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00)
매국노의 원수 자식-200화(200/773)
200_폭발은 예술이다 (2)
1917년 5월
벨기에, 메시네 (Messines) 인근
영국 원정군과 (소수의) 미국 원정군과의 기념비적인 첫 전투는 제1, 2 이프르 전투가 일어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메시네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메시네 전투라.
젠장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전투네. 뭐, 애초에 1차 대전 전투 중에서 들어본 거라곤 솜 전투, 탄넨베르크 전투를 포함해서 몇 개 없긴 한데.
“그 악명높은 대일 리 소령을 드디어 만나보다니 이거 나름 영광이군.”
“감사합니다···?”
이번 작전의 영국 측 사령관, 제2군 군단장 허버트 플러머 (Herbert Plumer) 장군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를 혐오하거나 얕잡아보는 것 같지는 않아서 참 다행이긴 하건만, 마치 정글 깊숙이 새롭게 발견된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관측하는 모습이 껄끄럽긴 했다.
처음엔 왜 무려 군단장이나 되는 사람이 고작 작은 대대급 부대 지휘관인 영관급 장교를 따로 불렀는가 싶었으나, 지금 보니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듯하다.
“황인종 출신 미군 장교, 그것도 해군 파일럿으로 이름 날렸던 리 소령을 여기에 이렇게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참으로 이질적인 존재란 말이지!”
“확실히 일반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그래도 체격을 보니 지상전에서 아주 능숙할 것 같긴 하군. 듣자 하니 저기 이탈리아군 특공부대 아르디티도 네이비 씰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데 사실인가?”
“이탈리아군 쪽 사정은 제가 잘 몰라서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이탈리아군에서 문의했기에 그냥 적당히 검열해서 최소한의 정보만 알려줬더니만, 그거 가지고 진짜로 특수부대를 만들 줄은 몰랐다.
이것도 나름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긴 한데, 왠지 나중에 추축국이 되는 이탈리아군하고는 엮이기 싫다고.
나에게 가장 자주 연락한 조반니 메세 대위 저 친구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 하지만 현재 저렇게 열정 넘치는 위관급 장교라면 2차 대전에는 별까지 달지 않을까.
“어쨌든 미군이 드디어 유럽에 도착하다니, 새로운 희망이 솟아나는 기분이야. 리 소령이 프랑스도 몇 번 방문했던데, 그때마다 프랑스군은 미군 언제 오느냐고 신세타령이나 해댔겠지?”
“프랑스군은 매우 훌륭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와 장군은 진짜 아무나 되는 게 아니네. 어떻게 그걸 또 눈치를 채지.
물론 매우 점잖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프랑스군이 미군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고 죠셉 바레즈 대령의 눈에도 초조함이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그들에게는 아쉽게 됐어. 육지에서도 미군이랑 먼저 작전을 펼치는 것이 프랑스군이 아니라 영국군이 되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비행선 공략 작전 때처럼 이번에도 리 소령이 참가하는 군, 그래.”
임시적, 그것도 비공식적이라고는 해도 미국 원정군 소속 장교 중에서 영국군과 어떤 형태로든 협력해본 건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전엔 원정군의 전력이 아닌 네이비 씰과 해병대만 투입되기로 했다. 원정군이 아직 여기에 적응이 되지 않은 것도 있고 말이다.
다행히도 미군 원정군 총사령관 존 퍼싱 장군은 이번 작전에서 우리가 선두에 설 일은 없다고 못 박아놨고, 전공이 절박했던 나도 그 정도까지는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제일 선두에서 가장 깊게 독일군 진영으로 파고드는 건 제2군이고, 우리는 제2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군단 (II ANZAC Corps)와 함께 메시네의 남쪽에서 기동할 예정이다.
“프랑스군이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뭐, 그들을 비난하기도 그렇긴 하다만.”
현재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프랑스군이 4월에 야심차게 시작해서 지난달에 끝난 니벨 공세 (Nivelle Offensive)는···음···처참한 대실패로 끝났다.
영프 합쳐서 85만 명이라는 대군이 투입된 전투에서 프랑스 측 약 19만, 영국 측 16만이라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바레즈 대령한테서 어느 정도 들어본 걸 통해 유추해보니, 아무래도 프랑스군 내부에서 제법 심각했던 파벌간의 마찰이 이번 실패에 크게 한몫했던 모양이다.
이 정도 규모의 참사가 정확히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일개 영관급 장교, 그것도 해군이 일일이 다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다.
아무튼, 샤를 망쟁 (Charles Mangin) 장군과 로베르 니벨 (Robert Nivelle) 장군은 이번 작전의 실패로 해임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암울한데, 프랑스군의 사기가 아주 지반까지 뚫고 내려갔다. 1차 대전 이후로 최악으로 떨어진 사기로 인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처형된 주모자만 23명이라고 한다.
심지어 독일군이 이 기회를 틈타 공세를 펼치려고 했으나,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이 프랑스군이 거부한 건 공세였지, 방어가 아니었는지라 독일군의 진군은 다시 멈추고 말았다.
이렇게 암울한 상황이라, 영국군이 시원하게 한 번 터트려줘야만 하는 상황이고, 여기에 나도 한몫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영국군은 생각보다 더 오래 여기를 공략하기로 한 듯하다.
“장군님, 그건 그렇고 이번 작전은 너무 마음에 든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이런, 자네의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면 이미 널리 퍼졌다는 뜻이군.”
