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80)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구나······’
처음 블랙번 단장 자리에 취임했을 때 체결했던 계약 기간은 5년.
물론 내가 잉글랜드 무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구단의 상황을 더 망칠 수도 있을 걸 고려해서 성적 부진 시 상호 합의하에 계약 해지 조건을 달아두긴 했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 조건이 발동될 리는 없었다.
‘주축 선수들의 재계약 기간은 항상 꼼꼼하게 봤었는데, 정작 내 계약은 돌아본 적이 없었네······’
항상 먼일이라 생각하고 미뤄왔었는데 이제 그 일을 직면하니 기분이 묘하긴 했다.
“백 단장?”
“아······ 재계약······ 그렇죠. 재계약할 시기가 오긴 했죠.”
반응이 너무 애매해서일까.
이시훈은 미간을 슬쩍 치켜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혹시······ 재계약 의사가 없는 건가요······?”
차마 망설임 없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10년, 15년 블랙번 로버스가 쭉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닦아두는 모든 일이 당장 내가 단장직에서 물러나도 구단이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과정이었으니까.
무의식중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블랙번 로버스의 단장직에서 물러난 뒤의 미래를.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계약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제 역할은 누구라도 대신할 수 있고, 기틀만 다져진다면 유능한 프런트 팀원들로도 충분히 구단을 이끌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이시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려요. 어떤 사람도 대체 가능한 사람은 없어요. 각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건 백 단장도 마찬가지예요.”
“······”
“그런데······ 백 단장이 재계약에 대해서 생각하기엔 시간이 없긴 했네요. 자나 깨나 구단 행정 생각뿐이니······”
조금 전까지 단호한 모습으로 말하던 이시훈이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훈은 그 말 이후에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겠네요. 현재 구단 성적도 안정권에 접어들었고 이때 아니면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어때요?”
이시훈의 말처럼 생각할 시기는 지금 말곤 없었다.
박싱데이에 겨울 이적 시장까지 껴있는 프리미어 리그에선 아주 중요한 기간이긴 했지만 선수 영입 계획이 없고, 다른 팀보다 비교적 널널한 일정을 부여받았으니 생각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이시훈의 제안에 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 * *
-형 병신이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격앙된 목소리.
-뭘 고민하고 있어. 그냥 냅다 감사합니다! 하고 재계약 박아야지.
오랜만에 연락을 하는 내 동생 ‘백민석’이었다.
오랜만에 들어도 신경 거슬리는 말투에 인상을 찡그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고민 정도는 할 수 있지.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말이 안 되는 걸 고민하니까 그러지. 당장 밖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5년 동안 팀 일궈서 성적 냈는데 재계약하실래요? 안 하실래요? 라고.
“안 할 수도 있는 거지. 개인의 선택 아니냐?”
-어우······. 내 말은 왜 길 닦아놓고 다른 사람한테 스포트라이트 넘기려고 하냐니까. 2부에서 허덕이는 팀 지금 챔스 토너먼트까지 진출시킨 거 형 아니야?
맞다.
그 점은 인지하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이 돼서 팀을 여기까지 끌어올리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구단에 기여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이 애매한 무언가가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면 뭐······ 다른 팀에서 제의 들어온 거 있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나 아직 계약 만료 전인거 아는 곳도 없어.”
-그런데 뭘 자꾸 고민하냐고. 아니면 누구 염장 지르는 거야? 1년째 집구석에서 취직 못 하고 빈둥대는 나 저격하는 거냐고.
이제야 평소보다 말투가 더 날이 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근데 너······ 짤렸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묻자, 핸드폰 너머로 라이터 켜는 소리와 함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 그렇게 됐어 그냥.
“그러게, 서울에서 스카우트로 뛰라니까 왜 고집 피워서······ 하여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평생 형 그늘에서 뛰라는 게 말이야? 난 죽어도 독립이야.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것 없는 단호한 태도.
나는 친숙한 그 모습에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계약은 뭐 차차 생각해봐야지. 아직 계약 기간 1년 남아서 여유 있으니까.”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왜 이걸 고민하지?
“말했잖아. 개인차가 있는 거라니까?”
-그니까 그 얼어 죽을 개인차라는 게 뭔데요 선생님.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연봉 적으면 올려달라 해. 뭘 자꾸 징징대는 거야.
“무직은 모르는 직장인들이 사는 세상이 있단다. 민석아.”
-됐고. 난 말했어. 분명히 재계약이 이득이라고.
더 이상의 놀림은 받지 않으려는지 급하게 대화를 종결짓는 민석.
그래도 오랜만에 듣는 동생 목소리에 심적 여유를 찾은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취업 힘들면 연락하고. 서울에 자리 있나 알아봐 줄 테니까.”
-제가 알아서 합니다. 선생님은 그냥 영국에서 본인 자리나 닦으세요. 아시겠죠?
“알겠다. 들어가라.”
전화를 끊으려는 그 순간.
-자, 잠깐만! 형!
다급한 민석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왜. 나 바빠. 이제 가야 해.”
-호, 혹시 클롭 감독님이랑 벨링엄 선수 사인 유니폼 하나만 구해줄 수 있어······?
세상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부탁하는 민석.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되겠냐? 끊어.”
