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65)
매국노의 원수 자식-365화(365/773)
365_대환장과 대폭발 (3)
1935년 8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사파이어처럼 푸른 바다가 보이는 예식장에서 난 재익이와 아나스타샤 로마노바의 결혼식을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채로 바라봤다.
“허, 참.”
(여전히 표정관리가 안 되는) 재익이는 고급스럽지만 평범한 검은색 턱시도를, 우아한 미소를 짓는 아나스타샤는 러시아 전통, 그것도 황녀에 어울릴 법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가 키스하는 순간,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플래시가 터졌는지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하객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거냐, 세자릿수는 거뜬히 되겠네.
“애들 정말 빨리 크죠?”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믿기지 않아서 멍하게 바라보는 나의 옆에서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세레나가 손을 부드럽게 잡아줬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요···?”
“에헤이, 도대체 몇 번이나 얘기해요, 당연하죠.”
나, 그리고 재익이와 아나스타샤 모두 될 수 있으면 조용한 결혼식을 하려고 했지만, 아내는 전혀 납득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신랑은 우리 귀여운 아들이고 신부는 러시아 황녀인데 최대한 성대하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예산은 전부 제 돈으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돈이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요···”
저기서 화려한 코사크 댄스를 보여주는 슬라브 댄서들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마님.
“이로써 첫째 쌍둥이 둘 다 기혼남이 되었군요.”
정말 다행히도 아내가 이번에는 애도 한 명씩 떠나가니 늦둥이를 가지자는 무서운 소리를 농담으로라도 하지 않았다. 휴.
“다 좋은데 왜 이렇게 결혼을 늦게 한 걸까요. 제가 로마노바 양 나이 때는 벌써 애가 다섯 명이었는데 말이에요, 쯧쯧쯧.”
그러고 보니 일곱 명의 자녀 중에서 다들 개성이 지나치게 뛰어나긴 해도, 어떻게 모나게 자란 애들은 단 한 명도 없을까. 내가 잘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내 공이 컸겠지.
“혈우병 때문에 많이 꺼렸다네요.”
“하, 그놈의 우생학이 뭐길래.”
행복에 젖어 싱글벙글 웃어대던 아내의 얼굴이 이제는 싸늘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애석하게도 현재 미국에는 여전히 우생학이 주류였다.
아니, 아마 전 세계에서 미국만큼 우생 운동이 앞서 나가는 곳이 없을 거다. 당연히 독일까지 포함해서.
심지어 존 D. 록펠러 3세가 운영하는 록펠러재단은 독일 우생학 연구의 자금원 역할까지 하는 상황이고, 헨리 포드는···뭐, 말할 필요도 없지.
미국의 많은 주에서 범죄자들이나 장애인들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강제 불임화 수술을 하고 있고, 캘리포니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작년에 괜히 어그로까지 끌어가며 주지사 선거에 거의 직접 개입해서 업튼 싱클레어를 주지사로 만들기 전까지는.
그에게 약속하게 한 게 많지만, 그중에는 인종차별과 약자를 향한 핍박을 주지사 역량 내에서 최대한 막으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캘리포니아 안에서, 싱클레어의 임기 중뿐만이라도 걱정하지 말고 결혼생활 잘 하세요, 우리 아들.
“넌 결혼 안 하냐.”
“제가 그런 걸 왜 합니까, 제.독.님.”
마침 샌디에이고 해군항공기지의 파일럿으로 배치되었겠다, 아내의 손에 끌려오다시피 해서 참석한 래원이는 나른하다는 듯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인생의 무덤에 들어갈 바엔 차라리 자살이나 하렵니다.”
“네 형도 결혼 안 하겠다고 그렇게 우기다가 결국 황녀 출신 여배우랑 결혼했는데?”
“형은 별 같잖지도 않은 개똥철학 때문에 그런거고, 전 그냥 만사가 피곤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래원은 요란하게 하품했다. 너 이 새끼 이렇게 귀차니즘에 사로잡힌 녀석이 도대체 해군에, 그것도 해군 파일럿으로는 왜 들어온 거냐···?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인사를 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도 볼티모어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라서 그런지 맥아더나 리히, FDR 같은 거물급 인물이 찾아와서 부담을 주는 일은 없었다.
물론 하와이로 발령 갔다가 잠시 캘리포니아의 고향을 방문한 조지 S. 패튼 중령이 찾아오긴 했지만. 자식, 이 와중에 진급은 했구나.
‘이봐, 리. 혹시 미국이 참전할 만한 전쟁은 어디 좀 안 일어날까?’
