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76)
매국노의 원수 자식-176화(176/773)
176_제독의 집결 (2)
1916년 5월
프랑스, 샹파뉴 (Champagne)
프랑스 공군의 최신 전투기, 뉴포트 17 (Nieuport 17) 3기가 작년 말에 독일에 점령된 지역 상공을 순찰했다.
순찰을 끝내고 돌아가려던 전투기들 앞에 독일 전투기 하나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타났다.
포커 전투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본 프랑스 파일럿들은 섬찟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기체는 아니었다.
그 악명 높은 붉은 남작은 항상 적들의 사각에서 저격해댔고,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는 건 이미 죽었다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보나 마나 리히트호펜의 업적을 듣고 그걸 어설프게 모방해보려는, 혈기 넘치는 애송이가 분명했다.
3기의 뉴포트 17은 서로에게 수신호를 날리며 포커를 어떻게 포위하고 격추할지 계획을 세웠다.
바로 그 순간, 포커는 프랑스 파일럿들에게 작전을 실행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가장 가까운 전투기를 향해 돌진했다.
‘아니, 3대 1인데 저렇게 무모하게 달려들다니?!’
가운데 있던 뉴포트 17은 포커를 맞추려고 조준했으나, 그 전에 이미 포커의 조종석 앞에 탑재된 두 개의 기관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투다다다다다
“끄아악!”
수십 발의 총알이 처음엔 엔진, 그다음에는 파일럿을 난자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참새들 무리를 덮치는 매처럼, 포커는 벌써 한 기를 격추했다.
프랑스 파일럿들은 아직 2대 1일 때 수적 우위를 최대한 살려보려고 했으나, 너무나 빠르고 저돌적으로 움직이는 포커를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세 전투기가 꼬리 잡기를 하던 중, 포커는 갑자기 기체에 무리가 갈 정도로 급격히 고도를 올렸다.
‘이런 젠장, 이멜만 (Max Immelmann) 그 자식이 쓰던 비행법이잖아!’
180도 회전으로 다시 수평을 잡은 포커는 이젠 위에서 물고기를 포착한 물수리처럼 급강하하여 또다시 뉴포트 한 기를 덮쳤다.
“크으윽!”
이번엔 파일럿은 멀쩡했으나, 엔진과 날개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두들겨 맞아 고도 유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프랑스 파일럿은 후퇴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판단하여 포커와의 1대1 결투에 나섰다.
“이대로 죽을 것 같냐!”
하지만 아무리 포커의 꼬리를 잡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포커는 잡힐 기미가 보일 때마다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급격한 선회전으로 모조리 피해 나가버렸다.
일방적인 농락에 가까운 추격을 몇 번이나 한 결과, 결국 후미를 잡히는 건 뉴포트였다.
“이런 젠장할-”
포커의 기관총이 뒤에서부터 뉴포트를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조종석에는 피가 고이고 엔진에서는 검은 연기가 날리는 뉴포트가 추락하는 모습을 베르너 포스 상병은 흐뭇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드디어 포스 또한 에이스에 등극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아마 독일 제국, 아니, 유럽 전역에서 최연소일지도 모른다.
이 기세로 가면 붉은 남작과 동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로 밑 등급까지 도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성공적인 사냥을 끝내고 착륙한 포스는 주머니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이게 그 유명한 대일 리 소령이다, 이거지?”
그의 동료이자 멘토, 리히트호펜이 몇 번이나 언급하던 리 소령은 그렇게까지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비행선 격추로 인해 독일 파일럿들에게 나름 유명한 사냥 대상으로 등극했다. 그의 소지품에 현상금까지 걸릴 정도니까 말이다.
붉은 남작이 그를 격추하겠다고 노리고 있다는 걸 떠올린 포스는 송곳니까지 드러내며 씩 웃었다.
“과연 당신 뜻대로 될까, 남작?”
*****
영국, 포츠머스
탁, 타탁, 탁탁탁
쾅!
“리, 뭐하냐!”
내가 묵묵히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던 호텔 방에 윌리엄 홀시가 호쾌하게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아씨 깜짝이야, 선배님 노크 좀 하십시오, 진짜.”
