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88)
매국노의 원수 자식-188화(188/773)
188_런던의 수호자 (1)
1916년 6월
대한제국, 한성부
내각총리대신의 집무실은 모두가 떠난 야심한 시각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거 진짜 못 해먹을 짓거리군···”
잠시 찬물로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온 총리대신 이완용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허탈하게 웃어댔다.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주름은 늘어났으며, 잇몸 상태도 헐어서 이빨이 하나씩 빠지기 직전이었다. 어쩌면 이러다가 황희 정승처럼 생전에 관직을 떠나지도 못하는 참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농을 날린 이완용은 그 비교의 의미를 깨닫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을 용서해주십시오, 대왕님···”
비교라는 적절한 대상끼리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황희의 시기보다 현재 조선이 더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만은 명백하였다. 최소한 그 당시엔 전 세계적인 규모의 대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아들이라는 녀석이 잠시 한국에 지냈던 동안 열심히 발로 뛰어다닌 덕분에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전쟁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있었다.
굳이 따로 말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절대로 어디 타지로 원정을 나가서 활약할만한 군사력은 아니다.
그 정도를 이해 못 하는지, 친일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은연중 친미파와 함께 친러파 관료들을 주요 관직에 앉혀 놨더니만, 참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러파 관료들이 탄넨베르크와 마수리안 호수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크나큰 패배를 겪는 모습을 보면서도 러시아와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는 정말 머리가 아파져 왔다.
“한심하고 우매한 것들이 다 있나.”
다른 나라도 아니고 러시아 편에 붙는다는 것은 즉 (이완용이 보기에는) 유럽 최강의 강군, 독일 제국군과 부딪히게 된다는 걸 뜻한다.
지금 상태로서는 유럽의 그 어느 군대와 맞붙어도 대한제국군이 막심한 피해를 겪을 게 분명하니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도 이젠 슬슬 지쳤다.
이게 아무래도 대일의 카투사를 통한 대한제국군 강화가 너무 성공적이라서 많은 사람에게 헛된 바람을 심어줘 버린 모양이다.
하필 그 부류 중에 다른 자도 아닌 무려 광무황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였고 말이다.
대일이 그 녀석 미국까지 가서 영 생각 없이 돈 굴리고, 사고 치고, 미인 아내와 시시덕거리기만 한 건 아니라 나름 애향심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애석하게도 국방 관련해서 경사만 있었던 건 절대 아니었으며, 주한미군 철수는 매우 뼈아프게 다가왔다.
“망할 놈의 윌슨 같으니라고···”
물론 본인 또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결단이었겠지만, 루스벨트와 태프트는 대통령 임기 중에 대한제국에 여러 가지 방면에서 도움을 줬다.
그 반면 윌슨은 주한미군 철수도 그렇고, 이완용이 보기에는 알게 모르게 이 나라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해 들려오는 바에 의하면 유색인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던데 혹시나 이것과 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로서는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소규모라고는 해도 제법 든든하고 한국 현지인들과도 나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던 주한미군은 해체되어 본토로 복귀하거나 필리핀으로 이전되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주한미군 철수를 기점으로 일본에서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자꾸 보고되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천황 시해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소요 사태 진압에 카투사가 투입되어 활약한 걸 목격한 이후로 일각에선 정한론이 심화 되고 있다는데, 어쩌면 이번 일이 정한론자들에겐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대한제국군의 규모, 숙련도, 장비 등을 보면 이 국토를 넘보려는 외세가 침략을 시도하기 전에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기엔 충분할 것이다. 설령 그게 일본이라도 해도 말이다.
무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지 않겠나.
···아니, 일본은 논외로 두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최소한 이완용의 경험에 의하면 일본은 그렇게까지 상식적인 선에서 예측할 수 있게 행동하는 나라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일본은 수상할 정도로 군부의 독립성과 입김이 강력한 나라였고, 육군과 해군 간의 성향과 방침이 극명하게 갈리는 나라가 아닌가.
군대 관련해서는 러시아 제국의 내무부 차관, 그리고 장관 권한대행 시절에 장성급 인사들 관련 서류 열람, 그리고 대한제국군 창설 관련 행정업무 등 제한적인 경험만 있는 게 전부인 그로서는 그 기괴한 생리를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한 번은 대일에게 미국에서도 이렇냐고 물어보니, 육·해군 사이의 알력다툼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절대로 그 정도는 아니라며 상식적으로 비교할 걸 비교하라는, 황당함과 분노가 가득한 답장을 보냈다.
어떻게 아비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 걸까. 참으로 통탄을 금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대일이 너 이 녀석 설마 대통령 심기 건드린 건 아니지···?”
그가 상명하복이라는 개념을 모를 정도로 한심한 작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긴 했다. 그래도 대일 그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결국, 유틀란트 해전에서도 한 건 제대로 저질렀다가 상관한테 크게 호통을 들어 먹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아이고, 아무리 내 아들이라고는 해도 어떻게 전쟁 중에도 망나니짓을 할 생각을 하느냔 말이다!”
다만 미 해군의 승전이 또 어떻게 한국에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대한제국은 이 소식에 열광했다.
‘이대일 장군님이 독일군에 내린 벼락!’
‘가이저마린애는 비켜라, 바다는 조선 남아의 것’
‘이 제독님 경공술 쓰시다’
세상에 호들갑도 저런 호들갑이 없었으나, 냉정하게 따지자면 이완용의 자업자득이긴 했다.
