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31)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은색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넘긴 중년 남성이 후드를 뒤집어쓴 남성에게 반듯하게 접힌 A4 용지를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좋은 조건들도 상당히 많아서 충분히 골라갈 수 있어.”
은색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넘긴 중년 남성의 이름은 ‘안토니오 코스타’.
겨울 이적 시장에서 핫한 매물로 급부상한 ‘마르쿠스 튀랑’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자였다.
그리고 후드를 뒤집어쓴 짧은 머리의 흑인 남성이 바로 이번 겨울 이적 시장의 최대어 ‘마르쿠스 튀랑’이었다.
“안토니오······ 저번에도 말했지만 돈보다는 꾸준하게 뛸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니까요.”
튀랑이 포크로 접시에 담긴 스크램블 에그를 휘적거리며 말하자, 안토니오는 튀랑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답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꾸준하게 뛸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구단이 많다니까?”
그 말을 들은 튀랑은 살짝 미심쩍은 표정을 짓다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안토니오가 건넨 종이를 펼쳐봤다.
종이에는 각 팀의 현재 순위를 포함해서 주급과 계약기간, 달성 수당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유독 한 팀의 옆에만 그 어떤 조건도 적혀 있지 않았다.
“블랙번 로버스······? 여기가 거기 아니에요? 아센시오 선수가 이적한 곳? 여기에서도 오퍼가 왔어요?”
그러자 안토니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곳은 정식적으로 오퍼를 넣진 않았어.”
“그런데 왜 적혀 있어요. 여기에?”
“든든한 소식통에 의하면 조만간 오퍼를 넣을 예정이라고 해서 일단 넣어둔 거야.”
“그런데 놀랍네요. 블랙번 로버스가 챔피언스 리그 진출 가시권이라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튀랑이 중얼거리자, 안토니오는 와인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관심 있으면 한 번 알아볼까? 너가 원하는 조건에 딱 부합하는 팀이긴 한데.”
“알아볼 수 있어요?”
튀랑의 물음에 안토니오는 씩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아마 우리 쪽에서 먼저 다가가면 저쪽이 좋아 죽을걸?”
“그러면······”
“······”
튀랑은 블랙번 로버스라는 팀에 대해 살짝 고민하다가 마지막 남은 스크램블 에그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블랙번 로버스의 조건도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괴짜(1)
블랙번 로버스의 훈련장인 Brockhall Training Ground.
나는 훈련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1층 테라스에 루이 감독과 함께 앉아있었다.
“이번 겨울 이적 시장도 바쁘게 움직이셨군요.”
“바쁘긴요······ 진짜 바쁜 건 스카우트 팀원들이죠.”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덤덤하게 말하자, 루이 감독이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카우트 팀이 그렇게 바쁠 수 있는 것도 단장님이 바쁘게 움직이니까 가능한 겁니다. 카타르에 스카우트 팀과 같이 안 가신 것뿐이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끔 그는 이런 낯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덕분에 대화 중간중간 말문이 턱 막혀버리는 순간이 꽤 있을 정도······
‘참 적응하기 힘든 외국 문화란 말이지······’
그래도 기분은 좋다.
막상 들었을 때만 어색해지는 것뿐이지 결국 묵묵히 달려온 길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거니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텅 빈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는 루이 감독을 바라봤다.
“······ 생각에 변화는 아직 없으신 거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 감독.
그와의 계약은 내년 여름 이적 시장까지다.
새로운 감독 선임을 위해 몇몇 후보들과는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나로선 루이 감독이 재계약을 해주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팀을 잘 아는 기존 감독의 힘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
그러나 오늘도 루이 감독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그에게 재계약을 권유해보지만, 철옹성 같은 그의 태도에 아쉬운 감정만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가 전반기긴 해도 결국 챔피언스 리그 진출 순위인 4위권에 성공적으로 팀을 안착시켰고, 자신의 전술이 세계적인 명장들이 즐비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한다는 걸 전 세계 축구팬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켰으니까 말이다.
