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22)
매국노의 원수 자식-122화(122/773)
122_광기의 시작
1910년 1월
독일제국, 스비드니카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은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이해 집으로 왔다.
방에 들어오니 책상, 그리고 침대 위에 편지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부모님이 처음엔 책상 위에 올려놨다가 공간이 부족해진 모양이다.
1907년 말부터 항공기에 빠져버린 그는 얼마 있지 않아 근처 서점이나 도서관에 있는 항공기를 다루는 서적을 대부분 다 읽어버렸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독일 내, 그것도 모자라면 해외 항공기 업계 종사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정보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2년 가까이 열심히 공부한 후, 작년부터는 답장이 아니라, 리히트호펜에게 먼저 편지를 보내는 업계 종사자들도 보였다.
그중 몇 명과는 직접 만나보기도 했고, 모두 그의 어마어마한 독학의 수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받은 편지 더미 위에 있는 한 장의 편지에 적힌 발신자 이름이 리히트호펜의 눈에 들어왔다.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들어보았고, 그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자, 입가엔 미소가 피어나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침대 위에 있는 편지를 치우고 걸터앉아서 대일 리 대위가 드디어 보낸 답변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다만 정작 다 읽고 나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리히트호펜은 리에게 자신도 조만간 사관학교에서 졸업할 예정인데, 졸업하자마자 바로 항공 관련 보직에 들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물론 이 꿈을 꾸게 된 계기가 2년 전에 리가 선보였던 시범 비행이었으며, 행글라이더로나마 어느 정도 비슷하게 재현도 해봤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도 리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파일럿이 되는 건 미뤄두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처음엔 정말 화가 났지만, 리히트호펜이 다시 읽어보니 영 납득 못할 내용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현시점에서 비행기는 너무 위험하고, 자신같이 미래가 창창한 소년은 조금 더 생각해보는 쪽이 좋다는 내용이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추락해 먹은 대일 리 본인도, 결혼하고 애가 둘이 생긴 이후론 비행을 한 번도 못 하고 있다고 푸념하면서 말이다.
“나보다 겨우 7살 정도 더 많으면서···”
리 나름으로는-자신보다 더-어린 친구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 것 같지만, 혈기 넘치는 10대 소년에게 그런 충고가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했다.
리히트호펜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창밖을 내다봤다.
내년이면 사관학교를 졸업할 것이다.
분명히 입학할 당시만 해도 영광스러운 기병대를 꿈꾸며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젠 기병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세상의 맛을 보았다.
최근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독일 육군이 드디어 군용 비행기를 도입했고, 이제 슬슬 파일럿을 모집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걸 전해 들은 리히트호펜은 단 1초의 머뭇거림 없이 당장 군부에 파일럿으로 자원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처음 몇 번은 당연히 거절당했으나, 무려 수십 편의 편지를 보낸 결과, 내년에 사관학교 졸업하고 나면 고려해보겠다는 답장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다시 돌아가라고 해도 갈 수 없을 것이다.
“저한테 그런 세계를 보여줘 놓고는 이제 발을 빼라니,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리 대위님?”
항공기 관련 기사와 사진으로 도배된 벽의 한 가운데에 있는 리의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에 한번 사진의 미간에다가 펜을 집어 던진 적이 있었다. 펜은 나중에 뽑았지만, 흘러나온 잉크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리히트호펜은 언제부터 미간에 난 구멍에서 검은 액체를 흘리며 웃고 있는 리를 격추하는 꿈도 꾸기 시작했다.
처음 꿨을 때는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런 꿈을 몇 번 더 꾸고 나니 나름 즐거워졌고, 이젠 아주 그런 꿈을 기대하기까지 했다.
이제 리히트호펜은 이미 머릿속에서 두 자릿수로 격추해본 리를 향해 너무나도 다정하고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제가 두려우십니까?”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가 하늘로 날아오는 순간, 세계의 모든 파일럿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니까.
이것만은 확실히 자부할 수 있었다.
*****
1909년 10월 셋째 주
워싱턴 D.C.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은퇴 생활을 너무나도 즐기고 있었다.
올해 3월,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그는 바로 여러 명의 수행원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 난 안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루스벨트 본인의 사비와 앤드루 카네기의 지원을 받아 떠난 이번 여정에서 전 대통령 각하께선 참으로 열심히 아프리카 동물들을 사냥해 표본을 만들어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미국 자연사 박물관으로 보내주셨다.
다 좋은데 말이지···
‘대일, 또-또 왔어요!’
