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7)
매국노의 원수 자식-27화(27/773)
27_육군 X까, 난 해군이라고! (3)
1902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데일리 공장
카메론 기숙사의 사감이자, 동시에 테디 베어 공장장까지 되어버린 도날디나 카메론은 11월 말부터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대일 리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헌사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테디베어’는 루스벨트 본인의 인기에 힘입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원래는 카메론 기숙사의 지하에서 거주자들만으로 만들었지만, 폭발적인 수요에 맞추기 위해 폐건물을 하나 사들여서 PCDA 산하의 데일리 공장 (Daily Manufacturing Company)이라는, 노동자만 100명 넘는 나름대로 규모 있는 공장을 설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디 베어는 모종의 이유로 폭발적으로 팔려나갔고 계속 직원을 늘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PCDA의 사장 챙호 앤이 개입해 가급적이면 한국계 출신 노동자들을 고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아시아인들이라고는 중국인들밖에 모르는지라 약간은 좀 꺼려했지만, 그를 쉽사리 거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대부분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서 불만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물론 청결을 유지 못 하거나, 게으름 피운다든가 하는 직원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노동자들을 보고하면 PCDA에서 사람들을 보내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에 돌아온 그들은 완전히 새사람이라도 된 듯 훌륭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불량노동자들을 교정했냐고 물어보면 챙호 앤은 그저 ‘본국의 현실을 상기시켜줬다’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공장장님.”
“그러게요, 사장님. 오리지널 테디 베어만 만드면 될 텐데 뭘 특이한 에디션을 자꾸 만들라는지 모르겠네요.”
카메론 공장장은 빨간색 스웨터를 입고 코카콜라 병을 행복한 표정으로 껴안고 있는 테디베어의 도안을 쳐다봤다. 뭔가 가운데가 볼록하고 윤곽이 드러나는 디자인이 유난히 눈에 띄는 유리병이다.
“이렇게 바빠질 줄 알았으면 그냥 대일이 그 도안을 보냈을 때 그냥 찢어버릴걸 그랬나 봐요.”
“저도 그 친구가 저를 사장 만들어준다고 할 때 무시해야 했나 싶더군요.”
“어느 순간 노예가 된 것 같은데 기분 탓 일려나요.”
공장의 직원 휴게실에서 푸념하고 있던 두 사람 모두 눈가에 다크 서클이 짙게 꼈다. 카메론 공장장은 커피를 마시고 미스터 안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을 펼쳐 읽으며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어머, 대일이 사장님 담배 피우는지 안 피우는지 감시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럼 그렇지, 그 독한 녀석이 감시까지 붙여놓았구먼. 대일한테 최근에 그 망할 놈의 3대 운동 목표 중량에 도달했으니까 이젠 상관없다고 전해주시오.”
눈을 감은 미스터 앤은 깊은 심호흡으로 담배를 너무나 달콤하게도 빨아댔다.
그의 황홀한 표정을 보니 담배를 피지 않는 카메론도 담배가 땡겨왔다.
“크, 바로 이 맛이지!”
카메론 공장장이 저래서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구나, 생각하던 와중에 그가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사레라도 걸린 듯 고통스럽게 기침을 했다.
”···카메론 공장장님.“
”무슨 일이세요, 사장님, 괜찮으세요?“
”아니, 전 괜찮은데···“
미스터 안은 본인을 경악시켰던, 신문의 10면에 적혀있던 짧은 기사와 사진을 보여줬다. 내용을 이해한 카메론 공장장은 술, 그것도 아주 독한 술이 땡겨오기 시작했다.
”어···아무래도 공장이 왜 바빠진 건지 알 것 같습니다.“”아이고, 그러게요. 도대체 대일 이 아이는 도대체 아나폴리스까지 가서 뭔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
역시나 육해전에서 수만 명의 관객 앞에서 육군복 입은 테디 베어를 폭파하는 광역 도발 퍼포먼스를 해놓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산티에 주말 내내 수감된 걸로 모자라서 교육감실로 다시 한번 끌려갔다. 11월에 부임한 신임 교육감, 윌라드 브라운슨 대령 (Willard H. Brownson)이 나를 노려보면서 내 앞에 뉴욕 타임스 한 부를 집어던지고 펼쳐보라고 했다.
그 지시에 몇 페이지 넘겨보니, 내가 웨스트포인트 미식축구팀을 어떻게 티배깅을 했는지 상세하게 묘사한 스포츠 칼럼이 수록되어 있었다.
“저런.”
“‘저런’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머리 박아!”
“넵!”
난 말대꾸하지 않고 바로 원산폭격에 들어갔다. 하, UDT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군.
“아, 웨인라이트 중령한테 경고를 듣기는 했다만, 너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내가 들어온 지 1달도 안 돼서 참 잘도 사고를 치는구나.”
브라운슨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땅이 꺼지라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테디베어로 한 짓은 기물파손은 물론이고 비신사적인 행동(ungentlemanlike conduct) 그 자체였단 말이다. 너, 웨스트포인트 교육감이 나한테 직접 너 퇴교시키라고 연락 온 건 알고 있냐?”
