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52)
52. 여름 이적 시장(3)
24세(1997.01.12)
주발: 오른발
FC 아브닐 소속. 수비형 미드필더(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중앙 미드필더(전천후 미드필더)
주력: 12 패스: 13
가속도: 13 시야: 14
중거리 슛: 12 태클: 13
몸싸움: 13 타고난 체력: 14
판단력: 12 팀워크: 12
골 결정력: 12
특이사항: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뛰고 싶음. 소속팀이 간절함.
박명원을 보러 가서 우연히 눈에 보인 또 한 명의 선수.
바로 3선 미드필더 자원에서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던 이신우 선수.
흔히 말하는 육각형에 가까운 능력치에, 수행하는 롤도 3선에서 볼을 뿌려주거나 운반해주는 미드필더.
지금 임민우가 리그 내 탑급 능력치를 보유 중이라 그렇지, 이 정도만 돼도 충분히 리그에서 좋은 자원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
아브닐의 연습경기 때도 박명원이 전진할 때 속도를 죽이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양질의 패스를 후방에서 뿌려줬던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측면 자원들이 상당히 빠르고, 측면에서 안쪽으로 좁혀들어오는 전개가 주공격 루트였으니까.
임민우라는 월등한 클래스의 선수가 주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와의 계약기간은 1년.
게다가 30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여서 전 경기 풀 선발로 뛰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대체 자원은 필수였다.
‘뭐······ 여차하면 중앙 미드필더 자리로 써먹어도 괜찮으니까.’
정말 만약에 임민우가 마음이 바뀌어 재계약을 한다 해도, 본세비치 감독의 전술이 343과 352를 적당하게 혼용해서 쓰는 전술이기 때문에, 이신우가 활약할만한 자리는 어디든지 있었다.
그걸 선택하는 건 감독의 몫이긴 하지만······.
게다가 임민우의 대체 자원인 것 뿐 아니라, 이적료 지출도 아낄 수 있다는 장점까지.
‘급료 지출만 나가는 거니까, 빠듯한 이적료 지출도 아낄 수 있어서 좋지. 잘만 협상한다면 대구의 원창진 선수까지도 영입할 수 있겠어.’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은 여름 이적 시장 행보에 흐뭇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쯤 도착한 서울의 홈 경기장이 있는 상암.
도착 즉시 나는 프런트로 올라가면서 스카우트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단장님.
“저 도착했습니다. 바로 회의 들어갈 거니까 스카우트 팀원들 모두 대회의실로 모여달라고 전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어떤 거 같습니까?”
스크린 옆에 앉아 있던 백 단장이 우리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볼수록 신기하다. 백 단장과의 이 세 번째 시즌은.
3년 동안은 같이 일해봤지만, 이번 시즌의 그는 그 전과 너무나도 달랐다.
기존에는 항상 면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선수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면 이번 시즌엔 마치 좋은 선수가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고 있는 듯이 움직이는 듯했다.
“스카우트 팀장님?”
나를 부르는 백 단장의 목소리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 네.”
“어떤 것 같습니까. 이 선수들.”
당연히 만족스럽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팀에 필요한 포지션에 이 정도 퀄리티를 가진 선수들을 이적료 지출 없이 데려올 수만 있다면 그것만 한 베스트는 없을 거다.
팬데믹 사태로 인해 상당히 위험해진 재정 상태.
그러나 지금 당장 기세를 탄 서울을 이대로 쭉 유지 시키기 위해선 양질의 선수들을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보강해내야 했다.
아니 해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여름 이적 시장 대비를 지금부터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니까.
나는 영상을 보면서 적어놨던 선수의 장단점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명원 선수 같은 경우는 전방 압박 자체는 좋은데, 뒷공간이 너무 헐거워지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죠. 확실히 이 선수의 가장 큰 단점이 압박에 짜임새가 없는 거니까요.”
“그에 반해 이번에 올린 리스트에 있는 성남의 윤종수 선수는 전방 압박도 준수하고, 빠른 발을 통한 측면 공격 지원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격력 부분에선 백 단장이 보고 온 박명원보단 떨어질 수 있지만, 그의 단점을 상쇄한 게 성남의 윤종수였다.
