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75)
76. 이스트 랭커셔 더비(East Lancashire derby)(1)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블랙번 로버스의 훈련장 Brockhall Training Ground.
푸른 잔디밭 위에선 수많은 선수가 구슬땀을 흘리며 몸을 풀고 있었고, 이곳에는 유소년 교류 캠프 일정을 위해 와있는 전북 선수들도 뒤섞여 있었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백.”
선수들이 몸 푸는 걸 진득하게 보고 있을 때, 빌이 옆구리에 파일철 하나를 낀 채 내게 다가왔다.
“잘 부탁드려요. 빌.”
“하하,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겁니다.”
빌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KIM’은 예상대로 유소년 교류 캠프 일정에 포함돼있더군요.”
“전북에서도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선수거든요.”
“그러면 제가 아무리 좋게 본다 한들 이적 시키기 어렵지 않을까요? 아무리 자매결연을 한 팀끼리라 해도 저쪽에서 아끼는 선수라면 이적료도 많이 요구할 텐데요.”
빌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저렴한 시기일 수도 있죠······”
그러자 빌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는 스트레칭을 하는 전북의 ‘김준환’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뭐. 어떤 선수로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아무튼 면밀하게 체크해주세요. 데이터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건 다르니까요.”
“알겠습니다. 백의 말처럼 좋은 선수였으면 좋겠네요.”
빌이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그라운드 위로 돌아가자, 나는 턱을 괸채 선수들의 면면을 유심히 바라봤다.
블랙번 로버스의 유스 선수들을 확인하는 건 이번이 처음.
그동안은 이적 시장에 나온 선수들 위주로 보다 보니 나름 구단에서 중요하게 보고 있는 몇몇 유망주를 제외하고는 능력치를 살펴보지 않았었다.
그중 하나가 이번에 스토크 시티로 떠난 ‘피터 그라임스’ 정도.
‘U-17에서 기대됬던 선수는 피터 말곤 없었어. 그럼 남은 선수라고 해봐야······’
그 생각과 함께 블랙번 로버스의 선수단 쪽을 보자 눈에 들어오는 금발의 곱슬머리를 보유한 백인 소년.
‘어? U-23은 차출하지 않아도 된다 했었는데? 찰리 맥닐도 왔구나?’
21세(2000.05.17)
주발: 오른발
블랙번 로버스 F.C. U-23 소속. 중앙 미드필더(어드밴스드 플레이메이커, 전천후 미드필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중거리 슛: 14-17 천재성: 12-16
주력: 13 개인기: 13
가속도: 15 드리블: 14
민첩성: 13 시야: 13
크로스: 13 팀워크: 12
몸싸움: 13 타고난 체력: 13
패스: 14-16
특이 사항: 조만간 1군 무대에 데뷔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설렘. 구단의 승격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 슈팅 훈련의 빈도가 높았으면 좋겠음.
일부 능력치는 성장이 멈춘 상태였지만, 슛과 패스 부분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는 괜찮은 능력치 현황.
무엇보다 슈팅 능력치가 평범한 다른 능력치에 비해 잠재력이 상당히 높았다.
마치 첼시에서 뛰었던 레전드 플레이어를 연상시키는 능력치.
‘여기서 어떤 선수로 발전할지는 본인 몫이겠지만, 프리미어 리그 중상위권 팀에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준의 능력치긴 하네.’
찰리의 능력치를 조목조목 살펴보고 있을 때, 옆쪽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오셨군요. 단장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루이. 블랙번 로버스의 상승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감독.
“방금 막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제가 제일 늦은 거 같은데요? 다음 주 경기에 사용할 전술 관련 브리핑이 조금 늦게 끝나서······”
그는 주변을 슥 둘러보곤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다음 경기가 번리전이네요?”
“네. 선수들도 이번 기회에 번리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며 벼르고 있어요.”
블랙번 로버스의 전통의 라이벌인 번리.
