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68)
“사냥개처럼 버려지는 건 사양입니다. 계약 기간 동안 확실하게 밀어주세요. 단장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거 반드시 실현해 보일 테니까요.”
넘치는 자부심.
크리스가 한 말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그런 크리스에게 처음 인사할 때 나누지 못했던 악수를 권하며 말했다.
“환영합니다. 블랙번 로버스에 온걸.”
* * *
“단장님! 인터뷰 준비 끝났습니다!”
허둥지둥 달려온 잭의 보고에 나는 보고 있던 결재 서류를 조용히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색 넥타이를 매며 단장실 벽면에 놓인 거울을 본 나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생각했다.
‘이제 세 번째 시즌······ 블랙번 로버스가 다시 왕좌에 앉을 시기다.’
챔피언스리그 조 추첨
터키 이스탄불.
나는 지금 ‘챔피언스 리그 그룹 스테이지 추첨식’에 와있다.
“이야······ 우리가 이런 곳까지 오게 될 줄이야······”
검은색 수트 차림에 나비넥타이.
세련되게 뒤로 넘긴 검은색 머리카락의 젊은 남성은 블랙번 로버스의 구단주 ‘이시훈’이었다.
“어때요? 백 단장?”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에이, 뭘 빼고 그래요. 챔스 조 추첨하러 와 본 소감 말이에요.”
“아······”
말해 뭐하겠는가.
솔직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것도 미친 듯이.
살면서 이런 자리에 와 볼 수 있는 기회가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엄청난 자리에 이시훈과 함께 와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그룹 스테이지 참가팀. ‘블랙번 로버스’의 관계자로.
“구단주님은 어떠십니까.”
조심스럽게 그에게 답을 미루자, 이시훈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씩 웃으며 대답했다.
“짜릿하죠. 그리고······”
“······”
“뿌듯합니다. 다들 포기하려고 했던 걸 이뤄냈으니까요.”
블랙번 로버스라는 구단을 단순히 기업의 수익 수단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구단을 위하는 자에게서나 엿볼 수 있는 표정.
비록 내가 젊은 나이에 단장직을 맡고 있긴 하지만, 진정으로 구단을 위하는 사람 정도는 구별해낼 수 있었다.
“자, 저는 말했으니 이제 백 단장 차례.”
“저는······”
이시훈이 바통을 넘기자, 나는 말끝을 흐리며 속속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 각 구단의 관계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핏 보기만 해도 어느 구단의 관계자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저명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조추첨 진행을 돕기 위해 앞쪽 단상에 올라 UEFA 관계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공격수 ‘티에리 앙리’의 모습까지······.
“······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뿐입니다.”
“······”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줬던 선수단. 그 선수단을 이끌며 최고의 성적을 내줬던 코치진. 묵묵히 구단이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게 뒤에서 일하는 프런트 직원들. 그리고······”
“······”
“믿어주셨던 구단주님에게도요.”
옅은 미소를 띤 채 대답하자, 잠깐 멍하니 날 바라보던 이시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축구계에 ‘낭만’이라는 건 존재하니까요. 난 우리가 그 ‘낭만’하나로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만들 겁니다. 제가······ 어떻게든······”
그 말과 함께 가볍게 말아쥐고 있던 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 * *
“Group C. Blackburn Rovers.”
티에리 앙리가 정면을 향해 ‘블랙번 로버스’라 적힌 종이를 펼쳐 보이자, 옆에 있던 이시훈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
‘걸려도 C냐······!’
블랙번 로버스는 UEFA 클럽 랭킹이 정말 낮다.
최근 5년간의 유럽 대회 성적이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4 포트를 피할 수가 없었는데, 보통 4 포트는 상위 3개의 팀이 이미 정해진 조에 마지막 퍼즐로 들어가기에 조가 뜨자마자 속한 조의 험난함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었다.
내가 조 편성을 보면서 죽음의 조라 생각했던 곳은 A, C, E 조.
그중 C조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팀이자,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는 강팀. ‘바이에른 뮌헨’이 1번 포트.
2번 포트엔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올라설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AC 밀란’이.
3번 포트엔 네덜란드의 강호 ‘아약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 팀은 모두 각 리그에서 뚜렷한 성적을 낸 강팀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팀들만 선별해서 걸린 수준이었다.
‘2, 3 포트에서 하필 저 팀들이······’
마음속으로 제발 C조만 들어가지 말자고 믿지도 않는 각 종교의 신들에게 간절하게 기도했건만, 돌아오는 건 친절하게 C조 4 포트. 지옥에 발을 들이미는 수순이었다.
‘이래서 신을 안 믿지······. 당신들은 지금 열렬한 신도 유망주 하나를 잃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언사를 속으로 격하게 풀어낸 나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옆을 돌아봤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 버렸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이시훈이 카메라 원샷을 받고 있었기 때문.
“구단주님. 포커페이스 하세요······. 아직 게임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러시면······”
애써 그의 무릎을 가볍게 터치하며 속삭였지만, 이시훈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하늘이 우릴 버렸나······ 어쩝니까 백 단장······ 우리······”
“구단주님 일단 좀 진정하시고······ 여기 보는 눈도 많은데······”
그러자 다급하게 표정을 숨기려 하는 이시훈.
아마 생방송에 송출되긴 했을 거지만, 그래도 시작 전부터 약팀의 이미지로 보이긴 싫었다.