-아니! 혀······
* * *
“카디프 측에서 주급 10% 부담에 동의했습니다. 이대로 진행할까요?”
잭이 평소에 못 보던 안경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보고하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10%도 우리에겐 감지덕지죠.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카디프 시티는 하루라도 빨리 ‘이 현’을 데려가고 싶었는지 우리가 새로운 계약서를 보내자마자 곧바로 답신이 올 정도였다.
물론 일부 조건들은 저쪽에서 수정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번 임대 이적의 목적은 ‘이 현’의 실전 감각을 키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할만했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얻어만 가는 협상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아까우니까······.
“저기 근데······ 단장님······.”
보고를 마친 잭이 단장실 밖으로 나가려다 문고리를 잡은 채 나지막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뭐 남았나요?”
전반기 경기장 입장 수익이 계산된 자료를 보고 있던 내가 잭을 바라보며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재계약 시즌인데······ 걱정 안해도 되는 거죠······?”
“재계약이요?”
“네······. 단장님 이제 1년 남으셨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말했었나요 이걸?”
“아뇨. 저번에 오너가 와서 잠깐······”
아무래도 이시훈 구단주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 방문했을 때 들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입이 싼 것 같기도 하고······’
종종 블랙번 로버스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그에게 별의별 얘기를 다 들어서 그런지 확실히 그는 이런 사적인 부분에서 입이 싸긴 했다.
물론 공적인 부분에선 칼 같은 사람이기에 믿고 일하고 있는 거지만······.
나는 보고 있던 경기장 입장 수익 자료를 덮으며 씩 웃어 보였다.
“아직 생각 중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시즌 끝나고 오너랑 다시 대화할 생각이었거든요.”
아무리 이번 겨울 이적 시장 기간이 여유롭다고 해도, 구단 구석구석 처리해야 할 업무는 늘 쌓여 있었다.
당장 이번에 계약 만료가 되는 경기장 내 ‘푸드 코트’ 입점 프랜차이즈들과의 계약도 연장해야 하고, 일부 직원들 계약도 갱신해야 했다.
게다가 이제 2년 정도 남은 구단 주전 센터백 ‘주앙 호르타’와의 재계약도 신경 써야 하고 이래저래 처리해야 할 게 상당히 많았다.
“하긴······ 재계약도 이제 막 생각해보시는 거겠네요. 그동안 원체 일이 많았어야죠······.”
“일단은 이번 시즌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하는 데에만 집중합시다. 제 거취는 언제라도 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장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잭이 나가고 난 뒤 나는 등 뒤에 펼쳐져 있는 ‘이우드 파크’의 경기장 내부를 바라봤다.
순항하고 있는 팀의 이상적인 말로를 떠올리면서······.
* * *
“계약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단장들 리스트입니다.”
둘만 사용하기엔 과분할 정도로 넓은 공간.
덩그러니 놓인 둥근 테이블에 앉은 중년 남성은 자신의 앞에 있는 프로필들을 세세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전부 다 내년이면 계약 만료인 단장들 인거지?”
“그렇습니다. 대신 ‘파테라치’는 계약 만료여도 휴식기를 가질 가능성이 크긴 합니다.”
“그래······?”
단정한 수트 차림에 짧게 쳐올린 금발 머리 남성이 추가적인 자료를 테이블에 올려두며 보고를 이어가자, 보고를 듣던 중년 남성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좀 제대로 된 사람을 데려오고 싶은데······”
“그러시다면 이 자는 어떻습니까.”
“이 자는······ 아······ 이 친구가 그 친구구만?”
중년 남성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며 고개를 끄덕이자, 금발 머리 남성은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2부리그에서 허덕이던 블랙번 로버스를 세 시즌 만에 신흥 강호로 끌어올린 사람입니다. 영입 스타일은 구단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책임질만한 어린 선수들 위주로 영입하는 편입니다. 물론 한정된 재정 상태에서도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자기도 합니다.”
“이름은 들어봤어······. 동양에서 온 그······ 백? 인가하는 자이지 않은가.”
“맞습니다. 준석 백. 아직 구단과의 재계약 관련 소식이 유일하게 전혀 없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중년 남성은 부연 설명을 들으며 백 단장의 프로필을 같이 살펴봤지만, 그의 화려한 커리어에 점점 더 백 단장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좋은데······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뽑아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좋아. 자고로 구단을 운영하려면 이런 맛이 있어야지. 맥스. 에메리 감독에게 바로 연락해 봐.”
우나이 에메리.
현재 리그 6위를 달리고 있는 ‘애스턴 빌라’의 감독이었다.
재계약(3)
경기가 없는 야간.
버밍엄에 있는 ‘빌라 파크’의 VIP 좌석에는 현 애스턴 빌라의 감독 ‘우나이 에메리’가 경기장 전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와 있었구만.”
VIP 좌석 쪽에 있는 통로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애스턴 빌라의 구단주 ‘나세프 사위리스’였다.
“오셨습니까. 구단주님.”
나세프가 오자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에메리.
그러자 나세프는 에메리의 옆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경기장이 다 좋은데······ 나 같은 늙은이는 숨이 턱턱 막힌다 말이지······”
“그래도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지 않습니까. 저는 빌라 파크의 이런 게 참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