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cer team leader shows his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95)
96. 재정비(5)
“수많은 클럽 중에 블랙번 로버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기자의 질문에 아센시오는 씩 웃으며 마이크를 자신의 입가에 가까이 댔다.
“야망입니다. 제 옆에 있는 블랙번의 단장님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출연하고 싶었거든요.”
“그림이요?”
“이제는 블랙번 로버스의 일원이 됐기 때문에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건 클럽에 실례일 수 있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지만 매 시즌을 계속해서 기대하셔도 실망하지 않을만한 그림이라는 것 정도는 말씀드릴게요.”
아센시오의 넘치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인터뷰.
가장 뒤쪽 자리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이를 지켜보고 있던 로마노는 날카로운 눈매로 백 단장을 쏘아보고 있었다.
‘야망? 그림? 정말로 아센시오를 돈이 아니라 구단의 비전으로 설득해낸 거란 말이야?’
블랙번 로버스는 ‘축구 명가’라 불리곤 있었지만, 암흑기에 빠진 지 10년이 넘어서 이제는 그 위상조차 잃어버린 비운의 구단.
그런 팀에서 한 시즌 반짝 성적을 냈다고 해서 아센시오 같은 탑급 플레이어를 데려온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믿을만한 정보원에게 들었던 걸로는 아센시오는 도르트문트 이적에 가장 근접했다고 했으니까.
정보원이 블랙번 로버스가 접촉을 하긴 했다는 말에 코웃음을 쳤던 로마노였다.
“블랙번으로의 이적은 향후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들기 위해 출전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이 아닌가요?”
앞에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마르티니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하자, 아센시오는 깍지 낀 손을 턱 밑에 슬며시 대며 답했다.
“없다곤 할 수 없겠죠. 월드컵을 앞두고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할 수 있는 팀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블랙번 로버스는 체계적인 비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적을 결심했던 것도 그게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구요.”
“······”
“실제로 블랙번 로버스는 이번 시즌 챔피언십에서 아주 인상적인 성적을 거둬들였습니다.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요. 그리고······”
아센시오는 잠시 하던 말을 멈추더니 기자회견장에 가득 모여있는 기자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기자회견장을 가득 채우고 계신 기자분들이 앞다투어 취재하러 올 정도의 클럽으로 올라섰구요.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한 클럽에서 제 폼을 끌어올려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드리는 게 제가 로버스를 택한 또 하나의 이유기도 합니다.”
“임대 후 이적 조항이 걸려 있던데, 만약 구단의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하시는 건가요?”
마르티니의 이어지는 질문에 아센시오가 백 단장 쪽을 보며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자, 백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탠딩 마이크를 입가 쪽으로 끌어왔다.
“그 질문은 제가 답변드리겠습니다.”
백 단장이 입을 열자, 그 순간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운 기자들이 다급하게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공식 석상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돌풍의 팀을 이끄는 단장 백준석. 블랙번 로버스에 취임식 말고는 정보도 찾기 힘들 정도로 베일에 감춰져 있던 인물.
이번 아센시오 입단식에 백 단장이 모습을 드러낼 거란 소식에 기자들은 간단한 인터뷰를 따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이곳에 와있기도 했다.
“임대 후 이적을 선택했던 이유는 그것이 아센시오 선수와 블랙번 로버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삼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
“꾸준한 출장 시간을 원하는 아센시오 선수.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해 스쿼드를 보강하고 싶은 블랙번 로버스. 그리고 부상 이후 다소 떨어진 폼을 회복시키고 싶은 레알 마드리드. 이 세 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임대 후 이적이 가장 최선이었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로마노는 이제야 아센시오가 블랙번을 택한 또 다른 이유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안 했지만, 블랙번 로버스도 기가 막힌 보험 하나 깔아두긴 했군······’
아센시오가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임대 후 완전 이적 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돌려보내면 그만.
정말 수많은 빅클럽들이 뛰어들었던 아센시오 영입전에서 승리한 것도 모자라, 블랙번이 손해 보는 딜은 하지 않는 백 단장의 전략에 로마노는 혀를 내둘렀다.
“답변이 조금 됐을까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백 단장이 되묻자, 여태까지 잠자코 있던 로마노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아센시오 선수에 대한 질문이 아닌 블랙번 로버스에 관한 질문도 괜찮을까요?”
