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46)
매국노의 원수 자식-146화(146/773)
146_특이점 돌파 (3)
1913년 8월
워싱턴 D.C.
다들 퇴근해서 조용한 국무, 전쟁, 해군부 건물.
늘 그랬듯이 이젠 거의 시키지 않았는데도 야근을 하는 중이었던 나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아직도 일하고 있나?”
“뭐,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엔 건물 관리인 맥아더가 아니라 지난달에 워싱턴으로 발령받은 윌리엄 리히 소령이었다.
“말로는 이미 많이 들었지만, 진짜로 혼자서 여러 부처의 일을 다 하다니. 대위 하나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네.”
“소령님도 최근에 갑자기 일이 많아지지 않으셨습니까?”
“···묻지 마라.”
대니얼스 장관은 해군부 인사보좌관 (aide to personnel)으로 헨리 마요 (Henry T. Mayo) 소장을 임명했다.
마요는 자신이 장갑순양함 캘리포니아 (ACR-6)의 함장 시절, 항해장교였던 리히를 참모로 데려왔다.
“내가 워싱턴이 이렇게 허술하게 돌아가는 줄은 몰랐어···”
···그런데 하필 마요가 제대로 인수인계를 안 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받는 바람에, 졸지에 일개 소령이 해군부 장관 인사보좌관이라는 엄청난 직위를 맡게 되어 버린 것이다.
“말 나와서 그런데···안 좋은 소식이 있어.”
“뭡니까?”
“아무래도 한동안 워싱턴을 떠나야 할 것 같아.”
“정말입니까?! 이를 어떡한담···”
나는 바로 입을 가렸고, 리히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한 마디로 인종 차별주의자이신 우리 대통령 각하님과 해군부 장관님께서 나를 워싱턴에서 자꾸 보는 게 기분 나쁘다신다.
아 그래,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지금이 인종차별이 당연시되는 시절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나와 내 주위 인물들’에게만 호의적이지, 황인종을 포함한 유색인종을 불쾌하기 여기는 건 여전했으며, 몇 개월 전에는 우생학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런 시대라는 걸 감안해도 윌슨은 진짜 악질이었다.
이 새끼는 뉴저지 주지사 시절, 뉴저지의 저능아, 정신지체아, 범죄자 등을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키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가 위헌 판결 먹은 적도 있다.
세레나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조지퍼스 대니얼스 장관은 기자 시절 당시,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최대 300명의 흑인이 살해당한 인종 혐오 폭동 (Wilmington insurrection of 1898)을 일으켰던 주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런 뻐킹 레이시스트들이 다 있나.
“장관님은 너를 저기 필리핀이나 남미 어딘가에 쳐박아 놓고 싶어 하셨지만. 그래도 루스벨트 차관님이랑 듀이 원수님이 뜯어 말려 주셨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맙소사.”
···솔직히 어느 쪽이 더 충격적인 건지 모르겠다.
내가 저기 완전 지도에도 잘 안 나오는 외딴 기지에 처박혀 버릴 수도 있었다는 사실.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FDR과 듀이가 직접 나서서 나를 변호하며 막아줬다는 것.
“그래서 내가 타협안을 꺼냈어. 워싱턴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정말 네 취향에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보직을 하나 찾아냈지.”
리히는 나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입을 손으로 계속 가린 채로 그가 준 서류를 읽어본 난 헉 소리가 나는 걸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아야만 했다.
“펜사콜라 해군 항공기지 (Naval Aeronautical Station Pensacola)의 사령관이 때마침 기지를 함께 운영할 항공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어.”
“그 말인즉슨, 설마···?!”
“그래. 다음 달부터 헨리 머스틴 (Henry C. Mustin) 소령 밑의 기지 부사령관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너같이 훌륭한 인재한테는 너무 초라한 자리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었어.”
아, 그러니까.
거의 해군 항공 외길 걸어온 사람을 해군 항공기지 부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거지?
“이거 참···해도 해도 너무하군.”
“뭐, 잠시만 피해 있는 겁니다. 진심은 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길 바랄 뿐이야. 부디 힘내게.”
그렇게 리히는 나에게 격려의 말을 더 건네주고 먼저 퇴근했다.
한편 저기 창문으로 그가 건물을 완전히 떠난 걸 확인한 후 손을 내린 나의 얼굴엔 이제까지 내가 워싱턴에서 지었던 미소 중 가장 큰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핳핳핳핳!!!!”
