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66)
-크리스토퍼 피펠 단장님 맞으시죠? 블랙번 로버스의 단장 준석 백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구단의 근간은 유소년
“여깁니다.”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
은은한 불빛이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이곳은 피펠이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 중 한 곳이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중요한 업무를 앞두고 있을 때 항상 이곳에서 저녁을 먹는 피펠.
그런 그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는 딱 하나.
옅은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아, 먼저 와 계셨군요.”
“네, 뭐······”
피펠에게 다가온 남성은 바로 백 단장.
한국에서 프리시즌 투어 일정을 진행 중이었던 그는 ‘리브라멘토’ 이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영국으로 급하게 돌아온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아신 겁니까?”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이곳이요.”
피펠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가게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가 이곳을 애용하는 건 프런트 직원들 말곤 모르는 사실일 텐데요.”
“아······ 그거 때문에 그러시구나.”
백 단장은 정장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어두며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치열한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제가 선택한 것이 ‘정보력’이라서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여유로운 모습.
쏘아붙여도 반응하지 않는 잔잔한 호수 표면 같은 분위기.
백 단장과 몇 마디 섞자마자 피펠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그는 싱긋 웃어 보이는 백 단장의 표정을 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후······ 됐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
“전화로 말씀하셨던 ‘카르바할’ 이적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겠다는 건 무슨 소리죠?”
이미 백 단장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 않은 피펠이 날선 목소리로 묻자, 백 단장은 가방에서 갈색 봉투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카르바할 선수가 첼시로 이적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해드리겠다는 겁니다.”
백 단장의 말도 안 되는 호의적인 태도에 잔뜩 경계심을 품은 피펠은 그가 건넨 갈색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내 봤다.
내용물은 정말로 카르바할의 이적과 관련된 정보들이 빼곡하게 기록된 문서였는데, 그곳에는 첼시에서도 수집하지 못한 꽤나 중요한 정보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하······ 이건 아무리 봐도 단독으로 입수하신 정보들 같은데······”
“······”
“점점 더 이해가 안 가는군요. 의도가 뭡니까?”
피펠은 들고 있던 문서를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는 백 단장이 대가 없이 이 정도의 정보를 내놓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제로 여기 적혀있는 정보를 토대로 영입전에 뛰어든다면 카르바할을 확실히 이적 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심지어 당초 예상했던 이적료보다 훨씬 더 저렴한 금액으로.
그러나 아무런 대가 없이 이런 고급 정보를 남에게, 그것도 같은 리그 소속 경쟁 팀 단장에게 줄 리가 없었다.
“의도라······”
피펠의 물음을 되새기며 중얼대는 백 단장.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피펠을 응시하며 씩 웃어 보였다.
“저희가 바라는 건 딱 하나입니다.”
“······”
“리브라멘토 선수를 임대 이적 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미간의 핏줄이 꿈틀대는 피펠.
이제야 머릿속에서 백 단장이 선뜻 카르바할 이적에 유용한 정보를 내놓았던 이유가 퍼즐 조각 맞춰지듯이 짜 맞춰졌다.
‘그래······ 역시 대가 없는 선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것도 이곳. 프리미어 리그에서······’
백 단장의 시커먼 속내를 드디어 밝혀냈다는 사실에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인 피펠은 아까보다 훨씬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요. 카르바할 영입전과 관련된 귀중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는 이유도, 그리고 당신이 머나먼 타지 땅에서 영국으로 한걸음에 날아온 이유도요.”
“굳이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으시지 않았습니까.”
여유롭게 받아치는 백 단장.
그의 말처럼 피펠은 백 단장과 처음 통화를 할 때부터 여러 가지 가설들을 세워두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리브라멘토를 노릴 거라는 가설은 없긴 했지만, 첼시에 포함된 선수 중 한 명을 노릴 것 같다는 실낱같은 의심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아하니, 처음 카르바할 이적 관련 기사도 오늘 이 날을 위해 계획하셨던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나요?”