이스트 랭커셔 더비(East Lancashire derby)라는 이명에 맞게 경기마다 상당히 치열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하긴 최근 전적이 좀 안 좋긴 했으니까요.”
이번 시즌 번리와의 맞대결인 내일 있을 경기가 처음.
안정된 스쿼드와 전술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고 있는 현재로선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지만, 그전까지는 번리와의 상대 전적이 상당히 밀리고 있었다.
“0승 4무 4패죠······.”
루이 감독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최근 전적을 중얼거렸다.
그가 최근 전적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
블랙번 로버스의 감독에 부임한 이후 번리를 상대로 단 1승도 챙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아직 이적생들이 완벽히 적응하지 않았는데도 감독님의 전술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인의 전술을 믿으세요.”
싱긋 웃으며 루이 감독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자, 그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습······ 이러면 안 되는데. 감독이 자신감이 떨어지면 꼭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단 말이지······.’
이번 번리와의 더비 경기를 승리 시 정말로 승격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현재 챔피언십 2위를 기록 중인 왓퍼드와 9점이라는 승점 차를 벌리며 도망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떤 방법으로 루이 감독의 자신감을 끌어올릴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미약한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평소와 같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단장님은 여기에 어쩐 일이십니까? 아직 밀려있는 업무가 엄청 많다고 들었는데······”
“하하, 이것도 업무의 일종입니다.”
“네?”
“관심 있는 선수가 있어서요.”
“저랑 같네요. 저도 관심 있는 선수가 있어서 연습 경기를 보려고 왔거든요.”
루이 감독이 싱긋 웃으며 다리를 꼬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전북에 관심 있는 선수가 있다구요?”
“네? 전북······?”
내 물음에 잠깐 멈칫하던 그는 뭔가 대화가 뒤섞였다는 걸 인지했는지 차분하게 말을 정정했다.
“아, 제가 관심 있는 건 저희 쪽 유스 선수입니다.”
루이가 말을 정정하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하긴······ 알 리가 없겠지······’
그는 제자리에서 서전트 점프를 하며 허벅지 뒤쪽 근육을 살펴보고 있는 찰리를 가리켰다.
“저 선수입니다. 찰리 맥닐.”
“찰리라······ 좋은 선수죠······.”
“어? 뛰는 걸 보셨나요?”
무의식중에 중얼거린 걸 들었는지 루이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나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아뇨. 그냥 프런트 팀원들이 얘기하는 걸 얼핏 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서야 선수의 능력치가 보인다고 말해주고는 싶었지만, 그래봐야 믿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하, 그렇죠. 찰리는 블랙번에서 기대되는 유망주 중 하나니까요.”
“제대로 성장해서 언젠간 ‘이우드 파크’에서 꿈을 펼치는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단장님. 저 선수 번리전 때 출전시킬 생각입니다.”
“네?”
찰리는 아직 프로 무대 데뷔 경험조차 없는 선수.
그런 선수를 중요한 더비 매치에 출전시키겠다는 루이 감독의 말을 순간 믿기 힘들었다.
“선발로 내보내실 생각이세요······?”
어지간해선 감독의 선발 라인업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블랙번의 승격은 나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목표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중요한 경기에 아직 성장 중인 선수를 투입하겠다니.
심지어 찰리가 뛸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에는 폼이 절정에 이른 조던 화이트가 있지 않은가.
그러자 루이는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교체 출전시킬 생각입니다. 아마 번리와의 경기에는 다양한 전술을 쓰게 될 것 같은데, 그중에 찰리가 필요한 전술이 있어서요.”
현재 팬데믹 사태의 영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체 카드는 5장으로 늘어난 상태.
루이 감독이 교체로 내보낼 생각이라 말하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래. 5장 중 한 장 정도는 파격적인 기용으로 쓸 수 있지. 그리고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만약 루이 감독의 전술이 잘 먹혀들어 가서 혹시라도 찰리가 데뷔골을 터트리고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면?
그거야말로 블랙번 팬들이 가장 원하던 이상적인 상황일 될 수도 있었다.
