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1)
11. 프리 시즌(3)
오후 8시. 단장실을 빠져나온 내가 향한 곳은 송파구 방이동.
2층 규모의 세련된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술집의 탁 트인 창가로 손님들이 가득 들어선 것이 보였다.
‘생각한 대로 되려나···’
차가운 겨울철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이곳에 온 이유는 임민우 선수 때문.
임민우.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9시즌을 뛴 베테랑 미드필더.
중간에 상무로 병역을 해결하러 간 특수성을 제외하면 FC서울의 원클럽맨 중 한 명이다.
‘은퇴를 너무 빨리 선택하긴 했어. 아직 충분히 리그에서 통하는 자원이었는데.’
서울의 중원을 책임지는 사령관이라 불렸던 임민우 선수가 은퇴를 선택한 건 다름아닌 2년 전.
고질적으로 괴롭히던 발목 부상 때문에 더 이상 구단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그는 돌연 은퇴를 선택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불과 31살.
A매치 100경기를 달성한 센추리 클럽 가입자의 말년이라 하기에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들이 즐비했다.
“단장님, 빨리 오셨네요?”
잠시 임민우 선수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해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임민우.
그는 뒤집어쓴 후드를 벗으며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임민우 선수도 잘 계셨죠?”
“에헤이! 무슨 선수예요. 은퇴한 지 2년 넘었는데.”
선수라는 호칭이 부끄러운지 그는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안해요. 아직 선수라는 호칭이 더 익숙해서.”
내 기억 속 임민우는 여전히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선수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실제로도 아직 그는 플레잉 코치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긴 했으니까.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과의 뜻을 비치자 그는 씩 웃으며 술집 문을 열었다.
“괜찮아요. 거의 안 뛰긴 하는데 일단 플레잉 코치긴 하니까 선수는 맞죠 뭐. 일단 추운데 안에 들어가실까요?”
유쾌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1층을 가득 메운 손님들이 눈에 보였다.
그가 들어오자 서빙을 하던 종업원들이 ‘사장님 오셨어요?’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임민우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아주고는 2층으로 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2층에 자리 있어?”
“아마 세 테이블 정도 비어있을 거예요.”
“그래 한자리 우리가 좀 쓸게. 고생해라.”
나는 그의 뒤를 따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굉장히 바쁘네요. 임민우 선수··· 아. 민우 씨가 직접 운영한다고 하던데.”
“은퇴하자마자 뛰어들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 잡혀서 이곳에는 잘 안 와봐요. 2호점 준비하고 있거든요.”
2층 구석진 창가 자리에 앉자, 주문하지도 않은 안주들을 들고 오는 직원들이 보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그들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야 나 주문 안 했어. 계산도 안 할 거야. 빵꾸나는거 감당 가능해?”
임민우의 장난을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는 남성이 씩 웃으며 받아냈다.
“사장님 그러면서 나중에 다 계산하고 가실 거면서 또 그러시네. 술은 하세요?”
문득 직원들과 서슴없이 장난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에게 부탁하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는 자리에 있는 맥주를 따더니 내 잔에 채우려다 멈칫하며 물었다.
“아 차 가져오셨죠? 술은 다음에 같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뇨. 대리 부르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적어도 오늘 하려는 말을 하려면 술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무리한 부탁이 될 게 뻔했으니까.
“그래요?”
나는 그와 가볍게 맥주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한 잔을 들이켰다.
임민우는 반 잔 정도를 마신 뒤, 마른안주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크! 단장님이 갑자기 연락해 주실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더 빨리 찾아왔어야 하는 건데.”
임민우 선수가 은퇴를 결정할 때 나는 그를 막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막지 않았다.
9년을 팀을 위해 헌신한 레전드의 결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처럼 찬란한 현역 생활은 아니지만, 나는 부상 때문에 축구를 포기하는 마음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비어있는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며 추억에 잠긴 듯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단장님 보면 그때 은퇴 결정한 게 참 후회돼요.”
“···”
그때를 추억하며 후회에 빠진 채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때 한 시즌만 더 뛰었으면 단장님이랑 사이좋게 리그 우승 도전도 해봤을 텐데.”
임민우 선수가 은퇴한 시즌 성적은 리그 2위.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하던 전북과 승점 차이는 단 2점.
운명의 장난인지 그 시즌 상위 스플릿 마지막 경기가 바로 서울과 전북의 단두대 매치기도 했었다.
