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28)
매국노의 원수 자식-28화(28/773)
28_미래에 대비하는 방법 (1)
1902년 12월
일본, 마이즈루시 (舞鶴市)
짙푸른 어둠이 가라앉고 눈이 사뿐사뿐 내려오는 어느 저녁, 가미무라 히코노조 (上村 彦之丞) 소장이 마이즈루 진수부를 방문했다.
진수부 자체도 설립된 지 얼마 안됬는데 최근에 해군 조선소의 건축까지 시작했다. 늦은 저녁이라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미처 치우지못한 자재와 잔해 등, 몇시간 전만 해도 한참 건설이 진행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약간은 너저분한 모습에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일본제국 해군의 활기를 드러내는 장면이라 카미무라 소장은 오히려 나름 흐뭇해하며 기지 사령관 실로 향했다.
수군들의 칼같은 경례를 받아주고 사령관실에 들어서니 그의 대선배, 도고 헤이하치로 (東? 平八?) 중장이 환한 얼굴로 그를 반겨줬다.
“하하하, 본토에 도착한지 한참 됬는데 이제야 방문하다니, 좀 너무하잖아, 이 친구야! 아사히 에서 근무한 건 좀 어땠나?”
”성능도, 편의시설도 대만족이었습니다. 역시 이기리스(영국)놈들이 전함도 그렇고 배는 잘 만든단 말입니다.
“그런 영국과 동맹을 맺었으니 우리 대일본의 앞길이 밝군, 그래. 아 그건 그렇고 거기 앉게나.”
도고는 자신의 후배가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 밑에 술 한 병과 잔 두 개를 꺼내서 따라줬다.
”···여기서 이렇게 마셔도 됩니까?“
“괜찮으니까 한잔 받아. 어차피 근무시간도 끝났고, 내가 마이즈루 진수부 초대 사령관인데, 최소한 여기서 나보고 뭐라 할 수 있겠어?”
”뭐, 도고 중장님 말씀이 그렇다면 제가 감히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군인, 그것도 해군이 술 좀 마시는 게 뭐가 그렇게 어색한 풍경이리.
그리고 그런 말도 있지 않았나, 호라시오 넬슨 제독의 피에는 럼주가 흘렀다고.
”이젠 예산만 타내면 되는데···그 짜증나는 정우회 (立憲政友?, 일본의 정당)놈들, 특히 그 망할 놈의 이토 히로부미가 자꾸 반대한단 말이지.
“”뭐, 내년부터 11년 동안 1억 1500만엔을 투입한다는 예산안이니 약간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요.“”그래, 전함 3척이랑 순양함 5척은 건조할 수 있는 막대한 액수야.
그래도 만약 외교로 해결못하고 전쟁을 할 거면 빨리 저 러시아 놈들이 시베리아 철도를 완공하기 전까지 뤼순항을 봉쇄해야 할 것 아니냐고. 그럴 거면 그 정도 예산은 기본 아닌가?“
도고의 지적에 가미무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저희 해군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겠군요. 그러면 보나마나 도고 중장님이 해군 총사령관이 되시지 않겠습니까?“”뭐, 내가? 해군 총사령관이 된다고? 허참. 말이라도 고맙네, 하하하!“
그래, 이제 대일본이 러시아와의 충돌을 피할 가능성은 해가 갈수록 희박해 보였다. 올해 8월에 러시아는 극동총독부를 설립했고 만주 장악을 위해 주둔한 러시아군만 15만명이라는 소식을 들어왔다.
사실 영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어준 이유 중 하나가 의화단 봉기가 진압된 이후 일본을 포함한 다른 열강은 병력을 철수했건만, 오직 러시아군만 만주에서 철군을 안 했다는 부분 아닌가. 망할 놈의 러시아놈들. 일청전쟁에서도 일본이 이겼더만 갑자기 러시아놈들이 끼어들어 다 망쳐버려서 치가 떨리던 게 기억난다.
일청전쟁에서 승리한 후 온 국민이 미친 듯이 날뛰고 약간 속되게 말해서 오만방자로 흘러, 국민이 있는 곳마다 함성개가의 무대에서 고주망태가 된 것처럼 장래의 욕망이 하루하루 증자하고 있던 모습에 찬물을 끼얹었던 그 순간을 어떻게 잊으리.