구단 유소년 시스템에서 키워낸 선수가 라이벌 구단에 비수를 꽂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렇게 되면 팬들은 구단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더 자주 찾게 될 것이고, 구단 자체에서도 근본 있는 선수를 육성한다는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이미 1군 훈련은 진작부터 소화하곤 있었는데, 경기 감각을 꾸준하게 유지하려고 U23 경기에 계속 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연습 경기가 잡혔다고 해서 마침 새로운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여기에 참가시켰구요.”
입가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찰리에게 꽂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단장님이 관심 있다는 선수는 누군가요?”
흡사 매의 눈으로 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루이 감독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내게 묻자, 나는 전북 선수들과 모여 의견을 주고받고 있는 김준환을 가리켰다.
“저기 분홍색 축구화를 신은 선수입니다.”
“음······ 체격 조건도 괜찮아 보이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루이 감독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킴입니다. 준환 킴. 아주 좋은 선수가 될 재목이죠.”
* * *
“경기장 시설 쪽은 이쯤 하면 되겠네요. 교체해야 하는 좌석들은 시즌이 끝나면 고려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여유가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혹시 또 지시하실 사항이 있으실까요?”
내 옆에 붙어있는 잭이 관중석 계단 쪽을 쭉 훑어보며 물었다.
“아, 그리고 내일 경기에 동원될 경호 인력들도 평소보다 더 지원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있을 경기는 전통의 라이벌 번리와의 더비 매치.
그리고 2021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대목 중의 대목이었다.
그리고 잭은 블랙번 로버스의 오랜 팬으로서 ‘이스트 랭커셔 더비’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잘 알고 있어서인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네요······ 내일은 경기 결과에 따라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번리 팬들이 그렇게 과격합니까?”
“꼭 그런 건 아닌데······ 아시잖아요. 더비 경기 결과에 따라 온순한 사람도 초록 괴물처럼 돌변할 수도 있는 거······ 그리고 그게 꼭 번리의 서포터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 말과 함께 잭이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짓자, 얼추 감이 왔다.
‘이스트 랭커셔 더비’의 치열함이 말이다.
“그러면 더더욱 경찰 지원을 받아야겠네요. 혹시 그날 프리미어 리그에 중요한 경기가 잡혀 있나요?”
가슴 아프긴 하지만, 경찰 지원 순위는 프리미어 리그가 더 앞서는 편이다. 물론 하부리그라 해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건 아니긴 하지만······
“음······ 아뇨 딱히 없습니다. 내년 2일에 ‘노스웨스트 더비’가 잡혀 있는 거 말곤 없어요.”
“다행이네요. 곧바로 추가 지원 요청해 주세요. 그 정도만 하면 괜찮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잭이 그 말과 함께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출구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나는 하얀 입김을 불며 텅 빈 ‘이우드 파크’의 전경을 둘러봤다.
‘이제 승격까지 딱 절반 왔다. 내일 있을 경기에서 이기면 승격까지 70%는 왔다고 자부해도 괜찮을 정도야.’
물론 많은 경기 일정들이 후에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영입된 선수들이 주축은 베스트 11 말고도 꽤 준수한 자원들이 교체 멤버로 있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면에서도 자신 있었다.
-띠링!
경기장 전경을 감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들려온 핸드폰 알림 소리.
재킷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자, U23 감독인 빌에게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KIM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신가요?] – 빌 브라이슨문자를 본 나는 곧장 빌에게 전화를 걸었고, 몇 번의 신호음 뒤에 걸걸한 빌의 목소리가 들렸다.
-Hello?
“백입니다. KIM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때마침 오늘이 유소년 캠프 1차 일정이 종료되는 기간. 여기서 남을 선수는 남아서 2차 일정까지 진행하고, 나머지는 귀국하는 구조였다.
내 물음에 찰나의 침묵을 유지하던 빌이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 당장 더 좋은 무대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꼭 키우고 싶은 선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