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67)
매국노의 원수 자식-367화(367/773)
367_대환장과 대폭발 (5)
1936년 2월
일본 제국, 도쿄
가장 추운 1월이 지난 지 한 달 만에 새하얗고 깔끔한 눈이 도쿄 거리를 뒤덮었다.
누군가에게는 차가우면서도 부드럽게 덮어주는 솜이불,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시의 시민들을 가두는 싸늘한 장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참 좋은 영화였단 말이지.”
해군 예비역 대장이자 전 일본 총리, 그리고 현 궁내부 대신 사이토 마코토 자작은 성대한 파티가 열린 미국 대사관을 떠나며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사이토와 사이가 좋았던 미국 대사 조셉 그루(Joseph C. Grew)는 자신 외에도 정계와 해군의 원로를 40명 가까이 초대하여 영화 시사회를 열었다.
그루의 아내가 다름 아닌 쿠로후네 사건의 바로 그 페리 제독 (Matthew C. Perry)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이 아마 우연은 아니었을 거라고 사이토는 장담했다.
“영화가 정말 재밌으셨나 보군요,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남으신 걸 보면.”
그의 아내, 사이토 하루코 (斎藤 春子)의 지적에 시계를 보며 미소지었다. 어떤 자리에 참석해도 밤 10시가 되면 바로 자리를 뜨는 습관이 있었건만, 시계바늘은 벌써 자정을 가리켰다.
‘말괄량이 마리에타 (Naughty Marietta)’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사로잡았으며, 여자 중에서는 눈물로 눈이 충혈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사이토 또한 너무나도 영화에 감동하였으나, 영화의 크레딧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 로고를 본 걸 떠올리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AMC가 사실상 미국 영화 산업 자체를 소유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걸 생각하면, 역시나 이번 영화의 제작 과정에도 리 다이이치 부부의 손길이 들어갔을 터.
“참으로 부럽군.”
“언젠가 일본에서도 이런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
하루코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녀와 함께 자신의 자동차로 향하는 사이토가 부러웠던 건 따로 있었지만,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사이토 자신은 결국 이 나이까지 친자 하나 없고 양자만 하나 있었건만, 리 다이이치 그는 자식만 일곱 명인 데다가 벌써 손주도 2명-아니, 이제 3명이었다니.
이런 씁쓸한 격차를 누가 들어서 좋으라고 언급할 수 있을까.
부르릉
운전사가 시동을 걸고 사이토의 차가 움직였다. 자동차가 그의 자택을 향해 출발하는 순간, 유리 공예품처럼 아름다운 눈송이 하나가 창문에 붙었다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
흔적도 없이 흘러내리다가 이내 사라져버린 눈송이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사이토는 작년에 리 다이이치가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자신을 노려봤을 때의 눈빛을 떠올렸다.
역시 확실히 그는 성장했다.
요코하마에서 처음 봤던 그는 별별 희한하고 거만한 소리를 다 해댔지만, 그 밑에는 자신을 경계하고 어떻게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는 등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 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본 그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하는 패기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그럴 리가.”
···
아무리 재앙신이라고는 해도, 그 협박은 악질적인 농담에 가깝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까지 없어 보였다.
자신이 해군 원로로서, 그리고 전 총리까지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고 살아남아 왔는데 지금 와서 또 무슨 일이 생긴다니.
스스로의 지나친 우려를 비웃으며 피식 웃던 사이토가 자택으로 돌아가고,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황도파 군인들이 움직였다.
*****
“어이, 일어나.”
눈송이가 함박눈으로 변한 이른 새벽, 보병 제1연대의 고다 기요사다 대위를 포함한 “황도파”의 지도자들은 자고 있던 사병들을 깨워 밖으로 끌고 나왔다.
“아이씨, 이 시간에 대체 뭐야.”
“뭐 또 야간 훈련 있나···?”
“그러려면 어젯밤에 했겠지, 왜 지금 하겠어.”
그러나 투덜거리던 사병들은 장교들이 오늘 살육이 있을 거라는 소름 끼치는 선언을 하자 그 자리에서 모두 얼어붙었다. 물론 그중에서 반대를 표명할 정도로 대담한 자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진군.”
