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4)
매국노의 원수 자식-14화(14/773)
14_당신들은 정말 무례한 사람들이에요
“시장 차원에서 신경 쓰기엔 너무 급이 낮은 사안이라 덮어두고 있었지만, 애초에 중국인인 네 녀석이 명문고 로웰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확인해보니 관련 민원이 제법 들어왔더라고.”
”중국인이 아니라 조선인입니다만···“
이 한마디에 펠란 시장은 마치 내가 부모와 자식 쌍으로 패드립이라도 친 것 마냥 식기를 요란하게 내려놓고 나를 노려봤다.
”지금 어디서 황인종 주제에 말대답하는 거지? 겨우 사업 좀 크게 해서 오만 하고 있지 않나? 넌 단지 차이나타운의 작은 보스가, 난 차이나타운을 깡그리지워버릴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장이야. 나와 네놈의 지위는 완전히 상하관계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아니 이 양반 급발진 하는 거 보소? 아주 어그로 가성비가 끝내주는구먼 그래.
21세기에선 괜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도발 당해서 발화하다가 계삭튀하는 전형적인 찌질이 키보드 워리어의 패턴이지만 그렇게 도발하기엔 내 처지가 위태롭긴 하다.
”중국인이면 얌전히 중국인 전용 학교나 다니지, 어떻게 로웰고에 입학했는지 감도 안 와. 이 사안 관련해서 누군가는 꼭 문책해야겠네. 그리고 그런 은혜를 입었으면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구는게 예의 아닌가? “
펠란 시장이 아니꼽다는 듯이 팔장을 끼고 앉아 있으니 분위기가 정말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이럴거면 차라리 경찰서로 소환하지 왜 남의 집에서 식사초대 받아서 이 난리인지 모르겠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받았나, 엥이 끌끌끌.
아무리 지금이 인종차별이 심한 시대라고는 해도 이렇게 대놓고 내 면전에서 무례하게 구는 양반은 처음이다. 하다못해 그 루즈벨트도 나중에 나한테 사과 했는데. 다시 보니 선녀 같아.
그리고 펠란이 이렇게 나를 몰아붙일 때 설리반 청장은 나랑 펠란을 번갈아가면서 썩은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양이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틈틈이 펠란한테 뭐라 속삭이고, 그럴 때 마다 나를
아하. 아무래도 이 모임의 배후에 설리반 저 새끼가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제까지 내가 카메론 기숙사에서 처음으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통한테 몇 십번이나 시달려서 신고했을때도 다 무시했다. 그리고 KFC 체육관 (아 씨 지금 다시보니까 이름이 왜 이따구야) 차렸을 때 흉기 들고 왔을 때도 신고했건만 다 무시해서 내가 직접 비싼 돈 주고 권총을 구매했고 말이야.
중국계는 물론이고 이 지역 조폭들한테 얼마나 많은 돈을 처먹었을지 상상도 못 하겠네. 병공당도 매춘, 아편, 도박 등 여러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많이 댔으니, 뇌물도 만만치 않게 뜯어냈겠지.
그래서 내가 꼭지가 확 돌아서 저 새끼들을 다 제압해버리니까 큰 돈줄 끊어졌는데, 본인이 뭐라 하기엔 은근히 겁나서 시장을 통해서 나한테 이렇게 꼽사리 주는 거 아닌가.
저거-저거, 저 새끼 면상을 보면, 어떻게 쥐어박고 싶어!
다행히 정말 고맙게도 골드버그 위원장이 헛기침을 하며 이 얼음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깨려는 시도를 했다.
”아들이 로웰고를 다니는 학부모로서, 다른 학생과 교사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편은 없는거냐.
”그런데 말이죠. 제 아들과 교사들한테 들어본 바에 의하면 얘가 생각보다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한다더군요? 지난 학기 성적도 전과목 A를 받고 방과후 활동도 잘하고.“”방과후 활동은 뭐하는데?“
”레슬링이라네요.“
세 사람 모두 내 몸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청장도 입을 열었다.