“워낙 훌륭한 작전이라서 듣는 병사들이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뭐, 그것도 그렇지, 하하하!”
이번 작전의 목표는 독일군이 꽤나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던, 이프르 남쪽의 메시네 능선 (Messines–Wytschaete Ridge)의 점령이었다.
그리고 플루머 장군 이 사람은···천재였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무지막지한 지뢰를 대규모 설치할 생각을 하십니까!”
별 전략안이 없는 나로선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만약 플루머 본인이 실행하지 않았으면 내가 제안을 했을 정도로 말이다.
“이런, 세상에. 이제까지 그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을 봤건만, 자네처럼 신나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야.”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베라크루즈에서도 건물 폭파를 해본 적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폭발은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즐거운 일이야, 아암.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나를 쳐다보는 플루머는 머릿속에서 나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나를 포함한 미군을 최대한 잘 써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겠지.
영국 해군의 대함대가 괜히 미국 원정 함대를 하대하고 작전에서 배제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꼴을 보고 교훈을 배우기라도 한 듯.
“가만있자. 내가 알기엔 베라크루즈에서 네이비 씰이 대활약을 했었지. 거긴 시가지였는데, 맞나?”
“그렇습니다. 말 나온 김에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흐음···”
미군 진영 측으로 돌아가 퍼싱 장군에게 제안했다.
아직 지뢰가 설치가 완성되지 않은 곳이 여러 곳 있었고, 완성된 것도 점검하는 마무리 작업이 필요한데, 여기서 공병 보조에 네이비 씰을 투입하는 게 어떻냐고.
꽤나 오랫동안 대규모로 펼쳐온 설치 작업이라 독일군 측에서도 작년부터 눈치를 채서 대응 작업에 나섰고, 이미 영국군이 설치한 지뢰 중 몇 개는 침수시키거나 해체했다.
제일 골 때리는 건 그렇게 양국에서 열심히 작업하는 과정에서 서로 만나서 독일군이 영국 공병에게 총격을 가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근거리 전투 경험이 많고 폭발물에 대해서도 공병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해박한 네이비 씰에게 매우 적합한 역할이라 생각해서 한 번 제안해본 것이다.
나를 빤히 쳐다본 퍼싱은 비속어 하나도 없이 그의 입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욕을 내뱉었다.
“맥아더가 옳았군. 역시 내가 보기엔 패튼 그 녀석이랑 너는 제법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네.”
저기요, 장군님.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차라리 제 부모님을 욕하시죠. 특히 아버지를.
퍼싱의 허가가 떨어진 후, 약 한 달 동안 나는 네이비 씰을 데리고 지뢰 매설 구역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 특히 ‘온타리오 팜’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뢰와 ‘크루이스트라트 (Kruisstraat)는 우리가 돌진할 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아서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했었다.
다행히 독일군과 교전할 일은 없었지만, 영국 공병들이 독일군이 근처에 있다고 잠시 작업을 멈췄을 땐 소름이 돋긴 했다.
정말 크고 아름다운 지뢰를 보면서 얼마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오는 걸 주체할 수 없었는지, 공병들이 가끔 나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다.
사실 베라크루즈 전투는 솔직히 말해서 미국이 멕시코에 외교적으로 잘못해서 일어난 전투라 네이비 씰이 일방적으로 방어군을 제압하면서도 조금은 찝찝했다.
전생의 경험이 아직도 무의식 속에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그 전투에선 전반적으로 최대한 희생자를 줄이도록 신경을 많이 쓰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 상대하는 건 독일군이다. 2차 대전의 일본처럼, 누가 봐도 이 새끼들이 먼저 미국에 시비를 걸었다.
미군 장교로서 양심의 가책 없이 내키는 대로 터트릴 수 있다, 이거야.
6월 첫째 주에 준비가 다 끝날 때까지, 의외로 영국 육군과는 크나큰 마찰이 없었다. 심지어 몇몇은 내가 티백을 개발했다는 걸 알고는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다만 그들을 관찰하면서 뭔가 좀 많이 찝찝한 점이 있었다.
“리 소령님도 좀 쓰시겠습니까?”
“아뇨, 전 괜찮아요.”
“전투 시에 엄청나게 도움 되는데 말입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영국군 중에서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하는 병사들이 제법 많았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니, 일본에서 영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에 수출 중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야 말았다.
어. 내가 알던 것보다 발명 시기가 많이 빨라졌는데?
이거 잘못하면 1차 대전 끝나고 약물 중독 문제를 일으킬 소지도 보이는데, 쓸데없는 걱정이려나···?
···영국이 마약에 시달리면 그건 그거대로 참 아이러니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전투가 코앞까지 다가왔고, 난 약간의 프로파간다를 한 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퍼싱 장군님, 이거 받으십시오.”
“맙소사, 부인이 공공정보위원회에서 일한다더니 못된 것을 배웠구먼.”
아 그래서 안 하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장군님.
퍼싱에게 격발 장치를 하나 쥐여 주었고, 근처에 카메라를 세워 놓았다.
그리고 새소리가 들려오는 어느 평온한 새벽
3.
2.
1.
심어놓은 지뢰가 폭발했다.
투콰콰콰쾅!
인간이 만든 대재앙이 천지를 뒤흔들던 그 날 아침에 나는 돌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