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3)
매국노의 원수 자식-23화(23/773)
23_미래의 해군 원수들 (4)
1901년 9월
카리브해, 아이티 영해 부근
”하, 덥다, 더워.“
탐사선 USS 이글의 선원들은 경력과 계급을 불문하고 다들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태양과의 거리가 지구에서 제일 짧기라도 한 듯 강렬하게 내리비치는 태양, 열을 그대로 흡수하는 함선, 그리고 어쩌다가 함선을 빗맞힌 햇빛도 다시 선원들에게 반사해버리는 해수면.
개처럼 헥헥거리는 자들도, 규정이 어떻게 됐든 간에 웃옷을 벗어젖히고 부채질하는 자들도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품위가 갑판위의 수분과 함께 증발해버린 와중에도 오직 한 선원만 예외였다.
올해 초에 아나폴리스에 졸업한 장교후보자, 어니스트 킹 (Ernest J. King)은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한 채로 꿋꿋이 제 맡은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니(Ernie), 넌 덥지도 않냐?“
”흐음.“
같은 시기에 졸업한 동기의 약간은 존경심이 섞인 질문에 어니는 투덜거리는 건지 으르릉거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로만 반응했다.
”올해 여름이 유난히 더운 것 같아. 하, 이번에 들어온 짬찌들은 산티에서 고생 좀 해겠구만. 아 맞다, 어니 그거 들었냐?“”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보니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닌 것 같군.“”아 좀 인간아, 까칠하게 굴지 말고 들어봐. 세상에, 올해 들어온 기수에 황인종이 섞여 있다더라고!“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특보를 전하기라도 하는 마냥 요란한 표정과 몸짓을 동원한 게 무색하게 어니는 그저 늘 그렇듯이 짜증에 가득하여 폭발하기 직전인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어쩌라는 건지?“
”어쩌라고라니, 충격적이지 않아? 하 시발, 저기 웨스트포인트 놈들도 흑인까지는 받아줘도 원숭이 같은 황인종은 받아준 적 없잖아. 어떻게 우리가 떠나자마자 바로 개판이 되는지 모르겠어.“”딱히. 너 같이 제 할 일도 안 하고 딴청 피우는 한심한 작자들보다는 차라리 제 할 일하는 원숭이가 제복을 입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뭐라고 반응할 의욕도 없는 동기를 뒤로하고 어니는 다시 업무를 재개했다.
뭐, 황인종이 들어온 게 확실히 특이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한테는 별 문제도 아니었다.
인종이 평등하다는 포용적인 정신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은 업무로만 평가하면 되는 것이고, 그 잣대를 본인한테도 적용해왔을 뿐이다. 심지어 그는 이미 아나폴리스 동기들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만약 이 후배가 자기 밑으로 들어올지라도 본인만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며, 그 기준에 통과하면 대접해주고, 못 하면 바로 내쳐버리면 그만이다.
일단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사리분별이 있다면 스스로가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몸을 사릴 줄은 알아야 하겠지.
***
야이싯팔, 영창가게 생겼네.
가입교기간이 끝났는지 몇 개월도 안 돼서 교육감실로 호출되었는데 들어가보니 헌병까지 기다리고 있더라고.
“리 생도···문 닫고 자리에 앉게나.”
교육감 리처드 웨인라이트 중령 (Richard Wainwright)이 가리킨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자마자 한 헌병이 내 앞에 메릴랜드주 최대 일간지, 볼티모어 선(The Baltimore Sun)의 일면을 탁자 위에 집어 던졌다.
음, 맥킨리 대통령이 총상으로 인해 결국엔 사망했다. 아, 뭐, 결국 일어날게 일어났구먼.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자네가 맥킨리 대통령 암살에 공모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더군?”
아니 뭐요? 이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소리여?!
”아니, 잠깐만, 교육감님. 제가 어째서···?“
정말 고맙게도 헌병 중 하나가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설명을 다 들은 나는 오히려 더 패닉할 지경이었다.
어···그러니까 내가 안창호랑 RR에서 꽐라될 정도로 퍼마신 이후 내가 다음 대통령은 루스벨트가 될 거라고 천기누설을 했다 이거지?
자, 일단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 뒤에서 일어난 일이 정말 골 때리기 짝이 없었다.
매킨리 대통령은 버팔로 범아메리카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음악의 신전에서 암살당했는데, 하필 네가 아나폴리스 들어오기 직전에 음악의 신전에 출입한 기록이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부분은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자 리온 촐코츠 (Leon Czolgosz)는 열렬한 아나키스트였다. 그런데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 무정부주의의 거물, 표트르 크로폿킨과 엠마 골드만 (Emma Goldman)이 PCDA 산하 공장을 방문했다고···?
