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11)
매국노의 원수 자식-211화(211/773)
211_대전쟁의 종막 (1)
1917년 10월
벨기에, 파스샹달
“그래서. 생각은 더 해봤어, 에이스 킬러?”
“그게 말입니다···조금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령님.”
안 그래도 파스샹달 전투 이후로 계속 나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던 빌리 미첼 대령은, 내가 독일군의 에이스 파일럿들을 차례차례 잡아내자 더더욱 집요하게 나를 쫓아다녔다.
“왜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목숨 내던지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가 이런 사소한 도전이 두려운 건가?”
항공기의 가치를 알아주고 강조하며, 항상 나를 칭송해주는 건 기분 좋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자꾸 악마의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대령님,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그런 제안은 저희 같은 일개 영관급 장교들이 논하기엔 지나치게 중대사안입니다.”
“믿을 수 없군.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려고 15년 가까이 투자해온 건가?”
공군 창설은 일러도 너무 이르다고, 이 미친놈아.
내가 아무리 현재 항공기 사업에 엄청나게 투자와 기여를 많이 했다고는 해도 난 결국 해군인데, 미 공군은 미 육군에서 갈라져 나온 거로 기억한다.
그런데 뭐, 육·해군 항공대를 통합해서 새로운 군종을 만들어? 어후, 악셀을 아주 그냥 풀로 밟으시네.
“상상을 해봐, 리.”
미첼은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신형 다목적 복엽기, Po-2···가 아닌 “나이트 스토커”를 바라보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저거 폭장량도 기존 복엽기와 비교하면 증가했다고 했지?”
“AAC에서 전달받은 내용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벌써 상상이 되는군. 자, 넌 밤에 곤히 자는 독일군이야. 또 다른 암담한 내일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서 불편하게 뒤적이고 있겠지. 그러다가 쾅!”
조용히 말하던 미첼은 갑자기 주먹을 쥐고 다른 손바닥을 내리치며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진지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거야! 야포인가 싶어서 일어나보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그래서 넌 하늘을 바라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대공포병들도 흥분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결국 허탕만 칠 뿐이야. 정말 끔찍하겠지?”
“아. 네···”
와.
동기고, 상관이고, 해군 장교들 앞에서 해군 항공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나도 이렇게 미친놈으로 보였을까···?
“네가 얼마나 항공기와 폭격 둘 다 좋아하는지 잘 알아. 이걸 직접 해볼 수 있다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일일 설득 할당량을 다 채운 미첼은 본인의 업무를 보기 위해 자리를 떴다.
변화라.
다른 건 몰라도 일단 미국 원정 함대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좀 생기긴 했다.
우선 명칭을 미국 원정군과 헷갈리는 걸 고려해서 그랬는지, 유럽 해양 함대 (U.S. Naval Forces Operating in European Waters)로 개명했다.
마침 그 타이밍에 맞춰 원정 함대 사령관 헨리 T. 마요 제독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윌리엄 심즈 (William S. Sims) 제독이 사령관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심즈라.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하.
일단 제일 먼저 모 게임이 생각나는 이름이긴 하지만, 윌리엄 스테이튼이 아나폴리스 시절 얘기할 때 몇 번 언급했던 게 기억난다.
그의 몇 기수 선배였고, 유럽 문화와 외교에 대해 해박했으며, 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해군 전쟁대학 (Naval War College)의 학장이었다지.
장인 어르신이 묘사한 걸 종합하면 고집이 세고, 사고방식이 특이한 게 전형적인 괴짜지만, 추진력이 뛰어나고 생각보다 진보적인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에 호의적인 성향을 보이는지라 작년 무렵에 미 해군과 영국 해군 사이에서 일어난 묘한 알력다툼을 완전히 수습하는데도 적절했던 모양이다.
흠. 한 번 질러볼까?
미첼이 제안한 육·해군 합동 항공대에 대한 제안이나 날려봐야겠다. 아, 물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러이러한 소리가 들려온다, 는 식으로 온건하게 표현해야겠지.
솔직히 될 거라고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여기서 확실하게 빠꾸 먹으면 나도 할 건 다 해봤다며 미첼 저 인간을 드디어 닥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전보를 보내봤건만, 의외의 답장을 받았다.
“이-이걸 고려해보겠다고···?!”
게다가 고려하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해군부에도 언질을 잘 넣어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내가 심즈라도 바로 거절했을 텐데, 이게 생각할 가치라도 있어 보였나?
위관급 장교 시절이었던 나였으면 항공기와 관련해서 일이 이렇게 수월하게 돌아가면 신이 나서 깔깔거리고 다녔겠지.
하지만 지금 이 소식을 들은 나는 불길함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내가 뭔가 대가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설마 되는 건 아니겠지?
안 되겠지. 지금 현재 해군부 장관 조지퍼스 대니얼스가 얼마나 나를 싫어하는데. 그래서 일부러 해군으로서 진급과는 거리가 먼 육지로 보낸 거잖아.
그 양반이 내가 추진하는 것 중에서 다른 건 몰라도 해군 항공 관련 프로젝트는 적극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방해는 안 하긴 하지만.
그래, 그럴 리가 없어.
내 예상과는 달리, 심즈에게서 그 전보를 받은 지 1주일 조금 넘어서 해군부가 나에게 전보를 보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니얼스 본인이 보낸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장관이 아니라 해군부 차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직접 보냈을 뿐이었다.
···이런 시발?
*****
11월
프랑스 북부
쾅, 콰쾅!
수천 문의 야포가 불을 뿜으며 영국 원정군 제5군이 맡고 있던 방어선을 강력하게 후려갈겨 대기 시작했다.
“도-독일군이다!”
“이런 미친,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야?!”
