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84)
매국노의 원수 자식-184화(184/773)
184_오만과 굴욕 (1)
1916년 6월 1일
유틀란트 인근
슈우우우웅
끼리리릭
리버티의 갑판에 착륙하자 어레스팅 기어가 팽팽하게 내 비행기를 붙잡아 줬다.
착함을 완료한 후엔 갑판에 모인 갑판병과 파일럿들을 포함한 수십 명의 승조원과 함께 난리가 난 대양함대의 기함, 전함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숨죽인 채로 쳐다봤다.
그리고···
쿠아앙!
이제까지 리버티의 승조원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폭발이 버섯모양 구름을 일으키며 전함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수만 톤짜리 전함이 고작 1톤도 안 되는 비행기 한 대에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이다. 그것도 내가 조종한 비행기가.
올해 초엔 비행선을 격추하고, 이번에는 전함을 격침했다. 야, 이 얼마나 초월적인 가성비냐고.
음, 일단 어뢰 자체엔 문제가 없었군. 보고서에다 적어야겠네.
이 웅장한 광경을 다 같이 목격한 승조원들은 처음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는지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후 충격이 가시자, 모두 나를 둘러싸 등을 두드리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야 이 미친 새끼, 진짜 해냈구나!”
“전에는 비행선이고, 이젠 전함이라니?”
“야, 넌 왜 이렇게 노는 스케일이 다르냐?!
주위에서 나를 칭송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속에서 뭔가 이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율에 사로잡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두 손을 내려봤다. 물리적으로,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을 내가 지금 이 두 손으로 보란 듯이 해냈다.
내가 독일 해군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나는 전장을 지배할 수 있다.
입술을 꽉 깨물어 간신히 참았지만, 계급과 인종을 모두 잊고 속에서 광소가 터져 나오려고 했다.
어쩌면 내가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현실에 도취해 정신을 잃기 직전.
“리이이이이이이이!!!!!!!!!”
분노에 가득 찬 어니스트 킹 부함장의 사자후가 갑판 위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뭔가 수상한 소리를 들은 공포 영화 주인공처럼 천천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목에는 핏대를 세우고 눈알이 튀어나올 기세로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리면서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킹이 시야에 들어왔다.
리버티 전체에서 이 살벌한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지 않을 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심지어 리히 함장도 잠시나마 등골이 서늘해졌을 게 분명하다.
난 당연히 도로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본 고라니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마비되었다.
“당장 안 비켜!”
킹이 자신을 가로막는 승조원 하나를 손으로 거칠게 밀어낸 후에는, 내 주위에 몰려들었던 승조원들도 전부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비켰다.
내 코앞까지 와서 나를 당장 멱살을 잡은 채로 갑판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듯한 표정을 한 그를 보는 순간, 그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함교로 가자고 이 새끼야, 함장님도 하실 말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 말 없이 노발대발한 킹을 따라가는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승조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킹과 함께 함교로 들어가니, 리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증거가 넘쳐나는 흉악범죄자를 심판하게 된 법관의, 무표정하지만 오싹할 정도로 근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함교의 문을 닫는 순간 재판은 시작되었고, 검사 어니스트 킹은 판사 윌리엄 리히 앞에서 피고인인 대일 리의 죄를 읊기 시작했다.
내 변호사는 어딨냐고? 야이씨, 내가 저지른 게 있는 데 변호사는 무슨 북해에서 익사할 놈의 변호사야.
“제정신이야, 이 머저리 같은 녀석아!”
킹은 참으로 예측하고 읽기 쉬운 사람이었다.
“나이도 30이나 처먹고 소령까지 단 놈이 어떻게 그렇게 애새끼처럼 굴어대는지 난 이해할 수 없어!”
늘 화나 있었으니까.
그랬던 그였건만, 이번에는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분노는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차원의 분노였다.
“비행기 내구도는 생각이나 하고 그따위 짓을 저질렀나? 만약 폭격 중에 기체가 공중분해 되면 어떻게 할 계획이었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고!”
아, 그래.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에 급강하하던 중에 엔진이 과열하고 날개와 기체 전체가 삐거덕거리긴 했다.
착함하면서 어레스팅 기어에도 걸리는 순간에도 비행기에 균열이 조금 생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어쩐지, 갑판에 올라온 정비병들이 내 전용기를 보자마자 경악을 하고, 심지어 한 명이 육성으로 쌍욕을 내뱉더니만.
아마 브라보 식스는 이걸로 수명이 다했을 것이다.
“엘리슨 그 자식은 내가 또 따로 불러서 한마디 하겠지만, 비행단장이라는 놈이 부단장이 일탈을 저지르는 걸 막지는 못할망정, 동조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큰 사고를 저지르는군?”
그렇게 킹은 장장 몇 십 분 동안 입에서 침을 튀기며 나를 영혼까지 탈탈 털어댔다.
귀가 아플 정도의 고성과 사전에도 못 찾을 정도로 화려한 육두문자를 내뱉어 댔으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게 모두 팩트이었기에 난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은 그런 권한이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넌 강등시켜버렸을 거다, 아니 그걸로도 모자라-”
또 한 마디, 아니, 몇 십 마디는 하려고 했으나 너무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아픈 킹에게 리히는 물 한 병을 건네줬다.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겠나, 부함장.”
그리고 킹이 함교를 나가자 이젠 본인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표현이 필요 이상으로 거칠긴 했지만, 부함장의 말 중에서 틀린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네. 리 소령도 인정하는가?”
“···그렇습니다.”