고요한 침묵이 가라앉은 거리에서 제1, 3보병연대와 제3 근위 보병연대의 병사들로 이뤄진 거대한 무리의 군인들이 도쿄 중심부를 향해 진군했다.
약 1,500쌍의 거친 군화가 눈을 매섭게 짓밟아 갈색 얼룩으로 더럽혀 나가면서도, 그중에서 소소한 잡담이 들려왔다.
“추신구라 (忠臣蔵, 충신장)라도 하러 가는 걸까?”
“하이고, 우리가 무슨 오이시 구라노스케 (大石内蔵助)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해도 눈 오는 날에 ‘주군을 향한 충성심’을 위해 움직인다는 건 젊은 군인들의 마음속에 위험한 불씨를 지피기에 충분했다.
왜, 지금부터 약 4년 전에 일어난 해군 장교들의 반란 사건 당시에 사형선고를 받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그나마 형을 받은 40명 전원 1,2년 안에 석방되었지 않았던가.
심지어 대중은 그 해군 놈들을 관동 대지진 때는 제일 먼저 나서서 구조 작업에 뛰어든 구세주였으며, 이번에는 농민과 노동자들을 빈곤에서 구원해 재난 순교자이며 투사로 평가해줬다.
해군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살해하면서 한 건 크게 저질렀으니, 이제는 육군의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린 그 뭐냐, PPS 기관단총 안 쓰냐?”
“그거 쓰지 말라던데.”
“아깝네, 그거만큼 효율 좋은 것도 없는데···”
해군 장교들이 그 당시 썼던 무기, 그것도 미국의 조선인 해군 장교 리 다이이치 제독이 발명한 무기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곧이어 1,500여 명의 군대는 여러 무리로 갈라져, 그들의 사명을 반대해왔던 군부와 궁정의 요인들을 살해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중 하나는 재무대신 다카하시 고레키요 (高橋是清)의 넓게 뻗어 있는 대저택으로 수십 명의 부하를 이끌고 향했다.
“어이 잠깐, 거기 누구···이런 망할, 이번엔 육군이냐?!”
5명도 되지 않았던 경찰 경비원들은 수십 명의 무장한 군인들 앞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항복해버렸다.
“저리 비켜!”
“으아악!”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대저택 안으로 들어선 병사들은 문을 부술 기세로 걷어차며 다카하시를 찾아다녔다.
안 그래도 전년도에 대규모 육군 예산을 삭감하려던 것 때문에 증오스러웠던 그의 집을 뒤지면 뒤질수록 그들의 혐오와 분노는 더더욱 거세져 갔다.
그들의 상당수가 고향이었던 시골의 강물에는 아사한 어린이 시체가 강에 떠내려 다니고, 가난한 집안은 부모가 어린 딸을 해외로 팔아넘기기까지 했기에 다카하시의 부유한 모습을 견딜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찾아다니다가 겨우 다카하시를 찾아낸 한 장교는, 다다미 10장 크기의 넓은 침실에 누워 있는 그의 이불을 걷어차면서 외쳤다.
“천벌을 받아라!”
그러나 다카하시는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신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는 장교에게 눈을 부릅뜬 채로 호통을 내질렀다.
“이 멍청한 놈이!”
잠이 제대로 깨지도 않은 노인의 단 한 마디에, 기세등등하던 장교의 살기가 바로 그 자리에서 꺾이고 말았다.
‘이누카이도 그렇고 이번엔 내 차례란 말인가?!’
이누카이와는 달리, 전 총리였던 다카하시는 반란군과 대화를 나눌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다른 육군 장교 하나가 고함과 함께 칼을 빼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끄으윽!”
서슬 퍼런 군도에 다카하시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고통에 휩싸인 다카하시가 자신의 팔을 붙잡을 틈도 없이, 장교는 그의 배에 칼을 꽂고 휘저었고, 피 묻은 칼을 뽑자 창자 또한 흘러내렸다.
“여-여보?!”
이 소란을 듣고 옆 방에서 뛰쳐나온 그의 아내는 내장이 튀어나온 채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다카하시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옷에 피가 묻는 군인들은 비명 지르는 다카하시 부인, 그리고 겁에 질린 복도에 모인 하인들을 모두 거칠게 밀치고 나가면서 위선적인 한마디를 남겼다.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
사이토 마코토는 야밤 중에 눈을 떴다.