‘하, 그러게나 말이죠···’
···왜 나한테도-상대적으로 덜 희귀한-동물의 표본을 보내는 걸까.
집 앞에 드롭된 큰 상자를 하나 열어봤더니만, 악어 표본이 들어 있어서 화들짝 놀란 세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내 품에 안겼던 게 생각났다.
솔직히 나도 지릴 뻔했거든.
루스벨트 이 인간, 만약 한국의 호환이란 걸 들으면 신이 나서 당장 호랑이 사냥하러 올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젠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던 그 운게른인가 뭔가 하는 미친 남작도 호랑이 사냥을 엄청 다녔다던데, 용케 안 죽고 무사히 돌아갔네.
듣자 하니 정신은 안 무사해 보이더니만.
자, 전임인 루스벨트는 그렇게 활동적이었는데, 태프트 이 인간은 어떨까요?
“리 대위. 자네를 왜 불렀는지 알겠나?”
“하···알 것 같습니다, 각하.”
“내가 PCDA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데, 사실인가?”
아니 뭐, 그냥 초코파이랑 오레오 판매금지 대상에 올렸을 뿐인데.
그 두 아이템을 얼마나 흡입해대셨는지 지금 벌써 150kg은 넘겨 보인다. 물론 크래프트사 제품 외에 스테이크와 거북이 수프 (?!)등도 흡입하시지만···
각하한테는 정말 실례지만, 솔직히 최면 어플을 들고 다닌다고 해도 믿을 만한 체형이라고!
“그렇습니다, 각하. 하지만 말입니다, 진짜로 제가 각하 보면 너무 걱정돼서 말입니다.”
“내 주치의는 따로 있다네, 리 대위.”
“그 주치의가 저한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태프트는 헛기침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야, 내가 이래 봬도 전생에서 운동선수였다가, 잠시지만 트레이너까지 해봤고, 죽기 직전엔 119구조대였어.
요즘엔 태프트 볼 때마다 구급차 대기시켜야 할 것 같단 말이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를 판매금지 대상에 올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봐, 그 명단에 나밖에 없지?”
들켰는걸?
할 말이 없는 나를 본 태프트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각하, 이건 절대로 영구적인 조치가 아닙니다. 만약 정상 체중, 아니, 몇십 파운드만 더 빼시면 바로 해제해드리겠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태프트는 수염을 만지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하다가, 나에게 소름 끼치는 한마디를 날렸다.
“이 문제의 근원인 네가 나를 좀 도와줘야겠군.”
···엑?
*****
1909년 10월 넷째 주
일본
이토 히로부미는 한 요정(料亭) 안에서 여자에 둘러싸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이미 여러 번 방문해본 곳이었지만, 이번 방문은 평상시와는 달리 매우 새로웠다.
“하아아아아···”
이토의 몸속에서 여러 가지 촉감이 아직도 불꽃처럼 타올랐다. 몸을 쓴 이후에도 정신은 여전히 깨어있고, 집중력은 계속 날카로웠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듯했다.
“암페타민 이거 참 좋은 물건이군, 그래.”
물론 암페타민 자체는 이미 한참 전에 도쿄대학의 교수, 나가이 나가요시 (長井 長義)가-의도치는 않았다고 해도-발견했다. 그것도 자신이 초대 총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이다.
최근 몇 년간 이토는 이 약물의 상업적 가치를 파악했고, 일본 정부 차원에서 한 번 적극적으로 개발에 투자해보는 게 어떻냐고 건의했다.
솔직히 이토는 이 발상의 근원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러전쟁의 종전협약을 맺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히비야 공원 방화 사건이 일어났고, 마치 그게 도화선이라도 됐는지 그 이후로 일본 곳곳에서 방화와 반달리즘이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방화범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오우라 천주당(大浦天主堂)에 방화를 저지르려다가 체포된 게 떠올랐다.
순사들에게 끌려가기 전에 공산주의자로 보였던 범인이 인민의 아편이라고 고래고래 외쳐댔었고, 여기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영국이 아편 가지고 장사를 했듯이, 일본도 약으로 한 번 장사를 해보면 어떨까.’
물론 이토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악의로 가득 찬, 정신 나간 발상이란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미권에는 그런 말도 있지 않았던가, 절박한 시기에는 절박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desperate times call for desperate measures).
현시점에 그 투자의 결실은 제법 보이는 듯했고, 갈수록 암페타민의 순도는 높아지고, 더 효율적으로 제조할 방법도 개발 중이다.