지난 시즌부터 주전 윙백 신지우의 교체 자원으로 점찍어 놨었던 성남의 윤종수.
그러나 백 단장은 내 말을 듣고 턱을 매만지며 잠깐 고민하더니 리모컨을 통해 FC 아브닐의 경기 영상에서 다른 화면으로 바꿨다.
“윤종수 선수의 이번 시즌까지의 데이터입니다.”
마치 내가 윤종수 선수를 언급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윤종수의 시즌 데이터를 꺼낸 백 단장은 천천히 스크린 앞쪽으로 걸어왔다.
“지난 시즌 36경기 0골 2도움. 드리블은 0.21로 리그 내 34위, 크로스는 0.37로 리그 내 74위네요. 성남이 강등권에 머물러있는 팀이다 보니 지표 자체는 좋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걸 감안한다면 좋은 선수는 맞습니다.”
“······”
“그런데 저는 이 선수의 전방 패스 비율이 살짝 아쉬운 느낌이 있어서요.”
백 단장은 드리블, 크로스 수치 옆에 자리 잡은 전방 패스 부분에 레이저 포인터를 쏘면서 말을 이어갔다.
“13.31로 리그 내 69위. 성남의 성적 때문에 이런 수치가 찍혔다고 보기에도 애매한 게, 저번 시즌 성남의 공격 루트는 우측면에서 68% 진행됐습니다.”
“······”
“이번 시즌은 74%로 더 늘어났구요.”
“······”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꼼꼼히 살펴봤었던 백 단장이었기 때문에.
그가 방대한 데이터들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놓는 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절로 쳐질 정도였다.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시간을 어떻게 쓰길래 이런 걸 전부 혼자 다 하는 거지?’
시즌 준비에 있어서 이적 시장이 가장 메인인 건 맞지만, 그 외에도 모든 업무는 백 단장의 손을 거치니까. 도대체 어디서 시간을 내는 건지 감이 안 올 정도긴 했다.
‘하여튼 대단한 사람이야······.’
“공격 루트가 오른쪽에 치중된 팀에서 전방 패스 수치가 이렇게 적게 나온다는 건, 선수단의 문제라기보단 저는 선수 본인의 고유 스타일이 전방 패스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 단장의 말에 스카우트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를 직접 보고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하는 팀원들이야말로 백 단장이 말한 것이 어떤 부분을 말하는 건지 이해했을 것이다.
“물론, 윤종수 선수의 전방 압박 이해도나 수비적인 측면들은 리그 내 상위권 팀들 주전 윙백들과 견주어도 괜찮은 수치가 나오긴 합니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건 윙백의 공격 옵션 여부 같거든요. 본세비치 감독의 전술 스타일도 측면 공격에서부터 시작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방 압박에 취약한 단점은 여전하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아, 그 부분은 프런트로 돌아오기 전에 미리 감독, 코치님들과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전방 압박 부분은 다소 아쉽긴 하지만, 신지우 선수가 뛰는 자리에 이기석, 강현석 선수를 넣어서 변수를 만드는 것보단 박명원 선수처럼 본래 윙백 자리에서 뛰면서 공격력이 준수한 편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전방 압박 부분은 훈련으로 어떻게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벌써 감독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오셨어요?”
“네. 박명원 선수건, 윤종수 선수건 지금 우리에겐 윙백 서브 자원은 꼭 필요하다고 하셨으니까 최대한 팀에 필요한 선수를 저희가 선택하면 됩니다. 협상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할 거니까요.”
묘하게 자신감이 느껴지는 그의 발언. 하지만 3년간 그가 보여줬던 업적들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하다고 여겨질 만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길을 선택해내던 그였으니까.
게다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백 단장의 심층 분석은 항상 많은 걸 배워가게 만들어줬다.
“그러면 박명원 선수 추가 스카우트 파견할까요?”
