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0)
20. 임대 이적(2)
선수들이 숙소로 사용할 ‘선로얄호텔’ 1층에 있는 카페. 운영팀장에겐 급한 일이 생겼다 하고 공항에 내려준 뒤 나 혼자 돌아온 상태였다.
창가 쪽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지만, 나는 차분하게 블랙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머그잔에 담겨 나온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씁쓸한 맛과 함께 옛 생각이 떠올랐다.
‘블랙 마시게 된 것도 단장님 때문이지······.’
잔잔한 커피 표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추억에 잠겨있을 때 카페 입구에서 살집이 있는 중년 남성이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이! 백준석이!”
중년 남성의 이름은 김종찬.
과거 내가 스카우트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당시의 서울을 이끌던 단장. 프런트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위해 다른 구단으로 간 뒤로는 큰 왕래가 없긴 했지만,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내 진정한 롤모델이었다.
“오셨어요, 단장님?”
단장님이라는 호칭에 그는 두툼한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언제 적 단장님이야. 그냥 편하게 종찬이 형이라고 불러.”
“어떻게 그래요. 5년 동안 단장님이라 불러서 입에 배버렸는걸요. 그리고 단장님 외관이 형처럼 보이지는······”
장난스럽게 그의 말을 받아치자, 그는 씩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시간 참 빠르다. 이놈이 어떻게 단장 자리까지 올라간 거야······? 뭐 빽줄 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호탕하게 웃으며 농담을 치는 그의 얼굴을 보자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김종찬 단장이 빈자리에 앉자, 나 역시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 근데 저 이곳에 온건 또 어떻게 알고 연락 주셨어요?”
그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
“나도 누구한테 방금 막 들어서 연락했지.”
재킷을 의자 팔걸이에 걸쳐둔 그는 입가를 슬쩍 가리며 은밀하게 말을 덧붙였다.
“내가 이 바닥 짬이 얼만데······ 그냥 척하면 척하고 알아서 알려주는 거지 사람들이······”
“다음부턴 그냥 편하게 연락하세요. 남들 통해서 듣지 말고 나름 섭섭하다니까요 그런 것도?”
“섭섭은 무슨······ 이거 블랙이냐?”
피식하고 웃어 보인 그는 자기 앞쪽에 있는 커피를 가리키며 물었다. 단장직을 수행하실 때 항상 입에 달고 사셨던 블랙커피.
“그럼요. 늘 블랙이시잖아요.”
“그래도 너가 나이를 먹긴 했구나? 스카우트 팀에 있을 땐 블랙 사다 주면 물 타서 마시던 놈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그는 예전에 같이 일했던 추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나는 커피 한모금을 음미하며 마시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상임 이사 되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여긴 잠깐 출장 나오신 거예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훌륭하게 단장직을 수행한 그는 모기업에서 좋게 봐 상임 이사직을 맡아 스포츠 사업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바쁘게 일한다는 소식까지만 들었었다.
“우리 유소년 축구 사업. 벤치마킹하는 게 J리그 유스 시스템 아니냐. 그래서 년에 한두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거지 뭐······.”
“지금은 그럼 어디에 계신 거예요?”
보통 이런 식의 출장 같은 경우는 그 지역에 있는 축구 클럽의 유소년팀 훈련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는 들고 있던 머그잔을 내려놓고 허공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 위쪽. 오사카에서 신세 지고 있지. 세레소 오사카 알지? 그쪽이랑 얘기가 잘 되기도 했고 흔치 않은 기회기도 해서 그냥 내가 왔다.”
J1 리그의 강팀 세레소 오사카.
유명한 한국 선수들이 뛰기도 했던 클럽이라 국내에서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구단 중 하나다.
그의 대답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마시고 있자, 그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두며 물었다.
“단장 생활은 어떠냐. 힘들지?”
“말도 마세요. 이제 3년 해봤는데 몸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어요.”
내 소심한 투정에 그는 호탕하게 웃은 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인마. 단장직이라는 게 하는 건 없어 보여도 욕은 또 바가지로 먹는 자리라서 힘들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내가 단장직은 노리지 말라 했잖아.”
“단장님 잘못이에요. 그때 저를 좀 더 말리셨어야죠.”
