고 막힘없이 가는 길에 이정표에 ‘삼천고’라고 적힌 문구가 보였다.
삼천고.
굵직한 K리그 선수들을 배출해낸 명문 고등학교.
학연·지연이 판치는 이 시장에서 어찌 보면 가장 청렴하게 실력 위주의 선수 육성을 추구하는 곳이었다.
고등학교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곳이어서, 상당히 외진 곳에 있는 학교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논밭만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화려한 입구로 들어가자 경비원이 추위에 몸을 파르르 떨며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
“수고하십니다. 어떤 일 때문에 오셨죠?”
나는 창문을 내린 뒤, 옆좌석에 던져뒀던 표찰을 경비원에게 내밀며 씩 웃었다.
“삼천고 감독님 좀 보러 왔습니다.”
“아! 감독님 지인이시구나. 얘기 들었습니다. 그래도 절차는 절차라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얼마나 걸리나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한 5분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저희도 보고를 올려야 해서요.”
그는 나에게 표찰을 다시 돌려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표찰을 뒷좌석에 던져놓고 한쪽 구석에 차를 주차했다.
경비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빠르게 차에서 내려 바지 주머니를 뒤져봤다. 형편없이 구겨져 있는 담뱃갑.
안쪽을 보자 다행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담배 한 개비가 눈에 들어왔다.
‘돗대네··· 하···’
나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일 때 느껴지는 이 감정은 일이 힘들수록 더 진하게 느껴졌다.
뿌연 연기와 입김이 뒤섞여 하늘에 흩뿌려질 때 맑은 하늘이 누런 색깔로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순간 잠이 덜 깼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하늘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하늘은 노랗게 물들어있었다.
그리고 노랗게 물든 하늘이 흐릿해지더니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 * *
“으음···!”
눈을 다시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하얀 천장이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휘슬 소리까지.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 이마에 손을 댄 채 몸을 일으키자,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 깨어나셨어요?”
뒤를 돌아보자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대조될 정도로 작은 얼굴.
그리고 부드러운 가르마와 잘 어울리는 무테안경까지. 나는 전날 과음으로 인해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 어떻게 된 거예요?”
“쓰러지셨어요. 학교 정문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해서 일단 여기로 옮겨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근래 야근을 너무 많이 했나···’
나는 기절한 이유를 단순 과로로 생각하고, 침대 옆쪽에 놓인 코트를 입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될 것 같은데···”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뭔가를 적고 있던 의사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나를 만류했다.
그러나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만 해도 수십 개. 한가롭게 누워있을 시간이 없었다.
코트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 2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더더욱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일이 좀 밀려서··· 아무튼 감사했습니다.”
“바쁘시다니까 어쩔 수는 없는데, 아무래도 큰 병원 꼭 가보세요.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갑자기 기절하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그의 말이 맞다. 갑자기 기절하는 게 흔한 일이겠는가.
이건 필시 내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고 몸에서 주는 신호일지도 몰랐다.
‘나중에… 일 다 끝내고 나중에 가자.’
건강보다는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문을 열고 나가자 ‘의무 1실’이라 적혀있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삼천고에 있는 의무실이었구나···’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백준석이!”
중앙 복도 쪽에서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띠는 지긋한 나이의 남성. 다부진 신체와는 다르게 얼굴엔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그는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그리며 윙크한 뒤 내게 손을 까딱였다.
* * *
“젊은 놈이 단장한다고 깝죽거릴 때부터 알아봤다. 너 그러다 죽어 인마. 병원은 갔어?”
그는 경기장 주변에 둘러진 관중석에 앉아 내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뭔 병원이에요. 감독님 말대로 젊을 때인데. 알아서 낫겠죠. 뭐.”
“일보다 몸이 먼저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 몸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내 안일한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는 조용히 혀를 찼다.
후줄근한 추리닝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며 내게 물었다.
“담배 안 피우냐?”
나는 그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바닥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끊었어요.”
“지랄하네! 또. 이거 펴!”
온통 거친 말뿐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분은 내 선수 시절 은사였기 때문에.
나는 씩 웃으며 재빨리 담배 한 개비를 잡아 입에 물었다.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감독님은 내게 넌지시 물었다.
“현석이 보러 온 거지?”
“그런 거죠. 뭐···”
“아무리 너를 아낀다곤 해도, 학교에선 현석이 안 보내려고 하는 거 알지?”
학교 측의 마음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에겐 프로 계약보단, 대학을 보내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오늘 보러온 강현석 정도면 서울에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에서도 앞다투어 데려가려고 할 재목이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일단은 선수 본인 의지부터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요.”
감독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 있던 종이컵에 꽁초를 넣으며 말했다.
“워낙 똑 부러지는 놈이라, 잘할 거라 생각은 하는데···”
“하는데···요?”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내 얼굴을 흘겨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에휴··· 됐어. 현석이 내려보낼 테니까 대화나 좀 해봐.”
늘 나를 꼴통이라 부르셨던 감독님은 내가 원하는 건 항상 해주셨다. 아마 지금도 강현석과 계약을 할 수 있게 최대한 도와주고 계신 게 분명했다.
나는 씩 웃으며 감독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덕분에··· 어?”
나는 순간 잘 못 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의문에 감독님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인마. 나 뭐 묻었냐?”
감독님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이곳저곳을 만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는 건 그의 얼굴 옆에 있는 커다란 하늘색 사각형.
‘뭐야 이게?’
마치 스마트폰 메시지 아이콘처럼 커다란 말풍선이 감독님 옆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 보이는 검은색 글씨와 붉은 숫자들.
《이병문》
직책: 삼천 고등학교 유소년팀 감독
선수 관리: 16
전술 이해도: 8
순간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이 보여서일까 나는 반사적으로 내 뺨을 꼬집었다.
‘아픈데?’
내 이상행동을 지켜보던 감독님이 내 쪽으로 다가와 이마에 강력한 딱밤을 때렸다.
“아!”
“아는! 이놈이 스승을 놀려?”
이마가 벌겋게 변할 정도로 엄청나게 아픈 딱밤에 눈이 질끈 감길 정도였다.
“아니 지금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땐 감독님 얼굴 옆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감독님은 ‘이놈이 미쳐버렸구나···’라며 혀를 차시곤 관중석을 내려갔다.
그러나 분명히 봤다.
마치 축구 구단 운영 게임에서나 보던 ‘능력치’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