스카우트 회의에서 최종 결정된 선수는 보통 한두 경기 더 관찰하면서 팀에 부합하는지를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백 단장은 책상 구석에 있는 탁상 달력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렇게 하시죠. 한두 경기 더 지켜보고 이적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발견된 문제점이나 특이사항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주세요.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이신우 선수인데······.”
말끝을 흐린 백 단장이 리모컨 버튼을 꾹 누르자, 3선 자원인 이신우 선수의 프로필이 화면에 나타났다.
“두 번째는 3선 미드필더입니다. 아시다시피 임민우 선수와의 계약은 이번 시즌이 끝입니다. 선수 본인이 계약을 추가로 연장할지, 안 할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기에 그의 대체 자원을 찾아두려고 합니다.”
“이신우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네. 저도 아브닐에 이런 선수가 있다는 건 모르고 가서 직전 커리어를 찾아보려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소속 클럽이 없는 대학 리그 선수였습니다. 이번에 졸업하고 프로팀으로 전향을 노리는 거 같구요.”
“다른 팀에서 제의가 없었나 보네요?”
내 물음에 백 단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대학 졸업 전에 프로팀에서 채가기 마련인데 그런 제안조차 없었다는 건······.
“1년 전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고, 이제 막 재활에 성공한 터라 다른 팀에서 채가지 않은 자원입니다.”
역시나.
보통 이런 상황은 장기 부상을 끊었을 때나 발생하는 경우였다.
‘십자인대 부상이라······. 요즘엔 의학이 발전해서 재활도 금방금방 한다지만······.’
이신우가 소화해야 하는 3선 미드필더는 상당히 가혹한 자리였다.
공격 전개하는 상대 팀 선수들과 경합을 붙어줘야 했으며, 거친 몸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과한 압박에 시달리는 상당히 어려운 자리기도 했다.
“그래도 3선 미드필더 자원인데 부상 이력이 없는 선수가 낫지 않을까요······?”
내 물음에 백 단장 역시 그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잠깐 스크린을 응시하며 뭔갈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아무래도 피지컬적인 약점이 있으면 공략당하기 쉬운 포지션이니까요.”
“보여주신 경기 영상에선 볼배급 적인 면에선 장점이 있는 선수 같아 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하부리그 소속이기도 하고, 친선전이어서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한 경향도 있구요.”
물론 첫 번째 타겟이었던 박명원도 하부리그가 상대여서 저런 폼을 보여줬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박명원은 서브 자원으로 영입하려고 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3선 미드필더는 다르다.
매 시즌 3선 자리에 목매면서 이적 시장에서 고군분투했었고, 이번 시즌도 임민우 선수가 은퇴 번복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호성적은 거두지 못했을 것이었다.
“스카우트 팀장님 말씀도 맞습니다. 상대가 거칠게 압박하지 않은 것도 있었죠. 그러나 영상에서 보시다시피 탈압박을 하는 과정에서 좋은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주던 선수입니다. 이런 센스들은 연습한다고 쉽게 나오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
“지금 당장 즉전감으로 임민우를 대체하는 게 아닌, 서브 자원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한다면······ 리그에서 충분히 먹힐만한 자원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부상 이력이 조금 걸리는데요 단장님. 그리고 지금 장현진도 3선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고요.”
실제로 개막전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장현진. 그 이후에도 임민우의 든든한 백업으로 이번 시즌 상승세를 이끄는 주역 중 한 명이었다.
내 말을 들은 백 단장은 잠깐 고민에 잠기더니, 리모컨으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며 말했다.
“그러면 이 영상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상승세의 전반기… 그리고…(1)
백 단장이 튼 건 이름 모름 두 팀의 연습 경기 영상.
그중에서도 형광 조끼를 입은 채 중원에서 뛰고 있는 선수에게 영상 시점은 고정된 상태였다.
“팀장님······ 이거 이신우 선수 영상인 거 같은데요······?”