“그때 네놈이 내 말을 들었겠어? 눈에 독기 서려가지도 말 안 걸면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선수들 경기 기록 정리하던 놈이.”
“그땐 뭐······ 마지막 인생이라 생각할 때여서······.”
나는 좀 더 그와 옛날얘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순간 그가 ‘세레소 오사카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세레소 오사카라면······ 맞아. 다카이치 아키라가 있는 곳이잖아.’
“와 진짜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너한테 이번에 이적 리스트 정리좀 해달라고 했는데, 사흘 내내 집에 안 들어가고······”
“남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그거. 어디 가서 얼굴 못 들고 다니니까요.”
“그래. 내가 무덤까지 가져갈게. 그래서 일본에는 어느 정도 머무를 생각이냐.”
나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다카이치’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투어 일정은 아마 한 달 정도예요. 그런데 단장님 혹시 다카이치 선수 직접 보신 적 있으세요?”
“단장님이라 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다카이치라면······ 그 다카이치 아키라? 왼쪽 윙어 말하는 거 맞지?”
“네 맞아요. 사실 조만간 세레소 오사카에 가서 그 선수 직접 보려고 했거든요.”
“하······ 직접이라······”
직접 본다는 말에 그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에선 작은 탄식 소리를 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혹시 문제 있는 선수인가요?”
“습··· 이게 참.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없다고 하기도 좀 그렇네.”
애매하게 표현하는 그의 말에 순간 내가 잘못된 판단을 했나 싶어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지금 왼쪽 윙포워드 자리에서 뛸 준주전급 자원을 찾고 있어서요. 다카이치 선수 저번 시즌 성적도 좋고 임대료도 저렴하던데요?”
차마 그에겐 다카이치 선수의 능력치가 좋아서 보러 간다곤 말하지 못했다.
적당히 둘러대긴 했지만 실제로 다카이치의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기도 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거부터 한 번 봐봐.”
그는 바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 하나를 틀어 내 쪽으로 건넸다.
‘이건 다카이치 아키라의 훈련 영상인가?’
영상 속에선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휘날리며 분주하게 좌측면에서 뛰어다니는 선수가 보였다.
세레소 오사카 소속. 공격형 미드필더(왼쪽), 미드필더(왼쪽)
주력: 14 패스: 13
가속도: 14 민첩성: 13
개인기: 13 중거리 슛: 9
천재성: 12 타고난 체력: 13
크로스: 13
특이사항 : 출전 기회에 불만을 느낌.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
역시 선수를 보자 나타나는 능력치 창. 예상대로 다카이치 아키라가 맞았다.
영상 속 훈련은 수비 지역에서 빌드업을 통해 반대편 골대에 골을 넣는 훈련. 그리고 그 주축이 된 것이 다카이치가 있는 좌측면이었다.
왼쪽에서부터 시작된 빌드업에 활발하게 관여한 그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격 전개를 도왔다.
‘몸놀림도 가볍고 대처도 빠른데?’
나는 턱을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직까진 괜찮은 거 같은데요? 오히려 플레이 자체가 상당히 깔끔한 거 같은데.”
“그 장면 뒤가 문제야.”
그 말과 함께 나온 장면은 다카이치 선수가 볼을 빼앗기는 장면이었다.
현대 축구에선 볼을 빼앗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전방 압박을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
그러나 압박 과정에서 다카이치 선수가 갑자기 상대편 발목 쪽을 향해 거친 태클을 가했다.
훈련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과열됐지만 다카이치는 사과의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얼굴에 흐르는 땀만 유니폼으로 닦아낼 뿐이었다.
결국 감독에 의해 훈련장에서 퇴장당하는 것으로 영상이 마무리되자 단장님이 팔짱을 낀 채 말을 꺼냈다.
“그게 한두 번이면 말을 안 하겠는데, 내가 2주 동안 지켜봤는데 3~4번 그런 경우가 있더라. 그게 4번째 마지막 영상이야. 감독도 보다 못해서 퇴장 조치시킨 거지.”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나니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사카까지 가서 이 선수를 만났다면 이런 귀중한 정보는 못 얻었을 수도 있었다.
‘운이 좋았어. 단장님 아니었으면 트러블 메이커 영입을 고려할 뻔했어···’
내가 가진 능력의 유일한 단점이 바로 이거다.