이미 지난 프리 시즌에서 유럽의 강팀들을 상대로 엄청나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었고, 이번 시즌엔 양질의 선수, 감독까지 보강했기 때문에 어렵긴 해도 충분히 죽음의 조에서 살아나갈 확률도 존재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해도 여전히 초첨 없는 눈으로 챔스 조추첨 현황을 바라보는 이시훈.
나는 좌절한 그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했을 때 모두가 예상했던 걸 깨부수듯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보란 듯이 보여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 * *
C조
FC BAYERN MÜNCHEN (GER)
AC MILAN (ITA)
AFC AJAX (NED)
BLACKBURN ROVERS FC (ENG)
“다들 챔피언스 리그 그룹 스테이지 추첨식은 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구단 프런트 회의실.
오늘 회의는 현장 코치진들까지 모두 모이는 아주 중요한 회의였다.
스크린에 이번 조 추첨 결과를 띄워둔 채 운을 떼자, 회의실이 얼어붙은 듯 싸늘한 분위기로 뒤바뀌었다.
그들 역시 이 축구 업계의 종사자들.
C조가 얼마나 빡빡한 조인지는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모두가 이번 만큼은 블랙번 로버스가 돌풍을 이어가지 못할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외신도, 국내 언론도 그리고 일부 서포터들까지도요.”
그 말과 함께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에 각종 기사와 팬들의 반응이 한 눈에 볼 수 있게 나타났다.
[포포투] 죽음의 C조······ 블랙번 로버스의 돌풍은 여기까지인가···! [BBC] C조 4포트에 배정받은 블랙번 로버스. 토너먼트 진출 확률은 고작 6%? [커트오프사이드] 챔피언스 리그는 다르다. 블랙번 로버스는 살아남기 위해 어려운 투쟁을 해야할 것 [스카이스포츠] 챔스와 리그 두 마리 토끼를 블랙번 로버스는 다 잡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살인적인 경기 일정들 [DA Bryan]@UEFA CHAMPIONS LEAGUE @BLACKBURN ROVERS FC
-냉정하게 블랙번 입장에서 이번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은 그냥 망했다고 보는 게 맞아······
2023년 08월 27일 ‧ 5:42 오전 ‧ 조회수 1026회
↳하필 걸려도 밀란에 아약스······ 사실 1 포트는 확실한 강팀이 들어오는 게 베스트니까 바이에른이어도 상관없었는데······ 하······
↳왜 조 추첨이 망했다는거임? 충분해 보이는데
↳밀란은 다시 살아나고 있고, 아약스는 매 챔스마다 강력한 카운터 펀치 한방씩 꼭 먹임. 어차피 조 1위 진출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 2위 싸움에서 1패, 1패가 엄청 뼈아프게 들어올 테니까 힘들다고 하는거임
↳그러니까 그게 왜 망한거냐고. 나머지 팀한테 안지면 그만인데
↳그게 쉬웠으면 진작에 챔스 우승했지 멍청아······
↳차라리 작년에 이 조였으면 2위 진출 쉬웠을 텐데······ 밀란이랑 아약스가 딱 흔들릴 때였어가지고······
↳일단 지켜보자. 첫 경기 보면 대충 각 나오잖아
“······ 뭐 이렇게 반응은 썩 좋지 않습니다만······ 그건 지난 시즌도 마찬가지였었죠.”
나는 화면을 다시 이전으로 돌리곤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어떤 시즌에도 사람들에 예상에 맞춰서 성적을 냈던 적이 없습니다. 챔피언십에서 승격했을 때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첫 시즌을 보낼 때도.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를 가볍게 짓밟으면서 우리만의 결과를 만들어 냈어요.”
명가를 재건해보겠다는 막연한 목표에서 출발한 블랙번 로버스의 단장 생활.
이제는 정말 막연하기만 했던 그 목표가 내 눈앞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시권에 들어온 그 목표를 반드시 붙잡고 싶었다.
“지난 시즌 리그 3위. 그것도 승격팀이. 그것도 지난 시즌까지 도합 10년을 챔피언십에서 허덕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었던 과거의 명가가. 우리에게 붙는 수식어들은 항상 이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
“이제는 사람들이 앞다투어서 블랙번 로버스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에 대해 떠들고 있습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말이죠.”
수십 명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들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블랙번 로버스를 어느 위치에까지 올려두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봐왔을 테니까.
“왜 그러겠습니까? 이제 사람들이 의식하기 시작한 겁니다. 블랙번 로버스라는 팀에 대해서. 그리고 블랙번 로버스가 프리미어 리그의 어엿한 강팀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한 겁니다.”
나는 단상 모서리를 붙잡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할 겁니다. 늘 그래왔듯이 예상을 벗어날 것이고. 늘 그래왔듯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블랙번 로버스라는 이름을 각인시킬 겁니다.”
“······”
“상대가 어떤 팀이건 간에요.”
호소에 가까울 정도의 발언.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블랙번 로버스의 현 상황을 팀원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으니까······.
* * *
“단장님. 오늘 회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팀원들이 씩 웃으며 건네는 말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행이네요. 어제 조 추첨 볼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좀 많이 안 좋았었는데······”
마지막까지 회의실에 남아있던 잭이 씁쓸한 미소를 띠며 내게 말을 붙였다.
“여러분들이 그러셨던 것만큼 현장도 최악이었어요.”
“현장이라면······ 아 조 추첨 하러 가셨을 때요? 단장님 표정은 덤덤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도 솔직히 C조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걸려버려서 사실 패닉이었죠 뭐······ 그런데 한 명 더 있잖아요. 그게 눈에 보일 정도였던 사람.”
“아······”
그러자 단말마의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