어쩌면 이번이야말로 그 설욕을 갚아줄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 세계에 일본이 단순한 아시아 국가 중 하나가 아니라 다른 열강과 견줄 수 있는 당당한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그나저나 들으셨습니까? 이토 그 자식의 첩이 조선에서 청화정(淸華亭)이라고 식당을 열었는데 얼마나 장사가 잘되는지, 좀 있으면 확장까지 한답니다.”
“들었지. 그런데 그거 가쓰오 (勝女)가 연게 아니라 노다 헤이지로 (송병준)가 세운거라던데?”
“아, 그랬던가요? 어쨌든 간에 거기가 말이 식당이지 밤에는 아주 그냥···어 후, 말을 담을 수 없겠군요. 사실 그게 주 수입원이 아닐까 싶네요.”
하, 그 호색한 녀석이 진짜. 뭐 혹시 아나, 그년이 몇 년 후엔 정우회의 일원이 될지.”
두 해군 장성이 요란하게 웃어댔다.
“아 맞다, 내년에 중장으로 진급한다면서?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중장님!”
“이거, 내가 아껴왔던 물건을 꺼내야겠군, 그래.”
두 해군 장성은 술을 나누며 날씨, 가정사, 및 소소한 이야기를 한참 이어나갔다. 눈이 쌓이기 시작할 정도로 추운 겨울날이지만 따스한 술이 몸을 데워 오니 선선한 가을날만 같았다.
그렇게 러일전쟁 발발 1년 조금 더 남은 시점, 긴장감이 넘치는 폭풍전야의 시기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
1903년 7월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 호크 (Kitty Hawk)
2학년이 끝마치는 여름항해가 끝났지만 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나와 안창호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조용한 마을에서 만났다.
롤리(Raleigh, 노스캐롤라이나 제2의 도시)에 도착한 뒤 또 한나절 넘게 걸려서 도착한 이 마을은 정말 깡촌 그 자체였다. 진짜로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아, 저기 지평선은 보이네. 세상에, 태어나서 지평선을 다 볼 줄이야. 그리고 바람이 계속 강하게 불어대는 거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서부영화 촬영하면 딱 맞긴 하다. 뭐, 저기 미국 서부영화 중에 유럽에서 촬영된 것만 한 트럭인데 동부에서 서부영화 찍으면 뭐 덧나겠어?
”대일, 이런 곳에서 역사가 탄생한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포드와 더불어서 PCDA 최초의 선생님-아니, 여기선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사장님은 투자자 신분으로 오신 거고, 전 비서입니다.“”허···참. 피곤하지는 않은가? 그렇게 항해도 갔다 왔는데 좀 쉬지 그랬어.“
뭐, 항해도 첫 번째 항해가 힘들었지 두 번째는 딱히. 별일도 없이 순탄하게 끝났다.
아, 체스터가 한쪽 귀가 반쯤 장애인이 된 것만 빼고는 말이야.
항해 중에 귀에 염증이 생겼는데 하필 이번 항해에 의무진이 하나도 없었더라고? 그래서 염증이 자꾸 악화되니까 선장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귀에다가 붕산(boric acid)을 섞은 소독약을 뿌렸더라고.
어쨌든 염증은 사라졌지. 청력과 함께. 아무래도 양 조절을 못했던가 뿌리는 기구를 제대로 소독 안한 모양이다.
어우 씨, 난 항해 중에 아무 병도 안 생겨서 진짜 다행이다···
”뭐, 밀린 잠은 다 잤으니 상관 없어요. 가봅시다.
키티 호크에서 또 한참을 걸으니 킬 데빌 힐스 (Kill Devil Hills)라는 언덕근처에 오두막 같은 건물 두 개가 붙어있는 캠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세 남성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보자마자 즉시 달려왔다.
“미스터 리와 미스터 안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쪽은 윌버와 오빌 라이트씨 맞으시죠? 그 옆에는···?”
”네-네, 맞습니다. 아 그리고 이쪽은 저희 메카닉 찰스 테일러 (Charles Taylor)고요. 어···처음 뵙습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우리의 얼굴, 나이, 인종을 모두 확인하는 순간 약간 움찔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반겼다.
“젊으신 분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정말 탁월하시군요! 절대로 후회 안 하실 겁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 작년 말부터 PCDA의 이름으로 우리가 라이트 플라이어 (Wright Flyer) 제작비의 두 배이자, 비숙련 노동자의 10년치 연봉이 넘는 6, 000달러를 지원해왔거든.
