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68)
매국노의 원수 자식-268화(268/773)
268_너 죽고 나 살자 (3)
1922년 9월
워싱턴 D.C.
뉴욕시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는 미국의 수도.
“흐아아암···”
그러든가 말든가, 백악관 근처에 있는 한 호텔에서 미합중국 부통령, 캘빈 쿨리지 (Calvin Coolidge)는 조용한 하품과 함께 눈을 떴다.
“···음.”
벌써 해가 중천이었건만 아직도 잠이 덜 깬 듯한 쿨리지는 멍하게 시계를 쳐다봤다.
9시.
어젯밤에 11시에 잤으니, 오늘 밤은 10시간을 잤다.
“어쩐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자는 그의 수면 습관이 부적절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쿨리지의 아내 그레이스 굿휘 (Grace Goodhue)도 포함되어 있었다.
쿨리지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솔직히 자신은 수면 부족이었다.
나중에 점심 먹고 평소처럼 1, 2시간 정도 더 낮잠을 자기로 한 쿨리지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로비에 늘 먹던 아침 식사를 가지고 와달라고 전화를 했다.
쿨리지가 짧은 주문과 함께 전화를 끊자, 그의 애완동물 두 마리가 그를 맞이했다.
아내가 최근에 입양해온 콜리견, 롭 로이 (Rob Roy)는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헥헥거리며 그의 침대 바로 옆에 앉았다.
한편 말티즈 앙고라 고양이, 타이거는 옷장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그의 어깨에 올라탔고, 미묘한 웃음을 짓는 쿨리지는 두 애완동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왜 사람은 개나 고양이처럼 12시간에서 16시간 정도 잘 수 없는 걸까.
만물의 영장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쿨리지는 뒤늦게나마 움직여야 했다. 미국의 할 일은 비즈니스 (America’s business is business)이며, 그는 미국인이었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룸서비스로 아침이 그의 침대로 대령했다. 늘 그랬듯이, 그의 아침 식단에는 로스트비프, 버몬트 피클, 그리고 콘 머핀 세 가지의 음식밖에 없었다.
아내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다들 편식 좀 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고 하지만 사람에는 저마다 입에 맞는 음식이 있는 걸 어쩌란 말인가.
“잊을 뻔했군.”
슥, 스윽.
본격적으로 아침 식사를 시작하기 전, 쿨리지는 머리에다가 바셀린을 잔뜩 발랐다. 머리에 석유 젤리를 바른 채로 아침을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반박은 받지 않았다.
미국, 아니, 전 세계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상태로 식사를 하는 쿨리지는 최근에 창간한 주간지, 타임지 1부를 손에 쥐었다.
창간한 지 얼마 안 된 이 주간지는 아주 공격적인 방식으로 홍보하는 전략을 채택했고, 첫 몇 개월은 구독료를 무료로 해주는 이벤트까지 했기에 쿨리지는 별생각 없이 구독을 시작했다.
“흠.”
타임지 표지에는 모자를 눌러쓴 근육질 군인 조지 슐러 대위와 해병대원들이 겁쟁이처럼 묘사된 제임스 다덴 대령과 휘하 육군 병사들이, 티포트 돔에서 쫓겨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BATTLEFIELD: TEAPOT DOME’
‘티포트 돔의 전투’
쿨리지가 그 사건을 다루는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보니, 만평도 개판이었지만, 기사의 내용은 더더욱 난장판이었다.
“···”
안 그래도 평소에 말이 별로 없던 쿨리지는 입을 다문 채로 곰곰이 고민했다.
요즘 따라 왠지 모르게 군인들이 날뛰고 있다.
워싱턴 D.C.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준장이 대전쟁 당시, 아니, 그전부터 정치인들과 언론인들과의 연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걸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얼마 전에는 빌리 미첼 준장이 항공대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 전함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폭격 시험을 선보였고, 상부에서 실험 결과를 비밀에 부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온 언론에 떠들어댔다.
그리고 이번에는 육군 대령이 국유지에서 석유를 채굴하다가 해병대에게 쫓겨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일어났다.
“육군이 문제인가.”
아니.
전반적으로 문민통제를 좀 더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얼굴이 평상시보다 더 굳어진 쿨리지는 타임지의 페이지를 넘기다가 군사 관련 칼럼에서 멈췄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인해 일어날 여파와 미 해군의 향후 대응을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막바지에는 해군 항공국의 주도하에 원래는 순양전함으로 건조 중이었던 두 함선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한다는 소식 또한 적혀 있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해군 항공국 부국장, 대일 리 대령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곱씹던 쿨리지는 그가 대전쟁 때 미군 최고의 에이스이며, 故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도 연줄이 있던 자라는 걸 떠올렸다.
황인종이니, 뭐니, 말이 많던 해군 장교였으나 쿨리지가 알 바는 아니었다.
군인으로서의 신분을 명심하고 선을 지키고 있기만 하면 말이다.
*****
메릴랜드, 볼티모어
“덴비 장관을 조지려고 합니다.”
난 장인 어르신 윌리엄 스테이튼 앞에서 담담하게 선포했다.
러시아에서 직수입한 보드카와 신선한 오렌지 쥬스를 섞은 스크루드라이버 칵테일을 마시던 스테이튼은, 내 폭탄선언을 듣고 입에서 노란색 액체를 주르륵 흘렸다.
정신을 차린 그는 입가를 닦은 후, 눈을 부릅뜬 채로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대일. 자네 지금 미쳤나?”