“죄송합니다!”
“솔직히 진짜로 퇴교시켜버리고 싶었는데, 내가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서 이번 산티 수감에 추가로 겨울방학 외박 (winter leave) 잘라버리는 선에서 멈춘다, 알겠나?”
아오 씨, 진짜. 웨인라이트는 외출, 브라운슨은 외박, 다음은 또 뭘 잘라버릴지 두렵네.
“감사합니다!”
“너 한 번만 더 이딴 짓을 하면 바로 퇴교시켜버릴 테니 알아서 해! 나가 봐.”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어나서 인사하고 나가려는 나를 교육감이 불러 세웠다.
“그게···내 막내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테디베어를 꼭 하나 사달라고 애원을 하는데···혹시 하나 구해 줄 수 있겠나?”
“네? 그냥 인형 파는 가게에선 다 파는데 말입니다?”
“몇 곳을 찾아다녔는데 다 매진됐단 말이다. 그거 재고가 왜 그렇게 적은지 모르겠단 말이지.”
왜긴 왜야,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거지, 핫핫핫.
“어휴, 교육감님께서 내리신 분부인데 당연히 받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님 이름만 말씀해 주시면 크리스마스 전에 한정판으로 제작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그래, 부탁한다.”
교육감실에서 한 100미터 정도 벗어나고 나니 키득키득 웃음이 자아 나왔다.
아까 그 칼럼에서 보니, 내가 그 희대의 티배깅 세레모니를 한 이후로 웨스트포인트의 생도들 사이에서 테디베어 수요가 급증했다고 한다. 물론 좋아서 산건 아니고.
대부분 내가 했던 거랑 반대로 육군복을 입은 테디베어로 해군복을 입힌 테디베어의 엉덩이에다가 박아댄다던가, 테디베어를 찢거나 불태워버리는, 20세기 초의 상품 파괴 인증쇼를 위한 구매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애석하게도 그 첫 번째 희생자는 내가 프랭클린 필드에서 콘 파이프와 함께 놔두고 온 네이비 에디션 테디 베어였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어쨌든 간에 이렇게 신문을 타고 코카콜라 바틀링 컴퍼니랑 제휴까지 했으니, 안 팔리고 배기겠어?
이것이 바로 노이즈 마케팅이다, 이 그지 깽깽이들아 흐하하하하하하!!!
흠, 이제 돈을 쓸어담는 수입원이 코카콜라 바틀링 컴퍼니 외에 테디 베어도 추가됐네. 그럼 이 정도 돈줄이 생겼으니 슬슬 기술개발 투자에 들어가도 되겠네.
일단 라이트 형제한테 연락을 해볼까, 히히히.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으며 걸어가던 나를 갑자기 누가 뒤에서 잡았다. 뒤돌아보니 아주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야, 대일. 이번 주말에 육해전승전 축하 파티할 건데 시간 있어? ”
“음, 산티당하지만 않으면 말이야.”
“에이, 산티에서 나온지 얼마 됬다고 설마 또 들어가겠어.”
“하긴, 그렇지? 오케이 당연히 가야지. 우유만 없으면 말이야···”
우유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물론이고 니미츠도 정색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1월 초에 116명이 식중독에 걸려서 청문회까지 열리는 사태가 일어났거든. 조사 결과 우유가 좀 심각하게 문제였더라고.
야이싯팔, 사관학교에 납품하는 우유까지 장난질하다니 미친놈들.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업에도 손댈 계획인데 우유 업체들이랑 싸워야 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
그리고 금요일 밤.
교수들이 나간 걸 확인하고, 나는 니미츠와 함께 막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산 티에서 가입교를 보낸 이후 The New Quarters라는 건물을 막사로 배정받았다.
그런데 이 건물은 설립 당시엔 어쩐지 모르겠지만 현시점엔 전혀 New라는 이름값을 못하고 있단 말이지.
빨리 밴크로프트 막사가 완공됐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옥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식축구팀 인원을 포함한 최소 30여 명의 생도들이 모여있었다.
웬일인지 이런 자리를 피하는 잉거솔도 함께 와 있었는데, 아무래도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동기들한테 끌려온 것 같았다.
니미츠는 나보다 한 발짝 먼저 들어가면서 크게 외치면서 나를 소개했다.
“이번 육해전의 MVP, 몽골 기마병의 환생이자 충각전술의 화신, 철갑선(Ironclad)이 오셨다!”
철···뭐요?
“철갑선!”
“철갑선!”
그으으아아악, 뭐야, 저 손발이 오그라드는 별명은? 설마, 내가 라인맨 다 뚫고 쿼터백 들이받을 걸 충각전술이라고 부르는 거야?!
내가 뭐라 항의할 틈도 없이 홀시와 켄이 양쪽에서 달려와 기마전마냥 내 다리를 한쪽씩 잡아 들어올려
“야, 내가 뭐랬어! 얘가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나갈 거라고 했지! 특히 너, 킴멜, 2달러 내놔!”
3학년 선배 허즈번드 킴멜 (Husband E. Kimmel)이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홀시의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었다. 그럼 그렇지, 스포츠에 도박이 없을 리가 있나.
