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5)
매국노의 원수 자식-15화(15/773)
15_아카데미의 검은머리 사관생도 (1)
잠깐. 잠깐잠깐잠깐.
아니 의원양반! 내가 전생에 해군에서 10년 가까이 굴렀는데 “또” 해군을 가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미스터 리?”
“아···죄송합니다, 상원의원님. 그게… 솔직히 예상은 못한 제안이라서···”
“하하하,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네. 그래, 아나폴리스 출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의외로 그곳 생도 중에서 웨스트포인트로 가려다가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간 경우도 많거든.”
이런 젠장, 그 따위 알게 뭐야, 내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육군 라이프가 지금 시작도 못하고 끝나게 생겼는데!
내가, 어, 지금 웨스트포인트로 들어가면 맥아더한테 선배님이라 부르고 패튼, 아이젠하워, 브래들리 등을, 어, 부하로 부려먹을 수도 있고 너무 좋잖아. 어쩌면 헨리 아놀드랑 동기가 될지도 모르겠지, 와 진짜 쩔잖아.
그런데 아나폴리스는? 에이씨, 아 그래, 거기서도 원수가 4명이나 나왔긴 한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느 시기에 거기서 다녔는지도 몰라! 최소한 리히나 킹은 볼일도 없을 거 아냐.
뭐, 설령 내가 진짜 운 좋게 제독까지 진급했다 치자. 그래도 해군은 2차대전에서도 태평양 외 밖에선 완전 잉여 아니냐. 그 당시 대서양 함대 사령관이었던 로열 잉거솔도 거의 듣보잡 수준인데 말 다 했지.
반면 육군은 결국 유럽이랑 아시아 둘 다에서 활약하고, 맥아더는 사실상 백인 쇼군까지 되잖아. 아무튼 육군의 활약이 넘사벽으로 더 넓단 말이야!
안 되겠다, 이렇게 된 이상 몇 년 더 기다리고 다른 지역구로 옮겨가서 그 쪽 정치인들한테 추천서를 받던가 해야지-
“잘 알겠습니다, 해군도 좋죠.”
-음?
“탁월한 선택일세, 미스터 리.”
야. 대일아. 뭐하니···?
“사실 군대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본토를 떠나서 세계를 구경하는 건데, 어차피 세계의 70%는 바다 아닙니까?”
그만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하하하,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어딜 가서든 성공하겠군, 그래! 8월말에 치는 시험에 붙기만 되겠어.”
안돼애애애애!!!
하지만 내 생각은 솔직했어도 입에선 딴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무래도 군대 얘기가 나와서 그런지, 내 전생에서 각인된, 높으신 분 앞에선 까라면 까야된다는 강박감이 까꿍하고 튀어나와 혓바닥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가암히 상원의원 앞에서 어떻게 ‘응 싫어’라고 하겠냐···
시발.
***
그리고 1900년 5월
난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아나폴리스가 위치한 메릴랜드주로 떠났다.
바드가 귀띰해준 정보에 의하면 거기엔 아나폴리스 추선서 시험 집중과외(prep school cramming)를 해주는 학원이 많다고 했거든. 한 달 정도 집중해서 족집게 과외를 해준다나.
하, 시대를 앞선 입시과외라···정말 대단하군. 전생에도 서울에 있는 입시학원 안 가고 SKY 들어갔는데. 재수해서 비인기 학과로 들어가긴 했다만.
그리고 도착한지 몇시간 만에 과외 교사를 하나 찾아서 방문했다. 이쯤되면 슬슬 예상하긴 했지만, 그 교사는 내가 들어오자 반갑게 인사했지만 내 얼굴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잠깐만 네가? 아나폴리스 입학 시험을 준비하러 왔다고···?
”한 달에 백달러라고 했죠? 여기요.”
그 자리에서 바로 수표도 아니고 현찰로 백 달러를 꺼내 건네줬다.
”아니, 돈이 문제고 아니라-“
”그런 문제는 묻고 더블로 갑시다.“
백 달러를 한 장 더 쥐어 줬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화만 난 모양이다.
”일개 황인종 주제에 지금 나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 거냐? 날 모욕할 셈인가-“
“사백 딸라.”
백 달러짜리 두 장을 추가로 더 쥐어주니 교사는 뇌정지가 온 모양이다. 손에 쥐어진 400달러, 오늘날로 치자면 최소 1300만 원은 넘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한 번 쳐다보고 내 얼굴을 쳐다보고 다시 돈을 쳐다봤다.
돈. 내 얼굴. 돈. 내 얼굴.
“···확실하게 모셔드리죠, 헤헤.”
