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48)
매국노의 원수 자식-348화(348/773)
348_힘차고 강한 미합중국 해군 (5)
1932년 8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파이어처럼 푸르른 하늘과 비췻빛을 머금은 바다 사이의 모래사장에서 두 명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거닐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저도 꽤나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페인 공산주의 정당,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의 공동 창당자이자 비공식 상임고문 레프 트로츠키는 소련의 상황을 듣고는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폴란드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마르크스주의 정치 활동가 아이작 도이처 (Isaac Deutscher) 작년 무렵에 소련을 방문하면서 농업 집산화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래, 도시의 노동자들을 먹이려면 한시라도 빨리 쿨라크 (부농)을 청산하고 그들의 농작물을 강탈해야겠지. 그런데 집산화를 반대하는 빈농들까지도 쿨라크로 규정해버렸다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트로츠키를 바라보며 도이처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이어나갔다.
“어쩌다가 국가정치부(OGPU)의 대령을 만났습니다. 차르 정권 때부터 지하에서 활동했고, 내전 때도 적군에서 싸웠던 볼셰비키였습니다. 트로츠키 씨 얼굴도 여러 번 뵀다더군요.”
“아주 뼛속까지 공산주의자군, 하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런데···그가 오열하면서 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붉은 군대와 인민을 위해 싸워왔던 그가 이제는 군부대를 이끌고 와서, 경찰과 함께 집산화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마을을 기관총으로 에워싸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면서.
자신은 이러려고 볼셰비키가 된 게 아니라면서 말이죠.”
트로츠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트로츠키는 여전히 스탈린을 원망해왔다.
자신이 없는 소련이 너무나도 처참하게 망가져 내려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심 통쾌했고 입가에 미소가 걸리려는 걸 참아야 했었다.
···그랬던 트로츠키였건만, 도이처를 통해 들었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해서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5개년 계획은 무슨 얼어 죽을, 5개월 계획도 없었잖아, 스탈린 그 자식.”
정말···배반당한 혁명이 아닐 수 없다.
“흠.”
왠지 다음 저서의 제목은 뭐라고 할지 정해진 것 같다.
부우우우웅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코카콜라를 광고하는 현수막을 단 복엽기가 드높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소음 공해와도 같던 비행기를 본 트로츠키와 도이처 모두 앓는 소리를 냈다.
“젠장할 또 저 비행기군.”
“소련에서도 보이더니만, 어후, 안 보이는 곳이 없네요.”
대전쟁 때 선전용 전단 살포 및 야간 경폭격기로 처음 등장한 다용도 저가형 복엽기, 나이트스토커는 전후에 미국 전역에서 절찬리 사용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유럽을 포함해 해외로도 수출되었으며, 마침 집단농장을 운영하던 소련은 안 그래도 미국의 대형 농장에서 많이 쓰던 이 복엽기를 그 어느 국가보다도 많이 수입했었다. 물론 그도 얼마 가지 않고 소련 내에서 불법으로 복제하는 개수가 더 늘어났지만.
하지만 나이트스토커 복엽기가 가장 불편한 점은 따로 있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자네의 영향력은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안 가, 리 제독.’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저 비행기도 대일 리가 소유한 회사,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에서 개발한 물건이라는 것.
“하···”
트로츠키의 머리로는 아직도 대일 리라는 인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트로츠키 씨?”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그래.”
세 제국의 재상을 아버지로 두고, 러시아 귀족 작위를 얻었으며, 미국 육군 원수와 사돈 관계인 해군 제독 타타르인이라니.
세상에 뭐 저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그래도 하나는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했다. 뭘 하든 간에 저자는 가는 곳마다 엄청난 성공을 일궈냈다는 것을.
게다가 사실 자서전을 출판해줘서 스탈린에게 한 방 크게 먹이고 서방세계의 좌익 세력에게 자신의 인지도를 올려준 덕분에 스페인에서 새 출발을 하게 해준 것도 리였다는 것도.
‘지금 자네는 어디를 보고 어디로 가려는 건가, 대일 리.’
그리고 그런 그가 왜 아직도 군대에 남이 있는 것일까.
