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97)
매국노의 원수 자식-197화(197/773)
197_아메리칸 워 머신 (3)
1916년 10월 말
미시간, 디트로이트
몇 주 동안 난 채권 팔이 순회공연을 하면서 동시에 무기상 노릇도 열심히 했다.
쿠르르르르르
“최근에 개량한 이 전차를 봐봐. 이 녀석을 어떻게 생각해?”
“크고···아름답군요.”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도시 중 하나는 디트로이트였고, 온 김에 당연히 포드 모터 컴퍼니의 헨리 포드도 방문했다.
“역시 최초로 자동차를 만든 나라 아니랄까 봐, 전차도 혁신적이군.”
“엥, 그건 독일의 벤츠 (Karl Benz)가 만든 거 아니었나요?”
“아냐, 퀴뇨 (Nicolas-Joseph Cugnot)가 맞아.”
그랬었나? 뭐, 자동차 관련해선 포드가 맞다고 하면 맞는 거겠지.
“아 그래, 프랑스에선 수고했어. 조만간 수고비도 입금해주지.”
“감사합니다.”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바레즈 대령을 꼬드겨서 프랑스군을 통해 르노사에서 개발 중이었던 탱크 정보도 얻어내어 포드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신형 경전차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포드가 밝힌 바에 의하면 최종형은 최소 4개월, 최대 8개월은 더 걸려야 완성할 수 있을 같긴 하지만.
물론 신형 탱크 개발한다고 기존의 포드 3톤 전차를 완전히 버린 건 아니고, 개선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마침 본인의 회사가 부도난 이후 빈곤에 빠진 8기통 엔진의 발명가, 레옹 레바바쇠르 (Léon Levavasseur)도 넉넉한 연봉을 보장하며 미국으로 스카우트했다.
포드가 말하길, 레바바쇠르가 기존의 포드 모델 T 엔진을 개량한 덕분에 신형 전차는 물론이고 포드 3톤 전차도 속도와 험지 주행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번에 판초 비야 원정에 쓰인 트럭에도 레바바쇠르의 인풋이 있었다지. 좋은 인재를 납치해왔군, 후후후.
전차도 전차지만, AAC에서도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시작한 (아무리 봐도 Po-2인) 가성비 복엽기 개발을 열심히 진행하고 있다.
“이건 언제쯤 실전에 투입될 수 있을 것 같아?”
“아마 내년 중후반쯤?”
“빨리 됐으면 좋겠다. 속도가 느린 것만 빼곤 너무 좋잖아, 이거.”
헨리 아놀드는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다용도 비행기의 프로토타입을 정말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테슬라가 제작한 신형 라디오까지 탑재하면 1차 대전 최고의 정찰기로 거듭날 것이다.
게다가 이건 전쟁이 끝나도 생산이 중단되기는커녕 우편배달이나 농업 등, 민수용으로 써먹기에도 적합하니 더더욱 훌륭하지.
마지막으로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존 브라우닝 또한 나에게 흥분과 감사로 가득 찬 편지를 보냈다.
영국에는 소이제 탄환을, 프랑스에는 중기관총을, 그리고 여러 국가에는 PPS 기관단총 등, 브라우닝이 개발한 총기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어서 하루하루가 행복한 모양이네.
···하필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제국군의 제식 화기로도 채택된 건 진짜 기분이 찝찝하긴 하지만. 아이씨, 이럴 줄 알았으면 가성비를 조금은 나쁘게 만들걸!
“리, 곤란한 질문 하나만 해봐도 되냐?”
“곤란한 걸 알면 안 하는 게 예의 아닐까.”
“너 혹시 역사에 남을 무기상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내가 미래 지식으로 얻은 돈과 인맥으로 가장 많이 하는 짓 중 하나가 무기 개발이고, 그걸로 번 돈으로 다시 무기 개발에 투자할 생각이니까.
당연히 돈도 돈이지만, 그저 개발 그 자체를 위한 개발을 하냐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겠네.
“···아니 어떻게 알았지?!”
“그럴 줄 알았어. 뭐,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도 많이 챙겨주니까 불만은 없지만 말이야. 육지고 바다고 네가 개발한 무기가 사실상 전장을 결정하게 생겼어.”
솔직히 1차 대전이 빨리 끝날수록 좋다. 한국에 갈 피해와 일본이 누릴 전쟁특수 둘 다 줄어드니까.
개전도 더 빨리했고 원정군 머릿수와 무장 수준도 더 높으니 이르면 내년 중반, 늦어도 내후년 초반까지는 끝내보자고, 제발.
그리고 종전하면 대가리 하나는 확실히 날려야지.
*****
1917년 1월
워싱턴 D.C.
“부르셨습니까, 대령님?”
“지금 제정신인가, 맥아더!”
공병단장 윌리엄 블랙 (William M. Black) 대령은 순식간에 두 계급 진급한 더글러스 맥아더 대령을 노려봤다.
자신의 전 상관이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노하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자네 분명히 전쟁부 홍보관 업무가 끝나면 내 밑으로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았나.”
“제가 그랬습니까?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아주 그냥 사람을 놀리는구먼. 특진은 축하하는 바야, 비꼬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보직을 변경하겠다고?!”
맥아더의 눈에는 후회하는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26개 주에서 병력을 혼합 편성한 사단, 제42사단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과정에서 소령에서 대령으로 특진했고, 병과도 공병이 아니라 보병으로 자원해서 변경했다.
“공병이야말로 육군의 꽃이고, 괜히 웨스트포인트 최상위 졸업생들이 그 병과를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기수 수석 졸업생으로서 모를 수가 없죠.”
