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13)
매국노의 원수 자식-313화(313/773)
313_안 생기고, 떡락하고, 망합니다(2)
뉴욕, 웨스트포인트
1929년 3월
띵!
미국육군사관학교의 신축 체육관, 헤이즈 (Hayes Gymnasium) 체육관에서 타임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벨 소리에 맞춰서 두꺼운 가죽 장갑을 낀 채로 링 위에 올라선 두 명의 생도가 탐색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스파링하는 것도 마지막이라니, 시간 참 빠릅니다.”
3학년 사관생도 제이슨 리는 자신과 제일 친했던 선배에게 씁쓸한 한마디를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 김에 오늘은 전력으로 해보지그래?”
“오케이,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크헤헤헤.”
올해 6월에 졸업할 예정인 상급생도, 제임스 개빈 (James Maurice Gavin)은 제이슨이 음흉하고 포악하게 웃어대는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붕, 부웅
처음에는 그래도 둘 다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대결을 이어나가는 것 같았지만, 라운드가 진행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드러났다.
“야, 한 대만 때려보자, 한 대만!”
“전 저보다 약한 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개빈이 지쳐가면서 펀치의 속도가 느려지자, 제이슨은 가드도 올리지 않고 그저 고개와 몸만 움직이면서 위빙과 더킹으로 그의 주먹을 전부 다 흘려냈다.
다 피하는 와중에도 복부에 틈틈이 타격을 입혀대면서, 얄미운 미소를 짓는 제이슨을 보며 개빈은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그의 분노도 잠시.
퍽!
개빈이 날린 스트레이트를 다시 한번 매끄러운 위빙으로 피한 제이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묵직한 훅으로 카운터를 날렸다.
털썩.
“다운!”
“그으윽···”
턱을 제대로 맞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핑핑 도는 채로 쓰러진 개빈 앞에 제이슨은 쪼그려 앉은 채로 내려봤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아니, 더 해도 안 될 것 같아.”
제이슨은 아무런 미련 없이 시원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개빈의 글러브를 붙잡고 일으켜 세워줬다.
“너 진짜로 이제까지 봐 준 게 맞는구나···”
“원래 주인공이란 힘을 숨겨야 하는 법입니다.”
“뭔 개소리야. 그나저나 방금 그 기술은 뭐야? 혹시 뎀프시 (Jack Dempsey) 따라 한 거야?”
“아뇨, 그냥 아버지한테서 배운 겁니다.”
제이슨은 축구 외에 권투까지 시작한 자신에게 아버지가 여러 가지 요령을 가르쳐줬던 걸 떠올렸다.
‘네가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뭐하러 펀치를 다 맞고 있냐. 나 때는 말이야···’
‘에이, 아버지가 뭔 권투를 해보셨습니까.’
‘내가 세운 KFC가 전국에서 배출한 권투 챔피언만 두 자릿수인 건 알고 있니? 그리고 나 테디 루스벨트의 스파링 파트너였어 이 녀석아.’
말을 그렇게 해도 아버지가 축구는 몰라도 권투 및 격투기에도 능숙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처음으로 해본 스파링에서 1라운드도 버티지 못하고 세 번이나 다운되는 순간, 어머니가 늘 말씀하듯이 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하셨다는 게 떠올랐다.
···어머니의 말뜻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턱에 아버지의 주먹이 닿았던 촉감이 느껴질 지경이었고, 그 뒤로는 아버지의 격투 실력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메리하고 사귄다고 발표한 후에 스파링한 건 타이밍이 영 안 좋았나···”
“너 임마, 내가 리 대령님이었으면 넌 벌써 함교에 매달렸다. 아 맞다, 네 동생도 사관학교에 간다면서? 잘하면 네가 걔 직접 갈굴 수도 있겠네.”
“아, 걔는 아나폴리스 간답니다.”
탈의하고 개빈과 함께 체육관을 나서면서 이 건물 또한 아버지가 소유한 기업, 벡텔이 건축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주택도 세우고, 빌딩도 짓고, 송유관도 건설하고, 별의별 걸 다 만드네, 진짜.’
언젠가 자신이 몰게 될 탱크 또한 아버지가 포드와 러시아 공학자와 협업해서 만들었던 물건으로 알고 있었다.
“와 시발.”