‘조금만 기다려. 날뛸 일이 생길 거니까.’
‘뭐, 진짜로?!’
요즘 만사가 지루해 보였던 패튼은 내 말을 듣고 온몸에 생기가 돌아온 듯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재선이 때 일은 다시 한번 사과하고 갔다.
나름 반가운 얼굴도 봤지만, 워낙 손님이 많이 왔는지라 그중에선 정말 엿같은 놈들도 찾아왔다는 게 문제였다···
“야이 싯팔!”
“허허, 리 제독. 나도 그 정도 한국어 욕설을 알아듣는다고.”
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다녀온 윌리엄 리히가 들려준 이슬람권 명언이 하나 있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그런데 이런 손님은 필요 없는데.
“여기서···여기서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어허, 축의금까지 두둑하게 낸 사람한테 굳이 그걸 따져야겠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수염과 머리칼 모두 새하얀 백발이 된 사이토 마코토 예비역 해군 대장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그래도 내 형이라는 놈이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긴 했다. 다음번에 보면 바로 쏴 죽여버리겠다고 경고까지 했으니, 그 겁쟁이 새끼가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해군도, 정계도 모두 은퇴했겠다, 하루하루가 따분한 것도 있었지.”
“설마. 그냥 지루해서 온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껄껄 웃는 사이토 저놈의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뭐, 감이 오긴 하지만.
“그거 알고 있나. 난 항상 자네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전해 듣는 게 좋았어. 지금 자네는 약 30여 년 전, 요코하마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었다고.”
“허.”
“내가 돌발적인 질문을 했을 때,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하면서 빠져나왔던 소위가 이제는 해군 소장까지 되었다니, 참. 자네의 잠재성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군.”
뭔데 이 자식. 왜 무슨 아들이 성장하는 걸 보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처럼 웃고 앉아 있냐고.
“부끄러워해야 할 건 따로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일본 내부에 퍼져가는 군국주의라는 독소를 해독하기는커녕, 그걸 한반도까지 퍼트리는 데 가장 기여한 점 말입니다.”
온기가 없는 나의 한 마디에 사이토가 흠칫한 것도 잠시, 곧바로 그는 특유의 여유로움을 되찾았다.
“뭔가 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자네를 포함한 조선인들은 오히려 나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지.
“일본은 한반도를 거의 괴뢰국과 비슷한 존재로 만들려고 했고, 그런 절차가 진행할 뻔도 했었지만 내가 막아섰어.”
제법 능숙한 영어로 대화하던 사이토는 여기서부터는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반도의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는 것도 모두 한국인. 행정부, 의회, 그리고 사법부 수반도 모두 조선인이야. 대한제국은 그저, 음, 일본에게 일부 경제 및 군사적인 측면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뿐이라고.”
“아.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서 군인 출신 정치인이 가득한 대한 파시스트당이라는 정당도 생겨서 몇 년째 최대 정당으로 집권하는 겁니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소련과 공산주의의 위협이 너무 강해지면서 일어난 결과일 뿐이라고.”
“그 정당의 창당과 당명 변경 모두 결국 당신 아이디어였던 거 아니까 헛소리 그만하죠.”
야.
이 새끼 이거 한국에 일본물을 잔뜩 먹여 나라 자체를 오염시키면서 빨아먹고 있다는 걸 아주 장황하게 돌려서 말하고 있네.
“무슨 일 있어요?”
날선 대화를 나누는 나와 사이토에게 아내가 손에 와인잔을 하나 들고 다가왔다. 그녀의 옷차림을 본 사이토는 다시 한번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한국은 완전히 잊고 미국인이 된 줄 알았더니만, 아닌가. 이런, 경사로운 자리에 내가 괜히 찾아와서 물만 흐리고 가고 있었군, 이만 가보지. 아드님의 결혼 축하드립니다, 리 부인.”
사이토는 공손하게 모자를 벗으면서 마지막 문장은 영어로 아내에게 말하고,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등을 항해 일본어로 말했다.
“사이토 마코토. 당신은 편하게 눈을 감지는 못할 겁니다.”
그 자리에서 사이토가 멈춰섰다.
“···방금 그건 경고인가, 예언인가. 그것도 아니면 저주?”
“어느 쪽일 것 같습니까.”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사이토는 뭔가 질문을 하고 싶었던 눈치였으나, 조금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 없이 떠났다.
내가 아직도 해군에 남아 있는 건 이유가 있다고.
*****
워싱턴 D.C.
“흠.”
윌리엄 리히 중장은 항공국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내렸다.