로마노는 아센시오에 대한 기삿거리는 이미 충분히 나왔다고 판단해서 이제는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백 단장에 대한 정보를 빼내 볼 심산이었다.
그러자 잠깐 고민하던 백 단장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커트오프사이드 ‘파브리지오 로마노’ 기자님 맞으시죠?”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백 단장이 답하자, 로마노는 망설이지도 않고 가장 궁금했던 부분을 먼저 묻기로 했다.
“시즌 개막에 앞서 블랙번 로버스는 수많은 선수를 영입하며 스쿼드를 보강하고 있습니다. 기존 선수들을 지키지 않고 새로운 선수들로 수혈할 생각을 했던 이유가 있으십니까?”
아센시오의 이적이 확정됨과 동시에 발표했던 지난 시즌 블랙번 로버스의 주축 ‘알렉스 페드로’와 ‘케빈 호프만’의 이적 소식.
심지어 케빈 호프만은 이적한 지 단 한 시즌밖에 안 된 자원이었다.
“선수의 미래를 생각해서 보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블랙번 로버스가 단순 셀링 클럽을 지향하는 건 아니구요. 그렇다고 로버스가 현재 재정적으로 상당히 여유로운 구단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팀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차세대 로버스의 스타 플레이어로 성장할 페드로를 판매한 거에 대해선 서포터들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신 성장한 페드로에 버금가는 스타 플레이어인 아센시오 선수를 데려올 수 있었죠. 페드로 선수는 어느 클럽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좋은 선수입니다. 그의 앞길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빌 뿐입니다.”
로마노의 미끼성 질문에도 쉽게 넘어오지 않고 모범적인 답만을 내놓는 백 단장.
장내에 모인 기자들은 내심 자극적인 기삿거리 요소라도 나올까 숨죽이며 둘의 질의응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블랙번의 단장은 이런 사람이군. 더 이상 꼬드겨봐야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어떤 질문을 하던 철저하게 계산된 모범답안만 내놓으리라 판단한 로마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선수들이 말하는 블랙번 로버스의 ‘비전성’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보나 마나 프미리어 리그에서 잔류하겠다는 뻔한 답이겠지만······ 마무리는 해야 하니까······’
그러나 로마노의 질문을 들은 백 단장은 씩 웃으며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손가락 두 개를 피며 자신감 있게 말하는 백 단장.
“2년 이내에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이상 진출. 그리고 첫 유럽 대항전 우승. 당장 블랙번이 단기적으로 노리고 있는 목표입니다.”
이제 막 챔피언십에서 승격한 팀에서 나올 수가 없는 당찬 포부.
백 단장의 짧고 굵은 워딩은 바쁘게 인터뷰 내용을 받아적던 기자들의 손을 얼어붙게 했다.
* * *
[BBC] 입단식조차 파격적···! 과거 명가는 정말로 재건을 꿈꾼다! 블랙번 로버스 단장 준석 백의 화려한 출사표···!↳아센시오를 데려오고 저런 말을 하니까 멋은 있네
↳아니 근데 저런 거 감당할 수 있냐. 이러다 다시 강등당하면 어쩌려고······
↳그러게 프리미어 리그는 챔피언십이랑 확실히 다른데······
↳난 그냥 쭉 지켜보기로 했다. 굳이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도 아닌 거 같고. 일단 부임 첫 시즌 만에 성과 냈고, 지금 이적시장도 전례 없는 순항 중이라 뭐 말할 게 없는데?
↳아센시오가 부상 전 폼 찾기만 해주면 가능성은 있지. 막말로 리그 10등 밑은 우리 팀이 잘하는 것보다 상대가 미끄러져서 알아서 내려가는 게 다반산데
↳오른쪽 풀백 영입 오피셜 아직이야······? 거기만 보강되면 베스트 11은 얼추 나온 거 같은데.
[스카이스포츠] 마르코 아센시오 “블랙번의 야심을 보고 왔다.”↳그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절대 안 비추길래 궁금하긴 했는데 상당히 스펙터클한 양반이네. 블랙번 단장 ㅋㅋㅋㅋㅋ
↳다짜고짜 나와서 “우리 2년 이내에 유럽 대항전 나갈거임. 그리고 우승할 거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ㅋㅋㅋㅋㅋ
↳여기 있네요
↳근데 진짜로 저거 달성하면 어쩌냐?