***
그렇게 아나폴리스 추천서 시험 고액과외가 시작되었고, 왜 여유가 되는 사람들, 특히 부모가 해군 고위장교인 사람들이 꼭 이 과정을 거쳐가는지 알겠더라.
어떻게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그냥 시험지를 어디서 쌔벼와서 어떤 문제가 나올지 정확히 가르쳐준 것이다.
자, 일단 기본적인 과목, 수학, 영어, 역사 등은 명문고인 로웰 고등학교에서 A- 밑으로 내려간 적 없는 나한테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리다.
수십개가 넘는 세계 주요 도시 및 항구를 다 알고 있어야 한다. 아니 시밤, 전자는 몰라도 후자를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어떻게 배우란 말이야?!
사실 이런 조금 막장스러운 입학시험과 그로 인해 성행한 사실상 불법과외가 워낙 판쳐서 시험을 개정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군대 아니랄까봐 변화의 속도는 늦었다더라.
증말 으메이징한 시대다···웨스트포인트도 이딴 꼬라지일려나 모르겠네.
***
그렇게 시험을 만점 받고도 남을 정도의 지식과 요령, 그리고 미군에 대한 환멸감을 가득 채워준 과외가 끝나자마자 난 듀이 제독의 초대를 받았다.
이젠 해군 장교 예정자라 더더욱 그의 요청을 거절할 자신이 없어서 난 워싱턴 D.C. 근처의 락 크릭 파크 (Rock Creek Park)를 찾아갔다. 의외로 아나폴리스랑 D.C.는 50km 정도 거리 밖에 안 되는지라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도착하니 듀이와 함께 루즈벨트가 말을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둘은 매년 몇 번씩 여기서 같이 승마를 했는데, 마침 내가 메릴랜드에 과외 받으러 왔다는 걸 알고 부른 것이다.
“오래간만일세, 리. 세상에, 전에 봤을 때보다 키가 더 커졌는걸!”
“그러게 말이야, 테디. 이번에 재대결 하면 확실히 자네가 지겠어.”
“하, 말코손바닥사슴(bull moose)가 총알 한 발에 쓰러지는 거 봤나. 리, 말은 탈 수 있나?”
말을 탄다고? 제가요···?
루즈벨트가 탄 말을 슥 쳐다봤더만, 말이 콧김을 확 뿜으면서 나를 노려봤다.
“히익!”
“어이 리, 자네 설마 말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제독님···?”
어렸을 때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서 말을 타봤어.
그런데 한 번은 말에서 낙마하고 또 한 번은 뒷발에 걷어차여서 머리통이 박살날 뻔 했거든···
그래서 그런지 말이라는 동물은···좀 많이 그래···
“세상에, 리. 말도 못타면서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려고 했나? 배멀미 있는 사람이 해군에 지원하는 꼴 아닌가!”
루즈벨트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콧수염을 들썩이며 껄껄 웃어댔다. 아 뭐 왜요, 어차피 2차대전 되면 기마병은 다 도태되는데. 왜, 탱크한테 기마 돌격이라도 하게요? 탱크가 짱짱맨이라고요.
아···현자 타임 다시 오네.
“아 그래, 아나폴리스로 결국은 가게 됐다면서?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그러게요, 제독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옳기는 뭐가 옳아, 그냥 TO가 없어서 들어간 건데. 어흑 마이깟.
어쨌든 우리 셋은 하루 종일 공원에서 말도 (나는 떨면서) 타고, 이런저런 잡담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보냈다. 대화 중에 난 내가 사업을 여러게 돌리고 있다는 들은 루즈벨트가 약간 표정이 굳어졌었다.
“허, 그러니까 코카콜라, 체육관, 세탁소, 목욕탕···참 많이도 운영하는 군, 그래.”
“그렇죠? 그래서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 (Pacific Commerce and Development Association)을 창설해서 그 밑에 다 묶어놓으려고 합니다.”
“야망이 큰 건 좋은데, 그거···독점(trust)을 노리는 건 아니지?”
“아-아닙니다, 그냥 복합기업(conglomerate)일 뿐이에요. 전 공정한 경쟁을 지지합니다, 진짜로요!”
기업의 독점을 손봐주려고 칼을 갈고 있는 그 앞에서 내가 독점하겠다고 나선다면… 어후,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뭐, 처신 똑바로 하길 바라네. 아, 그리고 가기 전에 이건 선물이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샌프란시스코행 열차를 타러 떠나는 나에게 루즈벨트는 책 여러권을 안겨 줬다. 가장 위에 있는 건 앨프레드 마한 (Alfred Thayer Mahan)의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이었다. 아, 이거 나 해군 장교시절 때 일부 읽어본 적 있네.