“아 미안미안. 왜 리버티가 아니라 여기 있는 거야?”
“아, 거기가 좀 좁아서 말입니다···”
리버티엔 1인용 선실이 함장과 부함장용 선실 둘밖에 없었고, 난 인근 호텔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욜, 다른 장교랑 선실을 같이 쓰기엔 너무 잘나가신다, 이건가?”
“절대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사정이 좀 생겼지 뭡니까.”
보통 같으면 해군 장교로서 이 정도를 참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이번엔 일이 하나 생겨버렸다.
아니, 일이 생겼다기보다는 내 오랜 지병이 도져서 기어이 일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네.
“아니, 이 문서는 다 뭐야? 리, 너, 혹시 또 보고서 쓰냐?!”
홀시는 수백 장의 문서에 둘러싸여 열심히 작업하는 나를 보고 경악한 모양이다.
“이번에도 뭐 종합항해보고서나 러일전쟁 분석서 같은 대작을 집필하려고?”
“아, 이건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 맞다, 손상통제 관련 제안서 쓴다고 했었지, 참.”
마침 신규 전함과 항공모함도 취역했겠다, 그에 맞춘 신규 함정 손상통제 (damage control) 매뉴얼이 필요할 것 같아서 개선 방안 관련 제안서를 쓰는 것뿐이었다.
몇 개월 전, 이 주제에 대해 리히에게 말을 꺼냈더니만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서 당장 미국 원정 함대 사령관, 헨리 T. 마요 제독에게 연락했다.
몇 주 후, 각 전함의 정비병들이 수집해온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가 내 앞에 떨어졌고, 이걸 취합하고 정리해서 제안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결과, 리버티 내 선실에서 다른 장교들과 같은 공간을 쓰기에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호텔에 따로 방을 잡게 된 것이다.
아마 재작년쯤만 해도 또 일이 생겼다고 짜증이 날 것 같았지만, 이젠 이 정도 업무는 딱히 피곤하지도 않다.
그래, 나 대일 리가 바로 해군부 최고의 누렁이다, 흐하하하하하!!!!
“넌 어떻게 일을 또 찾아내서 하냐.”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All play and no work makes Dale a dull boy. 놀기만 하고 일하지 않으면 대일이는 바보가 되는 거라고.”
“세상에 그딴 말이 어딨어!”
어디 보자···오하이오 포격 사건으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이젠 최소한 함선 내 소화기 및 기본적인 소화 장비 비치는 필수가 되었다.
거기다가 타이타닉 침몰 사건 이후로 SOLAS 창설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해상 안전 규정이 개선 및 강화된 것도 다행이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해군 항공에 더불어 해상안전 분야에서도 해군부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그래,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법이며, 함선이 살아남으려면 손상통제를 잘해야지.
뭐, 2차 대전 시점의 미 해군은 손상통제도 손상통제지만, 함선을 무식하게 찍어내는 생산력, 그리고 승조원들에게 여유롭게 휴가도 줄 수 있는 인력과 전반적인 경제력이 가장 무서웠지만 말이다.
사랑해요, 미합중국 해군. FDR 각하 충성충성.
“혼자 방 쓰니까 어때?”
“뭐,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장점은 선실과는 달리 내 키에 맞는 침대에서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는 점.
단점은, 음, 밤에 아내 생각이 더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는다는 점이 제일 큰 것 같다.
···휴가를 맞아서 본토로 돌아가면 최소한 이틀 정도는 집에서 안 나올 것 같네.
“그나저나 너 지금 시간 있냐?”
“음, 오늘 쓸 만큼은 다 썼습니다.”
“오케이, 그럼 오래간만에 축구나 한판 할래?”
음.
가끔은 몸도 풀어주는 게 좋겠지.
*****
“···원래는 펜실베이니아가 원정 함대의 기함이 될 예정이었던 건 알고 있어?”
“와우, 진짜입니까?”
“그런데 하필 테네시 (BB-43)가 곧이어 취역하는 바람에 무산됐지 뭐야.”
“저런, 참 아깝게 됐습니다.”
