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34)
매국노의 원수 자식-334화(334/773)
334_마왕의 탄생 (1)
1932년 7월
워싱턴 D.C.
보너스 군대 및 더글러스 맥아더 육군참모총장 공개 사과문 발표 사건으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몸 상태는 좀 어떠십니까, 원수님?”
월터리드 미군의료센터 (Walter Reed Army Medical Center)의 가장 넓고 깨끗한 병실에 아주 편안하게 입원해 계신 존 J. 퍼싱 원수를 방문했다.
선물 상자들을 슥 훑어보니 이거 보너스 군대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보냈구먼. 뭐, 퍼싱의 영웅적인 행적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네.
“쓸데없는 방문자는 거부해도 될 정도로만 나쁘지.”
물론 애초에 퍼싱이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최루탄 연기가 옅어졌지만, 그가 쓰러진 건 순전히 내 부탁을 받고 해준 연기였다.
그가 쓰러진 사진이 타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올라온 걸 보면 효과는 예상한 대로 끝내줬단 말이지.
지금 퍼싱이 몸이 멀쩡한데도 입원해있는 건 치료보다는, 기자나 정치인 등 괜히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피하려는 구실이 더 클 거다.
그런 음흉한 사정과는 별개로, 병실은 꽃이랑 선물로 가득하네. 어쩐지 병실 들어오자마자 향기가 가득하고 선물 상자가 발에 치이더니만.
“어이쿠, 그러면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농담이라네, 사돈어른.”
편한 옷을 입고 타임지 기사를 읽고 있던 퍼싱은 껄껄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와.
내가 아직도 저 어마무시한 양반과 진짜로 사돈 관계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일단 세레나랑 아린이 때문에 여자 보는 눈이 엄청 높아진 재선이가 바로 반할 정도로 메리가 미인이긴 했는데···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깜빡한 게 있었구나.
“얼마 전에 메리한테서 들었다네. 정말 경사가 아닐 수 없어.”
“그렇긴 합니다만···”
“아니 왜, 기뻐해야 하지 않나?”
내가···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니?!
대백색함대 항해 중에 아버지가 된다는 소식 듣고는 멘탈이 나갔던 게 엊그제 같더니만 이젠 할아버지가 됐다니···
레이시온 컴퍼니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삼총사, 테슬라, 부시, 그리고 폰 노이만이 기어이 타임머신이라도 발명해서 작동시켰나,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냐고?!
“리 부인이 정말 신이 나서 메리에게 육아용품도 보내주고 출산 관련 조언도 해주고 있다더군.”
“마님이 경험이 많긴 많죠.”
“그럴 것 같네. 아, 그리고 부인한테 극찬이 가득한 칼럼 기고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해주게나. 너무 잘 써서 그런지 나보고 정계 진출까지 하라는 편지도 두 자릿수로 온 건 귀찮지만.”
흠, 퍼싱이 정치인이 된다라···괜찮은 것 같은데?
“솔직히 충분히 가능성 있는데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그의 장인어른이었던 프란시스 워렌 (Francis E. Warren)이 와이오밍의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 보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지만, 관심 없어. 만약 그쪽에 관심 있었으면 장인어른이 3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나보고 지역구 승계하라는 제안을 몇 번이나 들어온 걸 거절했겠나?”
“아하.”
“물론 내가 그렇게 설명을 해도 제안은 계속 들어올 것 같단 말이지. 특히 내 고향인 미주리 쪽에서는 더더욱.”
퍼싱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하튼 이번 보너스 군대 사건의 피해자와 수혜자는 뚜렷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 물론 본질적으로는 보너스 군대 장정들이지만 – 재선이 완전히 날아간 허버트 후버였다.
반면 가장 큰 수혜자는 군인과 민주주의 정신 그 자체로 거듭나고 정계에서 러브콜도 받는 퍼싱 원수겠지.
더글러스 맥아더는 강경 진압을 명령하긴 했으나, 사태가 수습 불가능한 단계까지 치닫기 직전에 재빨리 태세전환하고 고개까지 숙인 덕분에 저 중간 어디일 거다.