옆에 앉아있던 스카우트 팀원이 조용히 속삭이자, 지금의 프로필과는 사뭇 달라진 이신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13분이라는 짧은 영상 속에서 주로 다룬 건, 이신우의 볼배급 능력과 컷팅 능력. 그리고 탈압박 능력이었다.
‘설마······ 탈압박 과정에서 보여주는 동작들을 강조하고 싶은건가?’
영상의 내용은 회의 초반에 보여줬던 경기 영상과 큰 차이는 없었다. 단순한 FC 아브닐의 연습경기.
그러나 딱 한가지 포인트가 달랐다.
바로 이신우의 탈압박 과정.
압박이 강하게 가해지는 3선 미드필더 자리는 어느 정도 탈압박 능력이 요구된다.
볼을 배급하면서 팀의 공격 줄기를 담당하는 자리를 상대 팀 입장에선 가만히 놔두는 것만큼 안일한 플레이는 없으니까.
영상 속 이신우는 두 명이 거칠게 압박해 들어오는 것도 재빠른 턴 동작으로 벗겨내 전방으로 볼을 길게 찔러 넣어주고 있었다.
“차이점 혹시 발견하셨나요?”
그 장면이 지나가자 백 단장은 영상을 멈춘 뒤,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탈압박하는 과정이 다르네요.”
“그렇습니다.”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백 단장이 리모컨 버튼을 한 번 더 누르자, 다음 화면에는 경기 초반 이신우가 보여준 동작과 조금 전까지 봤던 이신우의 동작을 정밀하게 비교한 데이터가 나와 있었다.
“방금 보셨던 경기는 이신우가 십자인대 부상에서 완전히 재활에 성공한 뒤에 가진 친선경기 영상입니다. 상대는 K2 리그 소속 안양 FC구요.”
“······”
“오른쪽 무릎이 부상 부위입니다. 그러나 영상 속에서 보여주는 이신우 선수의 탈압박 동작은 무릎에 상당한 무리를 가하는 방식이죠.”
확실히 무릎에 무리는 가는 동작이지만, 상대를 속이고 비좁은 공간을 빠져나오기에는 특화된 개인기.
그리고 저 정도 동작을 무리 없이 계속 선보일 수 있다는 건······.
‘부상은 완치됐다는 거군······.’
제갈공명 비단 주머니처럼 필요한 순간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자료들을 보면 백 단장의 꼼꼼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장님. 완치된 게 맞다면, 저런 탈압박 방식을 버릴 이유가 없지 않나요? 가장 먼저 봤던 영상에선 무릎에 무리가 가는 동작을 일절 안 하는 거로 봤는데요.”
바로 그때. 팀원 한 명이 조용히 손을 들며 말하자, 백 단장은 천천히 스크린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침착하게 말했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신우 선수가 부상 부위를 의식해서 저런 탈압박 스킬을 자제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네. 아마도 본인이 스타일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좀 더 간결한 패스, 그리고 작은 동작으로 효율적으로 압박을 벗어나는 것. 이신우 선수가 불필요한 동작이 과하게 들어가 있는 자신의 플레이 방식을 고쳐나가고 있는 과정인 거죠. 그리고 이 부분은 아브닐의 최진우 감독님께서도 말씀해주신 부분입니다. 이신우 선수가 플레이 스타일 교정을 하는 중이라고요.”
어떤 질문에도 빈틈없는 답변을 하는 백 단장의 모습에 나는 회의 중이라는 것도 잊고 희미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 * *
“단장님. 여름 이적 시장 영입 명단 벌써 나왔다면서요?”
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온 운영팀장이 내 앞자리에 앉으면서 물었다.
“얼추요. 스카우트 팀이랑 회의한 것도 잘 끝났고, 현장에 계신 감독, 코치님들도 대부분 동의하셨거든요. 아, 이건 잘 마실게요.”
“세 명 정도 생각하신다고 하셨는데, 나머지 한 명은 누구예요?”
“대구에서 뛰는 원창진 선수요.”
“아, 그 중앙 미드필더 뛰시는 그분?”
“네. 아무래도 다음 시즌에 임민우 선수가 계약 연장하지 않는 것도 생각해놔야 하니까요.”