”저 정도 체격이면 루즈벨트 주지사랑 싸워서 비기고 혼자서 병공당을 습격해서 보스를 죽여사지를 찢어 내걸어버리는 것부터 가능해 보입니다.“”잠깐, 잠깐만, 청장님!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만, 저 혼자서 한 게 절대 아니고요, 저까지 포함해서 거의 100명 넘는 인원이었고, 결정적으로 그녀석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냥 혼쭐내고 쫓아낸 것 뿐이에요!“
내가 갑자기 입을 여니 시장의 눈매가 날카로웠지만, 그래도 해명을 안하면 무슨 오해가 빚어질지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뭔 차태식이나 존 윅도 아니고 혼자서 그게 될 리가 없잖아! 도대체 어떻게 보고를 받았길래 사건이 저렇게 전달된거지?!
”그 100명이 넘는 싸움꾼들이 전부 다 네가 세운 공장 아니면 체육관 소속 아닌가? 설마 재작년 말부터 차이나타운을 장악할 준비를 해온 모양이지? 아니라면 왜 경찰한테 신고안하고 그 난리를 쳤나?“
걍 좀 닥치고 있어, 이 월급루팡 견찰새끼야. 다른 말로 하자면, 왜 경찰을 못 믿냐는 질문이기도 한데, 내가 느그들을 왜 믿어야 해요? 황인종으로서 너 네들한테 한 번도 도움 받아본 적 없는데.
”딱히 별 이유는 없었고, 그냥 아시아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아시아인들 선에서 처리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서 말이죠.“”왜, 아까는 스스로가 중국인이랑은 다른 조선인이라면서 왜 또 중국인들 일에 끼어드는거지?“
펠란 서장이 다시 비아냥거리면서 케물었다. 아놔 이 인간 슬슬 사람 빡치게 만드려고 하네. 시장이면 다냐? 당신은 정말 무례한 사람이에요.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시장님. 뭐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죠. 그런데… 일단 제가 지금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는 카메론 기숙사에서 지내고 제가 돌리는 공장에 일하는 중국계 노동자들이 많은지라 분리해놓는 게 쉽지 않아요.
“”거기 잠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졸업하면 어디 가려고?“”음… 자세한 건 아직 말씀 드릴 수 없지만, 최대한 미국이 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정말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명백히 미국 시민이거든요.“
아무래도 내가 사관학교 입학하기 위해 조선에서 보냈다는 말은 생략하는 게 낫겠다. 혹시 아나, 저 인간이 소인배처럼 추천서 받을 수 있는 경로를 막으려 들지.
”그러면 샌프란시스코에 눌러살 의향은 없단 말이지?“”···제가 떠나길 원하세요, 시장님?“
하지만 펠란 시장의 표정이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너 같이 사고만 치는 녀석은 좀 떠났으면 좋긴 하겠지. 언제 가나?“
뚝.
내 안에서 뭔가 끊어지는 것 같다.
하···내가 어지간하면 공권력 앞에서는 안 나댈라고 했는데 말이야. 특히 흑인이나 황인종이 말대답 조금 까칠하게 했다고 린치까지 당하는 시대에는 더 더욱.
그런데 말이야···진짜 참을라고 했거든? 그래도 영 안 되겠다. 예의는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성립하는 거야.
저렇게 싸가지를 붓싼싸나이가 국밥 먹듯이 쳐말아드시는 꼬라지를 더 이상 가만히 못 듣고 있겠고 말이야.
마침 골드버그 부인이 우리의 저녁 식사를 가지고 왔다. 빵, 생선, 샐러드, 와인 등을 포함한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들어간 만찬이었다.
예의에는 어긋나지만, 난 바로 와인을 따서 유리잔에 가득채운 후 단숨에 들이켰다. 아무래도 이건 맨 정신으로는 못하겠거든.
이렇게 비웃음을 들었으면 나도 좀 꼽을 줘도 되지 않겠어?
***
샌프란시스코 소방-경찰위원장 맥스 골드버그는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불길한 예감은 대일 리라는 소년이 시장의 질문을 듣고 갑자기 와인을 들이키면서 시작하였다.