자신이 가진 화학적 지식은 학부 수준에 그치는지라 정확히 이해는 못 했지만, 최근엔 누가 적린과 아이오딘을 사용한 방법을 실험해 본다는 말도 들었다.
물론 이걸 나중에 본격적으로 판매 시작하면, 해외는 모르겠지만 국내에서는 유통과 판매를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할 것이다.
안 그래도 불안한 시대에 이게 민중에 퍼지면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특히 아나키스트-공산주의자들이 약에 취해서 테러 행각을 일으키기 시작한다면, 그 누구도 뒷감당을 못 할 것이다.
“가증스러운 공산주의자들···”
이토는 자신의 전용차로 향하면서 경멸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경제난도 경제난이지만, 이 틈을 타 이젠 눈치도 안 보고 시위나 파업을 일으키는 공산주의자들로 인해 일본을 떠나, 특히 미국으로 가는 이민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열 받는 건 그중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민 간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일본 기업들도 PCDA라는, 한인이 창립하고 운영하는 회사 밑으로 들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해군부 장관, 사이토 마코토가 그 기업의 실세이자, 미 해군 내에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리 다이이치를 포섭하려고 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했던 게 떠올랐다.
그것도 제 아비처럼 똑같이, 헛소리와 함께 말을 돌려대면서.
“부자가 참 사이좋게도 일본을 골탕 먹이는군···”
리 부자를 어떻게든 처리하고, 공산주의자들의 대대적인 소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차에 탑승하려는 이토의 시야에 여러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여자와 함께 하는 건 약을 곁들이면 더 즐거웠는데, 특히 감각을 날카롭게 해주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평소보다 예리해진 감각 덕분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던 자들이 모두 자신을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던 게 보였다.
하급이라곤 해도, 무사 출신 정치인으로서의 감이 당장 피하라고 외쳐댔다.
애석하게도 그의 몸은 곤두선 감각을 따라가 주지 못했고, 이미 늦었다.
탕탕탕
쨍그랑
자신을 둘러싼 여러 명의 괴한이 일제히 러시아제 권총을 꺼내어 이토를 향해 발사했다.
총탄이 그의 몸을 팔다리, 상·하체 가리지 않고 찢어 갈기고, 자동차의 유리창을 모조리 박살 내 거리에 파편을 뿌려댔다.
“끄으윽!”
몇 초의 시간도 아까웠는지, 괴한 중 하나는 장전하는 대신에 권총을 하나 더 꺼내서 계속 쏴댔다.
10초 넘게 이토의 몸에 총알을 박아버린 괴한들은 이쯤 했으면 됐겠다 싶었는지, 순사를 피해 재빨리 도망쳤다.
이토는 차 문에 기대어 피를 묻히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주요 내장 중에서 총알이 안 맞은 곳이 없었다.
그는 암살자의 정체를 추측해보려고 자신을 죽이고 싶어서 할 만한 자들을 떠올렸으나, 너무 명단이 길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인생을···헛살았나···”
처음엔 이토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가장 높은 곳까지 가본 68년이라는 길고 격동적인 삶이 이런 꼴불견으로 종지부를 찍는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이제 최소한 자신이 곧 일본을 휩쓸 광기에 휩쓸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불행 중···다행이군···”
아무도 듣지 못할 유언을 중얼거린 이토 히로부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한편, 그다음 날 이토의 암살은 대서특필 되었고, 고토쿠 슈스이 일당은 축배를 들어 올렸다.
어쩌면···이젠 이토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큰, 궁극적인 목표도 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그 작자는 원래부터 호위가 철저했고, 이번 사건 이후로 강화됐으면 강화됐지, 절대로 허술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암살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논하던 와중에, 한 청년이 손을 들었다.
일러전쟁에 육군 사병으로 참전했고 나름 공적도 세웠던 그는, 기적적으로 육체적인 부상은 없이 돌아왔지만, 정신적 상처를 심각하게 입었다.
일본에 돌아와서도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던 그는, 위로는커녕, 패잔병 주제에 어디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줘서 가족과 주변에 민폐를 끼치냐며 질타만 받았다.
이런 부조리한 취급에 국가와 사회를 향한 울분이 폭발한 그는 결국 아나키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토쿠 및 급진적 아나키스트들의 입장에선 참 다행인 점이,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 합류한 군인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가 조선에 있었을 때 현지인들이 쓰던 아주 악랄하면서 효율적인 무기가 있었습니다. 부비트랩이라고 부르는 물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