임민우 선수가 1년 단기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다가와서 그런지, 커피를 홀짝 마시던 운영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마음 같아선 어디 붙잡아놓고 2년 계약 맺고 싶긴 한데 말이죠······.”
“대체 선수들 최대한 알아보고 있기는 하니까, 어떻게든 될 겁니다. 좋은 선수들 위주로 데려올 생각이거든요. 요즘 홍보팀이랑 하는 일은 어때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테이블을 응시하며 묻자, 운영팀장은 맥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마시던 커피를 내려놨다.
“말도 마세요. 지금 완전 최전성기라니까요?”
“이틀 전에 봤을 땐 성장세가 좀 얌전한 편 아니었어요?”
여름 이적 시장을 대비하기 위해 다른 업무는 잠시 뒤로 미뤄둔 상태여서 내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는 이틀 전이 가장 최신이었다.
“이틀 전엔 그랬죠. 그런데 알고리즘 한 번 쫙 타니까 성장세가 말도 안 되게 찍히던데요? 한번 보실래요?”
운영팀장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이내 구단 유튜브 채널의 최근 구독자 성장 추세 그래프를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이때가 실시간 급상승 동영상 랭킹에 들었을 때 구독자 추이고······ 이게 오늘 구독자 수에요.”
야금야금 성장시킨 15만 구독자에서 정체돼있던 와중 이틀 전을 기준으로 현재 32만 구독자까지 무섭게 치고 올라와 있었다.
“좋네요. 요즘은 뉴미디어를 통해 홍보하는 게 더 잘 먹히기도 하니까요. 채널 커뮤니티 기능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다양한 영상을 올리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네요.”
“안 그래도 선수단의 가벼운 훈련 영상이나, 선수단끼리의 챌린지 영상 같은 거 올려봐도 괜찮겠냐고 여쭤보려 했는데, 어떤 거 같으세요?”
축구 구단 너튜브 채널이기 때문에 전술적인 포인트가 노출될만한 영상을 올리는 건 금기였다.
그러나 운영팀장의 말처럼 가벼운 트레이닝 영상이나 선수들 챌린지 영상은 오히려 다소 딱딱하기만 한 ‘공식 채널’이라는 이미지를 탈피시켜줄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었다.
“진행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처음엔 쇼츠 영상으로 접근성을 더 키우고, 점차 영상 시간대를 늘려가면서 한 번 해보시죠.”
“알겠습니다. 사인회 일정이나, 유소년 축구 교실 일정은 어떻게 할까요?”
“여기까지 오셔서 일 얘기만 한가득하시네······.”
카페에 온 취지는 잠깐이라도 쉬기 위해 온 것이었는데, 어느새 업무 회의처럼 변해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작게 툴툴거리자, 운영팀장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단장님이 바쁘시니까 이렇게 짬 날 때 얘기 드리는 거죠. 김종찬 단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일하면서 쉬어라.’라고.”
“그 일 하면서 쉬라 하는 분은 지금 독일로 날아가셔서 매일매일 맥주 사진만 저한테 한가득 보내시는걸요.”
김종찬 단장, 아니 김종찬 이사가 독일에 간 건 구단 유소년 교류 일정 때문.
항상 일 처리 하나는 똑 부러지는 분이기 때문에 놀고 있다곤 생각이 안 들지만, 매일 저녁 보내는 맥주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일을 하는 건지 의문이 작게나마 들곤 했다.
김종찬 단장과의 일화를 소개해주자 피식 웃음이 터진 운영팀장에게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모두 들이킨 뒤 말했다.
“유소년 축구 교실 일정은 원래 예정보다 이 주일 정도 미루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기세를 몰아서 전반기를 끝내는 게 더 도움 될 것 같아서요. 지금은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하게 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인회 일정이랑 유소년 축구 교실 일정 잘 조정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
“이번에 새로운 프로젝트 하나 진행하려고 하는데, 혹시 전문가 한 분만 불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말과 함께 다 먹은 일회용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리자, 운영팀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카페에서 운영팀장과 얘기를 나눈 지 삼일 뒤.