“도이처. 스탈린이 저항하는 농민을 둘러싸고 총살하고···거기다가 강제로 트럭에 태워서 타지로 보내게 지시한다고 했던가?”
“고향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농장으로 말이죠.”
“다른 독재자가 그걸 보고 배우지나 않았으면 좋겠군.”
아니.
반드시 저걸 모방하는 자가 나올 것이다.
자고로 인간 문명이란 타인에게 도움 되는 건전한 문물의 전파는 여러 세대가 걸릴 정도로 한없이 더디지만, 파괴적인 문물은 한 세대면 충분한 법이다.
보나 마나 앞으로 몇 년, 아니, 몇 개월 안에 유럽부터 시작해서 곳곳에서 ‘위험세력’을 격리해 놓거나 처분하는 수용소가 생기는 모습이 보일 터.
소련의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기껏 전쟁의 시대를 넘어가는가 싶더니 세계에 파시즘과 독재자의 열풍이 몰려오는 것이 트로츠키의 피부에 느껴졌다.
‘대전쟁이 다시 한번 터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이네.’
자신도 다시 군인으로서 돌아가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붉은 군대의 사령관이었던 자신으로서.
“오래간만에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가웠네. 그럼 이제 다시 폴란드로 돌아가서 다시 집필 활동할 건가?”
“그래야죠. 폴란드 공산당 (KPP)으로 복귀 할까나 싶었는데, 씁, 나치주의의 위협을 너무 과장하고 당에 공포를 불어 일으킨다고 탈당 당했지 뭡니까. 나 참.”
“별 쓸데없는 이유 다 듣겠군. 가는 길 조심하게.”
도이처와 트로츠키는 미소를 지으며 굳게 악수했다.
“트로츠키 씨야말로 조심하시죠. 언제 스탈린이 암살자를 보낼지도 모르니까요.”
“뭐, 충고 고맙네. 잘 때 얼음송곳이라도 하나 들고 자지.”
그렇게 트로츠키가 도이처를 배웅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어느 스페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
1933년 6월
캘리포니아, 롱비치
“수고하셨습니다.”
록히드 에어크래프트 컴퍼니의 엔지니어, 제이크 리는 서류 가방을 닫고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 컴퍼니의 공장을 나섰다.
눈동자도 푸른색일 정도로 혼혈이었으나 황인종인 흔적이 조금은 났는지 공장 입구 쪽으로 나서는 그를 보며 속닥거리는 직원들이 몇몇 보였다.
“야, 저 새끼는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말조심해 임마, 회장님 아드님이셔. 러시아 황제의 부마가 될 남자이기도 하고.”
“···잠깐만, 방금 뭐가 될 남자라고?”
아버지도 그렇고, 제이슨과 레온도 그렇듯이 모든 감각이 예리했던 제이크는 그들의 대화도 들렸으나 무시하고 눈알만 굴리며 밖으로 나갔다.
록히드와 더글러스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협업하여 DC-2를 업그레이드한 쌍발 금속제 여객기를 개발하는 초대형 사업에 들어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희대의 대성공작의 될 거라며. 최소 1 만대 이상은 팔리고 60년은 사용될 거라며.
그저 하필 록히드에서 더글러스로 자꾸 왕복하게 하는 엔지니어가 자신이란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이 최소한 제이크가 ‘보는 앞에서만이라도’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긴 했다.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가 됐든, 록히드 에어크래프트가 됐든, 회사 이름과 소유주는 중요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규모 있는 항공사들은 모두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가 아니면 PCDA의 자본을 받고 설립되었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주차해놓은 차를 향해 걸어가는 제이크의 눈에 해변이 보였다. 로스엔젤레스 근처에서 보이는 해변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윽···”
아나스타샤 “아냐” 로마노바가 또 주말에 데이트를 신청한 걸 떠올린 제이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자작 부인님께서 해수욕장에서 입을 옷을 보내주셨어. 그런데 이거 나한테는 사이즈가 안 맞을 것 같은데···?’