캘리포니아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그의 쌍둥이 동생 제이크가 얼마 전에 어디로 가든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며 전화로 투덜거렸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해군도 아닌 육군인 자신조차도 어느 정도 그에 해당한다는 걸 깨달은 제이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현재 록히드, 커티스-라이트,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 팬암 등, 현재 PCDA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는 기업을 보니 아마 공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넌 어느 병과로 갈 거냐?”
아버지의 확장력에 공포까지 느끼던 제이슨에게 개빈이 질문을 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기병대라고. 바람과 함께 흙먼지를 날리고 달리면서 적을 찢고 밟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공포를 불어넣고 싶단 말입니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솔직히 남자라면 기병대 가야 합니다.”
조지 S. 패튼 소령의 철학을 설파하는 제이슨 옆에서 두려움을 느끼던 개빈은, 붉게 물들어오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멋진 석양이야.”
“마치···”
개빈은 날아가는 새를 보며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문학적 소양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석양을 뭐랑 비교해야 할지 떠올리지 못하는 제이슨에게 제안을 했다.
“기병대 말고 다른 병과는 어때.”
“공병대는 절대 안 갑니다. 어차피 성적도 안 되고.”
“그거 말고, 임마.”
개빈은 손가락으로 마치 낙하산의 캐노피를 연상시키는 반원을 그렸다.
“너 혹시 공수부대라고 들어봤어?”
*****
10월
워싱턴 D.C.
“흐음···”
병기국 국장 윌리엄 리히 소장은 몹시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좀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있지. 아주 안 좋은 일이···”
리히의 불만이 뭔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를 향한 건 아니겠지. 현재 나는 리히에게 까임방지권을 최소 5년 치, 최대 10년 치는 받았으니까.
‘제독님, 절대로 사시면 안 됩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조건의 매물을 그냥 놔두라고···?!’
작년 말에 리히 부부는 워싱턴 D.C.의 중심지 중 하나인 듀폰트 서클 (Dupont Circle)에 있는, 20,000달러짜리 고급 저택을 하나 사려고 했었다.
물론 난 당장 뜯어말렸지.
‘지금 사면 얼마 안 가서 똥 됩니다. 제 말 한 번 믿어보십시오.’
우리 부부가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부동산 투자로 얼마나 막대한 차익을 냈는지, 그리고 그런 우리가 왜 지금 최대한 빨리 부동산에서 발을 빼고 있는지 리히에게 천천히 설명해줬다.
한참의 설명을 들은 리히는 그 저택을 광고하는 부동산 카탈로그와 내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봤다.
‘한 번 믿어보지. 괜히 자네 말 무시했다가 왓슨 대령 꼴이 나고 싶지는 않으니···’
‘아니, 이걸 혼다 곶의 재앙이랑 비교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그리고는 나에게 추가적인 질문도 하지 않고 바로 그 카탈로그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버렸다.
1년이 지나고 월스트리트 대폭락이 일어난 지금, 리히는 매일 밤 그 집을 사고 빚에 허덕이는 악몽을 꾼다더군.
‘리. 네가 정말 사람 하나 살렸어.’
일본에서는 소매치기의 마수로부터 어니스트 킹의 지갑을 구해줬고, 미국에서는 대공황의 마수로부터 리히의 지갑을 (다른 의미로) 구했군.
그런데 리히 이 양반이 모펫 제독과 합의를 보고 항해국을 통해서 나를 병기국 부국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와, 은혜를 원수로 갚네.
“혹시 각하 때문입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리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합중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의 임기가 끝났다.
이 시대의 학자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고, 미국 경제의 적신호를 발견한 경제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그들의 우려를 대신 전해주자, 쿨리지는···여전히 쿨했다.
‘저는 어떻게 돈을 절약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현재 미국은 재정적으로 건전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풀어야 할 때 와 있을지도 모르고, 저는 그 역할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가 백악관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도 참으로 쿨리지답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제가 백악관에 있던 중에 이뤘던 가장 큰 성과는 내 일에나 신경 썼다는 걸 겁니다.’
그리고는 몇 시간 후 나에게 개인적으로 전보를 보냈다.
‘행운을 빕니다, 대일 리 대령.’
···야.
너 이 새끼 돌아와!
재선하라고!!
내가 이제까지 많은 정치인을 봐왔지만, 쿨리지처럼 신들린 회피기동을 시전하는 인간은 처음보네, 아놔 진짜.