흥분을 주체 못 하고 아무도 없는 건물에서 신나게 웃어댔다.
마침내!
아 어찌 이런 슬픈 일이 다 있나. 난 워싱턴에 계속 있고 싶은데, 여기가 너무 좋아서 죽을 지경인데, 윗사람이 싫다니 어쩌겠어.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어쩔 수 없네, 잠시만 저기 플로리다에 가서 다른 건 전혀 신경 안 쓰고 해군 항공 관련 업무만 하고 있어야지.
워싱턴을 탈출한드아!!! 즐겁다!
탈출이라기보다는 강제로 쫓겨나는 거에 더 가까운 것 같다만 아무튼 어때,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어!
한참을 슈퍼히어로 영화의 빌런 마냥 웃어대던 와중에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뭔 소린가 싶어서 왔더니만, 나 참.”
건물 관리인 맥아더가 언제부턴가 사무실로 들어와서 나를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언제부터 들어왔어요···?”
“리히 소령이 떠난 직후부터. 지나친 과로로 인해 실성하기라도 했나 봐?”
“···그거 영 틀린 말은 아닐걸요.”
어색한 순간이 있긴 했지만, 내 입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내 텐션은 하늘을 뚫을 지경이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ㅇ-흐븝?!”
나는 감정을 여전히 주체 못 한 채로, 현관에서 맞이해주는 세레나를 껴안아 허리를 젖히고 격렬한 키스를 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퍼포먼스가 끝나자, 아내의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 그···해군에서 아주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어후, 아주 좋은 일이 있었죠!”
그녀를 안아 올린 채로 쇼파로 데려가 새로운 발령지에 관해 설명해줬다.
처음엔 내가 동부를 떠난다는 사실에 상심했던 아내는 함선 근무가 아니라 본토 근무라는 걸 알고는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아이들한테도 플로리다는 제법 좋을 것 같아요. 다음 달이면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움직여야겠네요.”
“그렇죠. 그래도 그 전에 축하는 합시다. 토요일은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 가고, 일요일은 데이트 어떨까요, 마님?”
“···그 정도 시간은 언제든지 낼 수 있죠, 헤헤헤.”
행복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내 품에 안기는 아내를 꼭 껴안아 주면서도, 내 머릿속 한쪽엔 불쾌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정말 운 좋게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는 해도, 다른 것도 아니고 노골적인 인종차별로 인해 내 인사에 영향을 받았다는 부분만은 개 빡쳤다.
대통령, 그리고 장관의 임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꼴이고, 분명히 이번으로 끝날 리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슬슬 저 두 놈을 대상으로 한 비상대책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 나중에 자꾸 선 넘으면 뒤통수를 아주 맛깔나게 제대로 한 번 후려갈길 수 있게.
개인적인 경험상, 사람 죽이는 게 살리는 것보다 훨씬 더 쉽거든.
“그나저나, 총은 어느 걸로 들고 가는 게 좋을까요?”
“···네? 총은 갑자기 왜요?”
“왜긴요, 플로리다엔 앨리게이터가 많잖아요. 필요하면 사냥도 해야죠.”
“어···제가 앨리게이터는 안 잡아봐서 모르겠는데요.”
상상도 못한 질문에 내가 머리를 긁으며 답하자, 세레나는 그저 환하게 웃었다.
“뭐, 그러면 들고 갈 수 있는 거 다 들고 가면 되겠네요.”
위험한 소리를 너무나도 태연하게 내뱉은 아내는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그녀의 총기 컬렉션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두렵다.
*****
9월
버지니아, 포츠머스
대니얼스와 윌슨이 나보기 역겨워 워싱턴에서 나가라고 한지 몇 주가 지났다.
플로리다로 출발하기 전, 난 워싱턴에서 최대한 일을 많이 해놓고 떠나기 위해, 아내와의 데이트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했다.
워싱턴을 떠나 펜사콜라로 향하기 직전, 우선 포츠머스의 노퍽 해군 공창 (Norfolk Naval Shipyard)으로 향했다.
“안녕, 친구들아!”
난 온화하게 웃으면서 입구에 모인 여러 명의 동기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나를 본 그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똥 씹은 듯 했다.
“하, 저 새끼 드디어 왔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닻에 묶어서 던져버리면 되지 않을까?”
어딜 가 이 노예새끼들아, 지금 내 일생 최대의 프로젝트에 착수할 예정인데.
항공모함이 탄생한다.