그는 제국신문을 인수했을 때부터,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조금이라도 뭘 해낼 때마다 과대포장을 하여 ‘이대일’을 일종의 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로부터 약 15년. 이완용이 이런 선전 활동을 그만둔 지 한참을 백성들의 인식 속 대일은 도술까지 부리는, 그야말로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의 경지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베라크루즈 침공 때는 맥아더와 단둘이서 도시 하나를 점령했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나, 비행선 한 대만 격추한 게 수십 대를 격추한 거로 포장되기도 했다.
최소한 유틀란트 해전에서 그 혼자서 함대를 다 격침했다니 뭐니 그 정도까지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예 없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언론 검열을 해서 이런 헛소리가 제발 그만 나오도록 조처를 하는 게 매우 시급해 보였다.
어떻게 됐든 이제 이완용은 국내 업무에 잠시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여러 차례-최소 두세 달에 한 번씩 정도-광무황제에게 내각총리대신에서 물러나기를 청한 결과, 지난달에 드디어 윤허한 것이었다!
그동안 거부했던 청을 왜 갑자기 들어주는 게 뭔가 수상쩍다고 생각해야 했겠지만, 과도한 업무에서 해방됐다는 사실에 희열로 가득 찬 그의 머리는 그 정도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혹시나 황제의 마음이 바뀌어 결정을 번복할까 봐, 이완용은 최대한 빨리 총리직 인수인계를 하고 휴가도 보낼 겸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새 총리는 약간 심지가 약한 면을 보여주긴 해도, 그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며 관료로서 유능한 자였으니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확신했다.
총리로서의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이완용은 미국 어디로 갈지 고민하느라 싱글벙글 웃으며 짐을 챙겼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당연히 동양인 인구, 그리고 영향력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였다.
하지만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메릴랜드, 그리고 터가 좋다고 선아가 점찍어 놨다던 플로리다도 좋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이 지긋지긋한 업무에서만 벗어나면 그만이다.
휴가를 즐길 생각에 가득 찬 이완용이 미국행 배를 탄 바로 다음 날.
대한제국은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했다.
*****
8월 넷째 주
영국, 포츠머스
“야 이 미친 새끼들.”
“그러게나 말이다. 육군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무섭다, 진짜.”
판초 비야 원정에서 레인저들의 활약을 다루는 신문 기사를 읽는 나, 체스터, 그리고 엘리슨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아니, 활약이 아니라 기행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토마호크로 머리 가죽을 벗기거나, 머리에다가 V자로 총을 쏴서 시체 훼손을 하는 건 이젠 흔한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관습이 된 모양이다.
한 번은 정작 전투에선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안 나왔건만, 화염방사기로 담배 붙이려다가 여러 명이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희한한 짓을 많이 했지만, 적 간부의 시체를 트럭의 후드에다가 매달고 온 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어···내가 알고 있는 레인저 연대랑은 많이 다른데.
내가 알고 있는 레인저 부대라곤 제75 레인저 연대밖에 없긴 한데, 걔네들은 경보병 특수 작전부대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레인저 연대는 왜 기계화보병대가 되어버린 거지. 그것도 아주 그냥 포스트 아포칼립스 액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악의 군단처럼 굴면서···?
더글러스 맥아더 이 녀석은 분명히 내가 창설한 네이비 씰을 모체로 만든 특수부대라더니만 뭔 짓거리를 한 거야? 우리 물개 애들은 나름 인도주의도 탑재한 착한 애들이라고!
네이비 씰이 지나치게 왜곡된 방향으로 재해석 된 것에 빡쳐서 맥아더한테 해명하라고 편지를 보낼까 생각하던 순간,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조지 S. 패튼···”
“대일아, 이 녀석 네 웨스트포인트 추천서 먹은 그 녀석 맞지?”
아.
음, 모든 게 다 설명되는군.
그래 시발, 그 미치광이 패튼이 들어갔으니 레인저가 워보이들로 변해버리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네.
불쌍한 밴디토 녀석들. 판초 비야 이 새끼야, 그냥 항복해라 진짜 험한 꼴 보기 전에.
아 맞다, 패튼아 제발 그 짓 독일에서는 하지 마라.
안 그래도 지금 영국이랑 독일이 미국을 양아치로 보고 있는 와중에 독일군 머리 가죽 벗기고 하면···어후,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그러나 그런 소소한 문제에 신경 쓸 틈도 없이 비상사태가 터졌다.
무려 10척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비행선이 며칠 후 영국에 공습을 가할 예정이라는 첩보가 들어온 것이다.
이제까지 경험한 적 없는 사상 최대의 규모인 걸 보니, 유틀란트 해전의 설욕이라도 하고 싶은가 보네.
이 미친놈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냐?!
“대일, 이제 어떡할 거야?!”
“아니, 내가 뭘···?”
“뭘 어쩌긴 어째 임마, 너 항모비행단장 복귀하고 비행금지령 해제됐잖아!”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활약할 기회에 환장해서 누구보다 먼저 비행기에 탑승했겠지만,
이젠 그렇게 무턱대고 나서면 안 된다.
이번에 또 쓸데없이 나대다가 뭔 일 터지면 그땐 아마 절대로 뒷감당이 안 될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결정이 무색하게 난 바로 그날 리버티의 함교로 소환되었다.
“무슨 일입니까, 함장님?”
잠시 고민을 하는 게 얼굴에서 드러났던 리히는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비장하게 한마디 했다.
“영국군 측에서 요청이 왔어. 네 도움이 필요하다더군.”
엑.
이번엔 또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