↳2년 이내에 진짜로 유럽 대항전 나가면 ‘이우드 파크’앞에서 핫도그 200개 쏜다.
↳너 기억했다.
[커트오프사이드] 블랙번 로버스의 체계적인 시즌 구상. 선수들이 선택하는 클럽엔 이유가 있다. [포포투] 거대 자본에 잠식당했던 이적시장에서 피어난 낭만의 팀. 레알 마드리드 떠난 ‘마르코 아센시오’의 당찬 포부. [디마르지오] 레스터 시티의 감동스러운 우승 스토리. 블랙번 로버스의 낭만이 뛰어넘을까?‘낭만이라······ 좋지. 낭만. 지금 블랙번에 가장 어울릴만한 슬로건은 이거만 한 게 없긴 해.’
아센시오 입단 기자회견에서 ‘이우드 파크’ 단장실로 돌아온 나는 오자마자 각 언론사가 쏟아내고 있는 기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블랙번 로버스가 승격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서포터들 뿐만 아니라 이적을 망설이고 있는 선수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다소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계획했었다.
결과가 예상보다 더 좋게 나오고 있어서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긴 하지만 말이다······.
똑똑-!
“네.”
노크 소리에 단장실 문 쪽을 바라보며 말하자, 샬럿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검은색 파일철을 보니, 아무래도 부탁했던 건에 관한 보고인 듯싶었다.
“부탁했던 건은 어떻게 됐어요?”
그러자 샬럿은 검은색 파일철을 펼쳐 내게 건네며 덤덤하게 말했다.
“지시하신 대로 라이프치히 측과 이적료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처음 제시했던 1,900만 파운드(한화 약 290억 원)는 단칼에 거절 당했구요.”
예상은 했다.
2,540만 파운드(한화 약 388억 원)도 거절했던 라이프치히다. 그보다 낮은 금액으로는 이적을 성사 시키기 쉽지 않을 건 당연했다.
나는 보고서 가장 위쪽에 있는 1,900만 파운드 부근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정도는 그때도 말했지만 힘들 거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샬럿에게 최대 2,600만 파운드(한화 약 398억 원) 내에서 1차 협상을 진행해달라고 했던거구요.”
공교롭게도 아센시오의 입단식 기자회견 일정과 라이프치히 측에서 요청한 1차 이적 협상 일정이 겹쳐서 나는 이 일을 샬럿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그러자 샬럿은 싱긋 웃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최대 상한선은 2,600만 파운드였지만, 저는 단장님이라면 최대 상한선까지 사용할 마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
“그래서 두 번째에는 2,100만 파운드(한화 약 321억 원)에 셀온 조항 15% 붙여서 제안했습니다.”
첫 번째 제안에서 200만 파운드 이적료 인상에 셀온 15%까지 붙인 나쁘지 않은 조건.
라이프치히 측에서도 재계약 불발로 인해 클로스터만을 판매하려고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충분히 혹할만한 금액이었다.
“좋네요. 합리적인 접근이에요.”
“그러나 아쉽게도 라이프치히 측에서 두 번째 제안도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 제안도 거절했다는 건, 상대에서 생각하고 있는 가격대가 있다는 것.
“상대가 생각하는 이적료가 있나 보네요.”
“네. 두 번째 제안을 거절하면서 라이프치히 측에서 2,800만 파운드(한화 약 428억 원)를 요구했습니다.”
클로스터만이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오른쪽 풀백 자원이라 해도 리그 검증도 안 됐고,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선수다.
2,800만 파운드를 태우기에는 리스크가 상당한 편.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제안은 우리가 받을 수 없을 거 같네요. 리스크에 비해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너무 커요.”
샬럿도 거기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라이프치히 측에 마지막으로 제안했던 게 보고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 적어둔 금액입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빽빽하게 작성된 보고서의 가장 아래쪽을 확인했다.
【21,000,000£ + Sell on 25% + 이적료 분할지급(2년)】
‘셀온 조항을 높이는 식으로 제안을 바꿨구나. 나쁘지 않아. 당장 들어가는 이적료는 낮출 수 있고 추후에 클로스터만이 좋은 폼을 보여줘서 높은 금액에 팔리면 우리 말고도 라이프치히 측도 괜찮은 금액을 추가로 받게 될 테니까.’
“그래서 라이프치히 측이 뭐라던가요. 이 제안을 받겠다고 하던가요?”
그러자 샬럿은 싱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