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
매국노의 원수 자식-2화(2/773)
2_내 아버지가 이완용이라고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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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역사소설을 좋아한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소설의 주인공처럼 위인, 또는 그들의 주변인으로 환생하는 망상을 해본 적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특히 워낙 흙수저로 쪼들리며 살아왔고, 내가 해군 장교로 들어간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병철이나 정주영, 헨리 포드, 월트 디즈니 등 재계의 큰손 또는 그 주변인으로 태어나는 꿈을 여러 번 꿨다.
가끔은 내 가문 이력이 어디 가지 않는지라 독립투사나 민주투사로 태어나서 통수 안 맞고 좀 더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꿈도 꾼 적 있지. 어느 쪽이든 깨어나서 현자타임이 세게 왔다만.
그런데 드디어 그 꿈이 현실로 되는가 싶더니만, 이게 뭐냐.
나, 이대일은 1885년 4월 28일, 원래 역사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을사오적 이완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원래 삶, 그러니까 부산에서 1985년에 태어난 ”김승일“과 딱 100년 차이다.
그리고 지금 난 여기,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하기 며칠 전에 정동교회에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이다
야.
야 이 신 새끼야.
살려준 줄 알고 감사했던 거 다 취소.
금수저로 환생시켜달라고 했더니만 금수의 자(子)로 환생 시켜!?
유머 감각이 너무 악랄한 거 아니냐? 야, 사탄한테 소원을 빌어도 이딴 식으로는 안 들어줄 거다. 아 맞다, 원래 사탄도 네 따까리였고 선악과도 네가 만들었지? 그래 네가 바로 사탄과 세상 모든 악의 근원이네.
천국에 보내주기도 싫었으면 차라리 지옥으로 보내던가. 내 할아버지 절친이 이완용 암살미수로 처형당했는데 나를 굳이 역사까지 바꿔가면서 그 새끼 막 내아들로 만들어놓다니, 하하하 미친 하하하.
”이게 무슨 일이고…“
나는 자기 나라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영국흘리건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멘탈이 붕괴된 상태로 교회 장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가득한지 아는지 모르는지, 저기 이완용과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뭐 세례중에 거부반응 보였다고 사탄의 자식이라니 뭐니 그러는 건 아니겠지?
”쯧쯧쯧, 드디어 현실 파악이 되는 거야?“
혼미한 상태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내 뒷자리에 한 소녀가 앉았다. 뒤를 돌아보니 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 오른쪽에 리본을 달고 있는, 절대로 조선인으로 보이지 않는 소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 목사님이 아펜젤러라면 내 눈앞에 있는 이 소녀는…
“여, 안녕 앨리스.”
“어머, ‘예수쟁이 양년’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부르는 건 처음이네. 세례받고 나서 진짜로 성령이 몸에 임하기라도 한 거야, 도련님?”
“윽···.”
한편으로 보면, 기억을 다듬어 본 결과 내가 빙의한 이 ‘이대일’이라는 소년은 요즘으로 치자면 엄친아 그 자체였다.
이완용은 주미 공사관으로 파견되었을 때 어린 대일을 데리고 갔고, 그 덕에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선에 돌아와서는 러시아 공사 카를 베베르 (Карл Ива? нович Ве? бер) 밑에서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도 배웠다. 그 결과 현시점의 대일은 조선에서, 아니, 아시아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4개 이상 국어 구사자였다.
그리고 배재학당도 몇 년간 다녔는데, 졸업 시점엔 설립 이래 거의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13살부터 이미 키가 170을 넘기고 (심지어 계속 성장 중이다!) 전문 씨름꾼과 싸워서 비겨서 장사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피지컬이 다부졌으니, 말 다 했지.
여기까지만 보면 문무를 겸비한, 외부대신의 천재 아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다···
“현실 파악이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와, 네가 욕 안 하고 말을 하다니, 진짜 적응 안 되네. 너 하도 사고 많이 쳐서 미국으로 반 도피, 반 유배 보내는 거잖아, 그것도 몰라?”
···내 엄청난 장점을 다 쌈 싸 먹을 정도로 인성 파탄자였다는 점이다.
거의 1주일에 최소 서너 번은 길거리에서 주먹다짐했고 (물론 내가 무조건 이겼다), 아녀자를 희롱은 기본이요, 거리의 상인들을 협박해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뜯어냈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래의 조선 귀족) 백작가의 망나니다, 이거지.
세상에, 맙소사.
“미국으로 간다고? 진짜로…?”