메시네 전투 당시의 지뢰 대폭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지형을 완전히 갈아엎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력의 포격에 영국군은 그야말로 혼비백산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날카로운 공격이었으나, 독일군은 이젠 이미 익숙해진 수단을 이번 공세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푸쉬이이이이이익
“저 더러운 놈들이 진짜-케헥!”
“콜록콜록, 가스, 가스, 가스!”
포격과 함께 겨자, 염소, 최루탄 등등 각종 독극물을 다 섞은 독가스가 죽음의 안개처럼 스멀스멀 불어와 영국군의 피부와 폐를 찢어갔다.
펑, 퍼펑!
타다다다다!
마지막으로 포격과 독가스로 혼란 상태에 빠진 제5군을 새벽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스톰트루퍼 부대원들이 덮쳤다.
“끄윽!”
“도-도망쳐!”
이름에 걸맞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스톰트루퍼들은 뜨겁게 달궈진 칼이 얇은 종이를 자르듯 일방적으로 영국군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제5군은 파스샹달 전투에서 발생한 30만 명에 가까운 영국 측 사상자 중 상당수가 발생한 부대였다.
그런 막대한 부상을 입은 후 제대로 회복할 여유도 없었던 5군은 방어선을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했으며, 순식간에 그들이 맡고 있던 전선이 관통당해버렸다.
“이런 제기랄···!”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헤이그 원수는 독일군의 기습이 일으킨 어마어마한 피해 규모를 전해 듣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도 바보가 아니었는지라, 파스샹달에서 일어난 피해가 예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건 인지했으나, 이 정도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루덴도르프 녀석, 정말 남아있는 모든 것을 다 끌어와서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겠다 이거군.”
주먹을 불끈 쥔 헤이그 원수는 숨을 최대한 고르며 그의 참모에게 지시를 내렸다.
“퍼싱 총사령관을 불러와···지금 당장!”
*****
12월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일어나시오, 로마노프 동무.”
불편한 잠을 자던 니콜라이 2세, 아니, 니콜라이 로마노프는 러시아를 장악한 볼셰비키의 정보 조직, 체카 요원 야코프 유로프스키 (Yakov Yurovsky)와 그의 부하들에 의해 깨어났다.
“아니, 지금 몇 시인 줄 아는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오. 조만간 다른 거처로 이동할 테니, 모두 제대로 차려입고 지하실로 내려오시길.”
뭔가 수상쩍었지만, 니콜라이 로마노프는 몇 주 동안 자신과 가족, 그리고 시종들을 감시하던 그들을 거역할 수 없었다.
꼭두새벽에 비몽사몽 한 로마노프 일가를 모두 다 깨운 니콜라이는 “황태자” 알렉세이를 껴안고 넓지만 음습하기 짝이 없는 지하실까지 떨리는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불길한 감에 사로잡혔으나, 니콜라이는 한때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서 최소한의 요청을 할 자격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여 입을 열었다.
“혹시 나와 아내가 앉을 의자 두 개만 가져올 수 있겠는가?”
주제 파악 못 하고 어디서 요구를 하느냐고 윽박지르려던 유로프스키의 귀에 그의 부하, 그리고리 니쿨린 (Grigory Nikulin)이 비아냥거리면서 속삭였다.
“차르 폐하께서 의자에 앉은 채로 뒈지고 싶답니다.”
“뭐, 그렇다면 가져다드려야지, 암.”
그렇게 둘이 가져온 의자 두 개에 “황후” 알렉산드라 로마노프, 그리고 차르가 아닌 “황태자” 알렉세이 로마노프가 착석했다.
모두가 지하실에 모인지 몇 분 후, 총을 꺼내 들은 비밀경찰 여러 명이 지하실로 터벅터벅 내려왔다.
로마노프가의 장녀 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는 스스로의 운명을 예측하기라도 한 지, 슬그머니 한 발짝 더 나아가 동생들 앞을 막아섰다.
품에서 마우저 C96 권총을 꺼내든 유로프스키는 장전하며 즉석에서 사형선고를 내리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러시아와 유럽 각지에 있는 당신의 친인척들이 계속 소비에트 연방을 공격하고 있소. 따라서 우리 우랄 노동자 소비에트는 당신 일가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바요.”
“뭐, 뭐라고?!”
유로프스키가 니콜라이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려는 순간.
쾅!
땅, 땅, 땅그르르
갑자기 지하실 문이 열리며 깡통 같은 물체 하나가 계단을 굴러내러 왔다.
펑!
퓨슈우우우우
그리고 순식간에 지하실이 하얀 연막으로 가득 차올랐다.
“켁, 케헥!”
“뭐야, 대체?!”
유로프스키와 그의 일당이 콜록거리는 와중에, 니콜라이는 계단 위에서 누군가가 어설픈 프랑스어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Descendre!!”
집행자들이 무슨 말인가 당황하는 순간, 알아들은 니콜라이는 (더 교양있고 문법적으로 정확한) 프랑스어로 그의 가족과 시종들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외쳤다.
타타타타타탕!
로마노프 일가가 엎드리자, 계단 위에서 방독면을 착용한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권총으로 아직도 서 있는 집행자들에게 총탄을 퍼부어댔다.
“크아아아악!”
유로프스키를 포함한 비밀경찰들이 순식간에 제압당하자, 구조자들은 총을 내리지 않은 채로 계단으로 내려왔다.
“끄으윽-”
탕탕탕
아직 움직이는 자들은 확인 사살까지 하고 로마노프 일가에게 다가온 구조자들이 방독면을 벗으니, 황인종들의 얼굴이 보였다.
“옥체는 괜찮으십니까, 폐하?”
“그-그대들은 누구요?”
진심으로 존경을 담은 호칭에 익숙지 않아 말을 더듬던 니콜라이의 귀에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리 백작이 보냈습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