운영팀장은 단장실 바닥에 매트 하나를 깔아둔 채 스트레칭 동작을 하는 나를 보며 물었다.
“이거였어요, 단장님?”
“뭐가 말입니까······. 흡······! 후······!”
“지금 하시는 거요······ 그거 부상 방지 스트레칭 동작들 아닌가 해서요.”
“맞습니다만.”
“근데 이걸 왜 단장님이······.”
운영팀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나는 하던 스트레칭 동작을 멈추고 매트에서 일어났다.
“선수단에 적용하기 전에 제가 직접 한 번 해보는 거죠. 원래 직접 해봐야 장단점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잖아요.”
“그 차림으로요?”
“제 차림에 무슨 문제라도······.”
“움직이기 불편한 복장이잖아요. 이왕 하실 거면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서 하시든지 하시지.”
지금 내가 하는 스트레칭 동작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성행 중인 부상 방지 프로그램이었다.
길고 긴 리그를 원활히 치르기 위해선 일단 선수단의 전력 누수가 가장 적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부상 방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훈련 중 부상 방지나 부상 회복 속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예전부터 쭉 찾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 이번에 국가 대표 소집 훈련을 위해 잠깐 들어왔던 독일의 부상 방지 의료팀과 연락이 닿아 어느 정도 조언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희도 부상 방지 프로그램은 있긴 하잖아요.”
운영팀장이 더 이상 말려봐야 의미 없다는 걸 알았는지, 옆쪽에 놓인 빈 의자에 앉아 스트레칭 동작을 보며 물었다.
“그렇긴 하죠.”
“그러면 굳이 새로운 부상 방지 프로그램을 들여와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후······! 아니죠. 오히려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꽤 난이도가 높았던 동작을 끝마친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단순히 부상 방지 목적뿐 아니라, 부상 회복에도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경기 수, 한정된 스쿼드 자원. 유럽의 초호화 구단들처럼 탄탄한 스쿼드를 만들지 못하는 저희로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의 부상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몇 동작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땀이 얼굴에서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걸 느낀 나는 의자에 걸쳐뒀던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우리 팀 스타일이 압박도 거세고, 거기서 파생되는 거친 플레이들이 많다 보니 부상 걱정은 항상 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후······!”
마지막 가볍게 걷는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마무린 내가 호흡을 고르고 있자, 운영팀장은 책상 위에 틀어져 있는 영상 재생 길이를 보며 화들짝 놀랬다.
“하, 한 시간 삼십 분? 너무 긴 거 아니에요?”
“사이클은 이제 구단 의료팀이랑 상의해서 저희 팀에 맞게 수정해봐야죠. 일단 먼저 해본 겁니다. 기존에 우리가 하던 부상 방지 프로그램이랑 무슨 차이가 있나 해서요.”
“그래서 어떤 거 같으신데요?”
“확실히 저는 독일의 부상 방지 프로그램이 더 좋아요. 체력적인 소모는 더 크지만, 근육의 피로를 확실하게 풀어주는 느낌도 들고요.”
축구라는 스포츠가 하체 근육에 상당한 피로감을 몰고 오는 스포츠기 때문에,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케어해주는 게 필수였는데, 이번에 가져온 독일의 부상 방지 프로그램은 하체 근육의 피로도를 최대한 덜어내 주는 것 같았다.
“단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딱히 드릴 말씀이······ 애초에 단장님도 선출이시니까요.”
“에이, 이제 평범한 일반인이죠. 축구화 벗은지도 몇 년짼데······.”
현역 선수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말을 돌리자, 운영팀장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또 혼자 끙끙 싸매지 마시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운영팀장도 운영팀 업무만으로도 빡빡할 게 분명했기에, 정중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할 때였다.
부상 방지 프로그램 영상이 재생되고 있던 스마트폰 상단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생겨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메시지 함을 열어본 나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민찬영, 이기석 선수 훈련 중 부상 당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한 번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 수석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