‘그때가 리그 우승 마지막 기회기도 했으니까···’
결과는 후반 72분 임민우 선수 부상 아웃과 1:2로 역전패.
아직도 서울 팬들에겐 그때 우승 못 한 게 한이라며 가슴 깊이 남아있는 상처였다.
“가끔 아직도 그때 꿈꿔요. 전북이랑 경기할 때 꿈이요. 그때 부상만 안 당했으면 우승했을 거 같은데···”“저도 그때가 가장 아쉽습니다. 적어도 임민우 선수 커리어에 리그 우승 커리어는 넣어드리고 싶었는데.”
“단장님 그 시즌에도 최선을 다했잖아요. 신임 단장으로 오셔서 적응 기간도 없이 구단을 위해 헌신한 사람은 아마 백 단장님밖에 없었을 거예요.”
맥주잔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옛날얘기를 하던 그는 불현듯 손뼉을 치며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단장님 만나서 오랜만에 옛날 생각하느라 저 혼자만 말했네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들고 있던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그의 눈을 응시했다.
“임민우 선수. 미안한 말이지만, 혹시 서울에서 다시 한번 뛰어볼 생각 있어요?”
순간 해맑게 웃고 있던 임민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들고 있던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굳은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현역 복귀요…?”
어렵사리 열린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미약하지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상을 안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던 현역 때와는 달리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사는 그였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만했다.
“부담 줘서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임민우 선수가 충분히 리그에서 활약 가능한 선수란 생각이 들어요.”
“……”
임민우는 굳은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것까지 말하면 정말 임민우 선수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자제하려 했지만, 이번 시즌엔 반드시 그가 필요했기에 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서울에 3선 미드필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3선 미드필더만 들어온다면 이번 시즌 정말 몰라요.”
“단장님… 제 나이가 이제 서른 중반입니다. 리그에 있는 젊은 애들이랑 경쟁할 몸 상태가 아니에요. 제안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제 모든 걸 바쳤던 팀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임민우는 차분한 톤으로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임민우 선수의 경기 영상을 몇 개 찾아봤습니다. K4 리그라곤 하나 아직 피지컬적인 측면에서도 준수하고, 무엇보다 경험이 쌓여 날카로운 패스로 빌드업을 돕는 모습은 서울에서 뛰던 때보다 더 좋았고요.”
“제 부상 아시잖아요. 언제 터질지 몰라요. 지금 현역으로 복귀한다 해도 시즌 초반에 부상이 터지면 팀에 보탬이 될 수 없는 거 잘 아시잖아요.”
임민우는 완강했다. 어째서 그의 능력치에 ‘은퇴 번복을 원한다’라는 특이 사항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단호했다.
그러나 절박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어째서 서울로의 복귀를 꺼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에게 있어서 서울은 현역 시절의 전부를 바친 클럽.
지금이야 플레잉 코치로 다른 클럽에 속해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현역 시절에는 원클럽맨이나 마찬가지인 그였다.
아마 그는 자기가 팀에 돌아가도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임민우 선수.”
“……”
“제가 왜 임민우 선수의 은퇴를 만류하지 않았는지 아세요?”
“……”
“9년이란 시간을 서울에 온전히 바친 임민우 선수를 붙잡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내 얘기를 듣는 임민우는 아무 말 없이 테이블에 올려진 음식들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임민우 선수. 지금 만족하시나요?”
“……”
“뭔가 후련한 느낌이 아니지 않나요? 그래서 플레잉 코치로라도 그라운드에 돌아오려고 한 거잖아요.”
실제로 그의 출전 기록은 몇 경기 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경기 영상을 찾아보기 위해 몇 시간이나 인터넷을 뒤졌어야 했을 정도니까.
그러나 경기를 뛰면서 열성적으로 소리치는 모습은 서울에서 뛰던 시절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마치 한이 남은 사람처럼 말이다.
“임민우 선수.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이번 시즌만이라도 서울에서 뛰어줄 수 있나요?”
더 이상 그를 설득할 말도 없었고, 의미도 없었다.
내 말이 끝났지만, 임민우는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다음날 단장실에 도착한 나는 컴퓨터에 있는 임민우 선수의 사진을 보며 능력치를 확인해봤다.
FC 평창 소속. 중앙 미드필더(전천후), 수비형 미드필더(딥라잉 플레이메이커), 플레잉 코치
주력: 12 패스: 13
가속도: 12 시야: 15
중거리 슛: 16 태클: 15
몸싸움: 14 타고난 체력: 12
특이 사항: 은퇴를 번복하려 한다.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특이 사항에 변동은 없군.’