아니 뭔데, 왜 하필 니들이 내 공장에 찾아오고 난리에요?!
”그냥 우연으로 넘기기엔 뭔가 공교롭게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단 말이지. 그래서, 혹시 뭔가 더 아는 건 없나?“
아이고, 대일아! 추수감사절 파티에서 꽐라되서 루즈벨트랑 주먹다짐 한 사태다 잊어버리고 또 술 때문에 이번엔 천기누설을 했구나!!
망할, 이걸 또 어떻게 수습하지.
”교육감님 일단 들어보십시오. 전 힘들게 여기 아나폴리스까지 들어왔습니다.
아나키스트가 정부에 무조건 충성해야하는 군인, 그것도 해군 장교가 되는 건 좀 모순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말입니다-“
그렇게 거의 2시간 가까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혓바닥이 빠질 때까지 해명을 하고 나니 교육감은 납득을 한 것 같고 일단 영창으로 끌려가거나 추가로 수사를 받는 대참사를 정말 다행히도 피했다.
하지만 그는 나보고 몸 사리라는 경고를 하고 한 달간 내 주말 외출 (townliberty)을 잘라버렸다. 으악, 이럴 수가!
하, 그래. 천기누설한 죄로 이 정도 처벌이면 싼 편이지···크흑!
어쨌든 시어도어 루스벨트 부통령님이 결국엔 대통령이 되셨구먼.
나와의 (솔직히 정말 예상치도 못한) 친분과는 별개로, 루스벨트는 현시점에는 조선보다 일본을 훨씬 더 동등한 문명국으로 보고 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말할 것도 없고.
후, 그러고 보니 이제 러일전쟁이 3년 밖에 안 남았네. ‘조선멸망’을 읽고 조금이라도 이 미래에 대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뭐, 너무 기대는 말자.
솔직히 고종이라는 작자는 아마 타임머신으로 직접 두 눈으로 미래를 보여줘도 기껏 한다는 게 미국에 SOS 요청하는 게 전부일 테니. 그런 지도자 밑에서 다른 관료들이 선각자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 책 쓴 게 그냥 뻘짓이었나···
뭐, 일단 우리 테디쟝한테 축하한다고 편지는 보내야지.
···어 잠깐만.
그러고보니···?
갑자기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루스벨트에게 축하편지를 쓴 후, 당장 안창호에게 편지를 썼다.
도날디나 카메론의 원래 전문분야가 재봉이었을 거다, 아마. 그럼 내가 도안을 그려주면 인형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겠지? 결정적으로 크로폿킨이 도대체 왜 PCDA에 관심을 보였는지도 물어봤다.
그리고 며칠 후, 안창호한테서 답장이 왔다.
일단 카메론은 내가 보내준 도안대로 인형을 제작할 준비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래, 만약 이것도 제대로만 하면 거의 코카콜라 급으로 돈을 복사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 다음엔 크로폿킨···
알고 보니 크로폿킨은 올해 초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PCDA의 명성을 듣고 한번 찾아와봤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PCDA의 노동자 친화적인 업무 조건 및 복지가 유럽 전역의 노동운동가, 공산주의자,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고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하네.
···아이고 머리야.
안 되겠다, 난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고. 나중에 내 발목을 붙잡기 전에 빨리 이딴 놈들하고는 선을 그어야지!
그리고 이젠 절대로 누구랑 같이 있을 때 필름 끊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을 거다.
만약 술 때문에 또 이런 사고 저지르면 내가 사람이 아니고 개다!
***
그리고 얼마 후, PCDA 산하 모든 업체의 직원들에게 대대적인 공지가 내려왔다. 적발 시 즉시해고 사유가 될 수 있는 사안 목록의 갱신이었다.
사실 이 목록이 만들어진 지는 몇 년 되었지만, 이 목록에 적혀진 항목은 단하나밖에 없었다. 의화단 운동 당시에 작성된 목록인지라 즉시해고 사유는 ‘의화단 운동 지지 발언 및 행위’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이 목록에 두 번째 항목, ‘아나키즘’이 추가되었다.
”거참 너무하네.“
”너···그런 거 하니···?“
”으아악 아니야!“
이 목록의 갱신 이후 PCDA 산하 직원들 사이에서 서로 사상검증을 했고, 마음에 안 들었던 직장동료를 아나키스트라고 허위 신고하는 웃지 못할 하프닝이 일어난 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