“미국같이 무한하고 가능성이 넘치는 나라라면 너 같은 녀석도 포용할 수 있다나 뭐라나.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프론티어 정신이 충만한 데다가 중국인도 많겠다, 너한테 딱이라고 아빠가 그러던 것 같던데?”
“아니 잠깐, 내가 미국에 어떻게 가는데?”
“뭘 어떻게 가긴? 일단 네가 미국 시민권자니까 갈 수 있는 거지.”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봤더니, 맙소사, 진짜로 난 미국 시민권자였다.
미국으로 날 데려간 이완용은 주미 공사관 서기관 알렌 (Horace Newton Allen)이랑 어찌어찌 협잡질해서 나를 미국 시민권자로 만든 모양이다.
···세상에. 미국에서 이민자들,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를 향한 인종차별이 판치는 시대에서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뤄낸 거냐.
“헐.”
“좋겠네, 이 좁아 떨어지고 미개한 나라를 탈출해서.”
앨리스가 뭐라고 했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에 대한 황당함과 경의가 섞여 있는 상태로 난 이완용과 아펜젤러 선교사님과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우선 나를 유학 보내는 목적이 제일 궁금했다.
고등학교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졸업한다 치자. 그러면 성적에 따라서 대학교도 미국에서 가는 건가? 이완용 저 새끼는 나를 유학 보내서 도대체 뭘 시킬 생각인 거지? 내가 뭐 일종의 국비 장학생이라도 되는 건가?
“조금만 더 성격이 온유하고 기품 있었으면 하버드나 예일 같은 곳도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지···”
“뭐, 대일이 성격이 좀 격하긴 하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웨스트포인트도 충분히 명문 대학이니까요. 추천서를 어디서 받을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네? 어디라고요···?
망할.
미군이 되라니, 야 이 애비새끼야, 님 도르신?!
아직은 친일파가 아닌 친미파라 일본군으로 들어가라 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 다만, 뭐 이딴 루트가 다 있어?
땅보병으로 받아줄지 안줄지도 모를 판에 퍽이나 사관학교에 입학시켜주겠다!
“아니 잠깐만, 아버지? 왜 하필 군인입니까?!”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네, 이건 질문을 해야지. 그 질문에 돌아온 건 이완용의 너무 한심한 소리를 한다는 눈빛과 한숨뿐이었다.
“이미 끝난 얘기 아니더냐? 네놈이 학자를 할 것이냐, 관료를 할 것이냐. 그 광포한 성미에 적합한 직책이 어디 시정잡배나 군관 말고 어디 있으면 나도 궁금하구나.”
“어···”
“그리고 그렇게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더냐, 정작 그곳에서 입신양명할 기회를 얻었거늘, 뭐가 불만이라는 건지, 허 참.”
대일 이 새끼는 도대체 14살밖에 안 된 급식충 주제에 뭔 짓을 하고 쏘다녔길래 군인밖에 할 게 없다는 판정을 받냐? 와 신이라는 작자도 진짜 너무하네.
UDT에서 의병 제대할 정도로 빡세게 굴렀던 사람한테 또 군대크리를 때리려고 하네?
신은 내 편에 없고, 애비새끼는 미쳤다. 이쯤 되면 확실하다.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나 개새끼다.
하 인생 진짜 어떻게 하나. 그래 일단 미국으로 가자, 뭐 어쩌겠어.
···어 잠깐만.
가만있자, 지금이 1898년이지?
오.
오 와우.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면···더글래스 맥아더가 1903년에 졸업했던가? 와우. 동기는 못되더라도 선배로서 얼굴을 볼 수 있잖아?
쩌는데?
맥아더, 아이젠하워, 패튼, 브래들리 등등 2차대전에서 제일 걸출했던 장군들은 대부분 육군이었고, 원수도 그 쪽에서 제일 많은 데다가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왔잖아?
“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솔직히 해군은 할 만큼 해봤으니···미 육군도 나쁘지 않은걸? 야, 그리고 혹시 아냐, 포스타, 아니, 원수까지 달수도 있잖아. 어감도 존나 좋네, 검은 머리 미군 원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그 정도로 수완이 좋았으면 UDT에 있었을 때 진급누락 안 됐겠지.
황인종한테 추천서를 써줄 정치인을 어디서 찾느냐는 문제가 남아있긴 하는 데···에, 뭐 어떠냐. 남북전쟁에서 흑인이 북군에 붙어서 싸웠으니까 유색인종 장교 한두 명 정도는 받아주지 않겠냐.
아,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아직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완용의 아들 이전에 난 독립투사의 후손이고, 수치스러운 미래를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뭐든 간에 경술국치를 막아야 한다. 저 애비라는 작자의 뚝배기를 깨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