“어머니, 제발···”
상상만 해도 벌써 얼굴이 붉어지는 제이크가 주차해놓은 차를 찾는 순간, 한 육군 장교가 차에 기대고 서 있었다.
자신과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 보이는 젊은 장교는 아주 능숙하게 엄지손가락으로 돌멩이를 튕기고 있었다.
“제이크 리?”
“맞습니다만, 누구···?”
“역시 리 제독님 아들 아니랄까봐, 딱 봐도 군인 체격이군.”
싱글벙글 웃으면서 돌멩이를 집어 던진 장교는 군인으로서의 품위와 이제 막 석기시대에 진입한 원시인의 투박함을 동시에 갖춘 듯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커티스 르메이 소위라고 해. 제안이 있는데 잠시 시간 되겠어?”
*****
9월
워싱턴 D.C.
“휴.”
해군 항해국 국장 윌리엄 리히 소장과 함께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마에서 식은땀을 닦아냈다.
“왜 그러나, 리?”
“아, 별거 아닙니다. 그냥···엄청 크나큰 착각을 일으킬 말실수를 저질러서 말입니다.”
안 그래도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미치광이를 피해서 미국으로 피신해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한테 거의 비슷한 미치광이 취급받을 뻔했거든요, 나란 녀석이.
‘저기, 리 제독님? 방금···모든 전쟁을 끝낼 무기라고 하셨습니까···?!’
‘아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무공해 청정에너지지, 절대로, 그, 대량살상무기 같은 게 아닙니다, 진짜로요!’
‘···아, 아하하, 그래요, 제정신 박힌 사람이 그런 끔찍한 걸 만들 생각할 리가 없죠.’
다만 그때 분명히 폰 노이만 옆에서 리히에게 마크 1 컴퓨터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었을 니콜라 테슬라가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나와 아인슈타인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누가 대량살상무기 얘기를 꺼냈습니까?’
‘으아악!’
‘뜨허허엌?!’
‘그것 좀 상세하게 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안 꺼냈습니다, 저리 가요, 저리 가!’
눈빛이 초롱초롱한 테슬라를 보고 깨달았다.
아.
이 인간은 독일에서 안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과학자 얘기가 나온 김에, 마크 1 컴퓨터 관련 계약을 끝내고 고등연구소를 떠나기 전에 아인슈타인한테 중요한 부탁을 하나 했다.
‘저기 박사님. 혹시나 나치 독일 휘하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유대인 동료 학자들이 있으면 주저 없이 미국으로 오라고 권유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정착 및 연구에 PCDA 차원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만주국의 리 총리님도 그렇고, 정말 리 부자는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군요. 잘 알겠습니다. 솔베이 회의 때 만나는 친구들한테도 당부하죠.’
솔베이 회의가 뭐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중요한 거겠지···?
아무튼 이번 방문을 통해서 아인슈타인을 만난 것 외에도 어마어마한 수확을 하나 건져냈네.
원시고대 컴퓨터를 만들어냈으니, 저기서 조금만 더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면 바로 에니악도 나오겠지.
어디 보자,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휼렛 패커드 (Hewlett-Packard, HP)도 캘리포니아에서 어림짐작해서 40년도쯤에 창설되지 않았던가?
그 말인즉, 지금부터 컴퓨터 개발에 열심히 숟가락을 올려놓으면 실리콘 밸리도 바로 내 손으로 시작하는 것이여, 으하하하하하하!!!!
“또 무슨 즐거운 생각을 하는 모양이군.”
“네? 아, 어, 뭐 그렇습니다, 헤헤헤.”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이거 좀 받게나.”
따스하게 웃는 리히가 나에게 편지 하나를 건네줬다.
“그럼 난 이만 각하를 뵈러 가보겠네. 매우···매우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말이지.”
“네, 내일 뵙겠습니다.”
리히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뭔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후 항공국 사무실을 떠났다.
도대체 어떤 중요한 얘기일까. 뭐,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아니면 돼.
이건 또 무슨 편지지···잉?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장관 중 하나가 보낸 편지였다. 그것도 전에 한 번 나한테 직접 연락까지 한 양반의 이름의.
하 씨, 이번엔 또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