···아니, 정정해야겠다. 이번 사태에서 압도적으로 제일 이득 본 사람은 따로 있었구나.
바로 전 대통령 캘빈 쿨리지 되시겠다.
임기 중에는 대호황이라서 낮잠과 산책을 즐기다가, 대공황 전에 탈출해서 그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뒀던 대통령 월급으로 괜찮은 저택 하나 구매해서 느긋하게 은퇴 생활을 누리다니.
여기까지만 해도 뭔가 열 받는데 보너스 군대 사건 바로 다음 날, 쿨리지는 나에게 살면서 받아본 것 중에서 가장 얄미운 전보를 보냈다.
‘당신 말이 모두 옳았습니다.’
와. 그냥···할 말이 없다.
하여간 인생은 이 양반처럼 살아야 해, 진짜로.
아니 그런데 쿨리지씨, 후버가 당신의 뒤를 잇기에 적합한 원더보이라면서요. 원더보이는커녕 웟더뻑인데요?
하긴 뭐 원래 이미 지나고 나면 더 잘 보이는 법이긴 하지···
“자네는 어떤가?”
“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혹시 전역 후에 정치해볼 생각 없나?”
음.
아무리 사돈 관계라고는 해도, 듀이 원수님께서 돌아가신 이상 미합중국군의 최고 존엄이니 예의를 갖춰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으허허헣헣, 아이고 원수님 농담도 심하십니다!”
퍼싱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빵 터지고 말았다.
나처럼 얼빠지고 멘탈 약한 인간이 정계 진출에 성공하면 그 나라는 이미 망했어. 아니, 솔직히 내가 유권자여도 나 같은 놈한테는 절대로 표 안 줄 거다.
“농담 아니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지낸 것도 15년이라고. 그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자네와 엮인 일을 알아보면서 깨달은 게 뭔지 아나?”
아니 그걸 왜 또 조사하고 다니십니까, 무섭게 진짜. 이미 FDR이 나한테 관심 가지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일단 뭔지 들어나 보자.
“뭡니까?”
“자네 말을 듣고 바로 따르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떨어진다는 거지.”
···누가 보면 제가 무슨 재앙신이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어후.
“그래서 생각한 건데, 자네는 대통령 밑에서 계속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면 적합할 것 같아. 대통령 보좌관이라던가, 국무장관이라든가 말이야.”
아무래도 퍼싱이 뭔가 착각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의 제안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자네 말이 무시당했으면 나는 헤이그 원수와 함께 파스샹달에서 미군을 갈아 넣었겠지. 내 자식들도 샌프란시스코 화재에서 모두 사망했겠고.”
이보세요, 원수님. 전 미래지식 없으면 아주 오래전에 별 볼일 없이 시체로 끝났을 몸이라니까요?
그래도 저렇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신용하는 퍼싱을 한 번에 조용하게 만드는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이건 비밀인데 말입니다···제 인종도 인종이지만, 전 괜히 정치 쪽을 기웃거리다가 맥아더 장군처럼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음. 그건 그렇지.”
뭔가 집요하게 계속 권유해볼 생각이었던 퍼싱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러나 퍼싱 앞에서 맥아더를 디스하면서까지 선언한 것과는 별개로, 내가 볼티모어로 돌아오는 순간 어느 익숙한 정치인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것도 이제 민주당 대선후보로 등극한 예비 대마왕님의.
*****
“누가 내 얘기하나···”
“네?”
“아무것도 아니야.”
미합중국 육군참모총장 더글러스 맥아더 대장은 누군가가 자신을 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애써 무시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참모총장 사무실로 호출되어 자신 앞에서 뻣뻣한 차렷자세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한 위관에게 집중할 때였다.
“내가 자네를 왜 부른지 알고 있나, 리 중위?”
“모···모릅니다!”
제3 기병연대 소속 장교 제이슨 리 중위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맥아더는 그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 리와 맥아더 둘의 머릿속에 있는 주제는 동일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 때 아주 위험한 짓을 저질렀더군. 상관의 지시에 항명하다니, 당장이라도 군사재판에 회부해도 할 말 없지 않겠나?”