“해군장관 에드윈 덴비를 보내버리겠다고요.”
“그건 나도 들었어, 이 녀석아! 대니얼스 장관 날려버린 지 3년도 안 돼서 또 장관을 날리려고?!”
스테이튼은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그때 윌슨 대통령 대상으로 5,700장짜리 고발장을 날리지 않았어야 했어. 그때 한 번 도와줬더니, 이제는 아주 맛을 들여버렸구먼!”
“아니, 장인 어르신, 그러지 말고 한 번 들어보세요.”
그렇게 난 스테이튼에게 지금 티포트 돔 관련해서 일어나고 있는 스캔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줬다.
처음엔 어처구니없어하던 그는 최근에 일어난 육군과 해병대 간의 충돌까지 듣자 내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허. 그런 일이 또 일어나고 있었단 말이지.”
날이 갈수록 규모와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반금주법협회 (AAPA)를 운영하고, 금주법 폐지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 일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었나 보다.
“최소한 배임, 횡령, 그리고 뇌물수수는 확실하게 걸리겠군. 본격적으로 캐보면 두 자릿수의 혐의가 나올 수도 있겠어.”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결과적으로 군수자원을 민간인에게 팔아먹은 거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전 이게 제일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제일 빡친 건 해군 항공대 그 자체를 가지고 협박한 거지만 말이야.
야이 싯팔, 항공모함 렉싱턴하고 사라토가 (예정)도 만드는 것도 항공국이 굽신굽신해서 겨우 성사해낸 와중에 어딜 감히 예산을 건드리고 앉아 있어!
함교에다가 매달아버릴까, 팍씨.
“뭐, 나도 해군 대령까지 한 사람으로서 동의해. 하지만 말이야···”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스테이튼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너도 잘 알겠지만, 원래 군인은 민간인, 특히 정치인 앞에서는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고. 어차피 미국에는 기름이 많이 나잖아. 유류 지대 한두 개 없어진다고 해군이 완전히 정지되는 것도 아니지.”
“음···”
뭐, 지금 스테이튼이 저렇게 조심스럽게 나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새대가리가 그랬던가, 무슨 일이든 첫 번째는 그저 ‘하나’로 끝나지만, 두 번째 일어나면 첫 번째가 생기고 세 번째까지 암시하는 법이다.
아니, 그래도 난 뭐 같은 해군장관을 두 번 연속 만날 줄은 몰랐다니까? 진짜로!
“그리고 이 녀석아, 결국 이걸 지휘하는 건 너라곤 해도 직접 파는 건 세레나잖아. 이러다가 언젠가는 내 딸내미한테도 불똥 튀면 어쩌려고 그래.”
어르신, 저한테 불똥 튀는 건 괜찮고요···?
“그거라면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덴비 장관 그 새끼가 아내도 협박했거든요. 알버트 폴 장관은 그녀한테 작업까지 걸었고요.”
뚝.
마지막 부분을 듣는 순간 스테이튼의 의식 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게 보였다.
우리 부부를 향한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찼던 그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얼굴은 얼음처럼 싸늘하게 굳었으나, 속으로는 여러 감정이 들끓어 오르는 듯했다.
뭐라고 답을 하는 대신, 스테이튼은 다시 한번 여러 가지 술을 섞어 가장 독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쾅!
10초도 안 돼서 칵테일을 원샷해버린 스테이튼은, 차가운 분노를 머금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
워싱턴 D.C.
“이게 인생이지.”
존 에드거 후버는 “특별예배실”에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법무부 급진국 국장에서 얼마 있지 않아 수사국 (Bureau of Investigation) 부국장으로 진급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만주 정교회 성당 워싱턴 지부의 단골손님 중 하나가 되었다.
금주령 선포 이후 술을 걱정 없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것도 것이었지만, 이 “성당”에서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좋았다.
물론 공산주의는 예외였으며, 조금이라도 그 사상에 호의적인 발언을 하다가 적발되는 순간 당장 성직자가 달려와 내쫓아버렸다.
정말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특별예배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절대로 성당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건 그야말로 최고였다.
이 점을 사용해서 후버가 여기서 만난 남성만 벌써 두 자릿수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예배실에서 후버와 단둘이 있는, 전쟁부 소속 사무관 클리드 톨슨 (Clyde Tolson)은 고개를 끄덕이며 후버에게 술을 한잔 따라줬다.
가장 최근에 만난 톨슨은 서로를 보는 순간 뭔가 바로 통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고, 어느 순간부터 후버는 그에게 법무부로, 정확히는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권유를 하곤 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둘만의 시간이 끝나고 톨슨이 자리를 뜨자, 후버 혼자 있는 특별예배실에 금발 미녀 하나가 들어왔다.
미국 전역에서 요부 같은 이 여인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남성은 단 1%도 되지 않았겠으나, 후버 또한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만 이 성당을 AMC라는 회사의 이름으로 경영하는 그녀를 알고 있었던 후버는 캐주얼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리 부인. 여긴 또 무슨 일이십니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세레나 리는 후버에게 여러 장의 서류가 담긴 봉투 하나를 건네줬다.
봉투를 꺼내서 내용물을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찬찬히 읽어본 후버는 숨이 넘어가는 듯했다.
“아니, 이-이건?!”
크게 동요하는 후버를 쳐다보는 리 부인은 엄중한 표정을 지으며 비장한 한 마디를 꺼냈다.
“그래요. 지금 공산주의자들과 결탁해서 이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