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
매국노의 원수 자식-3화(3/773)
3_폭탄 좀 던지고 가겠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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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구름이 달빛을 가린 어두운 밤 중에 나는 패륜을 저지르러 이완용의 방을 향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세상이 침묵한 순간, 그의 입만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고, 내 심장은 귀에 들릴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아마 왕을 죽인다고 해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 그 자식의 머리맡까지 다가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조용히 색색 숨을 쉬는 이완용의 목에 손을 뻗었다.
그래, 나는 패륜아가 되겠지만 뭐 어떠냐, 난 이 민족을 구할 것이다.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하지 마라. 눈감고 5분 정도만 힘주면 끝난다. 이미 한 번 죽은 몸인데 뭐가 또 죽는 게 무서우냐.
내 오른손이 그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눈가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림자도 아니었던 모양인가.
다시 마음을 잡고 의거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자꾸 뭔가가 나를 쳐다보는 듯해서 돌아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질끔 감고 정신을 집중 하니 드디어 아무런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손이 멈춰 섰다. 손끝은 떨려오고 심장은 뛰었으며, 머릿속은 백열전구처럼 새하얗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지막 남은 이성을 추스르고 손을 거뒀다. 들어올 때보다 더 조용히 방을 나와서 복도로 나왔다.
결국 나는 실패했다. 어째서 내 정신이 그렇게 혼란스러웠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걸까. 그래도 아버지다, 이거냐?
모자란 녀석?.
”여기서 뭐 하는 것이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머릿속에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고 그저 천천히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 청년이 걸어 나와 나를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쳐다봤다. 공포에 굳어버린 내 몸은 곧 그의 병약한 얼굴을 보고 나니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렸다.
“승구 형님.”
“이 오밤중에 왜 나와 있는 거지?”
이완용의 장남, 이승구 (李升九).
솔직히 원 역사에서 이승구는 26세에 요절해서 별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지금 내 기억 속의 그는 유약하지만, 매우 따뜻한 형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안심되는 것 같다.
어쨌든 아무래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는지 못 봤나 보다. 진실과 거짓을 조금씩 섞어서 실토하자.
“그게 말입니다? 아버지를 뵙고 싶었습니다. 불안해서 말입니다.”
“뭐가 말이지?”
다행히도 추궁보다는 걱정이 더 드러나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대한 두뇌를 풀가동시켜서 둘러대야겠다.
”앞으로 몇 년간은 머나먼 타국에 있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세계의 전황은 매일 아침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떠나 있는 동안? 이 나라에 회복할 수 없는 난이 일어나면 어떡합니까? 단순한 민란 정도가 아니라 종묘사직이 무너지고 나라의 근간이 뿌리째로 뽑히는 정도의 대재앙 말입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의식이 들어온 이후로) 만난 지 몇 초도 안 되는 사람한테 털어놓기엔 너무 무거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승구는 내가 무슨 무례한 짓을 하든,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해도 들어준 자상한 형이었다. 그런 사람한테는 이 정도 투정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입을 터는 나를 형님은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넌 내 동생이 아닌 것 같구나.”
날카로운 소름이 돋았다. 뭐지? 설마, 말도 안 돼. 환생한 지 하루도 안 돼서 벌써 정체가 발각되는 건가. 실화냐?!
어떡하지. 전생 첫날이지만 나라를 버리고 도망갈까? 그런데 어디로? 갈 곳은 있고? 어디 만주 같은 곳으로 튀어?
그렇게 당황해하는 나와 달리, 이승구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순간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드러났다. 창백하지만 은은한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복도와 우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달을 바라보며 승구 형님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밤 깊어 뭇 움직임 그치자
빈 뜰에 환한 달 밝아온다
마음이 씻은 듯 맑았으니
활짝 본심 드러난다.”
??
아니, 저 문학적 감수성은 없는데요.
“이런 소국을 떠나서 약속의 땅이자 강대국으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속으로 이런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 줄은 몰랐구나.”
엨.
“그 우려를 마음속에 품고 있거라. 우려는 신념에서 나오고 신념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주니까.”
“…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형님께 당부를 듣고 방으로 돌아간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머릿속을 좀 더 추스를 수는 있었다. 덕분에 조금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지, 왜 내가 진짜로 이완용을 죽였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는 점을.
만약 내가 진짜로 이완용을 죽였다고 치자. 아직 나라를 팔지도 않은, 평판 높은 관료를 살해한 패륜 자식으로 내 생애는 끝난다. 어찌어찌해서 미국으로 도망쳤다 하더라도, 뒷배도 없는 황인종이 뭘 할 수 있겠나? 사관학교? 꿈도 야무지시네.