피펠의 물음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어 보일 뿐인 백 단장.
그 모습을 보며 피펠은 자신이 백 단장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모멸감보단 감탄이 먼저 들었다.
그가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한 지 고작 2년.
챔피언십 하위권에 허덕이던 블랙번 로버스를 맡았을 때부터 따져봐도 3년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백 단장은 매 시즌마다 두드러지는 활약을 펼쳐왔는데, 피펠은 그의 판짜기 능력을 직접 마주하니 왜 블랙번 로버스가 단숨에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정말 적으로 돌리기 싫은 타입이군······’
피펠은 크게 숨을 한 번 고르더니 와인잔에 담긴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군요. 이 정도 정보가 있으면 카르바할 선수를 블랙번 쪽에서 영입하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아직 성장해야 하는 리브라멘토보단, 이미 풀백 선수 중 최상위권의 실력인 카르바할이 시즌을 치르기에는 더 쉬울 텐데요.”
“그렇긴하죠. 아무래도 유럽 내 최상위권 포식자인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우측 풀백 자원을 데려오는 게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 나을 수도 있겠죠. 다만······”
“······”
“제가 블랙번 로버스에서 이루고자 하는 건 그런 단기적인 목표만 있는 게 아니라서요. 우린 리브라멘토같은 젊고 유망한 선수를 원합니다.”
백 단장의 답변을 들은 피펠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백 단장이 그리고 있는 그림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로 팀을 끌어올린 그가 생각하고 있는 원대하면서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이상향이······.
“젊고 유망한 선수라······. 꽤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 모양입니다?”
피펠이 내려놓았던 카르바할 관련 문서를 다시금 집어 들며 말하자, 백 단장은 씩 웃으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네. 단장님.
“어때요. 그쪽은. 잘 돌아가고 있어요?”
모두가 퇴근하고 돌아간 블랙번 로버스의 구단 프런트.
불이 다 꺼진 사무실을 보자 프런트 직원들이 잘 쉬고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여기는 일정에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 그나마 한 가지 문제라면······
“······”
-강 선수가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서 그런지 텐션이 너무 올라가 있는 게 문제랄까요?
“먼 외국 땅에서 적응하려고 하다 보니 지쳤었던 모양이네요. 적어도 한국에 있는 동안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와서 적응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외롭고 힘들다.
영어가 됐던 나조차도 가끔 단장실 창문으로 보이는 야경을 보며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일에 치여 산 나도 이 정돈데, 어린 나이에 영국.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다고 불리는 프리미어 리그에 적응하려는 현석이의 스트레스는 안 봐도 비디오일 정도.
그래서 적어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그 부담감을 덜고 왔으면 했다.
분명 리그 적응만 끝낸다면 현석이는 리그 내에서 수준급으로 손꼽힐만한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여지가 다분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최대한 티 안 나게 지켜볼게요. 단장님은 어떠세요. 영국에서의 일은 잘 마무리 지으셨어요?
잭의 물음에 나는 고요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단장실로 들어가 의자에 주저앉으며 대답했다.
“대화는 잘 진행됐습니다. 일단 첼시 측에서 리브라멘토 선수의 임대 이적에 긍정적인 뜻을 보였으니, 자세한 조건은 차차 맞춰가야겠죠. 아무래도 저쪽도 카르바할 영입이 만약 실패로 돌아간다면 리브라멘토를 임대 이적 시키지 않을 테니까요.”
-단장님이 첼시 측에 보낸 정보만 써먹어도 카르바할 선수를 영입하는 건 문제가 아닐 것 같긴 하지만······ 뭐······ 워낙 또 변수가 많은 게 이적 시장이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큰 걱정은 안해도 될 겁니다. 샬럿이 구해온 내부 소스에 의하면 아스날 측에서 카르바할 영입에서 손을 뗄 것 같거든요.”