아니 뭐, 윌슨과 하딩 둘 다 스캔들에 휩싸여서 임기 제대로 끝 못 내고 홧병과 심장마비로 죽은 판국에 이해가 완전히 안 되는 건 아니다만···
“리. 이건 자네에게만 말하는 거지만 말이야···”
쿨리지라는 이름을 가진 익절의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나에게 리히는 마치 사무실에 도청기라도 달린 듯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각하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쿨리지는 미국의 향후 장기적 정책 관련 질문에 ‘그건 저 원더 보이 (wonder boy)에게 맡기겠습니다’라며 응답을 거절했다.
일단, 음, 최소한 내가 듣기엔 상무부 장관 시절의 후버는 생각보다는 괜찮았다고 하는데 말이지. 하지만 관료에게 요구되는 것과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건 완전히 다른지라···
“어느 부분이 말입니까?”
“이건 좀 편견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각하는 퀘이커교도라서 그런지 평화주의자야. 게다가 해군력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특히 미국이 왜 함대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 적도 있다더군.”
“저런.”
아이씨, 안그래도 군축 때문에 함선 훈련과 개발 둘 다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대공황 + 해군 무용론자 대통령이라니, 이거 진짜 환장하겠네.
그나마 쿨리지가 떠나기 전에 해군에게 대공포 개발 예산은 안겨다 주고 가서 다행이네. 벌써부터 수출 계약도 여러 국가와 체결했고.
“리···앞으로 몇 년간 미국인 모두가 그렇듯, 해군도 많이 힘들어질 것 같아. 그동안 계속 해군에 있어 주기를 바라네.”
“물론입니다. 제가 해군을 어떻게 떠나겠습니까.”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감동과 흐뭇함에 가득 차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리히를 뒤로 하고 사무실을 떠나면서 조금은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제독님.
솔직히 전 안 힘들 거라서···
하품하며 자가용에 탄 나는 운전사에게 짧은 지시를 내리고는 좌석에 골아 떨어졌다.
“하이드 파크로 갑시다.”
마왕님 뵈러 가야지.
*****
뉴욕, 하이드 파크
“주지사님.”
“리 대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올해 1월부터 뉴욕주의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화려하고 복귀했다.
“그 저주받을 주둥아리가 또 한 건 저질렀군, 그래.”
“에헤이, 제가 이런 걸 예측할 정도의 두뇌가 될 것 같습니까?”
자신이 던진 농담에 농담으로 맞받아치는 나를 보는 FDR은 껄껄 웃어댔다. 아, 이 무서운 양반이 이렇게 편하게 느껴지면 안 될 텐데.
“그거 알고 있나, 리? 나는 지금 기분이 굉장히 묘하다고.”
“어느 부분이 말입니까?”
“백부님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루스벨트는 자택의 화로 위에 걸려 있는 테디 루스벨트 (삼가 고인의 명복을)의 사진을 가리켰다.
“그도 뉴욕 주지사의 당선 됐었고, 해군 차관보에도 임명됐었지.”
“게다가 그가 천식을 이겨냈듯이, 주지사님도 소아마비를 극복하시지 않았습니까.”
“극복하지 않았어. 같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 그래도 자네가 아주 좋은 휠체어를 선물해줘서 다행이군.”
툭툭
FDR은 자신이 앉아 있는 휠체어의 바퀴를 툭툭 치면서, 나에게 고개를 잠시 숙여보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또 백부님과 나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미래의 대통령 되실 분이라는 점?”
“거참, 녀석 아부하는 것 좀 봐.”
그리고 루스벨트는 내 손을 꽉 잡았다.
“그의 곁에도 네가 있었다는 점이야.”
아니.
누가 보면 무슨 제가 테디의 보좌관이라도 된 줄 알겠습니다, 야.
가만 있자.
흠.
“한국에선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입니다.”
이 정도라면 왠지 그 얘기를 꺼내도 될 것 같기도 하네.
“고향까지 들먹이며 정말 징그러운 소리를 서슴없이 하는 걸 보니 또 무슨 제안이 있나 보군.”
“들켰군요, 하지만 한 번 들어보시죠.”
이미 FDR과는 웜 스프링스를 재활 훈련소로 만드는 자선 사업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 이젠 둘이서 더 큰 사업을 한 번 해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