캘리포니아로 근무지를 변경한 리 제독 대신으로 항공국장으로 들어온 어니스트 킹 소장은 확실히 대일 리가 보증한 대로 유능하고 여러 부분에서 그보다 훨씬 더 똑똑했다.
하지만 유쾌하고 부드럽게 일을 처리해왔던 그에 비해서, 항상 화가 나 있고 날이 서 있는 킹의 성격은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아 그렇지.”
훨씬 일하기 편했던 자신의 제자를 그리워하던 리히는 그가 당부한 중요한 내용이 하나 떠올랐다.
슥, 스르륵
곧바로 서류 더미를 뒤지던 리히는 병기국에서 전달받은 내용 하나를 꺼냈다.
마침 몇 년 전에 병기국 국장으로 근무한 적도 있었기에, 현재는 항해국 소속이지만 병기국에서 자료를 받아오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어디 보자···어뢰 개발은 잘되고 있나.”
구축함과 잠수함에도 큰 관심을 보이던 리는 누누이 어뢰의 신뢰도를 보장하는 건 항공모함 부대를 유지하는 것과 동급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다른 제독도 아니고 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기에 리히는 절대로 그 말을 잊지 않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병기국을 찾아가 마크 14 어뢰 개발 진행 과정을 점검해왔다.
“병기국 부국장도 했겠다, 자네가 병기국 국장으로 들어가면 일이 간단해졌을 텐데 말이지.”
문서를 자세히 검토한 리히는 리에게 일단은 문제점은 없어 보인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모든 게 잘되고 있는 건 아니고, 아직 병기국에서 제대로 된 실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문제점도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조만간 실험을 해보겠지?”
물론 어뢰란 게 한 개에 1만 달러가 넘을 정도로 매우 비싸고, 의회가 보기엔 실험용 예산도 아까웠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설마 실험을 한 번도 안 하겠나.
*****
10월
독일국, 베를린
“이런 세상에, 제이크 이 대단한 녀석.”
루프트바페 소속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중령은 타임지의 어느 칼럼을 읽으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때 자신을 동경해왔던 꼬맹이이자, 자신이 동경하는 자의 아들인 제이크 리, 그리고 러시아의 황녀가 결혼했다니.
“그의 아들답군.”
리히트호펜이 보기엔 대일 리 같은 자의 가문에 들어올 여성이라면 확실히 육군 원수의 딸이나 황녀 정도는 돼야 어울릴 듯했다.
다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대단한 소식이었으나, 독일 내에선 해외 소식에 밝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언급하는 자들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건가.”
몆 주전, 아돌프 히틀러는 뉘른베르크에서 그해 첫 번째 주요 연설을 했고, 항공장관 괴링과 함께 리히트호펜도 그 자리에 참석했었다.
‘제가 한때 화가였던 자로서 말하는데, 유대인들을 보면서 느낀 게 뭔지 압니까? 그들의 작품관을 보면, 유대인 예술가들은 절대로 스스로 개성을 가진 예술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항상 더 뛰어난 자들을 모방하거나, 헐뜯으면서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밖에 할 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의 종족적인 한계를 잘 나타내는 점이란 말입니다!’
연설하고 며칠 후, 그는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보호하는 법안’ 제정을 지시했다. 유대인과 독일인 및 독일계 혈통 간의 결혼 및 혼외정사를 금지하는, 참으로 충격적인 법안이었다.
이런 시국인데 해외에서 ‘타타르인’과 러시아 황족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언론이 다룰 리가 만무했다.
리히트호펜 본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히틀러는 이 유대인 관련 정책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
그리고 몇 개월 전에 공개적으로 선포한 독일 방위군 확장, 그리고 몇 주 전의 유대인 탄압 법안으로 인해 온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는 와중에 독일에게 제법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아비시니아 침공을 개시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리히트호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19세기 말에 이탈리아가 아비시니아를 침공했다가 패배한, 참으로 수치스러운 과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기관총, 탱크, 그리고 비행기까지 갖춘 현대식 군대가 고작 기마 부족으로 이뤄져 있는 국가를 침공하는 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최근에 급격히 군수 지원 및 훈련을 받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아비시니아가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건 기정사실로 보였다.
“편지는 받았으려나.”
제이크에게 결혼 축하 편지를 보냈건만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다. 마치 그 전에 보냈던, 대일 리의 50번째 생일 축하 편지처럼.
“아무래도 5,700자는 너무 부담스러웠나.”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히틀러는 붉은 남작을 사무실로 호출했다.
루프트바페를 침공작전에 투입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