선수 본인이 구단과 마찰이 있거나, 자기 행동이 문제가 될만한 행동이라 인지하지 않으면 특이사항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이거 때문에 되도록 선수들 플레이를 직접 보려 하는 편이긴 한데······.’
그러나 다시 처음부터 임대 선수 명단을 뒤적거려야 하는 걸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커피를 말끔히 마신 단장님은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슬쩍 물어왔다.
“근데 좌측 윙어가 꼭 필요한 거야?”
“네. 감독이 원하는 포지션이기도 하고, 제가 봤을 때도 왼쪽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서요.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적 자금도 현재로선 마련하기 힘들구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은 그가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나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혹시 ‘FC 류큐’라고 들어봤냐?”
“FC 류큐라면······ 그 오키나와 있는 J2 리그 소속 팀이요?”
“그래 서울 유나이티드랑 자매결연 맺은 곳.”
FC 류큐. 지금 있는 가고시마 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오키나와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뭐 대충은 알고 있어요.”
“거기에 딱 너가 원할만한 선수가 있거든. 어때? 한번 보러 갈래?”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순간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자 그는 스마트폰에서 내가 원할만한 선수라는 자의 프로필을 보여줬다.
“이놈인데··· 저번 시즌 성적도 좋고, 무엇보다 딱 너가 원하는 ‘하드 워커’야.”
선수 프로필을 보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능력치 창에 옆쪽으로 살포시 나타났다.
FC 류큐 소속. 공격형 미드필더(왼쪽), 미드필더(왼쪽)
주력: 15 패스: 10
가속도: 13 민첩성: 14
개인기: 14 중거리 슛: 12
천재성: 10 타고난 체력: 14
크로스: 11 드리블: 13
특이사항 : 곧 1부리그로 승격될 구단의 사정에 만족함.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이 있음.
‘좋은데?’
능력치를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윙어로서 가져야 할 세부적인 능력치가 상당히 준수했다. 오히려 준주전급이 아닌 완전 주전급이라 해도 믿을 정도.
다카이치가 왕성한 활동량과 연계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면, 루카 라조비치는 전형적인 돌파 형 윙어였다.
‘어차피 곤잘레스가 포항으로 떠나서 외국인 쿼터 자리는 문제없으니까.’
“어떤 것 같아?”
단장님은 씩 웃어 보이며 내 의중을 떠봤다.
원래 노렸던 다카이치는 물 건너갔지만, 이 정도 능력치의 선수가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 선수. 오늘 볼 수 있어요?”
* * *
나는 호텔 1층 홀에서 운영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신음 뒤에 힘없는 운영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운영팀장 김지철입니다······
“네 팀장님. 지금 어디세요?”
-아 단장님이시구나······ 그때 부탁하셨던 투어 중간에 친선전을 가질만한 팀이 있는지 일본 현지 구단들과 연락 주고받고 있어요. 근데 지금 어디세요?
전화기 너머로도 느낄 수 있는 그의 피곤해 보이는 목소리. 나는 침착하게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김종찬 단장님을 잠깐 만났습니다.”
김종찬 단장님이란 말에 놀랐는지 운영팀장이 내게 되물었다.
-단장님을 만났다구요? 아니지··· 전 단장님이요?
“네. 만났습니다. 지금도 같이 계시구요.”
-그러면 아까 전화 온 게 김종찬 단장님이셨단 거에요?
“그렇죠?”
-아니, 저도 만나 뵙고 싶었는데 왜 저한텐 말을 안 해주셨어요. 그러면.
운영팀장 김지철.
그 역시 단장님과 함께 5년이란 시간을 보낸 팀원 중 한 명이긴 해서 그런지 목소리에 섭섭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누군가는 선수단 마중을 나가야죠. 전 그게 운영팀장님이 충분히 해주실 거라 생각했던 거고요.”
전화기 너머로 기가 찬 듯 한숨을 내쉬고 있는 운영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예상대로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체념한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전화하셨어요···
“아. 오늘 오후 훈련 영상 촬영해서 제 쪽으로 좀 보내주시겠어요?”
-단장님 오후에 훈련장에 안 계세요?
“네. 잠깐 어디 좀 가야 해서요.”
-어디를 가시는데요?
운영팀장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오키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