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199)
매국노의 원수 자식-199화(199/773)
199_폭발은 예술이다 (1)
1917년 1월
워싱턴 D.C.
“오래간만일세, 리.”
“몇 년 만에 뵙네요, 대통령님.”
미합중국 해군 원수 조지 듀이의 시신이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장되기 전에 임시 안치된 국회의사당에서 익숙한 사람을 만났다.
“셋이 몇 년 만에 이렇게 모이긴 했지만, 좀 더 밝은 자리였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전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평온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듀이의 시신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권투 스파링을 하다가 한쪽 눈이 완전히 망가진 게 사실인지, 오른쪽 눈은 젖어왔으나, 왼쪽 눈은 마치 유리처럼 굳어 있었다.
기마병 돌격도 하고, 권투와 유도도 하고, 오지 탐험도 할 정도로 매사에 힘이 넘치던 루스벨트가 아니었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노인이 다 된 그의 머리엔 흰머리가 잔뜩 보였고, 몸에 가득했던 탄탄한 근육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러프 라이더즈 때처럼, 자원병 부대를 형성해서 유럽으로 가겠다고 백악관에 공식적인 요청까지 했어. 부관 (Frank McCoy)도 생각해놨고 말이야.”
그래도 테디 특유의 마이웨이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윌슨 그 녀석이 단호하게 거절했지 뭐야.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나 참.”
“뭐, 각하께서 대통령님의 제안을 달갑게 받아들일 리는 없죠. 어느 정도 요청하셨는데요?”
“그렇게 많이도 아니고, 그저 4개 사단일 뿐이야.”
아.
1, 2개 여단 정도가 아니고 4개 사단을 형성하는 걸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거지?
“뭘 그렇게 미친놈 쳐다보듯이 보나, 그 정도는 되어야 전쟁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이 아저씨가 지금 장난하시나, 현 대통령이 루스벨트의 절친이었어도 저 정도 막 나가는 요청은 못 들어주겠다!
내가 얼마나 그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는지, 루스벨트도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다 치고, 리 자네는 다시 유럽으로 갈 건가?”
“네, 늦어도 다다음 달에는 출발합니다.”
“그러면 또 카이저마리네랑 싸울 건가? 유틀란트 해전처럼 대규모 해전을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 그건 아닙니다.”
이번엔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로 가야지. 그래야 더 이름 날리는 전공을 세울 수 있으니까.
‘한국’계 미군 장교로서.
이 문제에 대해선 해군부 장관 대니얼스하고도 얘기를 잘 해 놓았다.
‘아니, 그러니까 해군 장교 주제에 바다가 아니라 땅에서 뒹굴고 싸우시겠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파일럿으로서 활약할 일이 있으면 더더욱 좋고 말입니다.’
‘왜, 또 베라크루즈 때처럼 훈장 받아보고 싶어서 그런가? 유틀란트 해전 중에 네가 헛짓거리 저지른 것 때문에 아무 포상 못 받아서 이번에 대신 받아보게?’
솔직히 말해서 그를 직접 본 지가 좀 돼서 그가 나한테 필요 이상으로 띠껍게 구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윌슨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워싱턴에서 부려 먹히다가 플로리다로 (강제로) 탈출했을 때처럼, 이제 그들의 나를 향한 혐오를 어느 정도 써먹는 요령도 터득했다.
‘제가 바다보다 육지에 있는 게 훨씬 더 죽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 소리를 듀이, 리히, 또는 FDR 같은 부류의 상식적인 해군부 인사에게 했으면 나보고 미쳤냐면서 당장 워싱턴을 못 빠져나가게 보직을 하나 만들어 놓고 붙잡았겠지.
하지만 대니얼스 같은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일리가 있군.’
‘설령 살아 돌아오더라도 전쟁이 끝나면 바로 전역할 예정입니다.’
‘흐음···’
어느 전쟁이라고는 말 안 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프랑스로 가게 된 모양이군. 아, 그렇지! 쿠엔틴 얘기한 적 있지?”
했고 말고, 그것도 여러 번.