얼굴에 선홍빛이 들어온 소년은 시장을 쳐다보며서 헤실헤실 웃으면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시장님. 뭐, 돈이 많으면 제가 속한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많죠. 펠란 시장님은 97년에 지자체장 선거하셨을 때 샌프란시스코도시 미화랑 치안 개선을 최대 선거공약 중 하나로 내 걸으셨고 당선되셨어요.
그런데 시장님은 그 이후로 그 쪽에 하나도 투자 안하셨더군요? 저기 고급주택가 보수랑 금융 시설 증축에는 예산이 왠지 모르게 많이 가고. 그러고 보니 재선이 1년 좀 더 남았네, 슬슬 준비하셔야 될 때 아닌가요?“
사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침은 아니다. 그래도 계속 쭈그려서 듣고만 있던 리가 갑자기 물 흐르듯이 비아냥거리니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세 명 모두 당황한 모양이다.
”아, 그리고 치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설리반 청장님도 참 고생 많으셔요.
샌프란시스코 경찰청이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프라도, 인력도, 예산이고 다 부족해. 그런데 처리해야하는 범죄랑 판치는 범죄자들은 너무 많아. 조금이라도 시간을 쪼개가고 온 사방을 발로 뛰어다니지. 그래서 얼마 안되는 월급 쪼개가면서 그 외제 손목시계랑 고급 구두를 사신거죠?“
리의 칭찬의 가면을 쓴 지적에 설리반 청장은 갑자기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면서 손목을 가리고 구두를 식탁보 밑으로 숨긴 다음 나를 울그락불그락한 눈으로 노려봤다. 그러고보니 구두도 시계도 절대로 시에서 주는 월급으로는 살 수 없는 물건이네?
”지금···우리를 협박하는거냐?“
청장의 날서고 불안이 가득한 질문에 리는 그저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쟁반에 놓여진 생선의 배에 나이프를 쑤셔 넣었다.
”‘우리’가 누군데요? 왜, 펠란 시장님이랑 설리반 청장님처럼 이 도시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이 뭐 켕길게 있기라도 해요?
전 최소한 두 분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믿고 있는데. 전 오히려 여러분께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요.
도시 위생, 치안 문제 이 두 부분이 겹치는 곳이 어딘가요? 바로 차이나 타운이죠. 그래서 제가 두 분의 고생을 덜어드리기 위해 대대적인 방역 작업을 실시했고 조폭들을 제압했어요.“
리는 생선의 구워진 내장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차분하지만 정확한 동작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내장을 깔끔하게 도려냈다. 마치 한 두 번 해본 게 아닌 듯한 손놀림으로.
”제가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온 이후로 시종일관 도움만 되어왔어요. 코카콜라 공장을 세워서 실업자들을 대거 고용하고, 로웰 고등학교에 기부도 했고, 사고치는 병공당 놈들을 제압한 뒤, 세탁소랑 공중 목욕탕도 만들었고요. 이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세요? 전 무슨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재벌도 아니에요.
뭐, 아직은 말이죠.“
내장을 도려낸 후엔 이제 피부 밑에 나이프를 찔러넣는다. 조금도 삐뚤어지지 않는 선을 그리며 나이프가 뼈와 살을 분리해나갔다.
”제가 이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도시를 개선하는데 투자해왔어요. 그런데 제가 언제 떠나냐고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지 않나요? 오히려 떠나려는 절 붙잡지는 못할망정.“
리는 생선의 살, 뼈, 내장을 모두 정말 기계라도 쓴 듯이 말끔하게 분리한 다음 나이프를 내려놨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펠란과 설리반을 노려봤다.
”저를 문명인이라는 옷을 벗은 상태로 보고 싶으신가요?“
정말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발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골드버그는 시장과 경찰청장 그 누구도 답변을 못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 받았다.
하지만 왜 그런지 곧 이해했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리의 얼굴을 대리석처럼 차갑게 굳어있었으나,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순간에 사냥꾼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한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쟁반 위만 쳐다봤다.
