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72)
매국노의 원수 자식-272화(272/773)
272_도망치는 건 도움이 된다 (3)
1923년 2월
워싱턴 D.C.
“슬슬 나가보실까.”
내가 그저 해군장관과 내무장관 둘만 조지려고 터트려버린 티포트 돔 스캔들은 거대한 연쇄 대폭발을 일으켜 하딩 행정부와 공화당을 둘 다 제대로 휩쓸고 말았다.
그 일로 뭔가 눈치를 챈 프랭클린 D. 루스벨트한테 불려가 심문까지 당했고, 이 불길이 잠잠해질 때까지 최소 2년은 동부를 떠나 있기로 했다.
이건 절대로 도망치는 게 아니다. 그저 역으로 돌격할 뿐이지.
“오래간만이다 스페이드 에이스.”
물론 폴과 함께 수사 대상이 된 해군장관 에드윈 덴비가 사임하고 해군차관 시어도어 루스벨트 3세가 권한대행으로 들어왔듯이, 나 또한 해군 항공국 부국장 자리를 대체할 장교를 찾아냈다.
“어쭈, 상급자한테 경례 안 하냐?”
“대일아 제발 좀.”
아나폴리스 동기이자, 미식축구팀과 항공기 동호회 멤버, 케네스 ‘켄’ 와이팅 (Kenneth Whiting) 중령.
항공모함 랭글리-아니, 리버티 건조 당시 총책임자로 있었고, 렉싱턴과 새러토가 개조도 이 친구가 맡게 될 정도로, 미 해군에서 항공모함 관련해서 최고 권위자인 녀석이다.
어차피 원래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부국장으로 내가 찜해놓은 친구였는지라, 조금 더 앞당겼다고 생각하자고.
··· 내 최초의 미식축구 해육전에서 테디베어에다가 폭약을 1g 넣을 걸 1파운드를 넣어서 대폭발 일으킨 주범이었던 녀석이 많이도 컸구나.
“잘 있다가 갑자기 왜 서부로 가는 거야? 그것도 구축함 전대에 들어간다고···?”
“뭐, 그렇게 됐어.”
항공국을 잠시 떠나는 김에,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있는 제11 구축함전대 (Destroyer Squadron Eleven, DesRon 11)에 배정해달라고 했다.
아마 21세기 미 해군 소속 함선의 절반 가까이가 구축함과 잠수함일 정도로 구축함은 꾸준히 가치를 가질 테니까.
순양함도 마찬가지다만, 그건 아무래도 TO를 따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으니 현재로서는 보류해놓자.
흠, 그러고 보니, 슬슬 미사일도 개발해야 할 텐데 말이지.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 테슬라를 좀 더 열심히 쪼아서 미사일 좀 빨리 개발해달라고 쪼아대야겠네, 원시고대 드론도 만들었으니.
가능하다면 레이더도.
“가만있자. 얼마 전에 해군장관이 사임했는데···야, 대일, 혹시 네가 저지른 건 아니지···?”
“허 참 어이가 없네. 야, 내가 그런 음흉한 짓을 저지를 사람처럼 보여?”
“어.”
켄은 조금도 농담하는 기색 없이 진지해 보였다.
”네가 항공국 부국장으로 들어온 이후로 벌써 해군장관이 두 명이나 쫓겨났다고. 솔직히 네가 봐도 수상하지 않냐?“
“아, 그러니까, 너가 보기엔 내가 언론과 정치판 뒤에서 암약해서 정치인 여럿을 조진 흑막이다, 이건가?”
“으으음···”
···내 평판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떨어진 거지.
“진짜로 네가 생각하는 걸 저질렀으면, 내 입으로 말할 것 같냐? 소설 좀 작작 봐, 이 친구야, 사람을 아주 푸 만추로 만들지 말고.”
“방금 네가 한 말, 그 캐릭터가 실제로 소설에서 한 적 있는 거 알고 있지?”
“아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읽어본 적도 없는데. 어쨌든 항공모함 잘 부탁한다, 오케이?”
“하, 그래그래. 대일 리 마름께서 명령하셨으니, 이제 노예 놈은 목화를 따야지. 스프루언스는 잘 있고?”
아 잘 지내지.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중령은 해군 증기기술국 (Bureau of Steam Engineering)에서 구르고 있다.
안 그래도 바쁜 그를 항공국의 항공기 사격통제 (fire control) 시스템 개발에도 집어넣은 건 좀 미안하긴 했다.
“그 녀석처럼 성실한 장교는 아마 찾기 어려울 거야.”
“···대일아, 넌 누가 네 등에다가 칼 꽂으면 그냥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해.”
···그나저나 스프루언스 얘는 진짜로 진급 운이 안 좋았는지, 작년에서야 겨우 중령으로 진급했네.
불쌍한 친구.
“뭐 어쨌든 서부에서는 사고 치지 말고 좀 얌전히 지내고 와. 고향이라고 너무 설치지 말고.”
“그래그래, 고맙다.”
항공국에서 짐 싸서 나가는 길에 항공국장 윌리엄 모펫 제독을 마주쳤다.
“조금 더 있어도 되는데···꼭 가야겠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년간 항공국 창설 시절부터 함께 해왔는지라, 모펫은 많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함선 근무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독님이 계시는 한 항공국은 걱정할 게 없다고 확신합니다.”
본인이 직접 파일럿 자격증을 따지는 않았으나, 미 해군,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해군 항공에 모펫처럼 더 헌신적인 제독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도 친하고 나름대로 정치력도 있어서, 요새 폭주하고 있는 빌리 미첼 준장이 해군 항공대에 자꾸 손대려는 걸 든든하게 막아주기도 하니까.