루스벨트는 틈틈이 자신의 자식 자랑을 늘어놓곤 했는데, 그중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게 차남 커밋 (Kermit Roosevelt)와 막내아들 쿠엔틴 (Quentin Roosevelt I)이었다.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아무래도 쿠엔틴이 루스벨트가 가장 아끼는 아들인 게 분명하다.
“지금 내 아들들이 전부 미군에 입대했고, 그 아이도 형들 따라서 들어갔어. 그것도 육군 항공대로 말이야.”
“와, 대단하네요.”
“그것도 네가 유럽에서 파일럿으로서 활약한 영웅담을 듣고 감명을 받아서 파일럿의 길을 택했다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종종 나한테 네 얘기 해달라고 부탁하더군.”
···아이고.
“어차피 그 아이는 육군 항공대로 들어갈 테니까, 너랑은 접점이 별로 없겠지.”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
그래도 약속 하나만 해줘. 만약···만약 가능하다면, 그 아이한테 무슨 일이 안 일어나도록 지켜주게나.”
루스벨트는 이제까지 나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많이 해왔었다. 대통령으로서의 신분 때 그런 적도 있어서 상당히 곤란했었지.
하지만 아버지로서 부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더욱 단호해야만 한다.
“죄송합니다만 못하겠습니다.”
“어째서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 그래. 내 정신 좀 봐,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있었군. 못 들은 거로 해주게.”
나보다 훨씬 더 가방끈도 길고, 경력도 길고, 나이도 많은 그가 이 정도 상식적인 걸 몰랐을 리가 없겠지. 그저 부모로서 걱정이 앞섰을 뿐이지.
재선이랑 재익이도 2차 대전이 (원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터지면 딱 현역으로 뛰게 될 나이라서 내가 저 심정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총도 맞고 살아난 당신의 아들이라면 강인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불필요한 걱정이나 하고 있었군.”
“그나저나 진짜로 가슴에 박힌 총알 안 빼실 겁니까···?”
“의사가 빼는 게 더 위험하다고 하더군. 전에 말했잖나.”
역시 테디야, 실망하게 하질 않지.
“그건 그렇고, 최근에 러시아에서 뭔가 일이 일어날 조짐을 보인다는데, 혹시 뭐 아는 거 없나?”
“뭐, 나라 상태가 그 모양이니, 결국 혁명 시도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한 번 불발이 된 혁명이 미뤄졌다가 터지면 더 크게 터지게 되는 법이지···
뭐, 큰 역사의 흐름을 한 사람이 바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지.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 아니겠어?
*****
4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
블라디미르 ‘레닌’ 일리치 울리야노프가 긴 세월의 망명, 그리고 준비를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와 그의 계획을 진행했다.
그 결과 길거리에선 공장을 박차고 나온 노동자의 인파가 들고 있는 깃발의 행진이 아직도 차가운 바람에 붉은 바다처럼 출렁였다.
더러운 상의와 낡아 떨어진 신발을 신거나, 그마저도 없는 노동자들이 마치 한 마음으로 뭉치기라도 한 듯 함께 걸었다.
한 명 한 명만 보면 나약하고 허름했으나, 수십만 명이 함께 행진하니 자본가와 귀족들에게는 군복을 잘 차려입은 정예군보다 훨씬 더 두려운 광경이 되었다.
혁명은 러시아 민중의 삶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법관, 경찰, 관료, 군인, 교사, 지주, 그리고 아버지와 남편 등 크고 작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혁명은 권위를 원수라도 되는 듯이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이 웅장한 풍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레닌은 한때 그의 동지였던 일본의 사회주의자 코토쿠 슈스이를 떠올렸다.
그의 천황 시해, 순교, 그리고 도화선으로 일어난 일본의 소요사태는 실패한 혁명으로 끝나는 듯 했다.
레닌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신의 희생은 절대로 헛되지 않았어, 코토쿠 동지.”
그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웠고, 덕분에 훨씬 더 철저하게 혁명을 계획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두 가지 있긴 했다.
“우리도 PCDA 소속 노동자들처럼 처우해 달라!”
“할 수 있으면서 왜 못 하냔 말이다!”