리 또한 아무 말 없이 차려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말 한마디 없는 어색한 식사가 이어졌다.
***
설리반 청장과 펠란 시장은 식사 후 황급히 먼저 떠났고, 난 자발적으로 남아서 설거지를 돕고 나서야 떠났다.
“다시 한 번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한테 호의를 보여주신 것도요.”
“그-그래. 너무 신경쓰지 마. 머나먼 타지에 와서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내 어렸을 때가 생각나서 그렇단 말이지.”
“아, 이민자 출신이세요?”
“그렇지. 독일계야. 여기에 정착한지는 50년 가까이 된다만, 이민자와 유태인이라는 꼬리표는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단 말이지. 나는 그래도 백인이라서 망정이지, 너는 참···힘들거야.”
“이민자들끼리는 뭉쳐야할텐데 말이죠.”
그래, 이게 진짜 미국내 이민자들의 현실이지.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아 진짜 소주 땡긴다. 이완용한테 편지 써서 소주 제조법이나 좀 보내달라 해볼까.
***
샌프란시스코 공권력과 회담(?)을 가진 후엔 만사가 놀랍게도 조용히 돌아갔다. 펠란 시장도 여전히 까칠했지만, 내가 차이나타운 정화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도록 허가해줬다.
학교에서도 따가운 눈초리를 주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 그냥 개가 닭 보듯 쳐다볼 뿐이었다. 물론 성적도 A-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 덕분에 어느 순간 난 월반까지 하여 1901년 봄에 졸업예정이 되었다.
그렇게 1900년, 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올 것이 와버렸다. 내 운명을 결정할 바로 그 만남이.
***
”어서오게, 리. 웨스트포인트 추천서를 받으려고 온···?“
토마스 바드 (Thomas R. Bard)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나를 보자마자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다가 욕설을 내뱉고 들고 있던 펜을 벽에다 집어던졌다.
”이런 망할! 이름이 리 (Lee)고 차이나타운 출신이라고 해서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로 옐로 몽키가 간도 크게 들어올 줄이야! 알았으면 이 면접 자체를 안했을 텐데 말이지.“
어느 정도 면식이 생긴 골드버그 위원장의 소개로 추천서를 써줄 정치인과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인종을 언급 안한 모양이다. 그거 좀 중요한 디테일인데 말이지.
”뭐, 그래서. 감히 나한테 웨스트포인트 입학 추천서를 써달라고 기어온거냐?“”맞습니다, 의원님.“”싫은데? 꼴보기도 싫으니까 당장 나가!“
뭐, 이젠 딱히 놀랍지도 않군.
”상원의원님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어떤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자 합니다.“
야, 그런데 아무리 내 신분이 그렇고 그렇다해도 어떻게 상원의원까지 하신 양반이 저렇게 입이 험하대냐? 아 맞다, 원래 정치인들이 그렇지, 참. 자기지지자들한테도 막말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한대 어차피 투표권도 없는 열등종자들한테는 말할 것도 없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까? 네놈이 그 더러운 피부를 다 뜯어버리고 하얀피부로 갈아끼우지 않는 이상 꿈도 꾸지 않는게 좋을거다.“
저 꼬라지를 보니까 오히려 더 기분 나빠서 물러설 수 없겠네. 아 뭐 어차피 내가 추천서 받을 확률도 희박해 보이는데 또 질러보자.
”혹시 백인 이외의 인종의 입학을 금지하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만약 실제로 있으면 참고하겠고, 두 번 다시 그 누구도 이 건으로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건 아니지. 왜 그런줄 아나? 대가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고 완전히 병신이 아닌 이상 그딴 정신나간 발상 자체를 생각 안하기 때문이지!“”수백명의 사관생도 중에서 유색인종 한두 명 정도 있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내 모습이 기가 막히는 지, 바드는 또 다시 허탈하게 웃었다.
”하… 정말 말대답을 멈추지 않는구만. 최대한 너같은 열등한 놈도 알아먹을 정도로 설명해주지. 네가 방금 한 말은 황금 덩어리에 구리가 조금 섞여도 괜찮지 않냐는 말이랑 똑같아. 1%라고 섞이면 그건 이미 값어치가 급락한단 말이다.