기어이 의회에서 예산을 따냈고, 최초로 터보-일렉트릭 엔진을 장착한 군함, 석탄운반선 주피터는 이제 항공모함으로 개장된다.
10년.
10년간의 아이디어 제공과 투자가 드디어 결실을 보는 순간이다.
이름은···음, 일단은 그냥 캐리어라고 붙이고 취역할 때쯤에 개명하지, 뭐. 어차피 지금부터 시작해서 최소한 2, 3년은 걸릴 텐데.
워낙 중요한 프로젝트라, 난 항해국 근무 초기 때 그랬듯이, 인사보좌관 리히를 콕콕 찔러서 조금이라도 군함 건조나 항공기 관련 노하우가 있는 모든 해군 내 인사들을 다 끌어 모았다.
물론 그중 절반은 로열 잉거솔을 포함한 내 동기들이고. 아 글쎄, 친구 좋은 게 뭐냐고, 막 서로 부려먹고 부려 먹히기도 하는 거 아니겠어?
체스터 니미츠 이 녀석도 잡아 오려고 했지만, 하필 얘는 그때 해군 측에서 독일로 유학을 보낸지라, 국내에 없었다.
블룸 앤 포스 (Bluhm & Voss) 사와 M.A.N (Maschinenfabrik Augsburg-Nürnberg)사에서 디젤 엔진을 배우는 중이라지. 그것도 특히 신형 잠수함용 엔진을.
하여간 이 녀석 어느 순간부터 잠수함 외길 인생을 걷기 시작했구먼.
해군 장교들 외에 글렌 커티스 같은 민간인들도 여러 명 섭외했다. 새뮤얼 랭글리 그 사람도 살아 있었으면 끌어 왔을 텐데, 참 아쉽네.
“고생 좀 하자, 인간어뢰.”
“아 제발 좀!”
내가 다시 어뢰 발사관에서 탈출하는 실험 하다가 익사할 뻔한 흑역사를 언급하자 켄 와이팅이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렇게 놀려대긴 해도, 이번 개장 작업에선, 아나폴리스 시절 항공기 동호회 원년 멤버 였던 이 녀석의 인풋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 때의 짬이 어디 안 갔는지, 항공모함에 필요한 엘리베이터, 캐터펄트, 어레스팅 기어 (arresting gear) 등 각종 개념을 동기 중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여기서 항공모함이 무사히 개장된다면,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해군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 뻒예아!!!
“햐, 그나저나 너도 드디어 워싱턴을 탈출해서 꿀이나 빨러 가는구나.”
“나처럼 굴렀으면 이 정도는 누려야지, 안 그래?”
“뉘예, 뉘예. 인수인계는 잘하고 가나? 네가 하던 일 대신 할 만한 녀석이 있기나 해?”
아, 당연히 내 대타는 찾아놓고 가지.
그것도 미 해군 최고의 인재 중 하나로 말이야.
*****
워싱턴 D.C.
“···”
이번 달에 진급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대위는 국무, 전쟁, 해군부 건물에 도달했다.
그는 몇 개월간의 구축함 베인브리지 (Bainbridge, DD-1)의 함장 근무가 끝나자마자 바로 워싱턴으로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처음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는 올해 초부터 시작해서 내년 초중반 정도까지 예정되었던 근무가 갑자기 반 토막 나버렸기 때문이다.
항의하고 싶었으나, 그의 전 상관들이 대위가 해군부 건물, 그것도 무려 항해국에 발령받은 건 엄청난 영광이라며 받아들이라고 설득했다.
게다가 월급도 높여준다는 말까지 들으니, 결혼을 앞둔 스프루언스에겐 특히나 더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뭔가 감이 안 좋았다.
‘왔구나, 레이먼드!’
그가 존경해왔지만, 이젠 두려워하는 대일 리 선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간의 단기속성 인수인계 작업이 시작되었고, 리 선배는 혹시나 모르는 게 있으면 참고할 가이드라인도 적어주고 갔다.
그것도 수백 페이지짜리로.
“아하, 네가 바로 리의 구원 타자군? 밤에도 자주 보겠네.”
건물 관리인, 육군 대위 더글러스 맥아더가 슬슬 현실을 파악하고 있는 그에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불길함과 호기심에 휩싸인 그는 맥아더에게 리 선배를 밤에 몇 번이나 봤냐고 물어봤고, 답을 들은 스프루언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런 망할!”
그의 나이 27세.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프루언스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