그리고 또 하나는 1812년 당시 해전을 다룬 저서 (The Naval War of 1812)도 있었다. 저자는… 엥, 루즈벨트 본인?
“와 주지사님 집필도 하셨어요?”
“하, 당연하지! 이미 쓴 책만 20권이 넘는다고!”
와우. 이렇게 피지컬도 좋은 사람이 뇌지컬도 끝내주다니. 하여간 여러모로 능력자라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네.
“나도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겠으니, 이거 받게나.”
듀이도 나에게 뭔가를 건네줬다. 이건···편지?
“어, 제독님 이건 뭡니까?”
“음, 일종의 보증서라고 할까? 만약에 자네가 추천서를 받고도 아나폴리스에서 입학을 거부한다면 그걸 보여주면 돼. 내가 직접 쓴 편지라면 최소한 관심 정도는 끌 수 있을걸, 하하하.”
“세상에, 감사합니다 제독님. 아, 그리고 민주당 경선 (Democratic National Convention) 건투를 빕니다!”
“에휴, 그딴 거 뭐. 그래그래, 고맙다.”
아니, 뭔 경선을 앞둔 사람이 저렇게 마이웨이지?
어찌됬든 해군 1차전직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에휴···
***
8월이 왔고, 난 시험을 93.3점으로 무난하게 최고점을 받아서 아나폴리스 추천서를 받았다.
아, 그리고 바드 상원의원이 내가 아나폴리스로 간다고 하니 유난히 좋아했던 이유가 있더라고.
이 인간이 은근히 누군가가 자기 추천으로 아나폴리스로 가길 원했던 모양이 네. 알고보니 이 양반이 캘리포니아의 항구 중 하나인 휘니미 (Port Hueneme)를 본인 손으로 전부 건축하다시피 했고, 사실상 그 지역의 영주나 다름 없다네.
그리고 그 지역을 한층 더 확장하기 위해 해군 기지 건설을 추진해왔다더라고. 따라서 나는 해군 측 정보를 제공해주며 나중에 높은 지위에 오르면 그 지역에 지을 수 있도록 손을 쓴다, 그것이 바드 상원의원이 아나폴리스 추천서 값으로 청구한 내용이었다.
아니 씨 그럴거면 그냥 공짜로 추천서 주시지 그랬어요, 그럼 굳이 이렇게 비싼 돈까지 줘가면서 시험 안쳐도 됐을텐데!
이런 휘-니미!
여윽시 정치인이야, 절대로 뭘 공짜로 해주는 게 없지!
그리고 상원의원 양반, 내가 어떻게 기지 건설 관련해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아무리 적어도 중령 정도는 되야할텐데, 그때까지 살아나 계시겠수, 연세가 꽤나 많으신데?
내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돌아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상원의원은 인사를 하고 떠나는 나와 아주 힘찬 악수를 하며 보내줬다.
하여간 빽도 없고 백인도 아니면 이렇게 서러워요, 어떤 망할 놈의 자식이 캘리포니아에서 나 대신에 웨스트포인트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한테는 이런 거래를 않았을 거 아녀.
벌써부터 한숨만 푹푹 나온다. 아나폴리스 생활을 버틸 수 있을련지나 모르겠다. 21세기의 미군에서도 인종차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거의 100년전, 그것도 육군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해군에선···정말 살 떨리네.
임관이나 할 수 있으려나? 아니, 임관이 문제가 아니라 교관이 별 트집을 잡아서 퇴학시키거나, 그 전에 생도들이 조용히 나를 닻에 묶어서 바다에 던져 버릴지도 모르잖아. 웨스트포인트에선 이미 흑인 장교도 배출했는데. 얼마 못버티고 불명역 제대 당하긴 했다지만.
어휴, 이래서 웨스트포인트로 가야했던거야…
됐다, 이미 물 건너간거 한탄해서 뭐해. 이제 뭐 이완용한테 소식이나 전해주고 아나폴리스에 들어갈 준비나 해야지 뭐 별 수 있나.
뭐 벌레 같이 존버해서 학위 딴 다음, 임관 못하면 조선으로 돌아가서 어디 군부에서 수군 관련 보직을 맡던지, 아니면 농상공부에 들어가서 해운 관련직책이라도.
그래. 포기하면 편해…
쳇, 어느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웨스트포인트 추천서 먹어버린 너 이 자식 꼭 장군 되라! 그것도 포스타! 그리고 나 대신에 탱크 몰고 가서 나치 뚝배기를 깨주고!
만약 웨스트포인트에서 졸업 못한다던가 하면 시밤 너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웨스트포인트 추천서를 토해낼 때까지 배빵을 갈기고 주포에 넣어서 쏴버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