첫 번째는 미합중국 해군 장교 대일 리 소령이 소유했다고 추정되는 미국의 복합대기업,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
러시아에도 코카콜라나 크래프트 등, PCDA 산하 공장이 여러 도시에 들어섰는데, 미국 본토에서의 노동자 복지가 여기서도 이어졌다.
이 소문이 러시아 노동자들 사이에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곧이어 많은 노동자가 눈을 뜨고야 말았다.
자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미국에서도 이런 좋은 처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있는데, 러시아에선 왜 이럴까.
적지 않은 시위 참여자들의 손에 코카콜라 병이, 주머니엔 초코파이가 들어있는 게 순전히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모습을 본 레닌은 야만적이고 냉혹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대일 리 같이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자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두 번째는 동양인들.
일본에서의 혁명 실패 이후 많은 좌익 계열 인물들이 탄압을 당했으며, 그중 전향을 거부한 다수의 일본인들이 사할린을 통해 러시아로 도망쳐왔다.
게다가 레닌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또 하나의 집단도 보였다.
“우린 군인이지,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죄인이 아니란 말이다!”
“제국이고, 황제고 다 나가 뒈지라고!”
대한제국군 탈영병.
뒤늦게 참전해 브루실로프 공세의 막바지에 참여한 대한제국군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엄청난 훈련도와 전투력을 보여줬으나, 그 과정에서 무시 못 할 피해를 보고 말았다.
그에 비해 대한제국 본국은 원정을 보낼 역량이 없었는지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서서히 탈영병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벌써 제국에 대한 환멸로 이번 혁명에 참여한 대한제국군 탈영병만 1,000명이 넘었고, 소수에 불구하고 든든한 전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특히 그들 중 일부가 소유한 무기 중 하나인 ‘기관단총’이라는 신형 총기는 그야말로 신문물 그 자체였다.
다만 이들을 창설한 장본인이 누구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레닌은 얼굴이 찌푸려졌다.
한국인 관료 출신 내무부 장관이자, 차르에게 작위까지 받은 전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완용 리 백작.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쓰러지려는 제국을 기어이 지탱해내는 구체제의 교활한 망령인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혁명의 세력을 막으려고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그 녀석만은 제거해야 할 텐데 말이지···”
그렇게 페트로그라드에서부터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지 한 달.
러시아 제국군 총사령관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대장이 구국의 결단을 내리고 움직였다.
*****
프랑스, 브레스트
프랑스에 도착한 난 익숙한 장군과 재회했다.
“그래, 결국 너도 와야지, 암.”
“이렇게 또 뵐 줄은 몰랐습니다, 레쥰 준장님.”
제2 보병사단 (2nd Infantry Division) 소속 제4여단 여단장, 존 레쥰 (John A. Lejeune) 준장.
베라크루즈 전투에서 함께 작전을 펼쳤고, PPS-아니, ‘M1 기관단총’이 해병대 제식 총기로 채택되는 데 도와준 사람이다.
“베라크루즈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지? 아 그래, 명예 훈장 수여 축하하네.”
“에휴, 뭐 축하할 게 있습니까, 아무나 다 받는 훈장이었는데.”
그날 전투에서 명예 훈장 받은 사람만 나 포함해서 거의 60명이나 받은 걸 떠올리고 허탈하게 웃는 나를 레쥰은 빤히 쳐다봤다.
“난 못 받았는데?”
앗.
아아아아앗.
“···어, 음, 죄송합니다.”
스메들리 버틀러 소령도 받아서 그의 상관이었던 얘도 받은 줄 알았지!
다행히도 레쥰은 무안해하는 나의 등을 웃으면서 팡팡 칠 뿐이었다.
“농담이야, 농담! 어쨌든 간에 이번에도 네이비 씰이 한 건 터트리겠네?”
“뭐, 그러려고 왔습니다.”
베라크루즈 전투 이후로 해산했던 네이비 씰을 다시 소집했다. 그때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참호전 훈련까지 강화한 다음.
씰 부대 사령관으로만 끝나는 보직이 아니란 게 진짜 웃기긴 했다만.
네이비 씰이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내심 고민하던 찰나에 얼마 있지 않아 영국군과 함께 첫 작전을 펼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내게는 보였다.
인류 역사에 남을 정도로 크게 한 방 터트릴 기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