”하하하, 저희야말로 역사가 쓰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시범비행 준비는 잘하고 계시죠?“”뭐···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점검하고 조립에 착수할 겁니다.“”이거 바람도 많이 부는데 안으로 들어가시지 않겠습니까?“
형제 중 동생인 오빌이 우리를 캠프 안으로 초대했다. 확실히 바람이 많이 부는 거 보니 비행기 실험하기에 좋은 환경이긴 하네.
역사책에서 본 적이 없더라도 저 둘 중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윌버 라이트는 40대도 안 되는데 벌써 이마가 많이 까졌기 때문이다.
괜스레 나도 내 머리카락을 슥 쓸어봤다. 나도 모발관리 잘해야 할 텐데. 특히 군인은 탈모가 거의 운명이라더니만. 울 아버지랑 할아버지 중에 탈모 환자가 있었던가?
아 맞다, 두 분 다 탈모가 오시기도 전에 돌아갔으니 알 방법이 없지, 참.
나와 안창호가 캠프에 들어가자마자 라이트 형제는 라이트 플라이어의 도안을 보여주고 작동원리를 설명해줬다. 물론 우리 둘 다 공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가끔식 감탄사를 외쳐 될 뿐이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그들은 신이 나서 계속했다.
40을 바라보는 두 남자가 입으로 ‘슈우웅’ 소리를 내며 손을 움직이는 모습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둘에게선 차마 주체하지 못하는 열정이 느껴졌으며, 어떻게 이 두 인물이 최초의 비행기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갔다.
아무튼 이 투자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다. 내가 샤누트 (Octave Chanute, 항공공학의 아버지)마냥 기술적인 조언은 전혀 못해주지만 이 정도로 숟가락은 충분히 올려놓을 수 있잖아?
이렇게 빨리 항공기 산업에 발을 들여놓고 지식과 비행시간을 쌓아놓기 시작하면 혹시 아나, 나중에 2차대전 터질 때 쯤에는 미해군, 아니, 미군을 통틀어서 최고의 항공 전문가가 되어서 항공모함 함장도 해볼 수 있을지?
어쩌면 헨리 아놀드랑 만나보고 같이 작전을 짤 수도 있겠군. 커티스 르메이랑 어떻게 도쿄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을지를 두고 다툴지도. 아니, 그 둘이 오히려 나한테 조언을 구해야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을지 않을까? 이욜, 솔깃한데?
어쨌든 그 정도 위치까지 가면 최소한 소장은 달 수 있지 않겠어, 히히힣.
***
오전에 도착했건만 모든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이미 밖은 어둑어둑해졌다. 나와 안창호는 떠나기 전에 시범비행 관련해서 세 가지 소소한 계약을 했다.
하나는 PCDA는 앞으로도 계속 라이트 형제를 후원할 것이라고 정식 계약서를 썼다. 또 하나는 원 역사처럼 12월 중순이 아니라 12월 말로 지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가 아나폴리스 3학년 1학기 끝나고 겨울방학 때 보러 갈 수 있으니까.
마지막 하나는···
”아 맞다, 이거 받으세요.“
난 오빌 라이트에게 봄버 자켓과 고글이 달려 있는 헬멧을 착용한 테디베어 하나를 안겨주었다.
”이건…?“
”테디 베어 에어포스 에디션입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12월에 첫 비행 하실 때, 이걸 항상 옆에 끼고 계셔주실래요?“”기자들도 올 텐데 그 앞에서 인형을 들고 있기엔 제가 나이가 조금-“
난 안창호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는 바로 500달러짜리 수표를 즉석으로 작성해 오빌에게 건네줬다.
”생각해보니 남자는 다 커도 애란 말이 있죠.“
”굳.“
그렇게 라이트 형제에게 쌍따봉을 날린 후 우린 롤리역으로 향하는 차량에 다시 탔다.
”대일, 솔직히 말하겠는데 일단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하긴 할 텐데, 새도 아니고 사람이 저렇게 크고 200kg가 넘는 물건이 진짜로 사람까지 태우고 날 수 있을 것 같나?“
“거참, 그 형제가 몇 시간이나 설명했는데도 아직도 의심하시는 거예요?”
“아니, 이론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겠는데···아무래도 역시 눈으로 직접 봐야 알 것 같네.”
“그러려고 12월에 같이 보자고 하는거에요, 저만 믿어, 저만. 그리고 선생님은 지금 그걸 신경 쓰실 게 아니라고요.”
이 다음엔 디트로이트로 가서 헨리 포드씨를 만날 차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