“아쉽네요. 개인적으로 감독님 전술의 팬인지라······ 한 번 더 팀을 이끌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거든요.”
“하하, 만날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녹음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어요.”
추위 때문에 코끝이 빨개진 루이 감독이 호탕하게 웃어 보이자, 나 역시도 옅은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어갔다.
“그랬나요? 이거 레파토리를 조금 바꿔봐야겠는데요?”
그러자 루이 감독은 크게 숨을 한 번 고르더니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차기 감독 선임은 준비하고 계신 거죠?”
“일단은······ 차근차근 준비하곤 있습니다. 몇 명과는 이미 대화를 나눠보기도 했구요.”
“오……! 어떤 감독님들인지 잠깐 들어봐도 괜찮을까요?”
루이 감독이 감탄 섞인 어조로 묻자, 나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생각하는 건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그리고 레알 베티스의 ‘마누엘 펠레그리니’입니다.”
“허허······ 명망 있는 감독님들이네요. 그런 감독님들과도 연이 닿는 걸 보니 정말로 우리 로버스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게 여실히 느껴져요. 예전과 다르게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루이 감독의 목소리가 미세하긴 해도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마 긴 암흑기를 허덕였던 지난 시즌들이 속속들이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노을이 져가는 훈련장 풍경을 응시한 채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유능한 감독들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아직 구체적인 대화가 오고 간 수준도 아니구요. 그리고······”
“······”
“두 감독 모두 장단점이 너무 뚜렷하기도 하고요.”
이번 시즌 리버풀은 선수들의 줄부상과 1,300억에 육박하는 ‘다르윈 누녜스’의 부진 때문에 리그 7위에서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말을 차분하게 듣고 있던 루이 감독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거친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감독 모두 명확한 색채가 있긴 하죠······. 뭐 그러기 때문에 확실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시켜 좋은 성적을 거뒀던 거기도 하겠지만요······.”
루이 감독의 말대로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선수들이 전술 지시사항을 효율적으로 이행할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성적을 낼 수 있는 거니까.
루이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나는 챙겨왔던 겨울 이적 시장에 영입될 선수들이 포함된 선수 리스트를 테이블에 꺼내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는 전술 철학이 있으면서 여기 있는 우리 선수단을 효율적으로 뭉치게 만들어줄 구심점 같은 감독을 선임하는 게 중요하겠죠. 바로 감독님 같은 분을요.”
“하하, 그러신다고 제 마음이 바뀌진 않습니다. 단장님.”
“아쉽네요. 레파토리를 바꿔본 거였는데······ 아니면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후임 감독이 있으신가요?”
보통 후임 감독을 정할 땐 보드진의 독단으로 정하는 경우와 현 감독과 함께 후임 감독을 내정하는 경우가 있다.
블랙번 로버스는 얼핏 보면 전자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고집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사실상 후자에 상당히 가까운 편이었다.
내 물음에 루이 감독은 자신의 입술 쪽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신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추천할만한 후임자라······”
“아무래도 이런 경우엔 전임 감독의 의견도 꽤 중요한 편이잖아요?”
그러나 생각했던 감독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생각했던 감독들이 모두 다른 구단과 계약 중인지는 몰라도 루이 감독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없네요······. 아니면 단장님이 생각해둔 기준이라도 있나요?”
“기준이요? 음······ 크게 보고 있는 건 일단 리빌딩이 가능한 감독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겠네요.”
물론 그렇게 되면 내가 좋게 본 선수와 감독이 좋게 본 선수가 달라 의견 대립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대립은 상당히 건강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대립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서로가 ‘블랙번 로버스’라는 구단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한쪽은 선수 영입에 상당히 소극적인 감독. 다른 한 명은 리빌딩 쪽만큼은 영 꽝인 사람······ 단장님이 말했던 후보들의 뚜렷한 단점이 바로 이거였네요. 어느 누구도 리빌딩에 특화된 감독이 없어요.”