“···백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앞으로 말을 탈 일은 없을 걸세. 두 번 다시 기병 부대에는 배치되지 않을 테니.”
제이슨은 눈을 잠시 감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뜰 때쯤엔 해탈이라도 한 듯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군복을 입고 있었던 기간은 짧았지만···참으로 영광스러웠습니다. 참모총장님이 그토록 입교 시험에도 도와주셨는데 이렇게 날리다니, 너무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떨어질 처분을 수용하는 제이슨을 바라보는 맥아더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어이, 리 중위. 뭔가 심각한 오해를 하는 것 같군.”
“네?”
맥아더는 책상 위에 편지 하나를 올려놨다.
“자네는 지금 군대에서 퇴출당하는 게 아니야. 그저 기병이 아닌 다른 병과로 변경하는 것뿐이라고.”
“···네?”
“졸업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었으니 공병은 안 되겠고, 보병 병과가 제일 괜찮을 거다. 이건 육군보병학교 입학서라네.”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지 떨리는 손으로 입학서를 받아든 제이슨을 보며 맥아더는 웃어 보였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군. 군 교도소가 아니라 보병학교라니,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우선 익명을 요구한 자네 상관 중 하나가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보내서 말이야.”
그 이름의 힌트라도 달라고 부탁하려던 제이슨은 누군지 감이 온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다음에 맥아더가 던진 질문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듯 했다.
“리 중위···자네가 어느 분을 장인어른으로 뒀는지 알고는 있지?”
“그게 무슨-아···”
얼굴이 붉어지는 제이슨을 본 맥아더는 미간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자네 집안 남성들은 정말 한결같군.”
열정도 행동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흘러넘치지만 어떻게 꼭 뭔가 중요한 걸 한두 개씩 잊어버리는 걸까.
만약 자신이 육군 원수의 딸과 결혼한 육군 장교였으면 그 점을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해 먹었을 텐데 말이다.
“제기랄, 리 이 부러운 자식···”
대일 리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것, 그리고 자신이 다시 홀몸이 된 걸 떠올린 맥아더는 제이슨이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일 그 아이는 이제 손주까지 봤는데, 넌 언제 재혼하니?’
‘아 어머니 제발 좀···’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나중에 또 일 있으면 연락할 테니 지금은 나가보게.”
“네, 알겠습니다!”
깍듯이 경례하고 나가려는 제이슨의 뒤를 보며 맥아더는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리 중위. 참모총장으로서는 자네 행위를 용인할 수 없었지만···더글러스로서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네.”
“···아버지라면 그렇게 하셨을 거로 생각했을 뿐입니다.”
사무실을 나서는 제이슨을 보며 맥아더는 시원스럽게 웃었다.
그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대일 리 같은 자를 친구로 둘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
바이마르 공화국, 베를린
“이거 참 재밌군.”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수, 아돌프 히틀러는 국제판 타임지의 독일어본을 읽으면서 흥얼거렸다.
후버 정부가 군부에게 국가 질서를 되찾으라고 지시했으나, 더글러스 맥아더를 포함해서 군부 수뇌부가 그에 반기를 들어 순식간에 정부의 동력을 끊어버렸다는 부분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 강력하고 안정된 미국 정부가 붕괴하는 것도 이렇게 한순간이었을 줄이야.
우드로 윌슨도 그렇고, 워렌 하딩도 그렇고, 이번에는 허버트 후버까지.
어쩌면 이런 부족한 대통령들을 계속 배출하는 건 생각보다 미국의 정치판이 엉망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흐음···”
백악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야영지가 불타오르는 모습을 본 히틀러의 마음 속에도 뭔가 위험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불타오르는 캠프 바틀렛이 후버 정부 붕괴의 무수히 많은 상징 중 하나가 된 건 틀림 없었다.
슥.
그는 국가의회 의사당 (Reichstag)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부 주요 건물 근처에 지펴진 불길만 해도 그 정도 막강한 정치적 여파를 불어 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예 건물 자체에 불을 질러버리면 어떻게 될까.
“해볼 만하군.”
히틀러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