“그런데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거지?!”
맥아더는 자신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가 제24 위스콘신 보병 연대에서 근무하던 시절에서 중요한 관찰을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전시 승진이란 전투부대의 장교들한테 가장 빨리 주어지는 법이라는 사실을.
“이번 전쟁에선 보병에게도 활약할 기회가 많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병과 비중의 세대교체가 이뤄질지도 모릅니다, 대령님.”
이 발언이 마치 신성모독이라도 된 듯, 블랙은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리며 맥아더에게 삿대질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맥아더. 내가 장담하지, 자네는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노발대발하는 블랙 앞에서 맥아더는 피식 웃으며 파이프에 담뱃불을 붙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계신 듯하시니 제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얇은 연기의 막 뒤에서 비친 젊은 대령의 눈빛은 혈기와 오만함으로 가득 찼다.
“당신한테 돌아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내가 장담하지.”
길길이 날뛰는 블랙 대령을 뒤로하고 맥아더는 그의 사무실을 떠났다.
국무, 전쟁, 해군부 건물을 나온 맥아더는 자신의 창창할 미래를 생각하며 푸른 하늘을 쳐다봤다.
쾌감도 잠시, 1월의 싸늘한 공기에 그의 피부가 따가워졌고, 잠시 잊고 있었던 불편한 사실이 그의 의식 속 수면에서 다시 올라왔다.
“한국군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군···”
맥아더가 대일 리와 함께 창설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 대한제국군이 지금 동부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엔 아버지의 이름을 따 창설한 캠프 맥아더가, 윌슨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지시하면서 완전히 빈집이 되어버렸다.
미국 입장, 아니, 윌슨 정부가 보기에 한국은 너무나도 사소했는지 한국 관련 소식은 그다지 들려오지 않았기에, 맥아더는 현재 한국군이 얼마나 잘 싸우고 있는지 알 방법이 거의 없었다.
대일 리 소령에게도 물어봤으나, 스스로에게 미군 장교라는 신분을 계속 상기시키려는지 언급 자체를 최대한 피하는 듯했다.
워싱턴에서 자주 보는 리 부인도 늘 밝고 활기찬 태도를 유지하다가 그 주제만 나오면 오묘한 표정으로 변하는 걸 보고 어느 순간부터는 맥아더는 리 부부의 앞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맥아더는 그 주제가 언급될 때마다 리의 표정 뒷면에서 분노와 슬픔이 희미하게 묻어나오는 걸 놓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리 부인도 어쩌다가 동부전선에 관련한 대화를 하다 보면 알 수 없는 독기가 느껴져 오싹해졌다.
‘뭔가를 꾸미고 있어, 그 둘···’
감정을 통제 못 하고 때로는 이성적인 판단력도 상실하면서도 행동력 하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리가 이 일을 가만히 받아들이고만 있을까.
최소한 맥아더가 알고 있는 대일 리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어쩌면 정말 거대한 불씨를 키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불길이 어디서부터 시작돼서 어디까지 퍼져나갈지 예측할 방법도,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맥아더는 일단은 이 조짐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이게 자신에게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지.
현 정권의 위선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리가 질러버릴 불을 구경하고 싶었는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맥아더는 침묵했다.
다만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확실했다.
대령이 된 이후로 틈만 나면 리 ‘소령’을 찾아가서 자신의 계급장을 톡톡 치면서 경례를 받아내는 일은 즐겁다는 것을.
맥아더는 절대로 잊지 않았다.
*****
1916년 11월 초.
메릴랜드, 볼티모어
전국 순회공연을 다 끝난 지 며칠도 안 돼서 진행된 대통령 선거에서 우드로 윌슨이 재선하고야 말았다.
윌슨은 ‘우리를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He will win us the war)’라는 재선 슬로건을 달아댔고, 유틀란트 해전과 판초 비야 원정 성공을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알고 보니 나를 채권팔이 순회공연을 보낸 것 또한 채권도 채권이지만 결국 재선을 위한 업적 홍보의 일환이었던 모양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현 총리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는 이완용에 의하면 한국군이 동부전선으로 가게 된 것도 윌슨이 한몫한 듯하다.
원래는 고종이 미군과 함께 서부전선으로 파병할까 싶어서 윌슨에게 연락했으나, 미군은 괜찮으니까 러시아군이나 지원하라는 답장을 받았다.
안 그래도 러시아 제국의 지원 요청을 여러 번 받았는지라, 고종은 ‘콜’하고 동부전선으로 파병했다더군.
선 넘네. 아주 세게 넘네.
윌슨아. 투 스트라이크다.
이제 슬슬 비상대책을 준비해야겠다.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세레나 또한 이제까지 공공정보위원회의 간부로 일하는 와중에 작성한 리스트를 보여줬다.
그녀에게 절대로 그 명단 보여주지 말고, 계속 채워나가라고 부탁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야 할 비밀 카드로 남겨놓게.
또 한편으로는 안창호를 통해서 재미한인들에게 전투 병과는 못 들어가더라도 미군에 자원하거나 안되면 전시채권을 최대한 많이 사라고 부탁도 했다.
성경에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황화론이고 뭐고, 미국 온 동네방네에 한국은 미국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이제 난 어떻게든 더 큰 전공을 세워야 할 필요가 생겼다.
‘한국’계 미군 장교로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유틀란트 해전도 끝난 판에 이젠 또 무슨 활약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몇 개월 후 나 또한 다시 유럽으로 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국도 아닌 프랑스로.
상상도 못 한 형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