클롭과 펠레그리니라는 걸출한 감독들을 두고도 고민하고 있다는 내 생각을 루이 감독이 단숨에 간파해내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 그런 거죠······. 그래도 최대한 프리미어 리그 경력이 있는 감독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러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해버리는 게 문제기도 하구요.”
“잠깐만요. 리그 경험이 있으면서 리빌딩에 특화된 감독이라면······”
원활하게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할 때였다.
루이 감독이 갑자기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신호음. 심지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스피커폰으로 돌려놔서 신호음이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 신호음이 끝났을 때, 핸드폰 너머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Hola.
“Hola.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수화기 속 의문의 남성이 전화를 받자 루이 감독이 씩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어. 말해. 말해.
그런데 목소리가 상당히 낯이 익었다.
마치 예전에 몇 번 들어봤던 그런 목소리······.
“그전에 일단 지금 뭐 다른 구단에서 정식으로 오퍼 들어온 건 없으시죠?”
루이 감독이 말하는 걸 봐선 그와 통화하고 있는 남성도 축구 감독이거나, 아니면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아직 없지. 이제 늙은이한테 기회 주려는 곳도 드물어.
“에이, 아직 정정하신걸요.”
-실없긴······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냥 안부나 물으려고 전화한 건 아닐 거 아니야.
남성의 말이 이어졌을 때,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한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떠올린 인물은 최근까지 프리미어 리그 소속 구단을 맡아 감독직을 수행했던 인물이기도 했고, 내가 그토록 원하는 리빌딩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는 감독이기도 했다.
“다름이 아니라······ 다음 시즌부터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는 팀이 하나 있어서요.”
-그 팀 소개해주려고 전화한 거야? 너가 그렇게 내막까지 알 정도로 친한 팀이 있었······ 아······! 너 설마······
“눈치채셨어요?”
그 말과 함께 씩 웃어 보이는 루이 감독.
추가적인 말까지 듣자 남성의 정체가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켜 메모장에 텍스트를 입력한 뒤 루이 감독에게 보여줬다.
[설마 제가 아는 ‘그 사람’이에요?]그러자 루이 감독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왜 잊고 있었지? 우리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감독은 ‘비엘사’ 감독이었잖아······!’
루이 감독과 통화하고 있는 자는 남미 최고의 전술가라 불리는 ‘괴짜 천재’ 마르셀로 비엘사였다.
* * *
[포포투] 블랙번 로버스의 챔피언스 리그 진출 확률은 64%? [커트오프사이드] 알찬 영입의 선두 주자. 공격적인 이적 시장 정책을 구사하는 블랙번 로버스의 준석 백은 누구인가! [엘문도] 기적을 쓸 것인가···! 신화를 쓸 것인가···! 블랙번 로버스를 정상에 올리려는 아시아인 단장의 저력.‘지긋지긋하군······’
깔끔한 대리석 벽면에 새겨져 있는 ‘첼시 FC’의 로고.
짧은 갈색빛 머리칼을 지닌 크리스토퍼는 모니터를 가득 메우고 있는 ‘블랙번 로버스’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데 어떻게 단기간에 영향력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거지?’
크리스토퍼 피펠.
전임 단장이던 ‘제이콥’의 뒤를 이어 단장직을 맡게 된 그는 블랙번 로버스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승격팀임에도 불구하고 내려앉지 않는 공격적인 전술.
그리고 그 전술을 가능하게 만드는 알짜배기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한두 명도 아닌 무더기로 데려오는 기상천외한 이적 시장 정책을 보여주는 블랙번 로버스의 단장 백준석까지.
뭐 하나라도 어긋나면 이 정도의 호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거지만, 백 단장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그걸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단장님. 포드입니다.”
집무실 문밖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포드’라 이름 붙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크리스토퍼는 기사 창을 내리며 대답했다.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