내가 함교로 들어올 땐 싸늘했던 리히의 표정이 이젠 조금은 안타까워 보이는 게 오히려 내 가슴을 더 깊숙이, 쓰라리게 후벼팠다.
“훈련이나 소규모 작전처럼 실패해도 혼자만 손해 보는 상황이라면 그렇게까지 무책임하게 굴어도 될지도 몰라. 하지만 이번처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전투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면 자네뿐만 아니라 아군 전체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 이해하고 있나?”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리히는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한 공적은 공적이고 네가 이제까지 평상시에 성실하게 근무해왔으니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보겠어. 하지만 훈장은 물론이고 그 어떤 포상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감사합니다.”
합당한 조치다.
더글러스 맥아더도 베라크루즈에서 그야말로 인간흉기급 활약을 하고 돌아왔으나, 명예 훈장을 받지는 못했다.
장교가 상관 명령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세운 공적을 인정하고 포상을 내려준다는 위험한 선례를 세워놓으면 지휘 체계가 무너지고 작전을 세우는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양함대의 기함에 급강하 습격을 저지른 건 성과와 별개로 부정할 수 없는 내 잘못이다.
“2개월간 제1 항모비행단장의 직위를 해제하고, 비행금지령을 내리겠어. 이 정도만 해도 분에 넘치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걸 깨닫길 바라는 바네.”
“명심하겠습니다.”
판결을 내리자 표정이 더 부드러워진 리히는 나에게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네가 그 무모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알고는 있나?”
“모릅니다.”
“나와 부함장 외에도 해군 전체에서 자네를 잃으면 아까워할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죄송합니다.”
“자네가 조금은 진중함과 책임감을 배웠으면 해. 언젠가 제독의 자리까지 오르려면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야.”
나 같은 한심한 놈이 어떻게 감히 별까지 달겠냐고 생각해서 그냥 비아냥거리는 건가 싶었건만, 리히의 표정은 언제나 그랬듯이 전혀 농담하는 기색이 없었다.
“어쨌든 고생이 많았어. 오늘 나와 부함장이 했던 말 잘 생각하고, 반성과 깨우침의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바야.”
“명심하겠습니다.”
경례하고 함교를 떠나려는 내 뒤에서 리히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내 정신 좀 봐, 이번에도 보고서 써오는 거 잊지 말게나. 무슨 주제로 써야 하는지는 말 안 해도 잘 알겠지?”
뒤를 돌아보니 리히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니 나 또한 죄책감이 가득한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언제까지 써오면 됩니까?”
“기한은 없으니까 천천히, 하지만 최대한 상세하게 써주게나.”
“잘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을 하고 갑판으로 향하는 내 발은 무거웠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인간이 되어버렸을까.
머릿속으로는 성능 실험 한 번 해보겠다는 명분을 내걸었긴 했으나, 항공기로 전함을 격침해본 사상 최초의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겠지.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잘못된 건지 위험하고 생각 없는 짓을 막 저지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할 때마다 경각심을 가지긴커녕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운, 돈, 그리고 무시 못 할 인맥의 힘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고, 결국 한 번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적도 없다.
이번에도 운이 좋긴 했지만, 선을 넘어도 확실히 넘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부정한다면 나는 천하의 개새끼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막 나가면서 살아왔는지라, 습관을 완전히 벗어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2개월 동안은 쥐 죽은 듯이 몸이나 사리고 있어야겠다.
누가 나한테 급강하 썰을 풀어달라고 해도, 그냥 병신 짓이었을 뿐이며 절대로 따라 하지 말라고 경고해주기만 하고 말이다.
어후, 제발 이게 미국 본토에만 안 알려져야 할 텐데.
순전히 헨리 T. 마요 제독의 전술적 혜안과 표준형 전함으로만 일궈낸 승리라고 사람들 인식에 각인되어야 하고, 급강하 건은 사람들이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
특히 우리 마님의 귀에 들어가면 바가지 긁히는 수준이 아니라 박살이 날 가능성이 크니까···
*****
6월 첫째 주
워싱턴 D.C.
대일 리 소령이 함재기 하나로 전함을 격침한 사건은 온 미국에 순식간에 퍼졌다.
비행선 격추 하나만으로도 들떴던 공공정보위원회는 미국 원정 함대의 대승리를 전해 듣고는 광적으로 흥분했다.
대양함대가 노급과 전노급 전함을 10척 넘게 손실하는 와중에 원정 함대는 순양함과 구축함 몇 척을 손실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적과의 교전이 아니라 기뢰나 아군 오사로 인해.
일부 호들갑스러운 공공정보위원회 직원들은 마요 제독을 마닐라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조지 듀이 원수와 동급인 영웅처럼 선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자유의 횃불’ 프로파간다의 주인공인 리 소령이 이번엔 전함, 그것도 아무 전함도 아니고 대양함대의 기함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는 어마어마한 건수를 그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아마 내일쯤엔 자유의 횃불이 다시, 그것도 지난번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찬란하게 떠올랐다는 뉘앙스의 기사가 곳곳에 나올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다만 모두들 열광하고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낼까 고민하던 와중, 한 여인만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전함이 포격 중인데···급강하를···”
“남편분이 아주 간이 크시군요-아니 리 부인, 괜찮으십니까?!”
털썩
사랑하는 남편의 기행을 전해 듣자마자 넋을 잃고 주저앉는 세레나 리를 시각 홍보부 간부,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겨우 뒤에서 붙잡았다.
한참 후에 제정신이 들어온 그녀의 눈가는 부르르 떨어댔고, 푸른 눈동자엔 분노가 가득했다.
”이대일 너 이 새끼 집에 돌아오기만 해봐, 가만 안 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