“그리고 제독님, 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절대로 항공대를 영영 떠날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하, 그렇군! 미군 사상 최고의 파일럿이니 결국엔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지. 기다리고 있겠어.”
“···아니, 제독님은 다른 보직은 안 맡으실 겁니까?”
“생각 없어. 별일 없으면 전역할 때까지 계속 항공국장으로 있을 거야. 왜, 이 자리가 탐나기라도 해?”
모펫은 짓궂게 미소를 짓는 것과는 별개로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묵직하기 짝이 없는 예고를 하나 했다.
“어차피 너 말고 차기 항공국장을 맡길 장교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엑.
*****
메릴랜드 볼티모어
“아이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세레나, 나 아직 안 죽었어요.”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며칠 전,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전부 다 모여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부부, 아들 넷 딸 둘, 총 여덟 명이 한 자리에 다 있으니 정말 복작복작한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첫째 쌍둥이, 재선이와 재익이, 그리고 래원이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됐다.
재선이는 미식축구부에 들어가서 그런지, 벌써 근육근육하고, 성적이 전교 단위로 노는 재익이도 몸이 아주 탄탄해 보였다.
래원이 저 녀석은 뭔 생각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여전히 매사가 나른한 듯했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참.
아린이와 롯ㄷ-아니, 샬럿은 여전히 귀엽네, 어후. 이래서 딸바보가 생기는 건가. 막내도 참 꼬물거리는 게 깨물어주고 싶다.
다들 참···무사하구나.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내가 멍하게 앉아있자, 아내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냥···참 복 받았다 싶어서요.”
나와 세레나처럼 금슬이 좋아서 자녀가 많은 부부는 그렇게 드물지 않을 것이다. 전생에서 내 부모님 세대에서도 형제가 서너 명씩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많은 자식이 전부 유년기를 멀쩡히 넘기고 살아 있을 확률은 훨씬 낮은 게 이 시대다.
재작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위는 첫째 아들 이키 (Doud “Ikky” Dwight Eisenhower)을 잃었다.
아이젠하워 가족은 몇 년 전 메릴랜드의 서번 (Severn)으로 이사했는데, 얼마 있지 않아서 이키는 홍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 부부는 존스 홉킨스 병원 최고의 의사를 특별히 고용해서 이키의 치료를 부탁했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다.
이키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그제야 내 아이들이 다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죠?”
눈치가 빠른 그녀였는지라, 아내는 따스하게 웃으며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어 내 손을 꽉 잡아줬다.
1차 대전 발발 전처럼, 이번에도 그녀는 내가 발령받는 곳으로 따라오고 싶었지만, 이제는 애도 여섯 명에다가 만주 정교회 성당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미디어 회사도 직접 운영해야 하니 볼티모어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드르륵
“어느 게 좋을 것 같아요?”
···세레나는 남은 며칠 동안 최대한, 어, 알차고 뜨겁게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애들을 평소보다 더 일찍 다 재운 그녀는, 옷장에서 ‘특별 용도’로 입는 옷을 따로 모아놓는 행거를 통째로 꺼냈다.
“아, 괜히 물어봤네요. 까짓거 한 번씩 다 해봐요.”
“어, 저기, 여보?”
“왜요, 어차피 잠은 열차 안에서 자면 되잖아요?”
···누나, 나 죽어 진짜.
*****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음, 몇 년 만이지.”
샌프란시스코역에 내리니, 마치 고향 땅을 밟는 느낌이었다.
뭐, 사실상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곳이니까. 아니, 그건 볼티모어인가.
역의 출구로 향하며, 샌프란시스코에 온 김에 어디부터 가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 그럴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저기 오십니다!”
역 밖을 나오자마자 어마어마한 인파가 나를 둘러쌌다. 대부분은 아시아인들이었고, 그중 몇 명은 아주 크고 요란한 문구가 적혀 있는 현수막을 휘날리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어서 오십시오, 리 제독님 (Welcome to San Francisco, Admiral Lee)!’
···아니, 저기, 별 달려면 진급 한 번 더 해야 하는데요.
인사하려는지, 뭔가를 또 부탁하려는지, 난 순식간에 온 사방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어, 저기, 감사합니다만-잠깐만!”
그러다가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지자 내 주위에 몰려온 사람들이 서서히 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장을 입은, 조금은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청년들이 뭔가 살벌한 기세로 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내가 또 무슨 볼일이 있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당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마치 조폭이 두목한테 인사하듯, 청년들이 각을 잡고 나에게 90도로 꺾으며 인사를 했다.
아, 맞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고등학생 시절 때 때려잡고 조직명을 태평양기독교연대로 바꾼 그 병공당 애들이구나.
시발, 아직도 나를 당주로 모시고 있었던 거냐?!
“유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거참.”
근육질의 남성에게 이끌려 고급 승용차에 탄채로 PCDA의 본사 건물로 향했다. 사장실로 들어가니, 안창호 대신 청년 하나가 나를 열렬히 환영했다.
“잘 오셨습니다, 리 대령님. 드디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주셨군요!”
PCDA의 2대 사장, 유일한은 내가 기억했던 어린 소년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듬직해 보이는 사나이로 성장했다.
세월의 힘이란 정말 무섭-
-어, 잠깐만.
“저기, 유 사장? 저기 저 아가씨는 또 누구죠···?”
“아, 그, 만주국에서 오신 손님입니다. 마침 어제 도착했고요.”
사무실의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소녀는 나를 보자 바로 일어서 아주 공손하고 품위 있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리 자작님.”
소녀의 입에서 러시아 억양이 섞인 영어가 흘러나오자, 난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아이고, 로마노프씨, 갑자기 또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샌프란시스코의 몇 년은 매우 혼란스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