불길한 기운, 정확히는 살기와 인기척이 온몸을 사로잡아 곧바로 소름이 돋았고 잠을 계속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허, 이거 참.”
제3보병연대의 병사 120명이 사이토의 자택을 포위했으며, 그중 사카이 나오시 중위가 이끄는 다섯 명의 위관급 장교가 그를 둘러싸서 총구를 들이밀었다.
자신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장교들과는 타협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이토는 조금은 씁쓸하게 농담을 던져봤다.
“···아무래도 문답무용이겠지?”
“여보, 지금 무슨 일 있어요-아니, 이런 세상에!”
하루코가 경악하는 순간 다섯 명의 장교들은 사이토에게 발포했다.
총탄 그 자체만으로 그의 육신을 찢어버릴 의향이라도 있었는지, 장교들은 사람을 몇 번이나 죽이고도 충분할 만한 탄환을 퍼부어댔다.
무려 40발이 넘는 총탄이 팔다리, 오장육부, 척추 등, 사이토의 노쇠한 육체를 처참하게 난자했다.
순식간에 온몸에 구멍이 뚫리고 피투성이가 된 사이토는 피를 토하며 뒤로 쓰러졌다. 그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건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대신 죽이라고 장교들을 막아서는 하루코.
또 하나는 리 다이이치가 마지막 만남 때 자신에게 했던 한 마디.
‘사이토 마코토. 당신은 편하게 눈을 감지는 못할 겁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이토는 그게 경고였는지, 예언이었는지, 아니면 저주였는지 궁금했었다.
‘셋 다였을 줄이야···’
그래.
노여움으로 가득한 재앙신이 그를 정확히 지목하여 저주를 내렸으니, 그저 일개 인간인 자신이 어떻게 피해갈 수 있겠나.
애원하는 하루코의 머리채를 잡고 옆으로 밀친 사카이 중위가 사이토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머리를 조준했다.
하지만 사이토의 꺼져가는 의식 속에는 임박한 죽음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자리 잡았고, 그는 마지막으로 늘 궁금했던 의문을 다시 짚어봤다.
리 다이이치는 3대가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부를 쌓았건만, 왜 가족들과 여유로운 삶을 누리지 않고 아직도 해군에 남아 있는 걸까.
그리고 사카이가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그 답을 드디어 찾은 사이토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리···리 다이이치.”
탕!
화염과 비명, 철저한 파괴로 뒤덮힌 일본의 미래를 상상하며 공포에 떠는 사이토 마코토의 머리에 마지막 총탄이 박혔다.
*****
몇 개월 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새로운 보직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갔다.
“이거 꼭 제가 해야 합니까, 아버지-아니, 제독님···?”
“어.”
가끔씩 래원이를 신규 함재기나 캐터펄트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굴려 먹기도 하고 말이지. 이 자식이 어디서 감히 꿀 빨려고 들어, 팍씨.
한편 니콜라이 2세는 만주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리 백작이 잠시 여기에 머물고 있으라더군. 뭔가 만주국에서 일이 터질 것 같다면서 말이야.’
‘음.’
서부해안에 있는 모든 해군 항공 시설을 관리하고, 신규 항공모함을 감독하며 훈련 보조를 하는 일은 어쩌면 해군 항공의 총책임자였던 해군 항공국장에 비해선 조금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항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간만에 바닷물 짠내도 맡아보고, 직접 파일럿들을 감독도 하고, 제일 결정적으로 워싱턴에서 떨어지는 것만 해도 어디야.
···라고 생각했는데.
따르릉
“리 제독 맞나?”
“아이고 리히 중장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그래그래 고맙네, 축하 선물은 잘 받았고 정말 고맙네. 그런데 말이야 지금은 좀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아니 또 뭡니까?”
그리고 윌리엄 리히 중장은 갑자기 나에게 폭탄을 떨어트렸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직접 샌디에이고로 행차한다고.
야.
내가 워싱턴을 떠나니 이젠 워싱턴이 나를 따라오는구나, 젠장할!