첫 번째 타겟이었던 호세 가르시아 정도로 높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전성기에 비해 크게 떨어진 건 체력뿐 나머지는 상당히 준수했다.
‘팀에 돌아와만 준다면 최고의 전력이 될 것 같은데…’
임민우 선수는 오늘까지 답변을 준다고 했지만, 벌써 부터 애꿎은 스마트폰 화면만 습관처럼 바라보게 됐다.
똑똑-!
단장실 문을 두드리며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홍보팀장입니다.”
베이지색 가디건을 입은 홍보팀장은 검은색 결제 파일들을 가져와 내 책상 위에 올려두자, 나는 가장 맨 위에 있는 걸 집으며 물었다.
“이건···?”
“부탁하셨던 제주랑 친선전을 중계할 플랫폼 리스트입니다. 그 밑에 있는 건 강현석 선수 오피셜 일정이랑 인터뷰할 기자들 리스트구요.”
프리 시즌은 새 시즌을 위해 선수단을 정비하는 기간이기도 했지만, 구단 프런트에게 있어서 향후 시즌 구단의 매출을 가늠해볼 수도 있는 기간이기도 했다.
‘친선전 예상 관중 수는 1,500명 정도라···’
친선전치곤 꽤 많은 수. 어쩌면 제주 FC 홈구장인 제주도에서 열리는 것 치곤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친선전에서 중요한 건 홍보다. 프리 시즌을 통해 새로운 팬층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어차피 이번 프리 시즌에서 주력으로 삼을 건 일본 투어 일정이니까.’
홍보팀장은 밑에 있던 결제 파일을 꺼내 펼치며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제주와의 친선전 때는 총 2개의 개인 방송 플랫폼을 이용해볼 생각이에요. 20~30대를 타겟으로 잡으려면 접근성이 중요하니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새로운 축구팬이 될 20~30대는 기본적으로 TV보다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뉴미디어가 더 친숙한 세대다.
당장 나조차도 집에 있는 TV는 아침 뉴스 볼 때 말곤 틀지를 않을 정도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덮었다.
“좋네요. 잠재적 축구 팬들을 유입시키기엔 이만한 게 없어요. 중계 화질 신경 써주시고, 기자들이랑 인터뷰는 다음 주쯤부터 일정 잡아주세요.”
내 말을 듣고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홍보팀장은 밑에 깔린 결제 파일을 가리켰다.
“단장님, 강현석 선수 오피셜은 예정대로 내일 바로 구단 SNS에 올릴 생각인데 어떠세요?”
“음… 괜찮을 거 같네요. 저희도 슬슬 이적시장 성적을 팬들에게 공지해야 하니까요.”
현재 우리는 주요 타겟 선수들과 협상은 잘 진행됐지만, 아직 선수 영입 오피셜은 띄우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 늦추다간 팬들이 구단의 이적시장 행보에 대해 실망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강현석을 시작으로 이적 오피셜을 낼 생각이었다.
홍보팀장과 짧은 대화가 끝난 뒤 구단의 일본 투어 일정을 체크하고 단장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노크의 주인은 운영팀장.
그는 책상 앞에 있는 빈 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떻게 됐어요?”
“뭐가요.”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된 상태로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운영팀장은 의자를 바짝 붙이며 말했다.
“임민우 선수요.”
운영팀장에겐 그날 저녁에 임민우 선수를 만나볼 생각이고, 그에게 다시 한번 서울에서 뛰어줄 수 없냐고 부탁할 거라 미리 말해놨었다.
그러나 운영팀장에게만 말했던 사실이기 때문에, 그는 누군가 들을세라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잘 모르겠어요. 오늘까지 생각 좀 해보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역시··· 단번에 결정하긴 좀 그렇긴 하죠.”
“그렇죠. 아무래도 은퇴 번복이라는 게 리스크 있는 행동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상 부위가 마음에 걸릴 거예요.”
“그래도 가급적이면 빨리 결정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나 역시도 운영팀장과 같은 생각이지만, 현재로서 그에게 재촉하는 건 정말 무례한 행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업무를 처리하며 최대한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우려 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행동하며 운영팀장에게 말했다.
“일단 일본 투어 일정부터 빠르게 마무리 지을까요? 아무래도 이게 메인……”
그때였다.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010-XXXX-XXXX, 임민우 선수]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번호의 주인공은 임민우.
간절히 바라던 그가 우리의 바람을 들었는지, 아주 일찍 연락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