그리고 이완용을 죽인다고 이 나라가 외세에 안 넘어갈까? 그 인간이 개입하기 전에 가츠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되는 순간 이 나라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다.
그를 죽인다고 경술국치가 안 일어난다는 것은 마치 히틀러를 죽이면 나치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수준의 유치찬란한 망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아, 물론 그 새끼가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가만있자, 지금이 1898년 7월 말이면…
어허, 이것 봐라.
이거이거 아주 좋은 시기구먼.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고,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두 가지 떠올랐다.
우선 불을 켜고 종이 수십장을 꺼내 글을 써 내렸다. 머릿속의 기억을 최대한 꺼내고 짜집으면서 있지도 않은 글재주를 동원했다.
20장 조금 안 되는 종이를 빡빡하게 쓰고 나니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빛이 밝아 왔다. 밤을 꼬박 새웠지만 글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펜 세 개를 갈아 끼우고 엄지손가락 밑 힘줄이 아파질 정도로 휘갈겼다.
그리고 충분히 다 썼다 싶어서 펜을 내려놓은 시점엔 내 앞에서 80페이지 조금 넘는 원고가 그 위엄 넘치는 자태를 뽐냈다. 후···내가 소설가의 소질이 있었고 시간이 더 있었으면 명작을 하나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뭐 별수 있나.
자, 이제 첫 번째 과제는 끝났고···이제는 폭탄부터 하나 만들어보자.
아, 비유적 폭탄 말고 진짜 폭발물 말이지.
***
며칠 후
한성부 성내, 정동교회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 선교사는 최근 조선에서 제일 바쁜 외국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본업인 선교사는 물론이고, 배재학당의 설립자이자 교장 역할까지 맡았으니.
하나같이 소홀히 할 수 없는 직책 두 가지에 한꺼번에 몸담아야 하니, 그야말로 밤낮, 주말, 휴일이 없는 삶의 굴레에 갇혀버린 것이다.
물론 크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바쁜 삶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하나님도 그의 노력을 이해한 것일까, 최근엔 한성에서 패악질로 악명 높은, 전 외부대신 이완용의 아들, 이대일도 세례를 받고 난 후 갑자기 개심했는지,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직전에 예배에 참석해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또 다른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아침부터 정동교회로 출근한 그는 교회 문턱에서 멈춰 섰다. 그 앞에 마치 급박하게 던져진 듯한 묵직한 가방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뭐지, 누가 두고 간 건가?’
그런 아펜젤러의 생각과는 달리 가방에는 ‘아펜젤러 선교사님께’라고 적혀있었다. 호기심에 가방을 열어보니 묵직한 수십 장짜리의 원고가 들어있었다.
특히 맨 첫 페이지에 적혀있는 제목이 정말 도발적이기 그지없었다. 당황한 아펜젤러는 원고를 가방에 집어넣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봤다.
이미 왕이란 게 존재하지 않은 지 100년이 더 되는 나라에서 온 그지만, 왕조가 건재하는 나라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적응이 잘된 사람이다.
심지어 이 나라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왕의 심기를 건드려서 수십 명의 선교사가 순교한 전적이 있지 않은가.
황급히 교회 안의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창문의 커튼을 다 내린 후에야 아펜젤러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가방을 열어 원고를 펼쳐볼 수 있었다.
큼지막한 글씨로 쓰인 제목이 적혀있는 페이지를 넘기니, 그의 이름이 삐뚤한 글씨였지만 유창한 영어로 적혀진 경고문이 보였다.
‘아펜젤러 선교사님, 아니, 편집자님.
‘제목과 내용이 충격적일 것이라고 익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꼭 어느 언론사든지 전달해서 출판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이 소설의 내용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으며,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읽고 암울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제가 누군지는 현재는 밝힐 수 없습니다. 다만 선교사님을 한번 뵌 적이 있고, 은혜를 입은 사람 중 한 명이며, 언젠가 꼭 제 정체를 밝히겠습니다.
’Veritas vos liberabit’
현재 조선에서 이 정도로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려나. 서재필? 아니, 그는 이미 5월에 추방당하지 않았나. 그러면… 외부 (外部) 소속관리인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그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하나…?
일단 이 문서를 다 읽어보기로 아펜젤러는 결정했다. 심호흡을 들이쉬고 그는 중편소설의 형태를 띤 원고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국가, 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바다.’
소설의 첫 문구였다. 여기서부터 뭔가 아펜젤러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그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결말 부분을 읽지도 못한 그는 원고를 집어다가 벽에 냅다 집어 던져버렸다.
그런 그를 도발하듯이,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널브러진 원고는 그 발칙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함축하는 제목을 당당히 드러냈다.
‘조선왕조의 멸망: 치욕의 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