리버티 근처에 있는 공터에서 나와 홀시는 공을 서로에게 패스하고 놀면서 잡담이나 하고 있었다.
여기서 미식축구공이 어디서 났는가 싶더니만, 알고 보니 그냥 럭비공이었다. 뭐, 모양도 타원형, 길이도 11인치 (28cm)로 거의 비슷하니까 아쉬운 대로 쓸만하긴 했다.
“뭐, 겨우 소령 따위가 신형 전함의 부함장이 되는 것만 해도 분에 넘치는 영광이니까. 아 그래,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네 덕분이구나, 고맙다 야.”
“이걸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체스터 니미츠는 대서양 잠수함 전단 1전대 (Atlantic Submarine Flotilla, 1st Division)의 사령관까지 된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아 맞다, 얘기했나, 스프루언스가 펜실베이니아의 함포장교 (gunnery officer)로 들어온 거?”
“오호.”
이거 참 재밌는 상황이네, 성격이 극과 극인 두 장교가 같은 전함 서열 2위랑 3위라니. 펜실베이니아의 승조원들은 진짜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거기 공 좀 차주세요!”
서로 패스를 하는 우리 쪽으로 축구공 하나가 굴러왔고, 내 발 앞에서 멈췄다. 난 힘을 조절하고 이쪽으로 공을 찬 아이들을 향해 축구공을 걷어찼다.
“감사합니···”
감사를 표하려던 아이들은 내 얼굴을 보자 인상을 찌푸리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나 우리한테서 떨어진 곳에서 다시 축구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꼭지가 돌았는지, 홀시는 당장 럭비공을 땅에다가 내리찍고 목에 힘줄을 세운 채로 아이들을 향해 삿대질했다.
“아니 저 애새끼들이? 야 니들 당장 이리 못 와?!”
“아 선배님, 참으십시오.”
“어린놈들부터 저렇게 사람을 깔보다니. 에휴, 킹 선배님이 왜 영국놈들을 저렇게 싫어하시는지 알 것 같다.”
하긴, 이제 슬슬 영국놈들 콧대를 확실히 꺾어줄 때가 되긴 했다.
비행선 격추 업적 탈취 외에 훨씬 더 큰 건을 터트려서 말이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저것 봐, 킥오프도 아닌데 축구공도 발로만 차잖아. 지네들 손 더럽히는 것도 싫은가 봐. 영국식 축구란 참 희한하네.”
어. 음.
아무리 홀시가 나의 존경하는 선배라곤 해도 지적할 건 지적해야겠다.
“저기, 선배님? 사실 저게 진짜 축구 맞습니다.”
“···뭐? 저게 어떻게 축구야?”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해서 내뱉은 내 말을 들은 홀시는 마치 내가 해육전에서 육군이 이겨도 상관없지 않냐는 말을 하기라도 한 듯 충격을 먹은 듯하다.
“선배님, ‘축구 (football)’이라는 용어 자체가 영국에서 몇십 년은 더 먼저 나왔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건 객관적으로 보면 ‘미식’ 축구입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생각해보십시오. 발(foot)로 공(ball)을 차는 게 훨씬 더 ‘축구’라는 어휘에 적합하지 않습니까? 그 반면 우리는 경기의 99%는 손으로 공을 들고 다닙니다.”
“거짓말이야!!!”
홀시는 빨간 알약을 먹고 진실을 깨닫기라도 한 듯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내가 말이 너무 심했던 것 같아서 난 홀시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님. 우리식 축구가 훨씬 더 싸나이답지 않습니까. 보는 입장에서도 더 재밌고 말입니다.”
월드컵이 국제적 행사에 등극하는 반면, 슈퍼볼은 선수들 연봉과는 별개로 그냥 미국 내 행사에 그치게 될 거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말 나온 김에 리버풀을 포함한 영국 각지의 축구 명소를 방문해볼까 고민하던 찰라에 수병 하나가 황급히 달려왔다.
“리 소령님, 함장님이 긴급히 부르십니다!!!”
“무슨 일이지?”
“그-그게, 대양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그래.
이제 슬슬 유틀란트 해전이 일어날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