조금이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보니 모두의 표정이 정말 뚜렷하게 보였다. 내기에 졌다던가, 여전히 황인종은 좀 그렇다 하는 인원들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모두가 환희에 가득 차 내 이름과 (참으로 뭐 같은) 별명을 불러댔다.
그야말로 사기가 하늘을 뚫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밖에 설명 못 하겠다.
이렇게 보니 왜 내가 어찌보면 참으로 대단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산티 한 번 가고 겨울방학 외박 짤리는 걸로 끝났는지 알 것 같다.
전에 홀시가 그랬던가, 한 번은 육해전 결과 가지고 싸우다가 육군 장군이랑해군 제독이랑 결투까지 한 적 있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내가 황인종이라면서 갈궈댔던 건 언제고 이렇게 태세전환해서 나를 찬양하는 것은 결국 웨스트포인트를 향한 분노>>>>>> 황인종을 향한 인종차별, 라는 참으로 단순무식한 논리였다는 거지.
그리고 생도들의 이런 분위기는 교수진들에게도 어느 정도 전달됐으며, 그들도 결국 아나폴리스 출신이라 속으로는 기분 좋을 수밖에 없었나 보다.
캬, 역시 물개야. 땅개만 엿 먹일 수 있다면 그게 황인종이라도 상관없다 이거지. 특히 그 황인종이 한 경기에서 쿼터백을 네 번이나 태클해서 게임을 터트렸다면 더더욱!
“홀시 선배, 이 자리가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데 기분 탓입니까? 이렇게 경사스러운 자리에 조금은 더 즐겨도 되지 않나요?”
홀시의 어깨에서 내려온 나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겼고, 그 신호에 옥상 문을 열고 아나폴리스 식당에서 일하던 몇몇 직원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코카콜라와 웨이코 (Waco, 닥터 페퍼의 원 명칭)를 포함한 여러 가지 소다병이 들어있는 얼음 양동이, 그리고 샌드위치, 바비큐, 핫도그 등 각종 음식이 담겨 있는 쟁반을 눈이 휘둥그래진 생도들 앞에 세팅을 하고 나한테 돈을 받은 다음 옥상에서 내려갔다.
“아니 대일···너 존나 금수저였냐?! 돈을 어떻게 막 뿌리고 다녀?”
눈이 휘둥그레진 윌리엄 (William R. Furlong)이 물어봤다.
아니 뭐, 금수의 아들은 맞는데.
아니 그리고 여기 생도가 전부 최소 중산층 이상, 금수저도 엄청 많은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신담?
“아, 내가 고향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 엄청 잘 돼서 말이지.”
“뭔 사업 하는데? 어디 유전이나 철강이라도 개발하나?”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음료수랑 장난감 장사지.”
“잠깐만···그 사업이라는게 설마···?”
난 아무 말 없이 코카콜라병과 해군복을 입은 테디베어 하나를 들고 흔들었고, 자리에 있던 생도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허 시발. 니미츠가 또 허언증 도져서 헛소리하는 줄 알았는데 실화였을 줄이야!”
“그럴 것 같더라. 어떻게 네이비 에디션을 출범되기도 전에 가지고 있었나 싶었어.”
내 자본주의적 본능이 어디 가지 않는지라 난 또 이 자리를 기회로 삼아 광고를 했다.
“혹시 크리스마스에 테디 베어를 선물하고 싶으신 분 저한테 말씀 주세요.
아, 그리고 조금만 액수를 추가하면 문구나 이름, 그리고 코스튬도 첨가해서 보내드립니다!”
그렇게 광고를 하니 여러 생도가 나에게 주문을 넣었다. 주문 내역을 들어보니 여자 형제나 연인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잠깐, 가암히 생도 주제에 연애를 하다니?! 이렇게 바쁘고 밖에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연애를 한다고? 어린 것들이 아주 그냥 여유가 넘쳐난다, 그지?
절대로 전생 대부분을 솔로로 보낸 내가 배알이 꼴려서 그런 게 아니야. 아무튼 아님.
“야, 니미츠! ‘스페셜 펀치’ 한 잔 섞어줘.”
“좋지.”
주문을 받은 니미츠는 신나게 능숙한 손놀림으로 콜라, 주스, 럼 등 각종 음료수를 섞어서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저거저거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네. 물론 주특기는 알콜 없는 펀치였지만 거기다가 술을 섞는 것도 잘 한단 말이야.
저렇게 딱 보면 완전 불량생도 그 자체인 친구가 입학 이후로 한 번도 10등 밑으로 내려 가본 적이 없고 나중에 해군 원수까지 올라간다니 참 믿기지 않는다.
저녁 하늘은 푸른색이 섞인 선홍색으로 물들어오고 별들이 서서히 빛나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옥상에서 시원한 콜라까지 마시니, 마치 그 순간만큼이라도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올해 초에 영일동맹 (Anglo-Japanese Alliance)이 체결되었고, 러일전쟁이 2년도 안 남았다는, 내 마음속을 계속 옥죄어오는 현실도 잠시나마 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