카르바할 영입전에서 가장 앞서 나가던 두 개의 구단 중 하나인 아스날.
그들이 영입전에서 손을 뗀다면 자연스레 그 바통은 첼시가 이어받아 유리하게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카르바할이 이번 이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프리미어 리그 팀으로의 이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애초부터 첼시와 이적 관련해서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으니, 다시 협상을 이어나가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인데요?
“그러니까 여긴 걱정하지 말고 한국 투어 일정에 집중해요. 그리고 간 김에 좀 쉬시구요.”
-에이, 다른 팀원들 모두 바쁘게 일하는데 제가 여기서 혼자 쉬고 있으면 모양이 좀 이상하죠······. 그래도 단장님 몰래몰래 잘 쉬고 있었어요······. 진짜루요······.
잭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가볍게 툴툴거리자, 나는 옅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무튼 투어 일정에 무슨 차질이라도 생기면 바로 연락주세요.”
-알겠습니다. 단장님. 투어 끝나고 영국에서 뵙겠습니다.
“그래요. 조금만 더 고생해줘요.”
탁.
잭과의 통화를 끝마친 나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뒷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경기장 내부 전경을 지긋이 바라봤다.
“여기까지 오는 데 3년······ 이번 시즌 목표만 달성한다면······”
그동안 속에 품고 있었던 목표를 되새기면서······
* * *
“단장님. PSG에서 새로운 오퍼가 들어왔습니다.”“이번엔 얼마죠?”
“4,200만 파운드(한화 약 681억 원)입니다.”
“거절하세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하자, 샬럿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청난 속도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한국 투어 일정의 마지막.
PSG와의 경기를 마친 뒤, PSG에서는 집요하게 ‘모하메드 시마칸’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하루 간격으로······.
‘시마칸은 우리 팀 핵심 센터백 자원. 못해도 6,000만 파운드(한화 약 973억 원)부터 시작이야.’
지난 시즌 프리미어 리그 영플레이어상을 당당히 수상한 ‘모하메드 시마칸’.
이적 후 첫 시즌이라는 우려를 정면에서 부수듯 저돌적인 그의 수비 방식은 프리미어 리그의 수많은 공격수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리그 베스트는 우승팀 아스날과 2위 맨체스터 시티의 주전 센터백들이 가져가긴 했지만, 첫 시즌이라는 가정하에 시마칸은 리그 내 손꼽히는 센터백 중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집요하긴 하네요······ 저쪽이 센터백이 그렇게 급한 건 아닌 걸로 아는데······”
샬럿이 타자를 치며 혀를 내두르자,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라모스 선수는 계약 만료에 나머지 센터백 자원들도 예전부터 기량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긴 했죠. 진작부터 보강했어야 하는 포지션이라 생각하긴 해요. 그래도······”
“······”
“시마칸 선수는 못주죠.”
그 말과 함께 씩 웃어 보이자, 샬럿 역시 따라 웃더니 서랍에 꽂혀 있던 파란색 파일철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줬다.
“그때 부탁하셨던 유소년 사업 계획안이에요.”
“아! 그거 벌써 나왔어요?”
“단장님이 작년부터 준비하셨는데, 이제야 나온 거죠······.”
작년부터 구상해왔던 ‘유소년 사업’.
구단의 ‘근간’이라 불리는 유소년 선수들을 좀 더 체계적인 환경에서 육성해서 추후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 같은 최고의 육성 시스템을 갖출 생각이었다.
“원래 공증받는 게 제일 오래 걸리잖아요. 이제라도 나온게 어디에요.”
그녀의 말처럼 정말 오래걸리긴 했다.
그러나 늦지 않고 나왔다는 것에 난 만족하기로 했다.
앞으로 2~3년 뒤에 공증 절차가 끝나는 것보단 훨씬 더 나은 상황인 건 맞으니까.
잔뜩 설렌 마음으로 파일철 안쪽 서류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을 때, 샬럿이 치고 있던 타자를 멈추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