“”의원님, 원래 제일 강하고 쓸모 있는 강철은 순수하지 않은 합금입니다. 전 이미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와서 2년만에 사업을 크게 성공시키고 도시 복지도 개선시켰습니다. 장담컨대 제 나이 그 어떤 백인 소년도 저의 반의 반도 못따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긴 흰머리까지 은근슬쩍 보여줬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거지?“
”전 어디든지 제가 소속한 사회에 최대한 헌신하여 이익을 가져다줄 의지가 있습니다. 그건 미군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최근에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각지에 미군이 개입하는 일이 많아지는데, 그곳을 잘 아는 아시아 출신 장교도 있으면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오히려 같은 더러운 황인종놈들의 첩자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면 자네한테 추천서를 써준 내가 뭐가 될 것 같나?“
역시 정치인 답게 위험을 무릅쓰긴 싫다 이건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맹세합니다. 상원의원님, 혹시 개 키우십니까?“”음? 키우는데, 갑자기 왜 물어보지?“”원래 늑대는 뚜렷한 지휘체계를 갖추고 협동을 할 줄 아는, 인류와 가장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제일 위험한 적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몇몇 늑대들은 인간의 밑으로 들어가기를 택했고, 그 결과 그 어떤 가축보다 충성스러운 개가 된 겁니다.“
말싸움에 가까운 (물론 갑을이 뚜렷하니 일방적이긴 했지만) 토론이 계속된지라 이번에도 즉각적인 답변을 기대했건만···의외로 바드의 눈빛이 달라진 듯하다?
좋았어, 그럼 이제 마지막 세일즈 피치를 던져야지.
”저 또한 미국 밑에서 그 누구보다 충성스러우면서도 적에게는 집요하게 잔학한 공격견이 되기를 자처하기에 이렇게 상원의원님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조만간 미군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의 군대가 될 것이며, 제 몸과 마음을 그 군대를 건설하는 벽돌로 쓰고 싶습니다.“
바드 상원의원은 계속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만 봤고,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잠깐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의원실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풋. 푸흡···파하하하!
···바드 상원의원의 우아한 콧수염을 들썩이는 호쾌한 웃음이 울러퍼졌다.
“훌륭하네, 미스터 리. 합격이야.”
“···네?”
”자네에 대한 좋은 점은 여러 곳에서 이미 충분히 들었다네. 확실히 네 말처럼 정말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당찬 소년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 다만 잠깐 시험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바드 상원의원의 그 표독한 표정과 말투는 어디가고 갑자기 온화하게 변신했다. 아니, 갑자기 또 21세기의 누군가가 빙의라도 했나? 설마···진짜 이게 뭐 개꿀잼 몰카 그런거였어?!
”들어봤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남북전쟁때 순찰대로 자원했었지. 그래서 군대가 얼마나 힘든 곳인지 잘 알아. 사병으로 들어간 나도 힘들었는데 장교로 들어가면 말할 것도 없겠지.“
”아하···“
”그래서 정신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압박 면접 좀 해봤는데 넌 훌륭하게 통과 했어. 말을 좀 격하게 한 건 사과하지.“
그렇게 누그러진 상원의원의 태도가 오히려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아닙니다, 상원의원님! 전부 합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미안하게도 웨스트포인트행 추천서는 못 써주겠어.”
잉?
“아, 오해하지마. 그저 상원의원으로서 웨스트포인트 추천서는 몇년에 한 번 밖에 못 써주거든. 안타깝게도 이미 어느 군인 명문가에게 추천서 예약을 받아버렸지 뭐야.”
엑?
어. 잠깐만. 그러면 난 어떡하지?
웨스트포인트 들어가라고 조선에서 유학보내준건데···? 아 시발. 이거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하지만, 그렇게 군에 들어가고 싶다면 길이 없는건 아니야.”
바드 상원의원이 책상에서 서류하나를 꺼내 들었고 난 군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 아나폴리스 자리는 남아 있거든. 해군의 길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